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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주님께서 나에게 주신 것들
조회수 | 2,319
작성일 | 07.08.09
언젠가 유명한 강사 한 분이 TV에 나와 토크쇼에 참여하는데 연세가 있으신 분이었다. 그분의 1주일 스케줄 표를 보여주는데 그 연세에 1주일에 하루도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강의를 하시는 것을 보고 사회자가 물어보았다. 힘드시지 않으시냐고. 그분이 대답하시길 이 나이에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도 많은데 자신을 불러주는 사람들이 많아서 기쁘게 쫓아다니고 있다고, 하나도 힘들지 않다는 것이다. 자신에게 이런 능력이 있기에 지금 이 나이에도 자신을 불러주는 사람들이 있고 자신은 건강이 허락하는 한 언제든 부르는 곳이 있으면 갈 것이라는 대답이었다.

내가 있는 녹동성당엔 섬마을 공소 두 곳이 있다. 요새 시골이 다 그렇지만 노인들이 참 많다. 때론 이 노인들이 전부 돌아가시면 시골 공소들은 어찌 될까 걱정이 되기까지 한다. 그런데 얼마 전에 젊은(?) 형제님 한 분을 하느님께서 우리 섬마을 공소 한 곳에 보내주셨다. 그 형제님은 정년퇴임을 하시고 도시 집에 계시며 이곳 저곳이 아파서 힘들어 하셨다고 한다. 그래서 ‘이 나이에 이제는 내가 할 일이 없겠구나’라는 생각을 하셨단다. 그런데 이 섬마을 공소에 들어와 보니 자신보다 연세가 많으신 어른들이 공소회장도 하시고, 사목회 임원을 하시며, 미역·다시마 작업에 공소를 위해서 애쓰시는 모습을 보시고 하나의 깨달음을 얻으셔서 지금은 공소 마당을 아름답게 꾸미고 계신다. 허리가 아프시다더니 그 무거운 돌들을 옮겨서 화단을 아름답게 꾸며놓으셨다. 이제는 허리도 안 아프다고 하시며, 자신이 우리 공소의 젊은 청년임을 자부하신다. 저도 공소를 들어갈 때면 이번엔 무엇이 바뀌어 있을까 조금씩 기대하게 된다.

오늘 복음의 ‘행복하여라, 주인이 와서 볼 때에 깨어 있는 종들!’은 바로 이런 분들을 이르는 말이 아닐까 싶다. 깨어 있다는 의미는 눈만 뜨고 있다고 깨어 있는 것이 아니다. 눈뜬 송장, 멍한 사람, 정신 빠진 사람이라는 표현에서 볼 수 있듯이 우리는 깨어 있다고 해서 진정 깨어 있는 모습은 아니다. 아마도 깨어 있다는 의미는 내가 해야 할 일을 아는 것,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를 아는 것이 아닐까? 주님의 말씀처럼 주님께서 나에게 주신 것이 무엇인지, 내가 얼마나 받았는지를 알고 그것을 제대로 활용할 줄 아는 사람이 진정 깨어 있는 사람이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받은 모든 것을 사용하고 진이 빠져서 하늘나라에 올라간다면 주님께서는 우리를 기쁘게 환영하실 것이고, 우리를 반기시며 식탁에 앉게 한 다음, 우리 곁에서 시중을 들어 주실 것이다. 이제 우리도 그런 영광을 받기 위해서 내 삶은 어떤 준비가 되어 있는지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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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대교구 임창훈 바오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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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은 기다림의 준비

오늘 1독서에 봉독된 지혜서의 저자는 에집트에서 살고 있으면서 하느님의 약속을 굳게 믿고 있는 신앙인이었습니다. 지금은 고국이 그리스의 속국이 되어 고통을 겪고 있지만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에게 약속하신 내용은 언제고 이루어진다는 꿈과 희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느님께 대한 이처럼 전적인 신뢰와 믿음이 이스라엘의 아름다움입니다.

