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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 연중 제24주일 독서와 복음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조회수 | 1,889
작성일 | 07.09.12
탈출기32,7-11.13-14 주님께서는 내리겠다고 하신 재앙을 거두셨다.

그 무렵 7 주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셨다. “어서 내려가거라. 네가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올라온 너의 백성이 타락하였다.
8 저들은 내가 명령한 길에서 빨리도 벗어나, 자기들을 위하여 수송아지 상을 부어 만들어 놓고서는, 그것에 절하고 제사 지내며, ‘이스라엘아, 이분이 너를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올라오신 너의 신이시다.’ 하고 말한다.”
9 주님께서 다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이 백성을 보니, 참으로 목이 뻣뻣한 백성이다. 10 이제 너는 나를 말리지 마라. 그들에게 내 진노를 터뜨려 그들을 삼켜 버리게 하겠다. 그리고 너를 큰 민족으로 만들어 주겠다.”
11 그러자 모세가 주 그의 하느님께 애원하였다. “주님, 어찌하여 당신께서는 큰 힘과 강한 손으로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내신 당신의 백성에게 진노를 터뜨리십니까?
13 당신 자신을 걸고, ‘너희 후손들을 하늘의 별처럼 많게 하고, 내가 약속한 이 땅을 모두 너희 후손들에게 주어, 상속 재산으로 길이 차지하게 하겠다.’ 하며 맹세하신 당신의 종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이스라엘을 기억해 주십시오.”
14 그러자 주님께서는 당신 백성에게 내리겠다고 하신 재앙을 거두셨다.

사도 바오로의 티모테오 1서  1,12-17 그리스도께서는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오셨습니다.

사랑하는 그대여, 12 나를 굳세게 해 주신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분께서는 나를 성실한 사람으로 여기시어 나에게 직무를 맡기셨습니다. 13 나는 전에 그분을 모독하고 박해하고 학대하던 자였습니다. 그러나 내가 믿음이 없어서 모르고 한 일이기 때문에, 하느님께서는 나에게 자비를 베푸셨습니다. 14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우리 주님의 은총이 넘쳐흘렀습니다.
15 이 말은 확실하여 그대로 받아들일 가치가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나는 그 가운데에서 첫째가는 죄인입니다. 16 그러나 바로 그 때문에 하느님께서 나에게 자비를 베푸셨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먼저 나를 당신의 한없는 인내로 대해 주시어,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고 당신을 믿게 될 사람들에게 본보기로 삼고자 하신 것입니다.
17 영원한 임금이시며 불사불멸하시고 눈에 보이지 않으시며 한 분뿐이신 하느님께 영예와 영광이 영원무궁하기를 빕니다. 아멘.

루카 15,1-32<또는 15,1-10> 하늘에서는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더 기뻐할 것이다.

짧은 독서를 할 때에는 < > 부분을 생략한다.

그때에 1 세리들과 죄인들이 모두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가까이 모여들고 있었다. 2 그러자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이, “저 사람은 죄인들을 받아들이고 또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군.” 하고 투덜거렸다.
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 4 “너희 가운데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 가운데에서 한 마리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광야에 놓아둔 채 잃은 양을 찾을 때까지 뒤쫓아 가지 않느냐?
5 그러다가 양을 찾으면 기뻐하며 어깨에 메고 6 집으로 가서 친구들과 이웃들을 불러,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내 양을 찾았습니다.’ 하고 말한다.
7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와 같이 하늘에서는,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인 아흔아홉보다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더 기뻐할 것이다.
8 또 어떤 부인이 은전 열 닢을 가지고 있었는데 한 닢을 잃으면, 등불을 켜고 집 안을 쓸며 그것을 찾을 때까지 샅샅이 뒤지지 않느냐?
9 그러다가 그것을 찾으면 친구들과 이웃들을 불러,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은전을 찾았습니다.’ 하고 말한다.
10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와 같이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하느님의 천사들이 기뻐한다.”

