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요안 신부의 가톨릭

 l Home l Bestsite l Search l Freeboard l E-mail l

 
 

주일강론

평일강론

축일강론

대축일/명절강론

혼인강론

장례강론

예 화

사설/칼럼

♣ 현재위치 : 홈 > 강론자료실 > 주일강론 (다해)

주일강론

가   해

나   해

다   해

 

 

 


( 쪽지보내기 스크랩하기 프린터하기 홈페이지 )
450 84.4%
[부산] 가난함, 절박함, 간절함으로
조회수 | 2,533
작성일 | 07.10.18
형제, 자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언제나 기도하고 용기를 잃지 말아야 한다고 말씀하시면서, 과부와 재판관의 얘기를 들려주십니다. 당시 이스라엘 사회에서 과부의 위치는 참으로 보잘것없었습니다. 과부는 힘없는 사람, 함부로 대할 수도 있는 사람, 그래서 억울한 일을 당해도 스스로 해결할 수 없고, 누군가에게 하소연하기조차 어려운 처지에 있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과부가 하느님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도 거들떠보지 않는, 그야말로 '안하무인'인 재판관에게 청하여 자신의 억울함을 해결합니다. 그 비결은 무엇입니까? 좌절하지 않고 분노하지 않고 청하고 또 청하는 것, 뜻을 이룰 때까지 끈질기게 졸라대는 것입니다.

가난함, 절박함, 간절함.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순간에 기도의 응답을 체험할 수 있었다고 고백합니다. 제가 기도를 통해서 주님의 손길을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던 때도 모두, 절박한 심정으로, 가난한 마음으로, 간절하게 청하고 또 청했던 순간들이었습니다. 나자신의 생각과 의지, 나자신의 능력과 노력으로는 어찌할 수 없기에, 그저 그분께 맡겨드리고 간절히 매달렸을 때, 주님의 이끄심과 보살피심을 강하게 체험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예수님께서 들려주시는 비유 말씀을 통해서 우리의 기도가 어떠해야 하는 지를 묵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한가지 더 생각해 볼 것이 있습니다. 과연 기도의 목표가 내 바람을 성취하는 데에 있느냐는 것입니다. 기도를 열심히 했는데도 자신의 뜻을 이루지 못했다고, 하느님께 의심이나 원망을 품는 사람들을 가끔씩 만나게 됩니다. 기도를 통해서 내 뜻과 바람을 채우는 것을 목표로 둔다면, 우리는 결코 하느님께로부터 만족을 얻을 수 없습니다. 오히려 우리는 기도를 통해서 하느님께서 내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하느님의 뜻을 찾고, 그분께 온전히 맡겨드리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기도의 목표는 기도의 성취에 있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오늘 예수님의 말씀처럼 언제나 기도하고 용기를 잃지 않는 태도입니다. 언제나 기도하고 용기를 잃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께 희망을 두고 있기에 어떤 처지에서도, 어떤 어려움과 고난 앞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하느님의 이끄심과 보살핌에 자신을 맡겨드리게 됩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은총과 자비의 손길로 힘있게 그의 삶을 이끌어 갈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의 가르침을 마음에 새기고, 언제나 기도하고 용기를 잃지 않는 참신앙인의 삶으로 힘차게 나아갑시다.

-------------------------------------------------------------

부산교구 김대성 사도 요한 신부
450 84.4%
빼앗기지 말아야 할 것, 기도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은 기도하되 끈기 있게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끈기 있는 기도에 대한 하느님의 응답이 불의한 재판관보다 못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틀림없이 우리의 청원이 이루어진다는 말씀입니다. 정성이 담긴 기도는 끈기도 있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 말씀에서처럼 끈기 없는 기도도 문제고, 아예 기도를 멀리하는 것도 또 문제입니다.

사실 우리에게는 기적이나 치유, 수많은 생활의 은총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신자들 각자에게는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모릅니다. 그래서 열심히들 기도를 바칩니다. 그리고 이런 기도를 통해서 많은 은총을 길어내고, 이 은총의 힘으로 우리의 삶이 지탱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도에는 청원기도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은 기도하지 않고는, 제대로 매일의 삶을 살 수 없다고 말합니다. 기도해야 힘이 나고, 기도해야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렇듯이 사실 신앙인은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신앙인 하면 일차적으로 떠오르는 모습이 기도하는 모습 아니겠습니까? 또한 신앙인은 하느님의 뜻대로 사는 존재니, 이 크고 깊은 뜻을 실천할 힘은 당연히 기도를 통해서 길어내는 것이며, 기도 없이는 살 수가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기도는 중요하다는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우리들에게는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우리 주님께서도 항상 기도하셨습니다. 외딴 곳으로 물러가시어(루카 5, 16), 혼자서(9, 18), 산에서(9, 28-29), 때로는 밤을 새우시며(6, 12), 십자가 위에서도(23, 34. 46), 기도하셨습니다. 우리 역시 기도를 통해서 주님의 뜻을 배우고 새기고 사랑하게 됩니다. 기도하면서 주님을 주님으로 진정으로 믿게 되고, 참되게 섬기게 됩니다. 기도해야만 주님의 참다운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기도하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고요하게 주님 앞에 머무는 침묵이 어렵게 느껴지고, 바쁘게 경쟁하면서 돌아가는 세상의 흐름이, 마치 기도하는 시간을 현실과 맞지 않는 시간의 낭비라고 생각하도록 만들고 있습니다. 우리 현대인들의 도시생활이 이렇습니다. 이렇게 세상의 흐름이 도도하고 세찰수록 기도로 정신을 차리고 정말 깨어 살아야겠습니다.

