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요안 신부의 가톨릭

 l Home l Bestsite l Search l Freeboard l E-mail l

 
 

주일강론

평일강론

축일강론

대축일/명절강론

혼인강론

장례강론

예 화

사설/칼럼

♣ 현재위치 : 홈 > 강론자료실 > 주일강론 (다해)

주일강론

가   해

나   해

다   해

 

 

 


( 쪽지보내기 스크랩하기 프린터하기 홈페이지 )
450 66.8%
[춘천]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조회수 | 2,704
작성일 | 07.10.05
겸손하게 섬겨라’ 라는 말씀에 지나 온 한 해가 주마등이 되어 뇌리에 스칩니다.

작년 한 해 동안 얼떨결(?)에 교육국 일을 맡아 했습니다. 참으로 많은 이들을 걱정하게 하고, 수고하게 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조금 더 잘해 보려고 본당 일만으로도 바쁜 후배 신부님들을 엄청 괴롭혔고, 훌륭하신 선배 신부님들의 걱정을 사면서 한 해 정말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며 지냈던 것 같습니다. 양질의 교육(?)을 준비한답시고 마음 착한 봉사자들을 매몰차게 부려먹었던 일들도 가슴 아프게 느껴집니다.

지난주에 하던 일을 정리하고 넘겨줄 작업을 하면서 ‘내가 한 일이 고작 이것인데 왜 그리도 덤벙거리며 살았는지 모르겠다’는 반성을 했습니다. 마음 속 열정은 가득한데 믿음이 부족한가 봅니다. “너희가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이 돌무화과나무더러 ‘뽑혀서 바다에 심겨라.’ 하더라도, 그것이 너희에게 복종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없어 그랬나 봅니다. 하느님을 믿는 신자(信者)인데 믿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감만 가지고 살았나 봅니다.

믿는 사람이라는 것이, 어떤 이가 부처님을 알라를 산신령을 믿는다는 것이 아니라 삶이 고달프다 해도 하느님의 생명을 느끼며 기쁘게 남을 위해 사는 사람이어야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겸손하게 섬기기보다 종의 신분인 자신의 처지도 모르면서 분부를 받은대로 하지 않고 제 멋대로 살았고, 나를 따르기를 원하며 살았으니 창피할 따름입니다. 바로 이런 마음이 저뿐만 아니라 이번에 소임을 옮기신 모든 신부님들의 마음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부족한 종들을 잘 보필하여 주신 교우 분들과 수도자 분들이 고맙습니다.

이제 저는 옛 일을 찾아 더듬으며 먼저 가신 사제, 수도자, 그리고 교우들과 선교사들이 어떻게 이 교구에 겨자씨만한 믿음을 키우고 살았는지 살펴보는 일을 새로 맡았습니다. 무척이나 흥미로운 일이 될 것 같습니다. 지나온 과거를 알아보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묻어있는 선인들의 지혜와 믿음, 그리고 섬김의 정신을 찾을 수 있고 또 그런 이야기를 서로 나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하며 살았던 우리 선조들의 삶을 마음에 새기며 저도 그렇게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춘천교구 김주영 시몬 신부
0 100%
앞선 분들의 겨자씨 믿음으로 이렇게 울창한 숲을 이루었는데...
아름답게 가꿔야 겠습니다.
  | 10.05
450 66.8%
청빈한 믿음을 드려야 합니다

믿음이 사라진 오늘

임진왜란 때 영의정까지 지냈던 ‘해학의 현신 이항복(1556~1618)’은 많은 일화를 남겼는데, 그중 장인 권율을 속여 폭소를 자아낸 이야기가 전해져 옵니다.

어느 무더운 여름날 장인 권율이 사위 이항복과 함께 입궐하게 되었는데 이항복은 장인에게 날씨가 몹시 더우니 버선을 벗고 신을 신고 입궐하는 것이 좋겠다고 권합니다.

사람 좋은 권율은 사위 말만 믿고 그렇게 입궐하였습니다. 입궐 뒤 이항복은 임금 앞에서 날씨가 몹시 더워 나이든 재상들이 의관을 갖추기 어려우니 신을 벗도록 청합니다.