실제로,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언약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수백 년이라는 긴 세월이 걸렸습니다. 그래도 아브라함은 믿었으며 지금 당장 그 약속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해도 백 년 후, 아니면 천 년 후에라도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은 성취되리라고 믿었습니다. 믿음은 그런 애절함 때문에 숭고한 것입니다.

2독서에서 강조하는 것도 그와 같은 믿음입니다. 사람은 진정 무엇을 바라보고 또 희망을 어디에 두고 있느냐에 따라서 삶의 가치 가 달라지게 됩니다. 진정한 소망인 그리스도께 우리의 미래를 걸고 있을 때 우리는 짓눌려도 찌부러지지 않고 절망 속에서도 실망하지 않으며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용기를 갖게 됩니다.

믿음이란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미래를 약속하신 하느님께 전적인 신뢰를 갖는 것입니다. 언젠가는 그 약속이 성취되고 그 말씀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언제나 충실하게 걸어가야 한다는 것이 오늘 성서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오늘 예수께서는 사람의 아들은 우리가 생각지도 않은 때에 올 것이니 항상 준비하고 있으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준비는, 허리에 띠를 띠고 손에 등불을 들고 주인을 기다리는 것이며, 그 주인이 가져오실 위대한 선물 때문에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재산을 서로 나누라는 것입니다. 즉 보다 높은 재화를 얻기 위해서 보다 낮은 재화를 나누고 베푸는 사랑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많이 받은 사람은 많은 것을 돌려주어야 합니다.

기다림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첫째는 결혼이나 회갑처럼 미리 날짜와 시간을 받아 놓고 기다리는 것이며 둘째는 어떤 돌발적 인 사고나 죽음처럼 시간과 날짜를 전혀 예측할 수 없는 것에 대한 기다림이 그것입니다. 우리는 대개 첫째의 경우는 정도 이상으로 준비하지만 두번째의 기다림에는 또 대단히 소홀해지기 쉽습니다.

여름밤에 시골길을 운전하다 보면 개구리들이 느닷없이 튀어나오는 경우를 자주 만나게 됩니다. 이것들이 길가에 가만히 있으면 문제가 없는데 지나가는 불빛 때문인지 달리는 차를 향해 펄쩍 뛰어듭니다. 그래서는 깔려 죽습니다. 이게 기분 좋은 일은 아니지만 갑자기 달려드는 일이기에 미처 피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사람의 운명이라는 것도 어쩌면 그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괜한 욕심을 내다가 자기 명을 헛되게 단축시키는 경우도 있으며 자기 판단이 옳다고 자신하다가 그만 화를 자초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 숱한 교통사고만 봐도 그렇습니다. 그들은 정말 그런 식으로 마지막 시간을 만나려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평소에 선하게 살면서 사랑을 베풀었던 사람은 언제 무슨 일을 당해도 떳떳합니다. 당당하며 자신이 있습니다. 그들은 하루를 살아도 천 년을 사는 지혜를 가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오래 살고 또 그 날을 미리 알았다 해도 선하게 살지 못했던 사람은 불행합니다. 자기만 위해서 살았기 때문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은 사라지게 마련이며 우리가 손에 쥘 수 있는 것은 언제고 잃게 됩니다. 우리 주위에는 우리가 필요한 이웃들이 많이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 슬픈 사람, 병든 사람, 그리고 억울하게 박해받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 안에도 어려운 본당, 정말 가난한 공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리스도가 우리의 진정한 재물이라면 그리스도의 재물은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우리 주위에 있는 어려운 자들과 어려운 본당은 다 우리의 소중한 재물입니다. 우리가 매 주일 천 원씩만 더 헌금할 수 있다면 매년 수백억 원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쓸 수 있을 것입니다. 많은 시골 본당도 도울 수 있을 것입니다.

내일 돕는다는 것은 거짓말입니다. 자기가 자기를 속입니다. 살아가며 그때그때 돕는 것입니다. 항상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들고 불우 이웃을 찾는다면 그는 정말 멋지게 기다리는 길을 아름답게 준비하는 사람입니다. 우리 모두 성실한 기다림의 자세를 갖도록 합시다.

광주대교구 강길웅 신부
  | 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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