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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회] 영혼의 다이어트
조회수 | 2,123
작성일 | 07.08.25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여행을 하시는 동안 여러 고을과 마을을 지나며 가르치셨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주님, 구원받을 사람은 적습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써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사람이 그곳으로 들어가려고 하겠지만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집주인이 일어나 문을 닫아버리면 너희가 밖에 서서, ‘주님, 문을 열어주십시오.’ 하며 문을 두드리기 시작하여도 그는, ‘너희가 어디에서 온 사람들인지 나는 모른다.’ 하고 대답할 것이다. 그러면 너희는 이렇게 말하기 시작할 것이다. ‘저희는 주님 앞에서 먹고 마셨고, 주님께서는 저희가 사는 길거리에서 가르치셨습니다.’ 그러나 집주인은, ‘너희가 어디에서 온 사람들인지 나는 모른다. 모두 내게서 물러가라, 불의를 일삼는 자들아!’ 하고 너희에게 말할 것이다. 너희는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과 모든 예언자가 하느님의 나라 안에 있는데 너희만 밖으로 쫓겨나 있는 것을 보게 되면 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 그러나 동쪽과 서쪽, 북쪽과 남쪽에서 사람들이 와 하느님 나라의 잔칫상에 자리 잡을 것이다. 보라, 지금은 꼴찌지만 첫째가 되는 이들이 있고, 지금은 첫째지만 꼴찌가 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루카 13,22-­30)

어떤 사람이 이 세상을 떠나 천국 문 앞까지 갔는데 사람들이 줄을 길게 서 있어 무슨 까닭인지 앞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그러자 앞 사람이 천국의 열쇠를 가지고 있는 베드로 사도가 들어오는 사람의 얼굴을 확인하는데 본래 얼굴과 다른 사람들이 많아 시간이 걸린다고 했답니다. 얼굴이 다른 사람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성형수술이 유행한다는 것이지요. 이런 우스갯말까지 나올 정도로 외모에 대한 관심이 크다 보니 무리한 다이어트로 목숨을 잃기도 하는 것이 요즘의 현실입니다.

오늘 복음에 의하면 육신에 대한 관심만큼 우리 영혼도 다이어트하지 않으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합니다. 구원의 문이 좁기 때문입니다. 단지 밥을 굶어서 살을 빼는 다이어트는 생명력이 없고, 적당히 영양을 섭취하면서 그에 상응하는 운동을 하는 것이 건강한 방법입니다. 마찬가지로 ‘주님, 주님!’ 한다고 생명을 얻는 것이 아니라 기도로 영양을 섭취하고 실천으로 단련될 때 영혼은 비로소 좁은 문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얘기지요. 우리가 어느 정도로 영혼을 위한 운동을 하고 있는지 성경 말씀에 비추어 살펴봅니다.

음식:“얘야, 살아가면서 너 자신을 단련시켜라. 무엇이 네게 나쁜지 살펴보고 거기에 넘어가지 마라. 사실 모든 것이 누구에게나 좋은 것이 아니며 모든 것을 누구나 즐기는 것은 아니다. 온갖 사치를 누리려 하지 말고 과도하게 음식을 탐하지 마라. 사실 병은 음식을 지나치게 먹는 데서 오고 탐식은 구토로 이어진다. 많은 사람들이 탐식 때문에 죽었으나 그것을 피하는 자는 생명을 연장하리라.”(집회 37,27-­31)

“술 마시는 것으로 남자다움을 과시하지 마라. 술은 많은 사람을 망쳤다.”(집회 31,25)

하느님의 뜻:“여러분은 세상도 또 세상 안에 있는 것들도 사랑하지 마십시오. 누가 세상을 사랑하면, 그 사람 안에는 아버지 사랑이 없습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 곧 육의 욕망과 눈의 욕망과 살림살이에 대한 자만은 아버지에게서 온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온 것입니다. 세상은 지나가고 세상의 욕망도 지나갑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은 영원히 남습니다.”(1요한 2,15-­17)

세상의 것:“여러분 안에 있는 현세적인 것들, 곧 불륜, 더러움, 욕정, 나쁜 욕망, 탐욕을 죽이십시오. 탐욕은 우상숭배입니다. 분노, 격분, 악의 중상, 또 여러분의 입에서 나오는 수치스러운 말 따위는 모두 버리십시오.”(콜로 3,5.8)

