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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힘써 좁은 문으로 들어가자
조회수 | 2,471
작성일 | 07.08.24
마음에 새겨라. 새로워져라. 회개하라. 회심하라….
별다른 이유도 없이 질질 끌며 시간을 끄는 마음 즉 회심하지 않는 한, 언젠가 너는 베어져 버려질 것이다. “보라, 도끼는 이미 뿌리에 닿아 있다”라고 세례자 요한이 외치지 않았던가!

물론 하느님은 자애로우신 분이기에 하느님은 기다리신다. 베어버리지 않고 기다리신다. 그러나 이 세상의 ‘시간’은 영원하지 않다. 언젠가 베어질 ‘때’가 온다. 무작정 하느님의 인내심에 기대지 말라. 언젠가는 결산하지 않으면 안된다.

“힘써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열 여드레 해 동안 둘로 꺾인 몸을 이끌고 살아와, 지금은 숨을 헐떡이며 겨우 예수님 앞에 서 있는 노파. 말이 서 있는 것이지, 뼈의 이상 탓으로 마치 꺾어진 나무가 매달려 있는 듯한 상반신때문에 땅바닥만 바라보며, 죽은 얼굴색으로 겨우 난간을 붙잡고 있는, 금새라도 쓰러질지 모르는 괴로운 자세를 취하고 있는 한 여인을 치유하신 뒤, 예수님께서는 ‘구원’에 관하여 묻는 이들에게 지난날의 대답을 되풀이하신다. “많은 사람들이 구원의 문으로 들어가려고 하겠지만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있는 힘을 다하여라.”(루가 13,24)

선택된 아브라함의 백성이라는, 아니 오늘날의 선택된 그리스도인이라는 ‘앞선’ 신분에 기대지 말라. 앞섰다는 신분이 구원의 조건이 되는 것은 아니다. 또 세상에서 통념적으로 ‘앞선 것’ 즉 신분이나 재능이나 돈이나 권력이나 명예따위는 하느님 나라의 환희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 그러니 생각을 바꾸어라. 마음을 바꾸어라. 그리고 걸음을 바꾸어라. 세상을 향한 너를 하느님을 향하도록 있는 힘을 다하여라.

그 노파는 그 몸으로 어떻게 이 회당까지 올 수가 있었을까? 어디에 사는 지는 모르지만 얼마나 아픔을 참으면서, 얼마나 긴 시간동안 쉬어가면서 여기까지 왔을까? 아마도 오직 한 마음, 하느님을 향한 믿음이 그녀를 몰아세워 여기까지 오게 했으리라. “여인이여, 치유되었다.”(루가 13,13) 당신의 모습이, 그 구부러진 몸이 사실 기도이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문 안에서 벌어진 잔치는 ‘앞선’ 신분을 내세워 악을 일삼는 자들을 위한 것이 아니다. 그들의 쉬운 삶의 결과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 잔치는 북에서 남에서 동에서 서에서 땅 끝에서 모두 있는 힘을 다해 좁은 문으로 들어온 사람들을 위해 마련된 것이다. 바로 당신과 나를 위한 잔치인 것이다. “어렵고 힘들어 늘어뜨린 손을 다시 다시 쳐들고 지쳐 쇠약해진 무릎을 다시 다시 일으켜 세우며”(히브 12,12) 회개의 길을 달려온 우리들의 것이다.

대구대교구 이창수 야고보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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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진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니요?
[사람 1]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써라.” 예수님, 정말 세상 물정 모르시는 말씀 마세요. 세상 살다보면 이건 아니다 싶을 때도 있지만 그래도 사람들이 사는 대로 그렇게 살아야 한다구요. 그렇지 않고 좁은 문으로 들어가서는 이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가 없어요. 괜히 그러다가는 인간성 안 좋고, 인간관계에 문제 있는 왕따로 취급받기 십상이라구요. 예수님, 좋은 게 좋은 것 아니겠어요? 모난 돌이 정 맞는 줄 모르셔요? 그저 세상 사람들이 가는대로 그렇게 넓은 문으로 가는 게 성공하는 길이에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구요? 예수님은 왜 이렇게 우리를 불편하게 하세요?

꼴찌가 첫째가 된다니요?
[사람 2] “지금은 꼴찌지만 첫째가 되는 이들이 있고, 지금은 첫째지만 꼴찌가 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예수님, 꼴찌가 첫째가 된다니 그건 정말 안 될 말씀이에요. 그래서는 안돼요. 첫째는 첫째가 되어야 하고, 꼴찌는 꼴찌가 되어야 한단 말이지요. 이게 세상 이치이고 성공의 법칙인데, 예수님의 말씀은 너무 황당하네요. 그저 남보다 더 잘 되고, 남보다 더 앞서가야 성공적인 삶이지요. 다른 사람들에게 무시당하지 않고 사람답게 살려면 무슨 일이 있어도 첫째가 되어야 한다구요. 꼴찌가 첫째가 된다니요? 예수님은 왜 이렇게 불편한 말씀을 하세요?