강종석 베드로 신부
  | 10.15
450 84.4%
[부산] 잘 먹는 다이어트

일 년 내내, 평생을 다이어트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먹을 것을 주면 다이어트 중이라고 안 먹을 듯 거절하지만, 정말 안주면 서운해합니다. 그러면서 오늘만 먹겠답니다. 그런데 그 오늘이 거의 매일입니다. 그러면서도 다이어트 중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평생 다이어트하고 있지만 평생 그 모습이 달라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간혹 극단적인 방법으로 며칠을 굶으면서 살을 빼기도 합니다. 그러면 조금 야윈 듯해 보이긴 하지만 얼마 되지 않아 제 모습으로 돌아옵니다. 흔히 다이어트를 하려면 덜 먹거나 안 먹어야 된다고 생각하지만, 전문가들은 오히려 먹어야 된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굶는 것이 아니라 잘(!) 먹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꾸준하게.

우리는 일 년 내내, 평생을 신앙인으로 살아갑니다. 신앙인으로 살기 위해서 매주 미사도 참례하고 매일 기도도 하고 단체나 모임을 통해서 봉사를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내 삶은 그다지 달라지는 것이 없는 것 같습니다. 평생을 신앙인으로 살아가고는 있지만 신앙생활이 습관화되고 일상화되어서 변하는 것이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크지는 않지만 나름의 희생과 봉헌과 기도를 하면서 자신을 비우고 낮추려고 노력하지만, 뭔가 채워지지 않는 허전한 마음이 드는 것도 어쩔 수 없는 것 같습니다. 간혹 특별한 피정이나 성지순례 등을 다녀오기도 하지만 그것도 그때뿐인 것 같습니다. 그때의 기쁨이나 감동은 얼마 되지 않아 옛날 일이 되어버립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낙심하지 말고 끊임없이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하느님께서는 미적거리시지 않고 지체 없이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신다고 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을 지체 없이 주시는데, 정작 우리는 그것을 받지 못합니다. 평생을 다이어트 하지만 평생 모습이 달라지지 않는 것은 잘 먹지 못하고 굶고만 있기 때문입니다. 평생을 신앙인으로 살아가지만 삶이 별로 변하지 않는 것은 하느님께서 주시는 것을 잘(!) 받지 못하고 내가 원하는 것만 고집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믿음은 내가 하느님께 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나에게 주시는 것을 잘 받는 것입니다. 낙심하지 말고 끊임없이 기도하라는 것은 내 것에만 매달려서 제풀에 지쳐 포기하지 말고 하느님께서 주시는 사랑을 꾸준하게 잘 받아먹으라는 의미입니다. 잘 먹는 다이어트처럼 잘 받는 신앙생활 하시기 바랍니다.

▮ 부산교구 이영준 스테파노 신부 : 2016년 10월 16일
  | 10.14
450 84.4%
[부산] 우리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으신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께 끊임없이 청하라고 권고하십니다. 이를 위해 과부와 재판관 비유를 들려주시는데, 재판관은 비록 불의한 사람이었지만, 과부가 끊임없이 청하자 그녀와 그녀의 적대자 사이에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었다고 이야기합니다.

“올바른 판결을 내리다”로 번역한 그리스어 ‘엑디케오’는 “복수하다”, “잘못된 것을 바로잡다”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과부는 자기 이득을 좀 더 챙겨달라고 청한 것도 아니고, 불의한 것을 청한 것도 아닙니다. 오직 억울하게 당한 자신을 대신해 모든 것을 올바로 잡아달라고 청한 것입니다. 재판관은 하느님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불의한 사람이었지만 귀찮아서 과부의 간청을 들어 줍니다. 이 비유를 통해 예수님은 재판관도 귀찮아서 과부의 청을 들어주는데, 하느님께서 당신이 선택하신 이들의 간청을 과연 내버려두시겠는가라고 말씀하십니다. 곧, 하느님께는 선택된 이들이 성실한 마음으로 당신을 섬기며(본기도) 의롭게 살다가 겪는 억울한 고통을 결코 외면하지 않으신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민족은 하느님의 뜻에 따라 광야에 들어선 뒤 닥친 어려움 앞에서 좌절하고 실망하고 맙니다. 그들은 하느님께 정의를 세워달라고 청하기보다, 과거의 삶을 그리워하며 이집트로 되돌아가려 합니다. 그리고 하느님께 그 불만을 토로하기 시작합니다. 그러자 1독서에서 볼 수 있듯이 하느님께서는 다시금 당신의 위대하심을 드러내십니다. 당신은 백성들의 고통과 어려움을 외면하는 하느님이 아니심을 드러내십니다. 비록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힘들고 어려운 길을 걷고 있지만 당신이 보호하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고 자신의 길을 계속 걸으라고 초대하십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느님께 계속 반항을 하다가 광야에서 40년을 헤매게 됩니다.

