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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주님의 참된 평화를 얻기 위해서라면
조회수 | 1,924
작성일 | 07.08.18
왜 평화의 왕이신 주님은 평화가 아니라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고 하시는 것일까?

그리스도 편에 선다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원하지 않 는 것들에 대항한다는 뜻이다. 선은 악에 대항하고, 정의는 불의에 대항한다. 이들은 서로가 완전히 달라 서 타협할 수가 없다. 우리는 이중에 하나를 선택하 며 살아간다. 무엇이 더 소중한지, 무엇을 먼저 행해 야할 것인지, 그리고 용서와 복수, 나눔과 독식, 참됨 과 거짓, 도움을 호소하는 이의 소리를 귀담아듣거나 외면하는 것 등이 우리를 어느 편에 서는지 분별하게 한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내 행위의 기준으로 삼고, 선과 악, 거짓과 진실을 가려내는 기준으로 삼는 사람이다. 그래서 세상에서 얻은 가치나 판단 기준을 가진 사람과의 충돌을 피할 수는 없다. 이런 충돌을 두려워해서 거짓 평화를 누리려는 마음은 일찍 버려야 한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은 세상을 따를 수 없고, 내 안에 숨어있는 타협적이며 적당주의적인 성향과 싸워나가야 한다. 우리는 자주 그리스도의 편에 설 것인가 아니면 그 반대편에 설 것인가를 결정해야 하는 기로에 서게 된다.

주님은 “제가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것처럼 이들도 세상에 속하지 않습니다.”(요한 17,16) 라고 기도하셨다. 우리는 하느님 나라의 완성과 참된 평화를 위해 초대받은 빛의 자녀이다. 결코 어둠의 자녀로 살거나 적당히 타협하며 이 세상에 속한 사람처럼 살아서는 안 된다. 세속의 헛된 것에 마음을 빼앗겨서도 안 된다.

“우리 믿음의 영도자이시며 완성자이신 예수님을 바라봅시다.”(히브리 12,2)
주님만을 바라보며 우리가 그분을 따르는데 장애 되는 모든 것들을 끊어버리는 노력이 있을 때에 비로소 주님이 주시는 참된 평화를 누릴 수 있게 된다.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도, 겁을 내는 일도 없도록 하여라.”(요한 14,27) 아멘.

대구대교구 박 철 요셉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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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좋은 게 좋은 것이 아닙니다.

신자들은 연말이 되면 본당 사무실에 기부금 납입증명서를 발급받으러 옵니다. 예전에는 간 혹 신자들 가운데 자신이 낸 교무금과 봉헌금 이상으로 증명서를 발급해줄 것을 당당히 요구 하곤 합니다. 안된다고 하면 따지기도 하고 ‘좋은 게 좋은 거 아닙니까?’라는 말로 자기주장 을 펼치기도 하는 해프닝이 종종 있었습니다.

우리말 중에 ‘좋은 게 좋은 거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실제로 이 말은 갈등상황이 벌어졌을 때 이것저것 따지기 보다는 좋은 게 좋은 거니 까 분란 없이 그냥 좋게 넘어가자는 뜻으로 흔히들 사용합니다. 세상에 이 말처럼 훈훈하고 관용과 포용력을 지닌 언어도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모두에게 좋은 방향으로 일을 마무리하자는 것이니 갈등상황에서 ‘좋은 게 좋은 거’라며 설득하는 이들이 인간미 넘치는 따뜻한 사람으로 여겨질 때도 종종 있습니다.

허나 꼭 좋은 게 좋은 것은 아닙니다. ‘좋은 게 좋은 거지’라는 말 속에는 좋지 않아도 좋은 쪽으로 해결하자는 뜻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 말의 효용성은 건강한 다수의 사람이 아니라 불법이나 잘못을 저지르는 일부에게만 해당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마치 삶의 진리를 다 깨달은 것처럼 ‘사람 사는 것이 다 그렇지’라며 훈계까지 합니다.

그러나 ‘좋은 게 좋은 거다.’ 라는 말속에는 윤리나 도덕적인 평가는 결여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잘못이 있고 허물이 있어도 굳이 들추어내거나 문제시할 필요가 있느냐는 주장이기도 합니다. 더 나아가 ‘이 정도쯤이야 뭐 어 때!’라는 도덕적 불감증까지도 포함하고 있는 듯합니다. 결론적으로 제가 생각하기에 우리가 흔히 쓰는 ‘좋은 게 좋은 거다’라는 말은 잘못 을 저지른 사람들의 위선적인 자기변명이며 불법적인 자비와 관용이라고 생각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오히려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행동으로도 당신의 말씀을 실천하셨습니다. 자 신에게 불이익과 위협이 될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세상의 불법과 위선에 대해서 거침없이 말씀하셨습니다.

