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요안 신부의 가톨릭

 l Home l Bestsite l Search l Freeboard l E-mail l

 
 

주일강론

평일강론

축일강론

대축일/명절강론

혼인강론

장례강론

예 화

사설/칼럼

♣ 현재위치 : 홈 > 강론자료실 > 주일강론 (다해)

주일강론

가   해

나   해

다   해

 

 

 


( 쪽지보내기 스크랩하기 프린터하기 홈페이지 )
450 84.4%
[원주] "조급함 버리고 항구히 기도하자"
조회수 | 2,713
작성일 | 07.10.18
요청과 비슷한 말로 요구란 말이 있습니다. 사전적 풀이로 보면 거의 같은 의미입니다만 실제 사용될 때는 커다란 차이가 있는 말입니다. 여기서 요청이란 요청받는 사람의 마음에 비중을 두는 것이고, 거기에 비해 요구란 부탁하는 자의 뜻이 강하게 느껴지는 말입니다.

실제로 이 두 가지가 어떤 차이가 있는가는 우리 자신의 반응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누군가로부터 부탁을 받을 때 그것이 요청이라 느껴진다면 대부분의 경우 사람들은 기분이 좋아지고 할 수만 있다면 들어주려 노력합니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똑같은 무엇을 부탁한다 하더라도 자신의 입장에서 요구를 받는 것으로 느껴지면 대부분의 경우 사람들은 불쾌해하고 특히 남자들의 경우는 분노와 함께 그것을 거부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그러나 역설적인 사실은 물론 저의 경우입니다만 나이가 들수록 요구받는 것은 더욱더 싫어하면서 상대편을 향해서는 그 반대의 자세, 즉, 요청적 부탁을 하기보다는 요구적 압력을 더 많이 행사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여기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습니다만 몇가지 이유를 들라면 이렇습니다. 신부로서 연륜이 쌓인다는 것은 혼자 산다는 것이 익숙해진다는 것인데, 혼자 산다는 것은 여러 가지 장점과 함께 남을 배려하기보다는 나 자신을 생각하는 삶이 습관이 되기 쉽다는 약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마 이러한 독신의 삶이 요구의 삶을 사는 원인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근본적인 것은 내 안에 자리 잡은 자존심과 또 들어주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상대편에 대한 믿음 부족, 그리고 거기에 더해 결과가 빨리 주어지길 바라는 조급성이 그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습니다만 요청의 자리가 줄어들고 요구의 수준만 높아진다면 결국 인간관계는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 요구하는 사람과 요구받는 자 사이에서 발생하는 불쾌감은 악순환이 되어 더욱 증폭되는 불행한 결과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우리 안에 자리 잡은 신뢰에 대한 두려움과 이기적인 자존심을 의지적인 노력으로 이겨나감으로써 나의 원함을 요구가 아닌 지혜로운 요청의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기술을 익히는 것이야 말로 너와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은 하느님과 우리와의 관계에서도 적용되는 내용일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과부와 고약한 재판관의 비유입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어느 과부가 억울한 일을 당하여 여러 차례 재판관을 찾아 갔지만 그는 그 사건을 다룰 생각조차 하지 않고 오랫동안 버려두다가 과부가 너무나 끈질기게 간청하자 하는 수 없이 그 고약한 재판관은 과부의 청을 들어 준다는 내용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먼저 성서는 재판관을 고약한( 200주년 성서에서는 불의한 재판관으로 번역) 재판관이라고 지칭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왜 고약하다고 이야기했을까. 당시 재판관으로 행세하던 이들은 법에 정통한 율법학자들입니다. 이들이 고약한 것은 법을 통해 정의의 실현보다는 법을 이용하여 자신의 배를 불리던 자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성서 곳곳에 보면 예수님이 율법학자들에 대해 대립각을 세우는 모습이 나오는데 그 이유도 이들이 법을 독점하면서 그 독점이용을 통해 백성을 내리 누르고 자신들의 이익을 확고히 했던 까닭도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재판관이 고약한 이유보다는 그 재판관이 「고약했다」라는 점만 기억하면 되는데, 이 점에 주목한다면 이 비유가 주고자 하는 내용은 분명해집니다. 즉, 불의한 재판관과 의로우신 하느님의 비교를 통해 불의한 재판관도 끈질긴 과부의 간청을 들어준다면 의로우신 하느님께서야 간청하는 기도를 물리칠 수 없다는 것이 이 비유의 핵심이고 그러므로 신앙인들은 무엇보다 항구하게 기도할 필요가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 이 비유가 주는 교훈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오늘 복음을 보면서 먼저 묵상해봐야 할 주제는 어떻게 하면 항구하게 기도할 수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물론 백이면 백사람 다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겠습니다만 저의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항구한 기도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조급함을 버릴 수 있는 마음과 신뢰를 바탕으로 한 요청의 자세가 그것이라 생각합니다.

