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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감사할 줄 알기에 행복한 삶
조회수 | 2,592
작성일 | 07.10.12
누구에게나 삶에 고통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똑같은 고통이 누구에게는 불행이 되고 누구에게는 은총이 되기도 합니다. 또 누구는 얻으면서도 잃고 살지만 누구는 잃으면서도 얻고 살아갑니다. 누구는 가지고 있으면서도 불행하지만 누구는 가지지 못했으면서도 행복합니다. 이 엄청난 차이는 바로 감사할 줄 아는 마음에서 비롯됩니다.

고통을 감사하게 되면 고통은 은총으로 바뀝니다. 감사함이 있으면 잃으면서도 얻게 되지만 감사함이 없으면 얻으면서도 잃게 됩니다. 감사함이 있으면 못 가져도 행복하지만 감사가 없으면 가지고 있으면서도 불평합니다. 돈이 있어 행복한 것도 아니며, 건강이 있어 행복한 것도 아닙니다. 감사할 줄 알기에 행복한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 열 명의 나병환자가 치유를 받았습니다. 은총을 받은 것입니다. 하지만 모두가 구원을 받은 것은 아닙니다. 오직 한 사람, 감사할 줄 알았던 그 사마리아 사람만이 구원을 받게 됩니다. 우리 역시도 한없는 은총을 받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도 때론 은총을 받지 못했다고 투정을 부리거나 원망하기도 합니다. 있어도 늘 부족한 사람이지요!

은총을 감사함으로 깨닫지 못하는 한, 우리는 치유는 받았지만 구원에는 이르지 못한 아홉 명의 이스라엘 사람들에 속해 있을 것입니다. 치유 받은 그들은 다시 바빠져야 합니다. 빨리 사제에게 가서 몸을 보이고 빨리 가족들에게로 돌아가 자신들이 하던 일을 시작하여 다시 성공해야 합니다. 치유가 되었으니 할 일이 더 많이 생겼겠지요! 그렇게 그들은 예전과 똑같은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는 또 치유 받아야 할 일이 생길 것입니다.  

감사할 줄 모르면 은총도 은총이 아니라 일상에 불과합니다. 감사할 줄 모르면 성공도 성공이 아니라 부족함에 불과합니다. 오늘 돌아와 큰 소리로 하느님을 찬양하며, 하느님께 마음뿐 아니라 온 몸을 돌린 그 사람이야말로 제대로 은총 받은 사람, 제대로 성공한 사람이며 제대로 구원받은 사람입니다. 그는 먼저 해야 할 일을 아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하느님께 드릴 수 있는 것은 감사뿐입니다. 자고로 돈을 잃으면 적게 잃은 것이요, 사람을 잃으면 많이 잃은 것이며, 건강을 잃으면 다 잃은 것이라고 했지만 우리는 아닙니다. 우리는 바로 하느님을 잃으면 다 잃은 사람들입니다. 모든 것을 다 잃어도 우리는 아직 남아있습니다. 바로 하느님이 남아있습니다.

인천교구 김성만 파트리치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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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감사할 일이 없다고요?

진수성찬 앞에서도 불평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마른 떡 한 조각으로 감사하는 사람이 있다.
건강한 신체가 있음에도 환경을 원망하는 사람이 있고,
두 팔과 두 다리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감사하는 사람이 있다.
하나를 잃어버린 것에 분을 참지 못하는 사람이 있고,
둘을 잃어버리고도 오히려 감사하는 사람이 있다.
실패로 말미암아 자신의 생명을 포기하거나 절망하는가 하면,
지난 모든 일을 감사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사람이 있다.
자신을 비난하거나 해를 끼친 사람과 원수가 되는 사람이 있고,
원수를 사랑하며 감사하는 사람이 있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있고,
죽음을 감사히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다.
우리는 감사할 이유가 충분히 있다.
호흡할 수 있는 것이 감사하고,
걸을 수 있는 것이 감사하고,
먹을 수 있는 것과 잠을 잘 수 있는 것이 감사하고,
남편과 아내와 자녀로 인해 감사하고,
성공도 실패도 감사하고,
병들어도 건강해도 감사하지 않는가.
사실상 이 땅에 태어나서 죽는 날까지 감사할 일 뿐인 것을 어이하랴!

