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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 내가 받아야 할 세례
조회수 | 2,190
작성일 | 07.08.18
친애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은 연중 제20주일입니다. 오늘의 성경 말씀은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예언자의 사명이 어떠한지를 잘 말하고 있습니다.

제1독서(예레 38,4-6.8-10)의 예레미야 예언자, 복음(루카 12,49-53)의 예수님께서는 자신들이 살아가던 그 시대의 말씀의 선포자로서 많은 역경과 시련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의 사명을 자각하였기에 시련을 겪으면서도 소신을 지니고 꿋꿋하게 진리를 외쳤습니다. 그 길은 비록 외롭고 역경에 처한 길이었지만 하느님의 뜻에 충실한 삶이었습니다.
  
예레미야 예언자의 경우, 기원전 587-586년 예루살렘이 바빌론에 의해 결정적으로 포위되기 직전, 계속해서 유다 왕국의 멸망을 예고하였습니다. 유다의 입장으로서는 바른말을 하는 예레미야 예언자가 밉기만 하였습니다. 반국가적 인물이었던 셈이지요. 그래서 왕정 주변의 권력자들은 그를 잡아 웅덩이에 가둡니다. 그런데 궁중의 인물인 에벳멜렉은 예레미야를 이해하고 왕을 설득시켜 그의 구명을 실현시켰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예언자의 길이 얼마나 험하고 어려운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예언자 예레미야는 불신과 저버림을 당할 때의 심정을 "아, 불행한 이 몸! 어머니, 어쩌자고 날 낳으셨나요? 온 세상을 상대로 시비와 말다툼을 벌이고 있는 이 사람을."(예레 15,10)라고 이야기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자신의 사명을 수행합니다.
  
예수님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이 불이 타올랐다면 얼마나 좋으랴? 내가 받아야 하는 세례가 있다. 이 일이 다 이루어질 때까지 내가 얼마나 짓눌릴 것인가?"(루카 12,49-50). 여기서 나타나는 불과 세례는 그분의 수난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분의 수난은 완전히 살라버리고, 정화시키는, 강렬하게 타오르는 불길로서 설명되기도 하고, 고통과 죽음의 깊은 물속에 잠기는 침례로서 설명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분의 길을 따른다는 것은 십자가를 지는 삶을 말하는 것으로 이는 어떤 의미에서 평화를 주기보다는 진리와 말씀 때문에 마음에 갈등과 혼란을 가져다 줄 수도 있습니다. 평화보다는 분열과 혼란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는 셈이지요.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구원을 가져다주는 참 평화를 심어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위선자들아, 너희는 땅과 하늘의  징조는 풀이할 줄 알면서, 이 시대는 어찌하여 풀이할 줄 모르느냐?"(루카 12,56)고 하시면서 무엇이 옳고 그른지 그리고 참된 주님의 길이 무엇인지, 이 시대의 표징이 어떤 것인지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을 꾸짖고 계십니다. 우리가 주님의 참 뜻, 주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바를 정확히 헤아리기 위해서는 세속의 헛된 것에 마음을 두지 말고 오늘의 제2독서 말씀, "우리의 믿음의 영도자이시며 완성자이신 예수님을 바라봅시다."(히브 12,2)라는 말씀을 되새기며 죄를 벗어버리고 우리가 달려야 할 길을 꾸준히 달려가도록 합시다. 이것이야말로 이 시대의 예언자로서 소명을 다하고 주님의 참 뜻을 실천하는 당신의 사랑받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길일 것입니다.

원주교구 김한기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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