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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 사랑이란, 하느님을 위해 온갖 피조물을 벗어버리는 것
조회수 | 2,478
작성일 | 07.09.08
“사랑이란, 하느님을 위해 온갖 피조물을 벗어버리는 것입니다.” 신학교 입학피정 때, 피정의 집 현관에서 처음 저를 맞이한 문구입니다. 무슨 뜻인지 잘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지금까지 제 마음 한 구석에 또렷이 남아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사랑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신학교 들어가기 전, 정말 세상 한가운데에서 자유로운 사람으로 살고 싶었습니다. 예수님처럼 그런 사랑을 하면서 온전한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20살 성인’ 이라는 말이 있듯이, 그때는 그렇게 순수 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저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하느님을 위해서 온갖 피조물을 벗어버리기 보다는 더 많은 피조물을 덮어 쓰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 복음은 저에게 신학교에 처음 들어갈 때 결심했던 첫마음을 불러 일으킵니다. 그동안 버리기 보다는 더 자주 타협을 했습니다. 이 현실 세계라는 땅에 발딛고 살아가기에 이런 저런 것들이 필요하고, 또 어떤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스스로 위안을 하면서 예수님을 따라가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정작 예수님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제가 정한 제 길을 걸어가면서 그 길이 마치 예수님의 길인 냥 착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예수님의 길은 그렇게 복잡하지 않습니다. 복잡하기 보다는 오히려 단순합니다. 그저 모든 것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짊어지고 예수님을 따라가는 것이 제자됨의 길입니다. 그렇게 걸어가면 되는데, 망설이고 주섬거리는 것은 아직 저에게 다가오는 십자가를 짊어지지 못하는 저의 약함 때문일 것입니다. 온전히 사랑하지 못하고, 버리지 못하는 저의 욕심 때문입니다.

다시 첫 마음을 떠올리면서 그 길을 걸어가고자 합니다. 예수님이 걸어가신 길을 말입니다. 그 길에 여러분도 함께 동행했으면 합니다. 왜냐하면 그 길이 바로 참 인간의 길이며 참 하느님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 여정을 향함에 있어, 단순함과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 단순함과 용기는 성령의 선물입니다. 성령을 청하며, 오늘도 예수님이 걸어가신 그 길을 따라가고자 합니다. 그 길이 비록 어려움과 십자가로 다가올지라도 성령의 도우심으로 기꺼이 걸어갔으면 합니다.

“보십시오, 이 아기는 이스라엘에서 많은 사람을 쓰러지게도 하고 일어나게도 하며, 또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되도록 정해졌습니다. 그리하여 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 가운데, 많은 사람의 마음속 생각이 드러날 것입니다.”(루카 2, 34-35) 예수님이 걸어가신 길을 걷다보면 걸려 넘어지기도 하고, 일으켜 지기도 합니다. 바로 그때 우리의 신앙이 드러납니다. 각자에게 다가왔던 그 첫 마음을 떠올리면서 오늘도 기꺼이 기쁘게 예수님의 길을 걸어갔으면 합니다. 그래서 하느님을 위해서 모든 것을 벗어버리는 참 신앙인, 참 인간, 참 제자 그리고 참 하느님이 되었으면 합니다. 오소서! 성령이여!

의정부교구 배존희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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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십자가를 지고 가는 삶의 의미

우리 인간은 좋은 것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존재들입니다. 사랑이 좋은 것이기에 그 사랑을 얻기 위해 기다리고 배려하는 것이고, 믿음이 소중한 것이기에 서로의 신뢰를 쌓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고, 나눔이 좋은 것이기에 나의 것을 내어 놓는 것입니다. 인간의 선택은 늘 그렇게 좋은 것을 향해 있습니다. 그러나 누구나 얻고자 하는 좋은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누구나 얻는 것은 아닙니다.