<11 예수님께서 또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에게 아들이 둘 있었다. 12 그런데 작은아들이, ‘아버지, 재산 가운데에서 저에게 돌아올 몫을 주십시오.’하고 아버지에게 말하였다. 그래서 아버지는 아들들에게 가산을 나누어 주었다.
13 며칠 뒤에 작은아들은 자기 것을 모두 챙겨서 먼 고장으로 떠났다. 그러고는 그곳에서 방종한 생활을 하며 자기 재산을 허비하였다.
14 모든 것을 탕진하였을 즈음 그 고장에 심한 기근이 들어, 그가 곤궁에 허덕이기 시작하였다.
15 그래서 그 고장 주민을 찾아가서 매달렸다. 그 주민은 그를 자기 소유의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다. 16 그는 돼지들이 먹는 열매 꼬투리로라도 배를 채우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아무도 주지 않았다.
17 그제야 제정신이 든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내 아버지의 그 많은 품팔이꾼들은 먹을 것이 남아도는데, 나는 여기에서 굶어 죽는구나. 18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렇게 말씀드려야지. ′아버지, 제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19 저는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습니다. 저를 아버지의 품팔이꾼 가운데 하나로 삼아 주십시오.′’
20 그리하여 그는 일어나 아버지에게로 갔다. 그가 아직도 멀리 떨어져 있을 때에 아버지가 그를 보고 가엾은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달려가 아들의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추었다.
21 아들이 아버지에게 말하였다. ‘아버지, 제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습니다.’
22 그러나 아버지는 종들에게 일렀다. ‘어서 가장 좋은 옷을 가져다 입히고 손에 반지를 끼우고 발에 신발을 신겨 주어라. 23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아라. 먹고 즐기자. 24 나의 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도로 찾았다.’ 그리하여 그들은 즐거운 잔치를 벌이기 시작하였다.
25 그때에 큰아들은 들에 나가 있었다. 그가 집에 가까이 이르러 노래하며 춤추는 소리를 들었다. 26 그래서 하인 하나를 불러 무슨 일이냐고 묻자, 27 하인이 그에게 말하였다.
‘아우님이 오셨습니다. 아우님이 몸성히 돌아오셨다고 하여 아버님이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습니다.’ 28 큰아들은 화가 나서 들어가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버지가 나와 그를 타이르자, 29 그가 아버지에게 대답하였다. ‘보십시오, 저는 여러 해 동안 종처럼 아버지를 섬기며 아버지의 명을 한 번도 어기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저에게 아버지는 친구들과 즐기라고 염소 한 마리 주신 적이 없습니다. 30 그런데 창녀들과 어울려 아버지의 가산을 들어먹은 저 아들이 오니까, 살진 송아지를 잡아 주시는군요.’
31 그러자 아버지가 그에게 일렀다. ‘얘야, 너는 늘 나와 함께 있고 내 것이 다 네 것이다. 32 너의 저 아우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되찾았다. 그러니 즐기고 기뻐해야 한다.’”>

보편지향기도

+형제 여러분, 우리의 마음이 돌아서기를 기다려 주시는 자비하신 하느님 아버지께 정성을 다하여 우리의 바람을 아룁시다.

1. 교황님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구원의 주님, 그리스도의 사명을 따라 모든 사람의 구원과 세상의 평화를 위하여 기도하고 일하는 교황에게, 언제나 주님의 뜻을 분별해 내는 지혜와 건강을 주소서.
◎ 주님, 저희의 기도를 들어주소서.

2. 정치인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정의의 주님, 정치인들에게 바른 양심과 지혜의 은총을 내려 주시어, 경제적 논리와 이익을 좇기보다 창조 질서를 보존하며,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데 앞장서게 하소서. ◎

3. 장애인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자비하신 주님, 신체적 정신적 장애를 안고 있는 이들을 굽어보시어, 그들이 장애로 겪는 어려움과 아픔을 이겨 내고, 세상 속에서 많은 사람과 더불어 당당히 살아갈 수 있도록 용기와 힘을 주소서. ◎

4. 본당 공동체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생명의 주님, 복음을 향한 열정을 저희 본당 공동체에 심어 주시어, 열심히 기도하고 봉사하는 복음의 증인이 되게 하시고, 특히 쉬는 교우들의 회심을 위해 노력하게 하소서. ◎

+자비하신 주님, 주님께 간절히 청하는 저희의 기도를 기꺼이 들어주시고, 언제나 주님과 함께하는 은총을 베풀어 주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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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주님께서는 당신의 울타리에서 멀어져 간 양을 찾아 나서십니다. 우리는 모두 그분의 목장에서 뛰어노는 양들이며, 가끔씩 울타리를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쓰기도 합니다. 울타리 너머에는 생명이 아닌 죽음이 도사리고 있는 줄도 모르는 채 말입니다. 목장의 주인이신 주님께서는 그러한 우리를 다독여 주시고, 울타리를 벗어나면 지체 없이 찾아 나서십니다.

또한 주님께서는, 집을 나가서 경제적으로 망하고, 윤리적으로 타락한 작은아들이 돌아오기를 참고 기다리는 아버지이십니다. 그러다가 그 아들이 돌아오면 반갑고 기쁜 나머지, 기꺼이 잔치를 베풀어 잃었던 아들을 맞아 주십니다.

문제는 우리입니다. 주님 안에 머물러 있으면 좋을 텐데, 종종 우리는 그분의 울타리를 벗어나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곧 후회하며 그분께 돌아오고 싶어 합니다. 그렇지만 돌아올 길을 잃어버리기가 일쑤입니다. 돌아오는 길은 바로 회개하는 것입니다. 회개의 과정은 자기가 진실로 죄인임을 의식하고 인정하는 데에서부터 출발합니다.

주님께서는 죄인임을 고백하며 돌아오는 우리를 모른 체하지 않으실 분이십니다. 오히려 포옹해 주시며, 잔치까지 베풀어 주실 분이시지요. 주님께서는 죄 많은 우리에게 당신 자녀의 품위를 되찾아 주십니다.

