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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재산이 생명을 보장해주지 못한다.
조회수 | 2,454
작성일 | 07.08.03
어떤 교우 한 분이 하소연을 하러 왔습니다. 자기 집 내력을 쭉 이야기하면서 결국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재산때문에 형제들 사이에 싸움이 일어나 재판까지 하게 되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재산때문에 형제간의 우애도 깨어지고 부모님의 제사에도 오지 않는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요즘같이 살기 어려운 때에 ‘배부른 싸움’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실직자가 되어 울상이고, 장사가 잘 되지 않아 가게 문을 닫는 판국에 ‘무슨 배부른 재산 싸움이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차라리 그 재산을 어려운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어 힘과 용기를 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어떤 탐욕에도 빠져 들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사람이 아무리 부요하다 하더라도 그의 재산이 생명을 보장해주지 못한다”(루가 12,15)라고 하시면서 ‘어리석은 부자의 이야기’를 들려 주셨습니다. 수고하고 땀 흘려 아무리 많은 재산을 모았을지라도 하느님 사업에 인색하고 이웃에게 도움을 줄줄 모른다면,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죽으면서 단 하나도 가져가지 못하는 것을!

전도서의 어떤 설교자는 이런 말을 하고 있습니다. “헛되고 헛되다. 세상만사가 헛되다.”(전도 1,2) 사람이 매일 뼈아프게 수고하고 온갖 재간을 부려 모은 재산도 죽음 앞에서는 무상하고 무의미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세상에서 부귀영화나 명예, 쾌락에 지나친 집착이나 과도한 욕심을 부리지 말고 ‘지혜로운 삶’을 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사도 바오로는 지혜로운 삶을 사는 방식에 대해서 이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났으니 … 지상에 있는 것들에 마음을 두지 말고 천상에 있는 것들에 마음을 두십시오.”(골로 3,1-2) 참된 그리스도인은 천상적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들이며, 옛 것을 버리고 새 것을 추구하는 사람들입니다. 지상적 가치를 추구하는 것은 망상이고 허황된 꿈이며 귀중한 삶을 낭비하는 것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 옷으로 갈아 입으며 천상적 가치를 추구합니다.

우리 삶의 주인은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께서 당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새로운 삶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제 허황되고 맹목적인 꿈을 꾸지 않아야 합니다. 재산의 부유함이 우리를 살려낼 수가 없습니다. 부귀영화나 명예가 곧 인생의 성공이라고 말 할 수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를 다시 살려낼 수가 있습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탐욕을 부리지 말고 가진 것을 가난한 이웃과 나누어라. 그러면 하늘에서 보화를 얻으리라.”(마르 10,21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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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대교구 배임표(요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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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석합시다

“지난 주일 결석했습니다.”

어떤 할머니의 이 고백을 듣는 순간 웃음이 났습 니다. 주일미사를 궐했다거나 빠졌다는 표현에 익숙 한 제게 결석이라는 말은 너무 생소한 말이었습니 다. 그런데 이 생소한 말이 깊은 의미로 제게 다가 왔습니다. ‘이지러질 결(缺)’자와 ‘자리 석(席)’ 이라는 글자로 이루어진 결석은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 않다’는 의미 한 가지와 ‘자리’라는 말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해 주었습니다.

누구에게나 자신이 있어야 하는 자리는 주어집니 다. 그것도 누가 대신 해주지 못하는 자신만의 자리 가 생기게 됩니다. 그 자리에 있지 못하면 온전한 자신의 삶을 살아가지 못합니다. 자신이 있어야 하는 자리를 알고 그 자리에 머무르는 사람은 거룩한 성인이 된다고 합니다. 쉬운 일은 아닌가 봅니다. 성인이 될 정도라면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에 대해 고민을 해야 될 것 같습니다.

‘자리’는 단순히 공간의 의미만은 아닙니다. 자신의 삶이 형성되고 수많은 만남이 이루어지는 곳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영역을 넓혀 갑니다. 어떠한 만남이 이루어지는가에 따라 그 넓이도 달라질 것입니다.

“너희는 주의하여라. 모든 탐욕을 경계하여라.” 누군가를 제대로 만나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부분을 지적하는 말씀입니다. 두 번이나 경고를 내리시는 이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자신이 있어야 하는 자리에 탐욕이 들어간다면 그 사람은 자신의 자리를 빼앗기게 될 것입니다. “이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에 네 목숨을 되찾아 갈 것이다.” 이런 가르침에 따라 바오로 사도도 “탐욕을 죽이십시오. 탐욕은 우상숭배입니다.”라고 오늘 우리에게 말합니다. 우상숭배는 하느님과 사람들을 만나는 ‘자리’를 나에게서 빼앗아 갈 것이며, 결국 자신의 영역을 자신에게 제한시킴으로 점점 더 좁아지고 답답하게 만들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을 고립시키고 답답하게 만드는 탐욕에서 나와야 합니다.