오늘 복음에서 열명의 나병환자가 치유의 은총을 받고도 단 한 사람, 그것도 이방인이라 일컬어지는 사마리아 사람만이 돌아와 감사의 인사를 드렸다는 특이한(?) 경우를 접하면서 우리는 배은망덕이란 단어를 떠올렸을 것입니다. ‘어찌 그럴 수 있는가?’ 하지만 우리들 삶을 들여다 보면 그 속에서도 위의 경우처럼 내게 부여된 좋은 조건에도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임을 알게 됩니다. 거꾸로 우리가 생각할 때 불행이란 불행을 다 짊어진 듯한 이들이 보여주는 감사하는 모습은 우리를 고개 숙이게 합니다.

사실상 감사는 조건을 따져 갖는 마음이 아니고 하느님이 나와 함께 하고 계심을 확신한 사람이 누리는 은총이고 선물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네 믿음이 너를 살렸다.” 세상의 그 무엇도 주님을 잃어버린 다음에야 무슨 소용이 있으랴! 그러기에 오늘도 우리는 그분 앞에서 조용히 성호를 긋는 행복한 신자들임에 감사하고픈 마음입니다.

인천교구 이근일(마태오) 신부
  |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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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우리 성당에서 성가대 성 음악 발표회가 있었습니다. 내년이면 본당이 생긴 지 30년이 되지만, 아직까지 한 번도 발표회를 해본 적이 없었던 성가대가 어제 드디어 역사적인 첫걸음을 디딘 것이지요. 아마 처음이라 그럴까요? 얼마나 연습을 많이 했는지 모릅니다.

성가대가 실전 감각을 익힌다고 요 며칠 계속 성전에서 연습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성전과 같은 층에 제가 잠을 자는 사제관이 함께 있다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성가대 단원들의 직장 관계로 저녁 늦게야 모여서 연습을 하는데, 일찍 자는 저로써는 그 소리가 보통 신경 쓰이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제 나름대로는 10월 13일을 엄청나게 기다렸지요. 이 시간만 지나면 밤마다 저의 잠을 설치게 하는 노래 소리를 듣지 않을 수 있으니까요.

드디어 성가대의 제1회 성 음악 발표회가 열렸습니다. 성가대는 그동안 연습량이 많았다는 것을 누구나 알 수 있을 만큼 너무 잘 했습니다. 그러면서 제 자신이 얼마나 복 많은 사람이었는지를 깨닫게 되었어요. 우선 이렇게 아름다운 음악을 제일 앞에서 들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또한 역사적인 제1회 성 음악 발표회가 있을 때의 본당 신부라는 타이틀 역시 큰 축복입니다. 그리고 많은 교우들이 함께 해주시는 것을 보면서, 우리 성당의 단합된 힘을 볼 수 있었다는 것 역시 크게 감사할 일이었습니다.

이밖에도 감사할 일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단지 이제 잠자는 시간에 음악을 듣지 않아도 된다는 것에만 감사함을 느끼고 있었으니 얼마나 한심합니까? 즉, 저는 매 순간 저에게 주어지고 있는 축복에 대해 감사하지 못하고 결과만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나병환자 열 사람이 예수님께 멀찍이 서서 소리를 지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나병환자라는 이유 때문에 사람들 곁에 갈 수가 없었던 그들은 어떻게든 예수님께 매달렸던 것이지요. “예수님, 스승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이 말을 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신 예수님께서는 “가서 사제들에게 너희 몸을 보여라.”라고 이르십니다. 그리고 그들은 사제들에게 가는 동안 몸이 깨끗해집니다.