삶의 자세:“그러니 여러분은 열성을 다하여 믿음에 덕을 더하고 덕에 앎을 더하며, 앎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신심을, 신심에 형제애를, 형제애에 사랑을 더하십시오.”(2베드 1,5-­6)

“그러므로 여러분은 먹든지 마시든지, 그리고 무슨 일을 하든지 모든 것을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십시오,”(1코린 10,31)

자선:“진실한 기도와 의로운 자선은 부정한 재물보다 낫다. 금을 쌓아두는 것보다 자선을 베푸는 것이 낫다.”(토빗 12,8)

:“절대로 말을 옮기지 마라. 아무것도 잃는 것이 없으리라. 어떤 말을 들었으면 죽을 때까지 묻어두어라.”(집회 19,7.10ㄱ)

부정 이윤:“상인은 잘못을 피하기가 어렵고 장사꾼은 죄악에서 벗어나기가 힘들다. 많은 이들이 돈 때문에 죄를 짓고 부를 찾는 자는 눈을 감아버린다.”(집회 26,29­27,1)

나눔:“계명을 생각해서 빈곤한 이를 도와주고 그가 궁핍할 때 빈손으로 돌려보내지 마라. 형제나 친구를 위해 돈을 내주어 그 돈이 돌 밑에서 녹슬지 않게 하여라.”(집회 29,9)

“신자들의 공동체는 한마음 한뜻이 되어, 아무도 자기 소유를 자기 것이라 하지 않고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였다.”(사도 4,32)

자녀교육:“제 자식을 사랑하는 이는 그에게 종종 매를 댄다. 그러면 말년에 기쁨을 얻으리라.”(집회 30,1)

용서:“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마태 18,22)

사랑:“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리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마태 5,44)

걱정:“그러므로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차려입을까?’ 하며 걱정하지 마라.”(마태 6,31)

시련:“사랑하는 여러분, 시련의 불길이 여러분 가운데에 일어나더라도 무슨 이상한 일이나 생긴 것처럼 놀라지 마십시오. 오히려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이니 기뻐하십시오.”(1베드 4,12)

재물:“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가서 너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마태 19,21)

복음선포:“말씀을 선포하십시오. 기회가 좋든지 나쁘든지 꾸준히 계속하십시오. 끈기를 다하여 사람들을 가르치면서, 타이르고 꾸짖고 격려하십시오.”(2티모 4,2)

부모공경:“자녀 여러분, 주님 안에서 부모에게 순종하십시오. 그것이 옳은 일입니다.”(에페 61)

판단:“남을 심판하지 마라. 그래야 너희도 심판받지 않는다.”(마태 7,1)

이 중에 한 가지라도 완전히 지키고 있는가 스스로에게 묻는다면 자신 있게 대답하시겠습니까? 구원에 이르는 문은 바늘귀처럼 좁습니다. 그러나 용기를 내야 합니다. 율법교사나 부자는 “스승님, 제가 무엇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받을 수 있습니까?”(루카 10,25; 18,18) 하며 영원한 생명을 자신의 업적으로 얻을 수 있는 것처럼 질문하였습니다. 그러나 오늘 복음에서 예수께 질문한 어떤 사람은 “주님, 구원받을 사람은 적습니까?”(루카 13,23) 하고 아주 조심스럽게 구원받는 것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적다, 많다’로 대답하지 않으시고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써라.”고 하십니다. 내 역량만큼 힘쓴 다음 나머지는 하느님의 몫입니다. 하느님은 한 탈렌트 받은 사람한테 다섯 탈렌트 받은 사람처럼 되라고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한 탈렌트 받은 사람이 그것마저 빼앗긴 이유는 그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곧 힘쓰지 않은 것입니다. 행하는 사람은 체험을 통해 영적으로 더 풍성해집니다. 그래서 더 행하게 되고 더 풍성해지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가진 자는 더 받아 넉넉해지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마태 25,29) 빈곤한 과부의 렙톤 두 닢이 예수께 감동을 준 이유도 그녀의 처지에서 최선을 다했기 때문입니다(루카 21,3). 꼴찌 그룹에 속하는, 어쩌면 물적으로나 영적으로나 물려받은 것이 별로 없어 창녀와 세리가 된 자들이 하느님 나라에 먼저 들어갈 수 있는 것도 그들이 어떤 특별한 공로를 세웠기 때문이 아니었다는 것을 상기해야겠습니다. 그들의 처지에서 할 수 있었던 것은 단지 참회하는 마음이었습니다.

