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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 하늘나라엔 어떤 기득권도 인정되지 않는다
조회수 | 2,336
작성일 | 07.08.24
묵상길잡이 :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기들이 선택된 백성이라는 선민의식에 사로잡혀 있다가 참 구세주를 알아보지 못하였다. 많은 이방인들이 하느님의 새로운 백성이 되었다. 하늘나라엔 어떤 기득권도 인정되지 않는다.


1. 연옥에서 만난 주교님

본당에서 가난하고 배운 것이 없는 한 아주머니는 본당신부님을 항상 멀리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본당 신부도, 그 아주머니도 세상을 떠났다. 어느 날 연옥에서 그 신자가 본당신부님을 만났다. 그런데 가까이 하기엔 너무나 높고 먼 곳에 계셨던 본당신부님을 연옥에서 만나다니, 한동안 정신이 멍하였다. 너무나 반가운 나머지 본당신부님께 달려가서 “신부님, 저는 신부님 본당의 신자였는데, 신부님이 이곳에 어쩐 일이십니까? 혹시 잘 아는 신자 방문이라도 오셨습니까?”하고 물었다. 그랬더니 그 신부님은 “쉿! 조용히 하세요. 저기 우리 주교님도 계셔요.”하였다고 한다. 오래 전에 돌아가신 주교님도 아직 연옥에 계셨다.

이 이야기는 물론 꾸르실료 교육 때 할법한 우스개 소리지만, 우리에게 시사(示唆)하는 바가 없지 않다. 인간 세상에서는 신분과 직책의 고하(高下)나 빈부귀천(貧富貴賤)에 따라 사람대접도 다르기 마련이다. 그러나 하늘나라에서는 어떤 기득권도 인정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2. 꼴지가 첫째 되는 이변

이 세상에도 예상을 뒤엎는 사태들이 많다. 선거 때마다 모든 언론과 여론조사 기관의 투표소 출구조사에서조차 당선이 확실시된다는 후보가 의외로 고전하고 낙선하는가 하면, 가망이 없어 보이던 후보가 의외로 민심의 지지를 얻어 당당히 당선되는 예를 많이 본다. 불교의 역사를 보면, 불교의 여러 종파 중에서 선종(禪宗)은 깨달음을 얻은 큰스님이 조사(祖師)로 추대되고, 방장(方丈)이 되어 대대로 전수되어 왔다. 그래서 「달마」 대선사(大禪師)로부터 시작하여, 「혜가」, 「승찬」, 「도신」, 「홍인」, 「혜능」, 「마도조일」 등으로 이어졌다. 그런데 「과연 누가 다음 대를 잇는 조사(祖師)로 추대되어 방장이 될 것인가?」하는 것은 초미의 관심사였다. 조사(祖師)는 수행자들을 불러 모으고 깨달음의 정도를 알아보기 위해 공안(公案)을 내걸고 선문답(禪問答)을 하게 된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평소에 전혀 드러나지 않았던 부엌에서 불이나 지피던 화부(火夫)나 주방장들이 높은 깨달음의 경지를 인정받아 조사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다. 깨달음을 통해 무욕(無慾) 무념(無念)의 경지를 얻고, 진정한 혜안(慧眼)을 갖는 득도(得道)의 길은 세상의 출세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3.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구원받을 사람은 얼마 안 되겠지요?”하는 질문에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쉽고 편하여 많은 사람이 택하는 길보다는, 어렵고 힘들어 사람들이 외면하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고 하신다. 뿐만 아니라, 하늘나라에선 “지금은 꼴찌지만 첫째가 되는 이들이 있고, 지금은 첫째지만 꼴찌가 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루카13,30)고 말씀하신다.

인간 사회에서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학벌, 재산, 사회적 지위, 가문, 미모 등등이 그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이 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어떤 사람 앞에서는 고양이 앞의 쥐처럼 비굴하게 행동하면서도, 어떤 사람은 발톱의 때만큼도 여기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사람마다 자신에게 남보다 나은 것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나는 너와 다르다.”를 강조하며 “네가 감히 나와 맛 먹으려고?” 하는 자세로 얼마나 으스대고 잘난 체 하는가?

이스라엘 백성들은 스스로 하느님께 선택받은 민족임을 내세우며 비뚤어진 선민(先民)의식으로 꽉 차 있었다. 그래서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를 알아보지 못하고 ‘나자렛 촌놈’으로 여겨 배척하였다. 결국 첫째는 꼴찌가 되고, 이방인들이 새로운 하느님의 백성이 되었던 것이다.