매일미사 2010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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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되찾은 아들의 비유’를 보면 무언가 궁금증을 자아내게 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작은아들이 먼 고장으로 떠났다가 빈털터리가 되어 돌아올 때의 장면입니다. 아버지의 가산을 챙겨 나갈 때만 해도 그는 분명 화려한 옷차림에 말끔한 용모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돌아올 때에는 그렇지 않았음이 확실합니다. 옷도 누더기였을 것이고, 신발도 없었을 것이며, 제대로 씻지도 못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아버지는 여느 거지나 다름없는 작은아들을 바로 알아볼 수 있었을까요? 그것도 가까이서가 아니라 “멀리 떨어져 있을 때” 알아보았습니다. 이게 어떻게 가능하였을까요?

자식 둔 부모라면 누구나 이 대목을 쉽게 수긍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마도 아버지는 작은아들이 집을 떠난 뒤부터 줄곧 그 아들을 걱정하였을 것입니다. 끼니는 제대로 챙겨 먹기는 하는지, 거지가 되어 버린 것은 아닌지, 강도를 만나지는 않았는지, 죽은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으로 마음 편할 날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돌아오려나?’ 하는 마음이 한시도 떠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니 거지 차림으로 돌아오는 아들을 먼 데서부터 알아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죄를 지으며 주님을 등져 버렸을 때에도 주님께서는 바로 이러한 아버지의 마음을 지니고 계십니다. 우리가 당신 곁을 떠나 영혼이 파괴되어 버리는 것은 아닌지 염려하시며 마음 아파하십니다. 그리고 ‘이제는 돌아오려나?’ 하시며 늘 기다리십니다. 그것이 자비로우신 아버지, 우리 주님의 마음입니다.

<매일미사 2013년 9월>
  |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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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고집스럽고 오만하여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고 그분의 길을 벗어나기도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황금 송아지를 만들어 우상 숭배를 하였을 때, 하느님께서 진노하시어 재앙을 내리려 하셨습니다. 하느님의 진노가 죄인들에게 내리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모세의 간청을 하느님께서는 물리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자비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한때 그리스도교를 박해했던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의 자비를 이렇게 증언합니다. “내가 믿음이 없어서 모르고 한 일이기 때문에, 하느님께서는 나에게 자비를 베푸셨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우리 주님의 은총이 넘쳐흘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탕자의 비유를 통해 하느님 아버지의 자비를 보여 주십니다. 하느님께서는 한없는 자비로 죄인을 바라보고 계십니다. 죄 많은 우리가 당신에게 돌아와서 자비로운 품에 안기기를 기다리십니다. 마치 거지나 다름없는 탕자가 아버지께 돌아왔을 때, 멀리서 즉시 알아보고 달려가 아들의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추듯이, 하느님께서는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청하는 사람에게 넘치는 은총을 주십니다. 은총의 잔치가 벌어져 모든 사람이 기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늘에서는,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인 아흔아홉보다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더 기뻐할 것이다.” 회개하는 사람은 하느님의 천사들을 기쁘게 한다고 합니다. 우리는 의롭다고 자만하여 죄인의 회개를 시기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하느님의 자비에 대한 믿음으로 구원의 은총을 받아야 합니다.

▮ 류한영 베드로 신부 : 매일미사 2016년 9월 11일
  |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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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의 한 인류학자가 남아프리카 부족의 아이들에게 과자 상자를 보여 주며 달리기 경주를 시켜 보았습니다. 아이들은 “우분투”라고 말하며 함께 손을 잡고 걸었습니다. 백인 학자가 의아해하며 왜 경쟁하지 않느냐고 묻자 아이들은 “다른 아이들이 슬퍼하는데 어찌 나만 행복할 수 있나요?”라고 말하였습니다. “우분투”란 아프리카 코사어로 ‘네가 있어 내가 있다.’ 또는 ‘함께 있어 내가 있다.’라는 뜻입니다.

인간은 이웃과 함께해야만 행복해질 수 있게 창조되었습니다. 이웃과 경쟁하는 것은 독약을 마시며 건강해지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느님께서 세상에 내려오신 이유는, 인간이 행복하지 않으면 당신도 행복할 수 없으시기 때문이었습니다. 아기가 물에 빠져 허우적대는데 혼자 행복할 수 있는 어머니는 없습니다.

오늘 복음은 ‘회개’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회개란 무엇이 참행복인지 아는 것입니다. 처음에 작은아들은 자신을 즐겁게 하는 것이 행복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고통임을 깨닫고 아버지를 행복하게 하는 것이 곧 자신의 행복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반면, 큰아들은 아버지 곁에 있으면서도 행복하지 못하였습니다. 아직은 아버지의 행복과 자신의 행복이 일치를 이루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내가 죄를 이겨 행복할 때 아버지도 행복하십니다.

죄를 짓는 사람이 부러우면 아직 회개한 것이 아닙니다. 죄는 자신과 이웃을 아프게 하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이웃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 곧 나의 행복임을 아는 사람이 회개한 사람입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자신의 행복을 위하여 죄를 멀리할 수 있는 사람이 회개한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이 참으로 하느님을 예배하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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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
매일미사 2019년 9월 15일
  |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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