여기서 저는 의문이 하나 생겼습니다. 왜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지금 당장 치유되었음을 깨닫게 하지 않고, 사제들에게 가는 동안에서야 몸을 깨끗하게 하셨을까요? 바로 과정의 중요성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은 과정보다는 결과에 연연하지요. 이는 예수님을 다시 찾지 않은 아홉 명의 유대인들과 같은 모습입니다. 그들은 자신이 치유된 그 순간에 예수님이 없었다는 이유로 찾아가지 않았지요. 하지만 그 과정 전체에는 예수님이 계셨습니다.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과정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은 과정 안에서 이루어지는 작은 축복에도 감사할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그러한 감사의 행위가 믿음의 기본이 되어 나를 살리는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합니다.

지금 나는 과연 어떤 모습을 취하고 있었을까요? 결과만을 보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요? 이제는 과정 안에서 함께 하시는 주님께 감사의 기도를 바쳐야 하지 않을까요?

결과보다는 과정 안에 함께 하시는 주님을 찾도록 합시다.

인천교구 조명연 신부
  |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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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 받아야 할 사람은 바로 저희들입니다.

오늘 1독서에서는 나병에 걸렸던 시리아 사람 나아만 장군이, 복음에서는 열 명의 나병환자가 치유를 받고 병이 낫게 되는 내용을 보게 됩니다. 저는 나병환자가 등장하는 성경 말씀을 접할 때면 종종 어릴 적 심부름 때문에 가야했던 음성 나환자(한센인) 마을에 대한 기억이 떠오릅니다.

일곱 남매 아홉 식구의 대가족 살림을 꾸리셨던 어머니에게 한참 성장기인 저희들을 먹이시는 것이 늘 걱정이셨습니다. 빠듯한 살림으로 대가족 먹을거리를 마련하시자니, 늘 저렴한 것을 찾으셔야 했습니다. 덕분에 제가 초등학교 4학년 때쯤인가 어머니께서는 저와 저의 바로 위의 형에게 부평삼거리 근처 양계마을에 가서 달걀을 사오라는 심부름을 시키시곤 하셨습니다. 지금은 소규모 공장들이 밀집한 공장지대가 되었지만, 당시에는 음성 한센인들이 경영하는 큰 양계장 단지였던 그곳까지 가야했던 달걀 심부름이 너무나 싫었습니다.

그곳에 가려면 교통편이 없어 집에서 30분이 넘는 먼 길을 걸어야 하는 것도 힘이 들었지만, 사실은 그곳이 너무나 무서웠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본 일이 없었으면서도 왠지 코도 없고 눈도 없는 사람을 만나면 어쩌나 하는 것이 두려웠을 뿐만 아니라, 한센인들이 어린아이들의 간을 빼먹는다고 하는 허황된 이야기를 어디선가 주워듣고는 그것이 무서워 달걀 심부름 가기가 무척이나 싫었던 기억이 납니다.

오늘의 독서와 복음만이 아니라 성경 곳곳에는 나병에 관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 성경에서 이야기 하는 나병의 대부분은, 오늘날 이야기 하는 한센병이 아니라 당시의 청결하지 못한 환경과 영양부족에 의한 피부병이었을 것이라고 합니다. 어쨌든 당시에 유대사회에서는 다른 종류의 질병들과 함께 나병은 죄를 지은 것에 대한 하느님의 벌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나병환자들은 위생적인 이유로서가 아닌, 나쁜 죄를 지은 아주 불결한 죄인 취급을 받게 됩니다. 그들은 병으로 인해 몸이 아프고 불편한 것도 힘든데, 거기에 사회적이고 종교적인 차별까지 받아야 했으니 무척이나 고통스러웠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예수님 시대의 이야기만은 아닐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병에 걸리거나 혹은 장애를 겪고 있는 분들에 대한 우리의 무관심과 차별을 생각해본다면 그리 다르지 않음을 고백하게 됩니다. 또, 의료보험 제도에 대해서 경제논리와 경쟁논리로만 다가가려는 요즘 사회의 움직임을 생각해보아도, 우리의 인식이 어렵고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얼마나 무관심하고 차별적인가를 고백하게 됩니다.