하늘나라에서는 인간 세상의 어떤 기득권도 인정받지 못한다. 오래된 구교우 집안이라고, 집안에 신부 수녀가 많이 났다고, 재산이 많다고, 본당 간부나 직책을 오래 역임했다고 하늘나라에 들어가지는 못한다. 주님께서는 “동녘이 서녘에서 사이가 먼 것처럼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같지 않다.”고 말씀하신다. 참으로 구원될 사람들 중에 들기 위해서는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다.”하신 예수 그리스도처럼 철저히 하느님의 뜻을 받들며 살이야 한다. 이것이 바로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 스스로 죽는 십자가의 길 , ‘좁은 문’으로 들어서는 것이다. ‘쉽고 편한 것이 = 좋은 것’이라는 우리의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

마산교구 유영봉 몬시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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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구원받을 사람이 적겠습니까?”

요즈음 세상 사람들이 흔히 말하기를 편리한 것에 길들여져 힘들고 더럽고 어려운 일은 기피하고 점점 더 안일주의에 빠지게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내가 하고 싶은대로 하고 사는 것이 가장 편안하고 신나고 기분좋게 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방법과 과정은 전혀 문제시하지 않고, 오직 결과만을 가지고 평가합니다. 이것이 세상 사람들이 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은 천국에 가는 길 곧 구원에 이르는 길이 좁다고 말씀하십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구원의 문으로 들어가려고 하겠지만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있는 힘을 다하여라.”

아브라함의 후손인 이스라엘은 오랫동안 자신들만이 구원받는다는 선민 사상에 젖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구원의 문, 거기에는 혈연이나 지연, 민족이나 국가의 경계가 없고 인간사회에서 판단하는 학벌도 온 세상에 알려진 뛰어난 명성도 재산도 막강한 권력으로도 열려지지 않습니다.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뼈저린 고뇌와 고통의 대가를 치루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 십자가의 고통이 있고서야 부활이 있으며 피를 흘린 죽음이 있어야 생명을 얻을 수 있고 예수님을 따르는 희생속에서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진리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멸망에 이르는 문은 크고 또 그 길이 넓어서 그리로 가는 사람이 많지만 생명에 이르는 문은 좁고 또 그 길이 험해서 그리로 찾아 드는 사람이 적다(마태 7, 13-14).”고 했습니다.

구하는 자는 많지만 끝까지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는 사람은 적은 것이 현실입니다. 문 닫은 뒤에 아무리 두드려봤자 그 때는 이미 소용이 없습니다.

구원에는 특권이 없습니다. 천주교 신자라는 이름으로 구원의 문을 통과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세리와 창녀들이 먼저 들어간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지금은 꼴찌지만 첫째가 되고 지금은 첫째지만 꼴찌가 될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루가 13, 30).”

마산교구 김대열 가브리엘 신부
  |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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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문으로 초대하시는 주님

