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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 연중 제28주일 독서와 복음 (나병 환자 열 사람)
조회수 | 2,198
작성일 | 07.10.12
▬ 소록도 해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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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독서 : 나아만은 하느님의 사람에게로 되돌아가 주님께 신앙 고백을 하였다.
▥ 열왕기 하권 5,14-17

그 무렵 시리아 사람 나아만은 하느님의 사람 엘리사가 14 일러 준 대로,
요르단 강에 내려가서 일곱 번 몸을 담갔다.
그러자 나병 환자인 그는 어린아이 살처럼 새살이 돋아 깨끗해졌다.
15 나아만은 수행원을 모두 거느리고 하느님의 사람에게로 되돌아가
그 앞에 서서 말하였다. “이제 저는 알았습니다.
온 세상에서 이스라엘 밖에는 하느님께서 계시지 않습니다.
이 종이 드리는 선물을 부디 받아 주십시오.”
16 그러나 엘리사는 “내가 모시는 주님께서 살아 계시는 한,
결코 선물을 받을 수 없습니다.” 하고 거절하였다.
그래도 나아만이 그것을 받아 달라고 거듭 청하였지만 엘리사는 거절하였다.
17 그러자 나아만은 이렇게 말하였다.
“그러시다면, 나귀 두 마리에 실을 만큼의 흙을 이 종에게 주십시오.
이 종은 이제부터 주님 말고는 다른 어떤 신에게도
번제물이나 희생 제물을 드리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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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독서 : 우리가 견디어 내면 그리스도와 함께 다스릴 것이다.
▥ 티모테오 2서 2,8-13

사랑하는 그대여, 8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십시오.
그분께서는 다윗의 후손으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셨습니다.
이것이 나의 복음입니다.
9 이 복음을 위하여 나는 죄인처럼 감옥에 갇히는 고통까지 겪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말씀은 감옥에 갇혀 있지 않습니다.
10 그러므로 나는 선택된 이들을 위하여 이 모든 것을 견디어 냅니다.
그들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받는 구원을
영원한 영광과 함께 얻게 하려는 것입니다. 11 이 말은 확실합니다.
우리가 그분과 함께 죽었으면 그분과 함께 살 것이고
12 우리가 견디어 내면 그분과 함께 다스릴 것이며
우리가 그분을 모른다고 하면 그분도 우리를 모른다고 하실 것입니다.
13 우리는 성실하지 못해도 그분께서는 언제나 성실하시니
그러한 당신 자신을 부정하실 수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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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음 : 이 외국인 말고는 아무도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러 돌아오지 않았단 말이냐?
✠ 루카 17,11-19

11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에
사마리아와 갈릴래아 사이를 지나가시게 되었다.
12 그분께서 어떤 마을에 들어가시는데 나병 환자 열 사람이 그분께 마주 왔다.
그들은 멀찍이 서서 13 소리를 높여 말하였다.
“예수님, 스승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14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보시고,
“가서 사제들에게 너희 몸을 보여라.” 하고 이르셨다.
그들이 가는 동안에 몸이 깨끗해졌다.
15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은 병이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느님을 찬양하며 돌아와,
16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렸다.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었다.
17 그러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열 사람이 깨끗해지지 않았느냐? 그런데 아홉은 어디에 있느냐?
18 이 외국인 말고는 아무도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러 돌아오지 않았단 말이냐?”
19 이어서 그에게 이르셨다. “일어나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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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생겨난 말들 가운데 아름다운 말이 참 많습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 가장 훈훈한 말이 있다면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하는 말일 것입니다. 세상을 살면서 누군가에게 감사하는 일이 자주 있는 사람은 세상을 바르게 살고 있다고 보아도 좋을 것입니다. 반대로, 감사드릴 일이 없는 사람은 세상을 제대로 살고 있는지 아닌지를 잘 살펴보아야 합니다. 감사드리는 일은 은혜를 저버리지 않겠다는 뜻이 거기에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는 사마리아와 갈릴래아 사이를 걸어가십니다. 사마리아는 이방 지역이고, 갈릴래아는 믿음으로 충만한 유다인의 땅입니다. 이방 지대와 선민 의식으로 고양된 지역의 경계선상을 걸어가시는 주님이십니다. 그곳에서 주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기피하는 나병 환자 열 사람의 청원을 들어 고쳐 주십니다. 그러나 감사드리는 사람은 고작 한 명뿐이었습니다. 나머지 아홉은 제 갈 길을 가 버렸던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돌아온 그에게 구원을 선물로 주십니다.

사실 우리도 주님처럼 경계선상을 걸어갑니다. 경계선상에서 주님께 머리를 둘 것인지, 아니면 세상에 머리를 둘 것인지는 우리가 결정해야 합니다. 주님께 머리를 두는 사람은 감사드릴 줄 아는 사람이며, 은혜를 저버리지 않는 사람입니다. 은혜를 저버리지 않는 사람이 주님께 더 큰 은총을 입게 된다는 진실을 우리는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니 언제나 감사드릴 줄 아는 삶을 살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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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0월 매일미사
  |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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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것 자체가 은총이란 말이 있습니다. 숨 쉬는 순간부터 내 삶의 한순간도 거저 얻어진 것은 없습니다. 돌아보면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 기적 같은 일들이 많았고, ‘살아 있음’ 그 자체가 감사할 일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 삶에는 이 기적 같은 인생에 감사하는 순간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불평과 분노로 탄식하는 순간들도 적지 않습니다. 우리가 만족보다는 불만에 더 익숙해져 버렸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나병 환자 열 사람이 예수님을 찾아온 것은, 사람으로 대우받고 싶었던 그들의 치유에 대한 간절한 청원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은 예수님께서 위대한 예언자이시니 그분의 치유를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인 모양입니다. 한 사람, 그것도 ‘외국인’으로 표현된 이방인만이 돌아와 하느님을 찬양하며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렸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언젠가 다시 병들고 쓰러질 육체적 병의 치유가 아니라, 성실하신 하느님의 영과 함께 살아가는 마음의 회개와 치유입니다. “일어나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는 선언은, 당장 나병이 나은 것에 만족하고 돌아간 다른 아홉에게 주어지지 않은 진정한 치유와 자유였습니다.

시리아 사람 나아만도 요르단 강에서 물로 씻기만 했을 뿐, 나병이 나을 것이라 믿지 않았지만, 자신에게 일어난 놀라운 기적에 기뻐하기만 한 것이 아닙니다. 그는 약속된 땅에서 흙을 실어 가져가며 오직 주님께만 번제물과 희생 제물을 바칠 것을 약속하는 믿음의 사람이 된 것입니다. 진정한 치유는 마음의 회심에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그 마음이 오로지 하느님을 향할 때 우리는 구원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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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
매일 미사 2016년 10월 9일
  |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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