선조 임금은 매우 옳은 말이라 생각해 영의정부터 차례로 신을 벗게 합니다. 권율이 신을 벗지 못하고 쩔쩔매자, 임금은 자신 앞이라 그러는 줄 알고 내관을 시켜 신을 벗깁니다. 그러자 맨발이 드러난 권율은 도포 자락으로 발을 가리며 엎드려 임금께 아뢰었습니다.

“이항복에게 속아 이리 되었나이다.”

임금은 크게 웃고, 여러 신하들도 배를 움켜쥐고 웃었다고 합니다.

참으로 가슴 시원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서슬 퍼런 어전 회의에서 이 같은 해학의 일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은, 장인의 사위 사랑과 믿음, 사위의 장인에 대한 믿음, 임금과 신하간에 사랑과 믿음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런데 그때보다 더욱 자유로운 오늘날 이 같은 여유와 사랑의 믿음이 사라지고 경직된 분위기와 살벌한 인심, 불신이 만연하고 서로를 믿지 못하는 풍조가 날로 커져가고 있습니다. 이웃에 대한 믿음은 물론이고 하느님께 대한 믿음도 없어지거나 상거래 식의 믿음으로 변절되고 있습니다.

때문에 점점 기복신앙적인 이기주의식 믿음이 돼가고 인간은 더욱 영악스러운 계산적 모습을 보입니다. 진실한 믿음이 사라지는 오늘 예수님께서는 또다시 힘주어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이 돌무화과나무더러 ‘뽑혀서 바다에 심겨라,’ 하더라도, 그것이 너희에게 복종할 것이다.”(루카 17, 6)

예수님께서 그토록 크신 사랑과 기적을 베풀어 주셨건만, 우리는 그분께 신뢰와 믿음을 드리지 못하였습니다.

욥과 종의 본분

욥은 구약성경에서 고통의 대명사입니다. 특별히 죄인은 벌을 받아 마땅하지만, 죄 없는 의인이 왜, 벌을 받아야 하는가에 대한 인간 의문에 대한 해답을 내리고자 하는 열망에서 쓰여진 성경입니다.

욥기의 주제는 분명 의인이 당하는 이해할 수 없는 고통에 대한 신학적인 설명입니다. 그러나 그 근원에 들어가 보면 역설적이게도 욥기의 시작인 사탄의 질문에 있습니다. 지상 여행을 마친 사탄이 천상 어전에 오르자 하느님께서 사탄에게 물으십니다.

“너는 나의 종 욥을 눈여겨보았느냐? 그와 같이 흠 없고 올곧으며 하느님을 경외하고 악을 멀리하는 사람은 땅 위에 다시없다.”(욥 1, 8)

그러자 사탄이 묻습니다.

“욥이 까닭 없이 하느님을 경외하겠습니까?”(욥 1, 9)

이 같은 사탄의 빈정거림에 욥기의 주제가 있습니다. 우리는 늘 무슨 까닭 때문에 신앙을 가졌고, 주님께서 무엇을 주시기 때문에 믿음을 가졌습니다. 사탄은 분명 하느님께서 욥에게 무엇인가 세상사의 물질적 풍요를 주셨기에, 그 같은 까닭이, 이유가 있었기에 하느님을 경외하였다고 이야기합니다.

어쩌면 우리의 믿음 역시 하느님께서 ‘무엇인가 주시겠지’라는 요량이 있기에, 그것에 희망을 걸고 세속적 신앙생활을 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사탄은 분명 하느님께서 욥에게 재산과 가정과 자녀들, 그 모든 물질적 풍요를 주셨기에 그가 하느님을 경외하는 것이라고 항변합니다. 그러나 욥은 그 모든 것을 잃어도 끝까지 믿음을 저버리지 않고 자신의 고귀한 신앙을 고백합니다.

“알몸으로 어머니 배에서 나온 이 몸 알몸으로 그리 돌아가리라. 주님께서 주셨다가 주님께서 가져가시니 주님의 이름은 찬미받으소서.”(욥 1, 21)

이것이 신앙이며, 이것이 믿음입니다. 설령 오늘 내게 이득이 돌아오지 않는다고, 내가 청한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여도, 끝내 나를 저버리지 않으시는 그 주님께 모든 것을 의탁하며 희망을 저버리지 않는 삶, 그것이 참된 믿음인 것입니다. 무엇을 청할 요량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 묵묵히 주님의 뜻을 따라 나의 행할 바를 끝까지 다하는 것, 그것이 신앙입니다. 때문에 예수님께서 우리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 이렇게 깨우쳐 주십니다.