우리는 구원을 받기 위해 아름다운 주님과 동행을 합니다.
내 옆에 계시며 숨결을 들려주시는 분, 나의 숨결을 들어 주시는 분, 그 분을 사랑의 주님이라 고백합니다.
항상 같은 자리, 같은 모습으로 기다려 주시어 어쩔 때는 너무나도 쉽게만 보이는 분. 또한 이 분을 주님이라 고백합니다. 이 고백 뒤에는 교만이 그 배경을 이루고 있습니다.
자신이 하느님과 제일 가깝게 있다고 판단했던 자들 중에 대표적인 이들이 바로 바리사이파 사람들이었습니다. 사람보다 규칙이 우선이요, 자비 보다는 규율을 우선으로 따졌기에 사랑보다는 실리에 눈이 멀었던 자들이었습니다.
‘저희는 주님 앞에서 먹고 마셨고, 주님께서는 저희가 사는 길거리에서 가르치셨습니다.’(루가 13,26)
이 주님은 누구입니까? 우리가 옳다고, 함께 있다고 착각한 것은 과연 주님입니까? 실제적인 반성과 더 불어 그 배경에 누가 있는지 그 분의 초대에 대한 신앙적인 점검이 중요합니다. 그 배경에 ‘나’가 아닌 ‘이웃’인 ‘주님’께서 계시길 희망합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마태 25,40).’
내 부모를 바라보십시오.
내 배우자를 바라보십시오.
내 자식을 바라보십시오.
내 이웃을 바라보십시오.
내 주위에 헐벗고 굶주린 작은이들을 바라보십시오.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써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사람이 그곳으로 들어가려고 하겠지만 들어가지 못 할 것이다(루카 13,24)."
‘좁은 문’이란 무엇입니까?
좁은 문은 가난의 문입니다. 아무 것도 지닌 것 없어 오로지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가 필요한 존재임을 깨닫는 자가 통과할 수 있는 문입니다. 좁은 문은 겸손의 문입니다. 땅 바닥에 몸을 굽히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 고개를 숙일 줄 아는 사람이 통과할 수 있는 문입니다. 좁은 문은 순명의 문입니다. 인간의 논리, 나의 뜻이 아닌 하느님의 논리, 하느님의 뜻에 승복할 줄 하는 사람이 통과할 수 있는 문입니다. 좁은 문은 회개의 문입니다.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죄로 말미암아 잃어버린 인간 고유의 아름다움을 되찾기 위해 애쓰는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문입니다. 좁은 문은 사랑의 문입니다. 사랑이 아닌 것을 품어 안아 녹일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지닌 사람이 통과할 수 있는 문입니다. 좁은 문은 예수님입니다. 앞에서 말한 이 모든 것을 몸소 보여주신 예수님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이 통과할 수 있는 문입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애쓰라고 말씀하시는 예수님. 위엄 있고 비장함이 서려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걱정 어린 그분의 목소리를 마음에 새기는 주일이면 좋겠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 가운데 계십니다. 아멘

마산교구 박재우(베드로푸리에) 신부
  |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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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글 감사합니다~!
  | 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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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생각과 복음 생각

상념(想念) 하나.

지난 해 봄, 새 성전을 신축하여 본당을 신설해야 한다는 결정이 났습니다. 그날 이후부터 내 머리 속에는 ‘지금 이 상황에서 어떻게 공사금액을 마련할 것인가!’라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좀처럼 꿈을 잘 꾸지 않는데, 어느 날 밤 신기한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아니 글쎄, 그분(?)께서 몇몇 숫자들을 주고 가셨습니다. 이거다 싶어 날이 새자마자 달려가서 꿈에 얻은 숫자를 조합하여 난생처음 그것(?)을 구입했습니다. 그리고 그날을 애타게 기다리면서, 혼자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답니다. ‘이게 꿈인가 생신가?’ 그런데 아뿔싸...! 하지만 머리 아픈 것도 잠시 잊혀진, 며칠이나마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상념(想念) 둘.

지금 내 마음 속에 있는 여러 생각 중 으뜸가는 것은, 단연 성전 신축공사를 어떻게 하면 잘 마무리 하느냐는 것입니다. 지난 해 10월 첫 삽을 뜬 후 지금까지, 생각해보면 설계에서부터 그 어느 것도 그리 순조롭게 이루어진 것들이 하나도 없습니다. 더군다나 사제생활 중 성전신축은 제게 있어서 첫 경험이기 때문에 어디 만만한 것이 있을 리가 없지요. 최근 몇 년 동안 그렇게 따뜻하던 겨울 날씨도 지난겨울엔 전혀 도와주지 않고 한파가 매섭게 몰아치더니, 봄비마저 하염없이 쏟아지고... 이제 8월말 완공을 앞두고 있는데, 지금 밖에는 반갑지 않은 장대비가 아침부터 억수같이 쏟아지고 있으니 또 머리가 아픕니다.

그리고 또 다른 생각.

세상 사람들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서 온갖 수단과 방법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느님 나라를 희망하면서 살아가는 우리들은 적어도 세상 사람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살아야겠지요. 우리마저 일확천금을 꿈꾸고, 또 넓고 편안한 길만을 고집하면서 세상 사람들과 똑같은 방식으로 살아간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에서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써라.”(루카 13,24)

저도 이제 헛된 꿈에서 깨어나야겠습니다. 그리고 엉뚱한 생각을 접고 세상 상념(想念) 속에서 벗어나, 오직 복음 생각만을 하면서 살아야겠습니다.