결석과 대조되는 말로 우리는 출석(出席)이라는 말을 씁니다. 있어야 할 자리에 있기 위해 우리는 나와야 합니다. 탐욕이 있는 자리에서 나올 때 우리는 우리가 있어야 하는 곳에 있게 될 것입니다. 탐욕이 빈 자리에 하느님과 이웃들이 들어설 수 있는 자리가 생깁니다. 그 자리가 생기는 순간 우리는 더 이상 “하느님 앞에서 부유하지 못한 사람”이 아닐 것입니다. 다 같이 출석합시다.

대구대교구 허남호 마르코 신부
  | 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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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으로 몰고 가는 욕심

우리 모두가 잘 아는 이야기입니다. 아프리카 원주민들이 원숭이를 잡는 방법입니다. 먼저 가죽으로 자루를 만들고, 그 입구를 좁게 만듭니다. 그리고 그 자루 속에는 원숭이들이 좋아하는 과일을 잔뜩 넣어서 나뭇가지에 매달아 놓습니다. 그러면 원숭이들이 나타나 자루 속을 들여다보다가 '이게 웬 떡이냐!' 하면서 좋아 날뜁니다. 그리고는 '얼씨구나!' 하면서 자루 속에 손을 집어넣어 과일을 꺼내려고 합니다. 그렇지만 원숭이의 손은 자루 밖으로 나오지 못합니다. 왜 그럴까요? 자신이 좋아하는 과일을 잔뜩 움켜잡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원숭이는 손을 빼내려고 안간힘을 쓰지만 과일을 꽉 움켜잡고 놓지 않기 때문에 빼낼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때를 놓치지 않고 원주민들이 나타나 자루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원숭이를 손쉽게 잡습니다.

원숭이는 다른 동물들보다 영리하다고 하지만 가장 간단한 이치를 모르고 있습니다. 손에 쥔 먹이를 놓기만 하면 잡히지 않을 텐데, 움켜쥔 과일을 포기하면 살 수 있는데도 원숭이는 어리석게 그것을 모르는 것입니다. 아니 어쩌면 알고 있으면서도 눈앞에 놓여 있는 과일을 포기하지 못하기 때문에 스스로 죽음에로 다가가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이 이야기를 통해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욕심은 죽음으로 가는 지름길이라는 사실입니다. 먹이에 대한 욕심, 자신의 손 안에 움켜쥔 것을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 지나친 욕심 때문에 결국 원숭이는 죽게 된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이 미련한 원숭이와도 같은 사람을 만납니다. 어떤 부유한 사람이 땅에서 많은 소출을 거두게 되었습니다. 부자는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내가 수확한 것을 모아 둘 데가 없으니 어떻게 하나?”이런저런 궁리를 하다가 이 부유한사람은 작은 곳간을 헐고 큰 곳간을 새로 짓기로 결심합니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자, 네가 여러 해 동안 쓸 많은 재산을 쌓아 두었으니, 쉬면서 먹고 마시며 즐겨라’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비유로 들려주신 어리석은 부자는 바로 미련한 원숭이 같은 사람입니다. 부자가 기껏 생각해 낸 것이 어떻게 하면 그 많은 수확을 혼자서 독차지하면서 즐길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 부자는 그 날 밤에 횡사하고 말았습니다. 그 부자는 그 많은 수확을 혼자서 독차지하지도 못했고, 실컷 쉬고 먹고 마시지도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거둔 곡식은 다른 사람들의 손에 들어가고 말았습니다. 이 어리석은 부자는 원숭이처럼 오로지 자신이 갖고 있는 재산에만 몰두해 있습니다. 오직 자신이 모은 재물에만 집착해 있습니다. 온통 내 것에 대한 욕심뿐입니다. 내 곡식, 내 창고, 내 재산, 그것이 영원한 생명을 줄 것이라고 믿고 ′자, 네가 여러 해 동안 쓸 많은 재산을 쌓아 두었으니, 쉬면서 먹고 마시며 즐겨라.′

이렇게 어리석은 부자는 원숭이처럼 자신의 재산을 꼭 움켜잡고 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곧 죽게 되는데도 그 사실을 모르는 채 오직 자신의 재물만 움켜쥐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어리석은 사람에게 말씀하십니다.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에 네 목숨을 되찾아 갈 것이다. 그러면 네가 마련해 둔 것은 누구 차지가 되겠느냐? 자신을 위해서는 재화를 모으면서 하느님 앞에서는 부유하지 못한 사람이 바로 이러하다.”

