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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 2,587
작성일 | 07.08.24
오늘 복음에서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주님, 구원받을 사람은 적습니까?” 하고 묻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답으로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써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사람이 그곳으로 들어가려고 하겠지만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참 어렵고 난감한 말씀입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것인지를 주님께서는 계속해서 말씀해주십니다.
“집주인이 일어나 문을 닫아 버리면, 너희가 밖에 서서 ‘주님, 문을 열어 주십시오.’ 하며 문을 두드리기 시작하여도, 그는 ‘너희가 어디에서 온 사람들인지 나는 모른다.’ 하고 대답할 것이다. 그러면 너희는 이렇게 말하기 시작할 것이다. ‘저희는 주님 앞에서 먹고 마셨고, 주님께서는 저희가 사는 길거리에서 가르치셨습니다.’ 그러나 집주인은 ‘너희가 어디에서 온 사람들인지 나는 모른다. 모두 내게서 물러가라, 불의를 일삼는 자들아!’ 하고 너희에게 말할 것이다.”

주님의 빵을 나누어 먹고 가르침을 들었어도 불의(不義)를 일삼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불의를 일삼지 않는 것…, 이것이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정의(正義)를 실천하는 것이 좁은 문…, 구원으로 가는 길입니다.
아버지 하느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계시하신 정의는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인류를 구원하고자 하는 하느님의 자비입니다.(「성서신학사전」광주가톨릭대학전망출판부 ‘정의’ 참조).
정의롭게 사는 것은 하느님의 자비를 실천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 주십니다(마태 5.45), 이것이 하느님의 자비입니다.
한없이 자비로우신 하느님이시기에 주님 앞에서는 첫째도 꼴찌도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자비를 실천하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고 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어느 문으로 가야하는지 알려주셨고, 어떻게 하면 들어갈 수 있는지도 가르쳐주셨습니다. 이제 실행하기만 하면 됩니다.
우리 모두 하느님의 자비를 삶속에 살아가면서 주님께서 주시는 기쁨과 행복이 가득한 하느님 나라를 만들어가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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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대교구 최용환 도날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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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써라..."

너무 중요하기에 "몸과 마음의 수고로움을 다하라"는 뜻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 그렇게 강조하십니다.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애써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사람이 그 곳으로 들어가려고 하겠지만 들어가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13,24)

팔레스티나 유다인들, 즉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저 세상에서 하느님의 복을 받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오늘날에도 교회 공동체 안에 머물고 있는 모든 사람들도 그렇게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인간적인 기대는 심판이 닥치면 뒤바뀔 가능성이 많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하느님의 선민 유다인 공동체에 속해 있다고 해서, 또는 세례를 받아 그리스도인 공동체에 속해 있는 것만으로는 턱 없이 부족하다는 말씀일 것입니다.

"'저희는 주님 앞에서 먹고 마셨고, 주님께서는 저희가 사는 길거리에서 가르치셨습니다.' 그러나 집주인은..."(13,26)

주님께서는 좁은 문과 닫힌 문의 상징을 통해 당신의 복음을 거절하는 사람들은 하느님의 왕국에 들어가지 못하는 반면, 복음을 믿고 따르는(애쓰는) 이들은 이 왕국에 들어간다고 하십니다. 분명 하느님을 섬기는 유다인 공동체, 그리고 교회 공동체에 속해 있어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미사성제도 드리고 나름대로 교회 활동도 꽤 열심히 한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너희가어디에서 온 사람들인지 모른다. 불의를 일삼는 자들아!' 하고 너희에게 말할 것이다." (13,27)

성서에서 '안다'는 말은 지적 차원의 지식 뿐만 아니라 의지와 감성의 차원도 포함된 인격적 관계를 맺는 것을 뜻합니다. 주님과의관계가 그렇게 유지될 때에 주님은 우리를 '안다'라고 하실 것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인격적인 관계인 온전한 일치를 이뤄 주님께서 우리를 '아신다'는 말씀을 듣기 위해우리는 미사 때마다 영성체 준비의 기도로 이렇게 지향을 두고 살아갑니다.

"하느님의 이름을 거룩히 빛내는 일"
"하느님의 나라가 임하게 하는 일"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일"

이 세 가지의 지향이 나를 통해서 이뤄지도록 교회의 가르침과 복음의 말씀에 우리 모두 더욱 애쓰도록 합시다.

안성완 이냐시오 신부
  |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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