병에 걸리고 몸이 불편한 것이 하느님께 벌을 받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그들에게 벌을 주는 것은 바로 우리입니다. 그것도 아주 많이….

김재욱 사도요한 신부
  |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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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기억

문득 친구가 보고 싶었습니다. 일반대학을 다니던 시절에 만났던 이 친구는 대학 졸업을 한 학기 남겨 놓고 더 이상 배움의 의미를 모르겠다면서 홀연히 고향에 내려가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습니다. 15년이라는 세월이 훌쩍 지나버린 어느 날, 문득 그 친구가 보고 싶었습니다. 신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연락도 한 번 제대로 못 해봤습니다. 그렇게 해야 잘 하는 것인 줄 알았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세상과의 인연을 끊고 예수의 제자되어 살아가는 올바른 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힘들고 지쳤을 때 보고 싶은 사람은 동료 사제들도 아니고, 신자분들도 아닌 그 친구였습니다.

친구는 오랜 만에 만난 저를 위해 직접 농사지은 콩으로 두부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학창시절에 좋아했던 등산도 같이 가고, 두부 안주에 막걸리 마시며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떠나오던 날 아침, 친구는 스티로폼 박스에 이것저것 정성스럽게 담아 포장을 합니다. 집에 왔다가 돌아가는 딸을 챙겨주는 친정엄마 같습니다. 돌아오는 길, 차 뒷자리에서 스티로폼 박스가 삐끄덕 삐끄덕 소리를 계속 냅니다. 그 소리가 마치 이렇게 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기억해라. 친구의 사랑을. 잊지 말고 기억해라. 누군가가 너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그 사랑의 기억으로 힘을 내어 살아가라. 아무리 삶이 고되고 힘들어도 잊지 말고 기억해라. 너를 아무 조건 없이 받아들여 주고,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라, 기억해라……!”

오늘 독서와 복음이 저에게 전해주는 핵심 메시지는 ‘감사’라기보다는 ‘기억’입니다. 저는 교우 여러분들에게 모든 상황과 또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하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지 않습니다. 만약 제가 그렇게 말한다면, 저 또한 사람들의 어깨에 무거운 짐을 지우고 손가락 하나 까딱하려하지 않는 이 시대의 또 다른 율법학자요, 바리사이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삶은 힘들고 고됩니다. 또 자기 자신을 위해서 다른 사람을 이용하려는 소위 ‘나쁜 사람들’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세상은 물론이고 교회도 예외일 수 없습니다. 오죽하면 아우구스티노 성인도 교회 공동체를 밀과 가라지가 함께 공존하는 곳이라고 말씀하셨겠습니까?

다만 한 가지만은 잊지 말고 기억하자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지금 내가 숨을 쉬고 살아가고 있는 것은 누군가가 나를 사랑해 주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내가 기억을 하든, 기억을 하지 못하든,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여 주고, 조건 없는 사랑을 베풀어 준 누군가가 있었기 때문에 내가 지금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그 사람이 바로 나의 예수입니다. 이 사실을 기억하자는 것입니다.

나를 사랑해 준 바로 그 사람에게 은혜를 되갚아야 한다는 의무감을 가질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나도 나를 필요로 하는 그 누군가에게 예수가 되어주면 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조건없는 사랑에 대한 올바른 되갚음입니다. 그럼 얼마만큼 사랑하면 될까요? 할 수 있을 만큼만 사랑하면 됩니다. 다시 되받고자 하는 마음이 없을 만큼, 그만큼만 사랑하면 됩니다. 우리의 감사와 찬미가 필요치 않으신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기억’임을 알려주십니다. 지나간 내 인생길 위에서 만났던 나의 예수가 있었음을 기억하고, 앞으로의 인생길 위에서 나 또한 누군가에게 예수가 되어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 인천교구 채명성 미카엘 신부 : 2016년 10월 9일
  |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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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묵상 글을 쓴 지가 벌써 16년째입니다. 긴 시간을 썼다는 말과 함께 대단하다고 하시는 분들도 참 많습니다. 솔직히 저 역시 스스로를 대단하다면서 자화자찬 했을 때가 한 10년째 쓰고 있을 때 하고 있었습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하는데 강산도 변하는 시간 동안 매일 새벽 묵상 글을 썼다는 생각에 스스로 으쓱했던 것이지요. 많이 교만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떤 자매님으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습니다. 새벽 묵상 글을 오랫동안 보고 있으면서 많은 것을 깨우치게 되었다면서 혹시 면담을 할 수 있냐는 내용이었지요. 이 자매님과 약속 시간을 잡았고, 그 시간에 제 사무실에서 만나기로 했습니다.