불편한 예수님
[사람 3] 예수님 없이도 우리의 삶은 편안했고, 그분 말씀 안 들어도 우리의 일상은 안락했어요. 그런데 예수님은 정말 알면 알수록 불편한 분이신 것 같아요. 그분이 말씀하시는 진실은 우리를 불편하게 만들어요. 왜냐하면 예수님은 자꾸만 우리에게 다른 생각, 다른 관점, 다른 삶의 방식, 다른 가치에 대해서 말씀하시니까요. 그분은 넓은 문으로 향하던 우리의 발걸음을 좁은 문으로 향하도록 하셔요. 다수에게 향했던 우리의 시선을 소수에게 향하도록 하시구요. 또 그분은 첫째와 꼴찌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완전히 뒤집어 놓으셔요. 바로 발상의 대전환이지요.

갈림길
[사람 4] 우리는 불편한 진실을 말씀하시는 예수님을 받아들이고 뒤따르는가요? 아니면 무시하고 거부하는가요? 그분의 말씀이 아직도 여전히 우리를 불편하게 만드는가요? 아니면 우리를 기쁘게 만드는가요?

송창현 미카엘 신부
  |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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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좁은 문으로

만일 지금 하느님 나라가 열리고 이 세상 사람들 중에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만한 사람을 뽑는다면 몇 명이나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적어도 여러분 자신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예수님 시대에도 이것이 무척이나 궁금했던 것 같습니다. 오늘 복음에 보면 어떤 사람이 “주님, 구원받을 사람은 적습니까?”하고 묻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써라. 많은 사람이 그곳으로 들어가려고 하겠지만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하고 말씀하십니다.

사람은 누구나 쉽고 편한 것을 찾으려고 합니다. 내가 지금 있는 삶의 자리가 낯설고 어색하다 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지고 편안함을 추구하게 됩니다. 그리고 곧 쉽게 주저앉아 쉬게 됩니다. 신앙의 자리도 이와 비슷하리라 생각합니다. 처음에는 열성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시작하지만,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으면 의무를 행한 것으로만 만족하게 됩니다. 오늘 복음은 이러한 우리들의 모습에 대하여 “많은 사람들이 구원의 문으로 들어가려고 하겠지만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신앙생활의 중심에는 미사 참례가 있습니다. 우리들은 매주 미사 참례를 통하여 말씀으로 하느님을 만나고 성체로서 내 안에 오시는 예수님을 체험하게 됩니다. 이렇게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성체를 모심으로써 고단한 삶을 위로를 받고, 지친 몸과 마음을 추슬러 또 한 주간을 살아갈 힘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미사가 우리 신앙생활에 이처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많은 경우 미사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나 그 의미에 대한 이해 없이 습관적으로 미사에 참여하고 있는 듯합니다. 그래서 때로는 미사가 우리의 삶을 기쁨으로 이끌어 주기 보다는 의무적으로 지내야만 되는 굴레요, 짐으로 느끼기도 합니다. 쉽게 타성에 젖어드는 우리들에게 오늘 예수님은 비록 예수님과 함께 먹고 마시고, 예수님의 말씀에 관해 가르침을 받았다 할지라도,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있는 힘을 쓰는 사람만이 구원 받을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교형자매 여러분, 미사 시간보다 좀 더 일찍 성당에 와서 마음을 가라앉히고 지난 한 주간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집시다. 그리고 오늘 내게 하시는 하느님의 말씀이 무엇인지 살펴보도록 합시다. 많은 준비와 노력이 있어야만 금메달의 영광이 있듯이, 내가 참례하는 이 미사를 잘 준비한다면 매주일의 미사 안에서 가치관의 변화를 얻고,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며, 점차 성숙한 신앙생활을 해나갈 수 있게 될 것 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작은 노력들이 모여 좁은 문을 향해 나아가는 힘이 될 것입니다. 하늘의 비행기가 속력에 의하여 떠 있듯이, 신앙생활에 지향과 속력이 없으면 하느님과의 지속적인 관계가 유지될 수 없음은 물론, 어려움에 맞닥트릴 때 자신의 신앙마저 금방 풍화되어b무력해지는 법입니다. 오늘 제2독서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 위한 우리들의 기본자세에 대하여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맥 풀린 손과 힘 빠진 무 릎을 바로 세워 바른 길을 달려가십시오. 그리하여 절름거리는 다리가 접질리지 않고 오히려 낫게 하십시오.”아멘

