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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종] 좁은 문을 통과하려면
조회수 | 2,673
작성일 | 07.08.24
요즘, 청소년들이나 젊은이들의 모습이 안타까워 보일 때가 많습니다. 입학시험이다, 취직시험이다 해서 너무나 힘든 시절을 보내기 때문입니다. 훌륭한 대학일수록 입학의 문이 좁고 좋은 직장일수록 취직의 문도 좁습니다. 훌륭한 학자나 유명한 운동선수, 스타 연예인이 되기 위해서도 좁은 문을 통과해야 합니다. 이들은 저마다 하고 싶은 대로 맘대로 하면서 지낼 수 없고, 먹고 싶은 대로 먹거나 마실 수도 없으며 자기 자신과의 끊임없는 투쟁과 눈물겨운 전쟁을 치른 후에 비로소 성공의 좁은 문을 통과했습니다. 그럼 신앙인의 삶에 있어 성공여부가 가려지는 ‘구원의 문’은 어떻습니까? 역시 구원의 문도 좁습니다.(24절) 과연, 이 좁은 구원의 문을 우리 신앙인들이 어떻게 해야 통과 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주님, 구원받을 사람은 적습니까?”라는 어떤 사람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써라. … 많은 사람이 그곳으로 들어가려고 하겠지만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24절) 그리고 이어서 말씀하시길, ‘주님’과 같이 먹고 마셨다는 사실이 ‘문’을 열어주지 않으며, 주님과 같은 동네에서 지냈다는 것도 문을 여는 데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 다고 하십니다.(26-27절) 마치 우리가 신앙공동체라는 울타리 안에 생활하면서주님의 몸과 피를 먹고 마신다고 해도, 우리의 삶이 변화되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경고처럼 들려옵니다. 결국 문제는 ‘신앙인입네’, ‘그리스도인입네’ 하는 ‘연줄’이 아니라 내 삶의 모습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모습을 어떻게 변화시켜야 구원의 좁은 문을 통과할 수 있다는 것일까요?
  
답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문의 크기에 내 사이즈를 맞추는 겁니다. 구원의 문이 좁고 작기에 그곳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이 날씬해지고 작아져야 하는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지금껏 자신을 꾸미기 위해 돈과 재물·사회적인 지위와 명예·학식과 재능·천주교 신자라는 이름과 얼마간의 선행과 자선 등으로 치장된 겹겹의 옷을 입으면서, 이런 모습이 본래의 내 모습인 양 착각하며 사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런 군더더기로 자신을 잔뜩 꾸미고 있을 때, 우리의 덩치가 너무나 커져서 구원의 좁은 문을 통과할 수 없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이렇게 꾸며진 모습이 본 모습인양 착각함으로써, 하느님의 손길이 아니라도 우리 스스로의 힘과 능력으로 구원의 문을 열 수 있다고 자만하게 됩니다. 그때 우리의 목은 완전히 뻣뻣해져서 더 이상 고개 숙일 줄 모르는 인간이 되고 말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제 그리스도를 본받아 얇디얇은 겸손의 옷 한 벌만 입어야 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제2독서에서 ‘주님께서는 사랑하시는 이를 훈육하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모든 훈육이 당장은 기쁨이 아니라 슬픔으로 여겨지나, 나중에는 그것으로 훈련된 이들에게 평화와 의로움의 열매를 가져다준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걸친 군더더기를 벗어던져 없어 보이는 것이 지금 슬픔으로 여겨질지라도, 그것이 바로 주님의 훈육임을 떠올리면 어떨까요? 세상 사람들도 성공의 좁은 문을 통과하기 위해서 하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을 참고 견디는데, 구원의 문을 통과하기 바라는 우리 신앙인들이 자신을 치장하고 있는 거추장스런 군더더기들을 버리지 못한 채, 주님의 훈육 앞에 낙심해서야 되겠습니까?
  
“지금은 꼴찌지만 첫째가 되는 이들이 있고, 지금은 첫째지만 꼴찌가 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라는 오늘 복음의 마지막 말씀이 ‘겸손한 작은이로써 살라’는 주님의 뜻으로 들려옵니다. 구원의 문은 동·서·남·북 어디에서든 누구나 들어올 수 있도록 활짝 열려 있습니다. 그러나 그 곳은 다른 것을 모두 벗어던지고 겸손의 옷만을 입으며 주님 앞에 고개 숙일 줄 아는 사람이어야만 통과할 수 있는 어렵고 좁은 문임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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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종교구 김민철(안드레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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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 다 하는 대로?

요즘 병사들을 만나다 보면 자신의 진로와 적성에 대해서 고민하는 경우들을 종종 보게 됩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시작된 경쟁과 공부에 대한 열풍으로 꿈과 희망을 가져보기도 전에 아이들은 이리저리 정신없이 학원으로 끌려 다닙니다. 낮에는 학교 공부, 오후와 저녁 늦게까지 잡혀있는 학원 스케줄, 집에 오면 학교 숙제와 학원 숙제에 지쳐 잠이 듭니다. 중학교에 들어가고, 고등학생이 되어도 이러한 상황은 더욱 심해질 뿐 결코 나아지지 않습니다. 그렇게 공부만을 쫓아서 성인의 문턱에 들어설 무렵 대학을 결정합니다. 하지만 대학과 학과는 자신의 적성보다는 점수에 맞추어 들어갑니다. 지긋지긋한 입시 경쟁과 학업 스트레스로부터 해방감을 맛보기도 전에 대학 공부에 대한 회의가 찾아옵니다. 이 학과를 전공해서 내가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공부만을 위해 달려왔지 어디로 가야할지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특히 군 생활을 하는 병사들은 제대 후 학교 복학을 해서 자신이 무슨 일을 할 수 있고 어떤 직업을 가지고 싶은지에 대하여 심각하게 고민을 하게 됩니다. 남들 다 하는 대로 같이 달려오기는 했는데 과연 이것이 옳은 것인지 내가 맞게 선택한 것인지 갈피 를 잡을 수가 없습니다. ‘분명 남들이 하는 대로 나도 열심히 노력했는데 왜 이 모양일까?’ 하며 고민에 빠집니다.

문제는 남들이 하는 대로 달려왔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구원에 이르는 길에 대해서 오늘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써라. 많은 사람이 그곳으로 들어가려고 하겠지만,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결국 많은 사람이 가는 길보다는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좁고 험한 십자가의 길이 정답입니다. 남들이 하는 대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 다가가기 위하여 더욱더 치열하게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느님께 다가가기 위해 무슨 노력을 하고 있습니까? 가톨릭교회 안에는 레지오 마리애, 꾸르실료, ME, 성령기도회, 포콜라레, 성서모임, 렉시오 디비나, 레오 까떼꾸메나또, 성체조배회, 성모 기사회, 각 수도회의 재속회 등 풍부한 영성 운동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영성운동을 통하여 내게 맞는 신심행위를 찾읍시다.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구원의 좁은 문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노력합시다.

이종엽(라파엘) 신부
  |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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