누구나 하느님 앞으로 갈 때는 빈손으로 가는 우리들입니다. 세상 것을 움켜 쥘 것이 아니라 늘 하느님을 움켜쥐고 하느님 앞에서 부유한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성진 요아킴 신부
  |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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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하느님 앞에서 부유한 사람

교리교사들과 피정을 하면서 물었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자신이 받은 최고의 선물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그러자 한 여교사가 “20살 되던 날 엄마로부터 받은 생일선물”이라고 말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지금까지 예쁘게 잘 자라줘서 고맙다는 내용의 편지와 감사할 줄 알고 늘 기도하라며 넣어준 묵주, 그리고 아무리 어려워도 어려운 사람들을 도울 줄 알라며 넣어준 천 원짜리 30장이었습니다. 그때 이후부터 늘 지갑에 천원짜리를 넣어 다닌다는 그 교사를 보면서 저는 ‘역시, 그 어머니에 그 딸이구나!’ 싶었습니다.

처음으로 딸이 취직을 해서 직장을 다니게 되었습니다. 첫 봉급날, 당연히 딸이 무엇인가 해줄 줄 알았는데 아무런 소식이 없습니다. 내심 섭섭해 하는 아버지에게 딸이 다가와 말합니다. “첫 월급만큼은 하느님께 봉헌하고 싶었어요.” 그런 딸이 얼마나 예쁘고 대견한지 모른다며 아버지는 마냥 행복해하셨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저는 ‘역시, 그 아버지에 그 딸이구나!’ 싶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모든 탐욕을 경계하라.”하고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부유해도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있지 않기”때문이요, 아무리 많은 재물을 곳간에 쌓아둘지라도 하느님께서 목숨을 거두어가시면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런 복음말씀을 묵상하면서 하나라도 더 많이 가지려는 오늘날 세상을 바라보았습니다. 동시에 이런 세상 속에서도 여전히 자신의 것을 기쁘게 나누는 이들의 모습도 바라보았습니다. 과연 어떤 삶이 의미 있고 가치 있겠습니까? 어떤 삶이 아름답고 행복하겠습니까?

“자신을 위해서는 재화를 모으면서 하느님 앞에서는 부유하지 못한 그런 사람이 되지 말라.”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무슨 의미인지 깊이 깨달아봅니다. 우리들만큼은 늘 ‘하느님 앞에 부유한 사람들’이면 좋겠습니다. 아멘.

<대구대교구 서영민 알렉산델 신부>
  |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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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어리석은 자야!

“한국의 학생들은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학교 및 학원에서 미래에 필요하지 않을 지식과, 존재하지도 않을 직업을 위해서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

지난 6월 27일에 사망한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가 한 말입니다. 교육 행정가들과 부모들에게 한말이죠. 학생들에게 한 말은 아닙니다.

오늘 무언가 열심히 하긴 했는데, 그것이 내일 필요가 없는 무엇을 붙들고 열심히 하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드러내놓고 말은 안했지만 ‘참 어리석다.’라고 하는 듯합니다.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에 네 목숨을 되찾아 갈 것이다. 그러면 네가 마련해둔 것은 누구 차지가 되겠느냐?”

복음에 등장하는 ‘어떤 부유한 사람’은 오늘만을 생각하고 내일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자기 자신만을 생각할 뿐 옆 사람도, 하느님도 염두에 두지 않고 사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을 하느님께서 “어리석은 자야!”라고 부릅니다.

“에구, 어리석기는! 성당에 다니면 돈이 생기나, 떡이 생기나?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열심이고!” 성모상 주변에 잡초를 뽑고 조용히 화장실 청소를 하시는 분들, 나도 어렵고 아픈데 더 어렵고 아픈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봉사하는 분들, 주말에 성당에 살며 하루 종일 학생들을 위해 봉사하는 교리교사들 등등. 이런 분들을 세상 사람들은 “어리석은 자야!”라고 부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슬기로운 자야!”라고 부를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오늘만이 아니라 내일을 생각하며 사는 사람들이고, 자신뿐만 아니라 이웃과 하느님도 염두에 두면서 사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세상 사람들에게 어리석어 보이는 삶이 하느님 보시기에 예쁘고 슬기로운 삶이라는 것을 꼭 기억하면서 한 주간 각자의 자리에서 행복하게 사시기 바랍니다. 아멘.

▮ 대구대교구 정영훈 바오로 신부 2016년 7월 31일
  |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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