정 세라피아 수녀(포교성베네딕도수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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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 뜻밖의 선물처럼, 한 줄기 바람처럼, 그렇게 깨달음이 찾아온답니다!

필요한 책이 있어 서점에 들렀는데, '반일종족주의'가 눈에 띄더군요. 대충 어떤 책인지는 이미 파악하고 있었지만, ‘대체 어느 정도인가?’ 궁금해서 구입했습니다. 책값을 지불하는데, 평소 눈인사를 하고 지내던 청년 직원의 저를 바라보는 표정이 꽤나 복잡했습니다.

할수 없이 제가 그랬습니다. “너무 걱정 마세요. 이 책을 좋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대체 얼마나 왜곡하고 있는지 알고 싶어서 사는 거예요.” 그제야 청년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깃들었습니다. 아마도 이 책 사시는 많은 분들, 대체로 저와 비슷한 마음이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책을 읽는 내내 분노를 넘어 서글픔이 밀려왔습니다. 페이지를 넘기면 넘길수록 거듭되는 거짓과 왜곡에 솟구쳐 오르는 모욕감을 견뎌내기가 힘들었습니다. 나중엔 손까지 부들부들 떨려왔습니다. 불처럼 화가 나며 이런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부끄러워해야 할 사람들은 따로 있는데, 이 큰 부끄러움은 왜 나의 몫인가’

저는 한장 한장 책장을 넘기면서 정말이지 깜짝 놀랐습니다. ‘어떻게 이토록 왜곡되고 조작되며 편향된 역사관을 지닐 수 있는가?’ 하는 마음에 큰 걱정이 앞섰습니다. 만일 순진무구한 우리 청소년들이 이 책을 접한다면...하는 마음에 두려운 마음까지 들었습니다.

물론 지난 역사에 대한 평가와 진단은 냉정해야 하고 정확해야 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책은 일본제국주의가 저지른 만행을 두둔하고 그 업적을 찬양하는 내용들로 가득합니다. 묘하게도 이 책의 많은 내용들이 오늘날 아베와 그 주변에 포진해 있는 극우주의자들의 발언들과 일치합니다.

저자들은 이런저런 편협되고 제한된 통계나 기록물들을 나열하며, 일제 강점기 동안 ‘강제성’은 조금도 없었음을 강조합니다. 당사자의 동의가 전제된 공정한 계약관계였답니다. 강제 징용은 없었고, 보다 높은 소득과 나은 직장을 찾기 위해 건너갔답니다. 조선인이 응하지 않으면 그만이고, 그 조선인을 처벌할 수 없었답니다.

식량 강제 수탈은 없었고, 합당한 가격이 지불된 일본에로의 수출이었답니다. 조선인 광부와 일본인 광부 사이에 차별대우란 없었답니다. 강점기 기간 동안 한반도에 다양한 측면의 긍정적 성장이 이루졌답니다. 가만히 따지고 보니 아베나 일본제국주의 공식대변인의 입에서나 나올수 있는 내용들로 가득합니다.

교묘하게 논점을 흐리는 수법이 제 눈길을 끌었습니다. 집중해야 할 주제는 일본군에 의해 저질러진 위안부 문제인데, 미국군 위안부, 한국군 위안부, 조선 시대 기생제, 공창제 운운하며, 일반화시키면서 시선을 흩어버리고 판단을 흐리게 만듭니다.

책을 덮으면서 드는 생각 한 가지! 그럼 그분들이 주장하는 바는? 일제 강점기는 우리 민족에게 다행스럽고 은혜로운 순간이었다? 두고 두고 일본제국주의에 감사해야 한다? 감지덕지하면서 더 이상 강제징용이니 위안부니 껄끄러운 말들은 꺼내지 말아야 한다? 아베와 극우주의자들의 말에 고분고분해야 한다?