왜 일까요? 그것을 얻는 길이 결코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나도 더 가져야 하는데, 내가 왜 다른 이에게 양보해야 합니까? 나도 잘났는데, 왜 내가 다른 사람을 위해서 희생해야 합니까? 나만 잘 살면 되지 다른 사람이야 잘 살던 못 살던 내가 무슨 상관입니까? 그냥 되는대로 살지 왜 그런 험난한 길을 일부러 선택할 필요가 있습니까?” 수없이 많은 의문이 나를 붙잡고, 당장의 이익이 나를 갈등하게 하고, 더 좋은 것을 얻기 위해 노력하려는 내 의지를 꺾어 놓는 수많은 유혹이 나를 붙잡고 매달립니다. 그런 유혹에 빠져버린다면 우리에게 좋은 것은 절대 주어지지 않습니다. 좋은 것을 얻고자 한다면 그것을 얻기 위한 끊임없는 선택과 결단과 항구한 용기가 우리에게는 너무나 필요합니다.

그래서 오늘 예수님은 우리에게 “누구든지 제 십자가를 짊어지고 내 뒤를 따라오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라는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자신의 십자가... 실상 다른 이의 십자가보다 더 무거운 것도 아닌데, 우리는 자신의 십자가만을 버거워합니다. 자신의 십자가가 남들보다 더 무겁다고 투정을 합니다. 자신을 위해서 지고 있는 십자가란 사실을 잊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착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타인을 향한 나의 어떤 노력과 선택은 타인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결국 자기 자신을 위한 일이란 것을 망각하는 것입니다. 다른 이에게 양보를 하는 것도, 다른 이를 위해서 희생하는 것도, 다른 이를 위해서 내 것을 나누는 것도, 결국은 자기 자신을 위한 일인 것입니다.

이제는 잊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제 십자가를 지는 것은 보다 나은 자신의 삶을 위한 선택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김준동 마르띠노 신부
  |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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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 더 좋은 것을 얻기 위한 노력

사람들이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아마도 자신의 재산, 가족 그리고 건강과 생명일 것입니다. 그동안 모아온 물질적 결실이자 미래를 보장해주는 재산은 우리에게 소중합니다. 또한 나 자신을 있게 하고 사랑 안에서 존재의 의미를 찾게 하는 가족은 가장 소중한 사람들입니다. 자신의 건강과 생명은 두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하지만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 아내와 자녀, 형제와 자매,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가족은 물론 자신의 목숨까지도 ‘미워해야 한다.’는 말씀이 무척 당혹스럽게 다가옵니다.

그런데 우리가 오늘 복음을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예수님께서 당시 사용하시던 아람어의 정확한 의미를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미워하다.’라는 아람어 동사는 실제로 미워한다는 뜻뿐만 아니라 ‘덜 사랑한다.’는 의미로도 많이 쓰였습니다. 그러니까 가족이나 자기 생명을 부정하는 뜻으로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더 중요한 것을 위해 그보다 덜 사랑해야 한다는 의미로 오늘 복음을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 신앙인은 최종적으로 무엇을 추구해야 할까요? 그것은 단지 현세에서의 성공과 그에 따른 행복만은 아닐 것입니다. 현세를 넘어 있는 하느님 나라에서의 영원한 행복이 우리의 최종 목적입니다. 순교자성월을 맞아 특별히 기억하는 순교자들께서 삶의 모범으로 이 점을 알려주셨습니다. 하느님 나라라는 목적을 위해 다른 수단과 과정은 ‘덜 사랑하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목적과 수단을 혼동하고, 수단을 목적으로 삼아서는 안 됩니다. 재산은 구원을 위해 필요한 도구지, 그 자체로 목적이 될 수 없습니다. 가족도 심지어 자신의 생명도 마찬가지입니다. 참된 목적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그리고 그것을 향해 나아가기 위해, 각자 자신의 상황을 파악하고 새로운 계획 하에 매진해야겠습니다. 마치 탑을 세우기 위해 계산을 하고, 전쟁에서 파멸되지 않기 위해서 상황을 헤아리는 것처럼 말이죠.

주님께서는 참된 목적을 향해 나아가는 최선의 방법을 알려주십니다. “너희 가운데에서 누구든지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라고 말입니다. 더 좋은 것을 차지하는 영광이 있기 위해서는 덜 좋은 것을 포기하는 아픔이 있어야 한다는 진리를 마음에 새깁시다. 더 큰 영광을 위해 지금의 아픔을 감내하는 용기를 순교자성월을 시작하며 주님께 겸손되이 청합니다.

▮ 의정부교구 이종경 비오 신부 2016년 9월 4일
  |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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