형제 여러분, 예수님은 분명 자비와 관용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사람들의 불의 와 모순 그리고 위선에 대해서는 단호하셨습니다. 그러다가 갈등과 불편함 혹은 위협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인 우리도 단호해야 할 것입니다. 편리와 이익을 위해 작은 것에 눈감고 변명하려는 자신에게도 단호해야 하며, 세상의 불의와 모순 그리고 위선에 대해서도 단호해야 합니다. 그로 인해 우리도 불편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불편함을 십자가로 인내하고 이겨내는 사람, 그 사람이 참 된 신자입니다. 우리는 다음과 같이 자신과 사람들에게 말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좋은 게 좋은 것이 아닙니다.”

▮ 대구대교구 정수철 야고보 신부 2016년 8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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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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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고, 함께 사는 사람들의 무리를 국가라고 부르기도 하고 마을이라고도 합니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는 가끔 분쟁이 일어나고 어떤 때는 피까지 흘리기도 합니다. 전쟁을 겪어본 사람들이 모두 마음 모아 바라는 것이 있다면 바로 평화일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복음에서 알아듣기 어려운 말씀을 듣습니다. “이제부터는 한 집안의 다섯 식구가 서로 갈라져, 세 사람이 두 사람에게 맞서고 두 사람이 세 사람에게 맞설 것이다.”(루카 12,52) 이 말씀은 고뇌에 차서 제자들에게 하신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아버지와 아들, 어머니와 딸,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갈라서게 된다는 것입니다. 가족끼리의 분쟁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피로 뭉쳐진 이들이 가족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들이 당신으로 말미암아 갈라지고 서로 분쟁을 일으킨다고 하십니다.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사실 예수님은 누구보다도 평화를 원하십니다. 제자들을 파견하실 때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먼저 평화를 빌어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첫 번 째 인사로 너희들에게 평화를 빈다고 말씀하십니다. 평화를 누구보다도 소중하게 생각하신 예수님이 가정의 평화를 무너뜨리는 듯한 말씀을 하십니다.

우리는 이 모순된 두 말씀을 이해하기 위하여 먼저 예수님이 하신 다른 말씀을 알아들어야 합니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요한 14,27) 예수님이 주시고자 하시는 평화는 세상의 권력자가 무력으로 통치하여 외적으로 보이는 ‘평정의 상태(Pax-Romana)’도 아니며, 거짓과 불의와 타협하여 서로를 침공하지 않는 그러한 상태도 아닙니다. 예수님이 주시고자 하시는 평화는 불의와 맞서서 쟁취하는 평화요, 거짓과 위선에서 벗어나 진실과 정의로운 삶을 사는 이들에게 주어지는 평화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모두가 갖기를 원하시는 평화는 당신이 십자가의 길을 걸어간 다음 비로소 얻을 수 있었던 그 평화, 고난을 겪은 후에 얻는 영원한 평화를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집안 식구가 바로 원수가 된다.”(마태 10,36) 평화를 얻는 길은 그리스도를 우선적으로 선택하는 것입니다. 가족도 그리스도를 앞설 수 없습니다. 가족끼리 남을 헐뜯을 때 그 가족이 바로 마지막 날 나를 고발할 것입니다. 공의의 하느님 앞에서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내 남편이, 내 아내가 누구를 욕했습니다.’ ‘나도 함께 가자고 했습니다.’ 가족이 원수가 됩니다.

이제 우리는 이렇게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평화는 영적 투쟁과 고통의 결실이며 자기에게 주어진, 또 자신만이 지고 가야 할 십자가를 지고 갈 때 주어지는 하느님의 선물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주고자 하시는 평화는 예수님을 세상 어떤 것보다 우선적으로 선택함으로써 주어지는 온갖 박해와 어려움을 이겨낸 사람들이 얻는 평화입니다. 회개와 정화의 길, 고행과 보속의 길을 걸어간 이들에게 주어지는 참된 평화인 것입니다. 거짓 평화에 안주하지 맙시다. 십자가를 바라봅시다. 진실한 삶을 살아갑시다. 예수님은 세상에 불을 지르십니다. 그 불이 이미 우리 마음에 타오릅니다. 그 불은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의 불이며 정화의 불이며 성령의 불입니다. 이 불의 도움을 받아 평화를 추구합시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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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대교구 김준년 베드로 신부 : 2019년 8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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