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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희망찬 항구한 기도
조회수 | 2,453
작성일 | 07.10.18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신다. 우리를 위한 구원계획이 실현되는 데 기본적으로 “필요한 것”은 기도이다. 그리스도인은 언제나 항구한 기도에 희망과 확신을 두어야 한다.

오늘의 제1독서는 모세의 중재하는 기도를 설명해 준다. 모세가 팔을 펼치면 기도의 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뻗쳐 전투를 이기고 팔을 내리면 지곤 하였다. 그들에게 승리를 가져다 주는 것은 모세의 육체적 행동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다. 모세의 중재적 역할에 신비스러운 능력이 부여되는 것은 그 기도 행위를 통해 표현되고 있는 기도의 중재 능력이다. 모세의 기도는 하느님과의 신비스러운 접촉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기도는 그가 행하는 모든 능력의 원천이 된다.

기도와 생활, 묵상과 활동 사이에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 모세의 기도가 단순히 여호수아의 전투에 외적으로만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내적으로도 그 행위를 뒷받침해주고 밀어주고 있는 것이다. 곧 인간의 어떠한 활동보다 큰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하느님과의 지속적인 관계임을 말해준다. 그러므로 기도는 인간 자신의 행동 속에 스스로 소외되지 않도록 해주며, 어떠한 인간적 한계와 난관도 극복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복음에서 불의한 재판관의 비유를 통해 들려주시는 말씀의 의미는 기도의 항구함이 필요하고 언제나 기도하도록 허락하시는 주님께 끊임없이 반복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항상 기도해야 하는 필요성은 주님의 명령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지만, 그리스도인의 위치를 항구하게 지키려는 본질적이고 내적인 필요성에 의한 것이다. 올바른 판단을 내려주도록 항구하게 매달리고 부추기고 있는 것은 바로 도움을 필요로 하는 그녀의 입장이다. 악한 사람조차 억울한 이의 간청을 들어줄 줄 안다면, 주님께서 택하신 당신 백성에게는 두말 할 나위가 없다. 그러므로 기도는 항구하게 해야 하며, 기도를 꼭 들어주실 것이라는 확신과 희망을 가져야 한다.

항구하고 희망찬 기도를 위해 사도 바오로는 제2독서에서 말한다. 성서를 통해 진리를 채득하고 기도를 위해서도 또 교회 생활을 위해서도 하느님 말씀이 내포하고 있는 무한한 깊이를 항상 새롭게 탐구해야 함을 말한다.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자신들의 고뇌를 끊임없이 주님께 아뢰어야 한다. 곧 항구하게 기도드리는 긴장감과 동시에 꼭 이루어 주시리라 확신하는 희망을 가져야 한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부딪히는 가장 큰 위험 요소는 기다릴 줄 모르고 과학과 경제적 발전이 인류에게 제공하는 현실 자체에 자신의 희망을 온통 쏟고자 하는 경향이다. 그때에는 “과연 이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 볼 수 없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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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교구 나기정 다니엘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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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고 간절한 마음은 닿지 못하는 곳이 없다네!”

저는 차를 좋아해서 자주 차를 마십니다. 차는 건강식품으로도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제가 쓰는 다기는 후배 신부님이 제 본명축일에 선물해준 것입니다.
명품은 아니지만 매일 저와 만나는 가까운 사이가 되었습니다.

다기를 덮는 포를 다포라고 합니다. 제가 가진 다포 가운데 멋진 글이 쓰여 있는 다포가 있습니다. 저는 차를 마시면서 그 글을 늘 마음에 음미하곤 합니다. “깊고 간절한 마음은 닿지 못하는 곳이 없다네!”

사람들은 살면서 정말 간절한 심정으로 하느님께 매달릴 때가 있습니다. 저도 대학을 졸업한 후 군복무를 마치고 직장생활을 하면서 신학교에 가려는 결정을 할 때 간절한 심정으로 기도를 하였었고, 신학교 4학년을 마치고 유럽으로 유학을 갔을 때 절박한 심정으로 주님께 매달렸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세계 각지에서 온 신학생들과 함께 독일 말을 배우는데, 저같이 재주가 모자라는 사람은 독일 말 배우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습니다. 저는 한국에 있는 동안 초등학교부터 일반대학교, 신학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꼴찌는 한 번도 해보지 못했습니다. 한 반에서 1등 하기도 어렵지만 꼴찌 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런데 저는 독일 말을 배우면서 처음으로 꼴지를 다 해 보았습니다. 생전 처음 코피를 흘리면서까지 공부를 했지만 꼴찌를 밥 먹듯이 했습니다. 사람이 꼴찌를 해보면 배우는 게 많은 것 같습니다.

그 뒤로도 숱한 어려움이 계속되었고, 이러한 어려움은 저를 진정으로 하느님 앞에 무릎을 꿇게 만들었습니다. 겸손하게 살라는 것이지요. 잘난 체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제게 값진 경험이었습니다. 그리고 제 힘에 의지할 것이 아니라 간절한 마음으로 하느님께 청해야 한다는 것을 깨우쳐 주었습니다.