드디어 시간이 지나 약속한 날짜가 다가왔고, 이 자매님을 처음 뵙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저를 본 이 자매님께서 크게 실망한 표정이 역력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신부님, 제가 생각했던 모습과 많이 다르시네요. 너무 젊으세요. 이렇게 젊은 신부님께 제 이야기를 하기가 좀 뭐하네요.”

아마 묵상 글을 10년이나 썼으니 연세 지긋한 신부라고 생각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제 40대 초반의 젊은 신부가 눈앞에 있으니 당황하셨던 것이지요. 그래서 ‘젊은 신부가 뭘 알아서 나를 상담할 수 있겠어? 괜히 왔네.’라는 표정을 짓고 계셨던 것입니다.

결국 상담하지 않고 그냥 평범한 일상적인 이야기를 하다가 만남을 마쳤습니다. 어리다는 이유로 무시당했다는 생각이 들어서 기분이 좋지 않으면서 화도 났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부족한 것이 너무 많은 제 자신을 발견할 수가 있었습니다. 경험도 부족하고 아는 것도 별로 없는 것이 맞는 것이었는데, 고작 묵상 글 10년 쓴 것으로 대단한 사람인 것처럼 착각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그 뒤에 저는 계속해서 공부를 했습니다. 코칭, 교수법, 리더십 프로그램 등을 수강하면서 저의 부족한 부분들을 채워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6년의 시간을 지낸 지금, 앞서 만났던 그 자매님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이분을 만나지 않았으면 어쩌면 정말 아는 것도 별로 없으면서 교만으로 가득 차 있는 사람이 되어 있지 않았을까요?

생각해보니 감사할 일들이 참으로 많은 것 같습니다. 문제는 부정적인 생각과 불평불만으로 감사함을 깨닫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조금만 더 마음으로 받아들이면서 어렵고 힘든 순간을 참아내고 노력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의 예수님으로부터 치유된 나병 환자 열 사람을 묵상해 봅니다. 당시에 나병이라는 병은 치유될 수 없는 끔찍한 병이었습니다. 가족으로부터도 버림을 받을 정도로 철저히 사람들에게서 분리되었다는 것만 생각해도 얼마나 비참한 상황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런 병으로부터의 자유를 주셨습니다. 그런데 치유된 열 사람 중에서 단 한 명만이 돌아와서 찬미와 감사를 드린다는 것이었지요. 그렇게 큰 은총을 얻었으면서도 감사의 표시를 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요?

생각해보니 우리 역시 그러했던 적이 많았음을 깨닫습니다. 불평불만이 온 마음을 가득 채웠을 때, 받은 것이 많아도 감사할 이유를 찾을 수가 없습니다. 고통과 시련 가운데에도 언제나 함께 하시는 주님을 발견하지 못하기 때문에 감사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받은 많은 것들을 바라보기보다, 내가 손해 본 조금의 것들만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감사하지 못합니다.

얼마나 주님께 감사하면서 살고 있었을까요? 감사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은 지금의 나에서 한 단계 더 주님 곁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곁에서 더 큰 은총을 받을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감사했던 사람이 예수님으로부터 구원의 선물까지 얻었던 것처럼 말이지요.

▮ 인천교구 조명연 신부 : 2016년 10월 9일
  |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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