유해욱 요아킴 신부
  |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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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 지금 알고 있는 것들을 행할 수 있다면

“중고차가 가장 비쌀 때는 언제일까요? 봄 성수기? 명절 전? 휴가시즌? 이사철? 아니, 바로 네 차 살 때! 시세도 모르고 사니까, 국민 시세를 알면 중고차 거래가 든든해집니다.” 안정환이 선전하는 중고차 광고인데 볼수록 공감이 가는 내용입니다. 알면서도 속으려는 사람들은 아마도 없겠죠? 아니 있습니다. 제가 사제로 살아가면서 보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기적을 체험해도 예수님을 떠나가는 사람들을 많이 봅니다. 몰라서 떠나는 것이 아니라 알면서도 하기 싫고, 할 자신이 없어서 떠나갑니다.

오늘날 우리들에게 오는 신앙의 위기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천하는 것보다 세상의 달콤한 소리에만 귀를 기울이는 데서 비롯됩니다. 간혹 하느님의 말씀이 잘 들리지 않는다는 분들도 있지만 들으려고 노력한다면 분명 들을 수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아파하고, 힘들어하고, 외로워하고, 슬퍼하고, 억압받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는 무엇을 해주라고 말씀 하실까요? 정확한 답은 없습니다. 하지만 친구를 얻고 싶거든 먼저 친구가 되라는 말처럼 지금 여러분이 생각하는 그것을 함께 해주는 사랑의 실천을 행할 수 있다면 우리 모두는 하느님 나라의 자녀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지금은 꼴찌지만 첫째가 되는 이들이 있고, 지금은 첫째지만 꼴찌가 되는 이들이 누구일까요? 저 또한 사제이면서도 제가 필요한 곳보다는 제가 원하는 곳만을 가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마음대로 안 되면 늘 불만과 원망만 했던 것 같습니다. 구원받을 사람이 많고 적음을 묻기보다 내가 원하는 곳보다는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을 택하고 살아갈 수 있다면 하느님의 뜻이 우리를 통해 완성될 것입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주님을 따를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합시다. 아멘

▮ 마산교구 신명균 마르티노 신부 2016년 8월 21일
  | 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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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 하느님 나라 들어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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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여름·가을·겨울 4계절 가운데서 천당에 들어가기 쉬운 계절은 언제일까요? 답은 여름입니다. 더워서 문이란 문은 모두 열어놓고 있어서 그렇다는 아재 개그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에어컨 때문에 문과 모든 창문까지 닫고 사니 옛말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구원받을 사람이 적을까 염려하지 말고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써라.”고 이르셨습니다.(루카 13,24)

베들레헴에 예수님께서 탄생하신 동굴 위를 제대로 삼고 웅대한 성당이 세워져 있습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모후 헬레나 성녀가 봉헌한 ‘예수 성탄 성당’입니다. 그런데 입구 문이 높이 1m, 너비 40cm로 아주 작습니다. 처음에는 크게 지었는데 언젠가 페르시아 군대가 말을 탄 채 들어온 후에 그렇게 막았다고 합니다. 예수님께 나아가기 위해서는 자기를 낮추고, 좁은 문을 통과해야 한다는 교훈이 담겼습니다.

구원받기 위해 겸손한 태도로 의롭게 살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나 불의가 곳곳에서 예사로운 게 현실입니다. 신자들이 의로움을 실천하며 주님의 가르침대로 살기는 만만치 않습니다. 많은 시련도 있습니다. 구원의 문은 참으로 좁다 하겠습니다. 불의를 멀리하고 시련을 하느님 사랑의 훈육으로 여겨 잘 견디어 냅시다. 나중에는 그것으로 평화와 의로움의 열매를 가져다 줄 것입니다.(히브 12,11)

올림픽 등 각종 운동 경기에서 메달을 따고 감격에 차 눈물로 환호하는 장면을 종종 봅니다.그 메달은 엄청난 땀의 결실입니다. 운동선수, 농부, 사업가, 학자, 예술가 등이 피나는 노력으로 좋은 성과를 냅니다. 천국 메달을 따기 위한 우리의 노력은 어떠해야 할까요?

한편, 세례받고 교우들과 어울려 먹고 마신다고, 또 성경과 교리 말씀을 들었다고, 또는 교회에서 어떤 직책을 맡았다고 구원의 문으로 들어가는 것입니까? 교회를 사교의 장소나 사회단체처럼 여긴다면 구원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루카 13,26-27)

복음으로 나의 삶을 변화해야 합니다. 그리고 사회를 복음으로 변화시켜, 이 사회가 나날이 하느님 나라가 되게 해야 합니다. 쉽지 않은 길입니다. 그러나 세례의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애써 찾아야 할 좁은 문이 이 길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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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교구 강윤철 요한 보스코 신부
2019년 8월 25일
  |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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