다음 구절을 접하고서는 정말이지 기가 막히고 말문까지 다 막혔습니다. 적반하장이 따로 없습니다. 누가 누구에게 할 소리인지 참...

“한국의 거짓말 문화는 국제적으로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거짓말과 사기가 난무하니 사회적 신뢰의 수준은 점점 낮아지는 추세입니다. 한국은 국제적 비교에서 저신뢰 사회에 속합니다. 이 나라의 국민이 거짓말을 일삼고, 이 나라의 정치인들이 거짓말을 정쟁의 수단으로 삼게 된 것은 이 나라의 거짓말하는 학문에 가장 큰 책임이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 이 나라의 역사학이나 사회학은 거짓말의 온상입니다. 이 나라의 대학은 거짓말의 제조공장입니다.”

이 혼돈의 시절, 균형 잡힌 역사 의식을 지니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함을 절실히 느낍니다.

살아가다보면 가끔씩 마치 뜻밖의 선물처럼 또는 한줄기 선선한 바람처럼 깨달음이 찾아오는 순간이 있습니다. 휴가철에 펼쳐든 책 속 한 구절이 잠자고 있던 내 영혼을 흔들어 깨웁니다. 넋놓고 바라보던 영화 자막에서 내 삶을 뒤흔드는 명 대사를 만납니다. 별 생각 없이 펼쳐든 시집 속 짧은 싯구절이 무릎을 탁 치게 만듭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유행가 가사 한 구절이 내 인생의 역대급 깨달음으로 다가옵니다.

따지고보니 우리가 그리도 간절히 염원하는 깨달음이란 엄청 대단한 것을 통해 다가오는 것이 아닌듯 합니다. 마찬가지로 신앙인으로서 우리가 그토록 갈구하는 절절한 하느님 체험이나 회심, 신앙의 진리에 대한 깨우침 역시 엄청 대단한 것을 통해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지극히 일상적인 것들을 통해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따라서 우리 주변에 널러 퍼져 존재하는 모든 존재나 사물, 사건이나 반복되는 장면에 대한 열린 마음과 집중이 필요하겠습니다. 때로 스쳐 지나가는 성경 말씀 한 구절이 우리 삶을 완전히 뒤바뀌어놓을수 있습니다. 때로 우리가 매일 부르는 성가 한 소절이 한없는 위로와 기쁨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오늘 우리가 봉독하는 성경 말씀들 가운데, 몇구절도 너무나 은혜롭게 다가오더군요.

“주님께서는 사랑하시는 이를 훈육하시고 아들로 인정하시는 모든 이를 채찍질하신다.”(히브리서 12장 6절)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써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사람이 그곳으로 들어가려고 하겠지만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루카 복음 13장 24절)

주님께서 가끔씩 우리에게 건네시는 훈육과 채찍질이 결국 우리를 구원과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할 것임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매일 우리 앞에 펼쳐지는 평탄한 길, 넓다란 길, 빠른 지름길이 아니라 가파르고 험한 길, 좁은 길이 결국 우리를 넓고 푸른 주님의 목장으로 안내할 것임을 기억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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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레시오회 양승국 신부
2019년 8월 25일
  |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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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써라.(루카 13,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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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없이 실천하는 계절의 변화입니다. 좁은 문을 지나고 빠져나온 가을에 감사드립니다.

말은 쉽지만 믿는 것을 실천하는 것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실천이 없는 우리 믿음을 다시금 만나게 됩니다. 실천이 없는 죽은 믿음은 그 어떤 문도 빠져 나갈 수 없습니다.

좁은 문의 실천이 중요합니다.

반성과 성찰 사이에 좁은 문이 있습니다. 우리 마음 안에 있는 교만과 아집의 바위 돌을 먼저 힘껏 밀쳐냅니다. 나를 내려놓아야 좁은 문을 빠져나갈 수 있습니다. 낮아지고 작아지신 예수님의 삶이 참으로 옳았습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실천은 회개에서 시작합니다. 회개는우리를 살리는 생명의 길입니다. 생명의 길은 비우고 내려놓는 실천에 있습니다. 변화하고 성장하고 영글어 가는 우리의 믿음이길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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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주회 한상우 바오로 신부
2019년 8월 25일
  |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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