“이와 같이 너희도 분부를 받은 대로 다 하고 나서, ‘저희는 쓸모 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하고 말하여라.”(루카 17,10).

춘천교구 배광하 신부
  | 10.07
파란색 글자 빨간색 글자 녹색 글자 밑줄 글자 진한 글자 빨간색 테이블 파란색 테이블 녹색 테이블
이름 :   
암호 :
· d41d8cd98f * 왼쪽의 글자중 빨간글자만 순서대로 입력하세요.
 목록보기 스크랩하기  프린터하기
!   [수도회] 보라, 내가 곧 간다. ...(묵시 22,12)  [10]
!   [안동] ‘복음을 전하는 발걸음’  [1]
!   [마산] 교회의 생명력은 평신도에게 있다.  [2]
!   [부산] 하느님의 미래를 택한 사람은 하느님의 현재를 삽니다  [4]
!   [대구] “희망의 징조"  [2]
!   [수원] 정해진 시간과 일들 안에서  [2]
!   [의정부] “예수님 한 분만 이상하다”  [2]
!   [인천] “예수님은 ‘보스(boss)’인가 ‘리더(leader)’인가?”  [4]
!   [서울] 부활을 믿는 사람  [2]
770   연중 제33주일 세계 가난한 이의 날  13
769   [춘천] 신념  [2] 2274
768   [원주] 재난의 시작  6
767   [대전] 착한 교우들에게 예수님의 측은지심을  [1] 2579
766   [전주] 종말 전의 재난  8
765   [청주] “너희는 속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여라"  8
764   (녹) 연중 제33주일 독서와 복음 (너희는 인내로써 생명을 얻어라)  [1] 2082
763   [수도회] "사실 하느님께는 모든 사람이 살아 있는 것이다."  [5] 1487
762   [수원] 그리스도의 몸으로 사는 삶  [2] 2351
761   [서울] 부활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3] 2299
760   [마산] 영세한 미신자(未信者)가 많다.  [1] 2277
759   [대구] 부활의 삶, 지금 여기서 시작되고 있다.  499
758   [인천]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노라!  [4] 2833
757   [부산] 알 수 없는, 그래도 좋은 하느님 나라  [2] 2583
756   [안동] 부활을 믿는다면 부활을 살아가십시오  [1] 2573
755   [대전] “하느님 앞에 있는 사람은 모두 살아있는 것입니다”  [1] 2898
754   [청주] 부활 신앙  [2] 76
753   [광주] 학벌(學閥)과 사두가이파  2576
752   [전주] 부활 에 대한 확신과 희망  56
751   [춘천] 영원히 하나인 하느님 가족  [2] 2396
750   [원주] 부활 이후의 새로운 삶  54
749   [군종] 두 여자  2131
748   [의정부] “부활을 믿으며 영원한 삶을 믿나이다.”  62
747   (녹) 연중 제32주일 독서와 복음 (하느님께서는 산 이들의 하느님)  [3] 1931
746   [수도회] 용서와 자비  [2] 2073
745   [전주] 자캐오, 아! 행복한 사람  [1] 1718
744   [인천] 자캐오! 나무에서 (빨리)내려와!  [3] 2165
743   [서울] 회개의 증거는 착한 행실  [3] 1740
742   [안동] 자캐오 이야기  [1] 2313
741   [부산] 세리 자캐오와 예수님의 만남  [2] 12010
740   [수원] “저 사람이 죄인의 집에 들어 가 묵는구나!”  [3] 2081
1 [2][3][4][5][6][7][8][9][10]..[20]  다음
 

 

주일강론

가   해

나   해

다   해

 

 

 관리자 Profile  l  홈페이지이용안내  l  즐겨찾기추가  l  추천사이트  l  가톨릭검색사이트  l  관리자 E-mail

Copyright ⓒ 2003 - 2019 www.ocatholic.com All rights reserved.   Ver 4.01_050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