부부심리를 연구하는 사람들도 부부사이에서 서로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것의 가장 큰 원인을 기다리지 못하는 조급함과 욕구를 바탕으로 한 요구의 자세에서 찾고 있는데 다 같은 맥락이라 여겨집니다.

결과를 하느님께 맡겨 드릴 수 있는 마음의 여유와 하느님의 호의에 대한 어린이와 같은 믿음의 조화가 항구한 기도를 가능하게 하는 힘이 아닐까 복음을 보면서 묵상해 봅니다.

-----------------------------------------------------------------

원주교구 홍금표 신부
파란색 글자 빨간색 글자 녹색 글자 밑줄 글자 진한 글자 빨간색 테이블 파란색 테이블 녹색 테이블
이름 :   
암호 :
· d41d8cd98f * 왼쪽의 글자중 빨간글자만 순서대로 입력하세요.
 목록보기 스크랩하기  프린터하기
779   [수원] 정해진 시간과 일들 안에서  [4] 2508
778   [대구] “희망의 징조"  [3] 2012
777   [의정부] “예수님 한 분만 이상하다”  [3] 657
776   [인천] “예수님은 ‘보스(boss)’인가 ‘리더(leader)’인가?”  [5] 2536
775   [수도회] 보라, 내가 곧 간다. ...(묵시 22,12)  [10] 2853
774   [부산] 하느님의 미래를 택한 사람은 하느님의 현재를 삽니다  [4] 2746
773   [마산] 교회의 생명력은 평신도에게 있다.  [3] 2499
772   [서울] 부활을 믿는 사람  [3] 2330
771   [안동] ‘복음을 전하는 발걸음’  [1] 1175
770   연중 제33주일 세계 가난한 이의 날  130
769   [춘천] 신념  [3] 2316
768   [원주] 재난의 시작  48
767   [대전] 착한 교우들에게 예수님의 측은지심을  [1] 2625
766   [전주] 종말 전의 재난  [2] 58
765   [청주] “너희는 속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여라"  [1] 64
764   (녹) 연중 제33주일 독서와 복음 (너희는 인내로써 생명을 얻어라)  [1] 2120
763   [수도회] "사실 하느님께는 모든 사람이 살아 있는 것이다."  [5] 1496
762   [수원] 그리스도의 몸으로 사는 삶  [2] 2355
761   [서울] 부활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3] 2303
760   [마산] 영세한 미신자(未信者)가 많다.  [1] 2281
759   [대구] 부활의 삶, 지금 여기서 시작되고 있다.  504
758   [인천]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노라!  [4] 2837
757   [부산] 알 수 없는, 그래도 좋은 하느님 나라  [2] 2585
756   [안동] 부활을 믿는다면 부활을 살아가십시오  [1] 2574
755   [대전] “하느님 앞에 있는 사람은 모두 살아있는 것입니다”  [1] 2901
754   [청주] 부활 신앙  [2] 88
753   [광주] 학벌(學閥)과 사두가이파  2579
752   [전주] 부활 에 대한 확신과 희망  63
751   [춘천] 영원히 하나인 하느님 가족  [2] 2399
750   [원주] 부활 이후의 새로운 삶  56
749   [군종] 두 여자  2133
748   [의정부] “부활을 믿으며 영원한 삶을 믿나이다.”  64
747   (녹) 연중 제32주일 독서와 복음 (하느님께서는 산 이들의 하느님)  [3] 1933
746   [수도회] 용서와 자비  [2] 2075
745   [전주] 자캐오, 아! 행복한 사람  [1] 1719
744   [인천] 자캐오! 나무에서 (빨리)내려와!  [3] 2172
743   [서울] 회개의 증거는 착한 행실  [3] 1742
742   [안동] 자캐오 이야기  [1] 2320
741   [부산] 세리 자캐오와 예수님의 만남  [2] 12015
740   [수원] “저 사람이 죄인의 집에 들어 가 묵는구나!”  [3] 2083
1 [2][3][4][5][6][7][8][9][10]..[20]  다음
 

 

주일강론

가   해

나   해

다   해

 

 

 관리자 Profile  l  홈페이지이용안내  l  즐겨찾기추가  l  추천사이트  l  가톨릭검색사이트  l  관리자 E-mail

Copyright ⓒ 2003 - 2019 www.ocatholic.com All rights reserved.   Ver 4.01_050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