<대구대교구 곽재경 루카 신부>
  | 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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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자신의 문제나 잘못을 먼저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다른 이들의 문제를 들추거나 다른 이들의 잘못과 실수를 부각시킬 때가 더 많을 것입니다. 특히 사람들은 자기에게 문제가 많을수록 다른 이들의 문제를 더 크게 만들어 버립니다. 그래서 인지 다른 사람들에 대해 너무 쉽게 이야기하거나 평가를 하고 더 나아가 비판이나 비난을 하는 이들을 보면, 그들이 이야기하는 대상이 아니라 이야기를 하는 바로 그 사람을 유심히 보게 됩니다. 그리고는 왜 그래야만 하는지 의문을 갖게 됩니다. 우리가 다른 이들에게 무심 하게 혹은 날카롭게 하는 말들이 그들에게 얼마나 큰 상처와 아픔을 주는지 모릅니다. 이러한 삶의 모습은 처음에는 처세술로 통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언젠가 진실이 드러나게 되었을 때, 사람들은 다른 이들뿐 아니라 자기 자신마저도 잃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 안에서 우리는 닫혀 버린 문을 두드리고 있는 이들의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그들은 간절히 “주님, 문을 열어 주십시오!”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집주인은 그러한 이 들의 말에 꼼짝도 하지 않습니다. 그런 주인을 향해 그들은 “저희는 주님 앞에서 먹고 마셨고, 주님께서는 저희가 사는 길거리에서 가르치셨습니다.”라고 말하며 주인과 자신들의 관계를 들먹입니다. 사실 이는 우리들이 흔히 선호하는 삶의 성향, “좋은 것이 좋은 것 아니냐?”라고 하면서 문이 열리기를 바라는 모습이 아닐까 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그들이 정말 잘못 알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말이나 행동, 나아가 그 삶의 모습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은 채, 그저 지금 문만 열리기만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냥 능구렁이처럼 넘어가려고만 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바로 자신들이 주님을 향해 돌을 던지려고 했었다는 것에 대해서는 잊어버리고 있습니다. 그들은 주님을 향해 침을 뱉고 모욕을 퍼부었다는 것도 완전히 감추고 있습니다. 나아가 “죽여라!”라고 고함을 질렀다는 것까지도 숨기고 있는 것입니다. 진실하지 못한 삶으로 나아가는 이들에게 있어서 주님께로 가는 문은 좁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에게 열릴 문은 더 이상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동쪽과 서쪽, 북쪽과 남쪽에서 사람들이 와 하느님 나라의 잔칫상에 자리 잡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냥 죄를 짓고 잘못을 하였다고 하여 문이 열리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참된 회개를 통해 인간적으로는 초심으로 나아가고 신앙으로는 주님께 돌아갈 수 있을 때, 우리에게 그 문은 분명 열릴 것입니다.

▮ 대구대교구 안병원 요한 신부 2016년 8월 21일
  | 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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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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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여행을 하시는 동안 사람들에게 비유를 들어 가르치시고 기적을 행하시고 병자들을 고쳐주시며 회개에로 초대하십니다. 그런데 바리사이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백성들을 가르치고 치유하시는 것에 분개합니다. 그러나 다른 이들은 회개에 대한 분명한 메시지를 들었으며, 죄에서 구원받기 위하여 자신들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예수님께 묻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구원에 대한 물음을 이렇게 시작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주님, 구원받을 사람은 적습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써라.’”(루카 13,23-24)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구원받겠느냐’는 질문에 ‘어떻게 해야 구원받는지’를 말씀하신 예수님의 답변은 구원받을 사람들의 수효보다 어떻게 해서 구원받을 것인지가 더 중요함을 일깨워 주고 있습니다. 따라서“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써라.”는 것은 근육과 힘의 열렬한 발휘를 뜻합니다. 즉, 모여든 많은 사람들이 한 번에 들어갈 수 있는 도시의 커다란 문들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근육과 힘을 발휘하여 한 사람이 겨우 들어갈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는 것입니다. 결코 쉽지 않은 행동입니다. 이러한 노력을 통하여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여정이 바로 회개라는 것을 일깨워 주십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회개의 실천적인 삶을 성인의 가르침에서 배워봅시다. “믿음을 견고히 세워 주고 신심을 변함없이 유지해 주며 덕행을 지속시켜 주는 것이 세 가지 있습니다. 기도와 단식과 자선이 바로 그것입니다. 기도는 문을 두드리고 단식은 청하며 자선은 받습니다. 기도, 단식 그리고 자선, 이 세 가지는 한 묶음이고 서로 서로가 의지하고 있습니다. 단식은 기도의 영혼이고 자선은 단식의 생명입니다. 이 세 가지는 서로 떨어져서는 제대로 작용할 수 없으므로 분리되어서는 안 됩니다. 따라서 기도하는 이는 단식도 해야 하며 단식하는 이는 역시 자선도 베풀어야 합니다.”(성 베드로 크리솔로고 주교)

오늘 복음을 통하여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 위한 우리의 노력은 ‘기도하는 삶’, ‘단식하는 삶’, ‘자선을 베푸는 삶’으로 회개의 여정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또한 “여러분의 시련을 훈육으로 여겨 견디어 내십시오.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을 자녀로 대하십니다.”(히브 12,6)

새롭게 시작되는 한 주간, 성모님의 보살핌과 주님의 축복으로 기쁨이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결코 놓치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미루지 않는 사랑을 희망하며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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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대교구 김두찬 세레자 요한 신부
2019년 8월 25일
  |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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