살면서 우리는 많은 어려움을 겪습니다. 어려움을 겪을 때 간절한 마음으로 또 겸허한 마음으로 주님께 청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복음의 과부처럼 거듭거듭 청해야 할 것입니다. 십자가를 보고 청하고, 성체를 모시면서 청하고, 성호를 그으면서 청해야 할 것입니다. 겨자씨만한 믿음이 산을 옮길 수도 있다는 말이 그 말일 것입니다. 정말 마음을 다하고 온 힘을 다해 내가 소망하는 바를 청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깊고 간절한 청은 주님 마음을 움직이고야 말 것입니다. 아멘.

전광진 엘마노 신부
  |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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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끊임없이 기도하기

1. 홀로 기도하는 기쁨

고요한 성당에서 혼자 기도하는 것이 좋았습니다. 어릴 적부터 그랬습니다. 초등학생 때, 새벽 미사 복사를 서려고 종종 걸음으로 추운 언덕길 내려가면서도 하나도 힘들지 않았습니다. 누구보다도 성당에 일찍 도착해서 아직 문 을 열지 않은 성당 판유리 창문 너머로 빨간 성체등을 보고 있으면, 마치 동화 속의 신비한 세계를 본 듯 가슴이 뛰었습니다. 성체 앞에 무릎을 꿇을 때, 어떤 친구보다 편하게 속이야 기를 털어 놓을 수 있었습니다. 어느 곳 보다도 안온하게 마음을 위로해 주는 자리는 홀로 저를 기다리시는 성체 앞이었습니다. 소설 속의 돈 까밀로 신부가 십자가의 예수님 앞에서 투정부리고 툴툴거리듯, 저도 성체 앞에서 꺼릴 것이 없었습니다. 그 시간이 얼마나 좋았던지 고3 시절에도 저녁 식사시간을 아껴 학교 근 처 성당에서 매일 성체조배를 했지요. 홀로 기 도하는 시간은 그토록 감미롭고 편안한 시간이었습니다.

2. 메마른 기도 생활

부푼 마음으로 신학교에 들어갔습니다. 그런 데 그토록 좋았던 기도시간이 날이 지날수록 급격히 메말라갔습니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30 분 남짓한 묵상시간만 되면 눈꺼풀은 천근만 근에 고개가 방아깨비마냥 계속 허공을 가릅니다. 옆자리 동기가 찌르고 흔들어가며 깨워 줘도 삼 분을 버티기 힘들었습니다. 성 요한 마리아 비안네 신부님이 공부를 못했지만 신부가 된 경우라면, 부끄럽게도 저는 묵상시간마다 졸면서 서품을 받은 경우입니다. 그때는 ‘아버지 품 안이 너무도 편안해서 그분 안에 쉴 수밖에 없다’고 너스레를 떨었지만, 내심 묵상시간마다 졸고 있는 제가 한심하고 부끄럽기 그지없었습니다. 오후 내내 축구장에서 뛰어다니다 온 친구들도 묵상시간만큼은 흔들림 없는 데, 저는 왜 이럴까 고민스러웠습니다. 그러면 서 불만이 솟아나기 시작했습니다. 기도는 나 랑 하느님이랑 둘만의 행복한 시간이었는데, 그 시간을 훼방 받는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 습니다. 열과 오를 맞춰 앉아서 묵상 시작, 묵 상 끝 신호를 기다리는 신학교 성당의 풍경은 재미있고 따뜻했던 추억 속의 기도시간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습니다.

3. 기도는 나 좋으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시간이 흘러 신학교 묵상시간마다 졸던 제가 어느덧 기도를 가르치는 자리에 서게 되었습니다. 기도하고 싶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해 하는 분들을 많이 봅니다. 무슨 말씀을 해드려야 하나 고민하는데, 신학교 시절 은사들의 가르침이 생각났습니다. 기도는 내가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말씀을 듣는 것이다, 기도를 통해서 감각적인 기쁨을 찾으려고 하지 마라, 기도시간이 힘들게 느껴진다고 해서 포기하지 말고 규칙적으로 하느님께 시간을 봉헌하라, 자신이 아니라 이웃을 위해 기도하라…. 신학교 시절의 그 딱딱한 묵상시간은 기도의 기본을 가르치는 전통어린 시간이었음을 이제야 깨닫습니다. 안되던 기도를 스무 해 넘게 하고 나니 기도는 나 좋으라고 하는 게 아니라는 기초 중의 기초를 겨우 알게 되었습니다. 기도는 하느님께 찬미와 영광을 드리는 시간입니다. 하느님의 주도권을 받아들임으로써 아집과 욕망으로부터 벗어나는 자유의 시간인 것입니다.

▮ 대구대교구 박용욱 미카엘 신부 : 2016년 10월 16일
  |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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