우리도 삶이 어렵거나 힘들 때마다 하느님께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간청하기보다 그런 어려움을 없애 주십사 청합니다. 또한 다른 이들과 비교하면서 나에게 더 많은 것을 주십사 간청하며, 그런 청을 들어주지 않는 하느님을 외면하곤 합니다. 그러면서 어떤 이들은 사주팔자나 운세를 보기도 하고, 심한 경우는 무당을 찾기도 합니다.

이런 우리에게 오늘 복음은 낙심하지 말고 끊임없이 하느님께 기도할 것을 권고합니다. 왜냐하면 오늘 화답송이 이야기하듯이 우리 구원은 오직 주님 이름에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만이 우리가 걸어가야 할 모든 삶의 인도자이시고, 모든 것을 바로 세워주시는 “하늘과 땅을 만드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이와 관련해서 오늘 2독서의 사도 바오로는 특별히 성경에서 도움을 받으라고 권고합니다. 성경은 하느님의 영감으로 쓰인 것으로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통해 우리 모두가 진정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되리라는 것을 알려주기 때문입니다. 또한, 성경은 삶에서 필요할 때마다 우리를 가르치고 꾸짖으며, 바로잡고, 의롭게 살도록 교육시켜 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 환호송은 “하느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으며, 마음의 생각과 속셈을 가려낸다”라고 노래합니다.

▮ 부산교구 염철호 신부 : 2016년 10월 16일
  | 10.14
파란색 글자 빨간색 글자 녹색 글자 밑줄 글자 진한 글자 빨간색 테이블 파란색 테이블 녹색 테이블
이름 :   
암호 :
· d41d8cd98f * 왼쪽의 글자중 빨간글자만 순서대로 입력하세요.
 목록보기 스크랩하기  프린터하기
779   [수원] 정해진 시간과 일들 안에서  [4] 2508
778   [대구] “희망의 징조"  [3] 2012
777   [의정부] “예수님 한 분만 이상하다”  [3] 657
776   [인천] “예수님은 ‘보스(boss)’인가 ‘리더(leader)’인가?”  [5] 2536
775   [수도회] 보라, 내가 곧 간다. ...(묵시 22,12)  [10] 2853
774   [부산] 하느님의 미래를 택한 사람은 하느님의 현재를 삽니다  [4] 2746
773   [마산] 교회의 생명력은 평신도에게 있다.  [3] 2499
772   [서울] 부활을 믿는 사람  [3] 2330
771   [안동] ‘복음을 전하는 발걸음’  [1] 1175
770   연중 제33주일 세계 가난한 이의 날  130
769   [춘천] 신념  [3] 2316
768   [원주] 재난의 시작  48
767   [대전] 착한 교우들에게 예수님의 측은지심을  [1] 2625
766   [전주] 종말 전의 재난  [2] 58
765   [청주] “너희는 속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여라"  [1] 64
764   (녹) 연중 제33주일 독서와 복음 (너희는 인내로써 생명을 얻어라)  [1] 2120
763   [수도회] "사실 하느님께는 모든 사람이 살아 있는 것이다."  [5] 1496
762   [수원] 그리스도의 몸으로 사는 삶  [2] 2355
761   [서울] 부활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3] 2303
760   [마산] 영세한 미신자(未信者)가 많다.  [1] 2281
759   [대구] 부활의 삶, 지금 여기서 시작되고 있다.  504
758   [인천]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노라!  [4] 2837
757   [부산] 알 수 없는, 그래도 좋은 하느님 나라  [2] 2585
756   [안동] 부활을 믿는다면 부활을 살아가십시오  [1] 2574
755   [대전] “하느님 앞에 있는 사람은 모두 살아있는 것입니다”  [1] 2901
754   [청주] 부활 신앙  [2] 87
753   [광주] 학벌(學閥)과 사두가이파  2579
752   [전주] 부활 에 대한 확신과 희망  63
751   [춘천] 영원히 하나인 하느님 가족  [2] 2399
750   [원주] 부활 이후의 새로운 삶  56
749   [군종] 두 여자  2133
748   [의정부] “부활을 믿으며 영원한 삶을 믿나이다.”  64
747   (녹) 연중 제32주일 독서와 복음 (하느님께서는 산 이들의 하느님)  [3] 1933
746   [수도회] 용서와 자비  [2] 2075
745   [전주] 자캐오, 아! 행복한 사람  [1] 1719
744   [인천] 자캐오! 나무에서 (빨리)내려와!  [3] 2172
743   [서울] 회개의 증거는 착한 행실  [3] 1742
742   [안동] 자캐오 이야기  [1] 2320
741   [부산] 세리 자캐오와 예수님의 만남  [2] 12015
740   [수원] “저 사람이 죄인의 집에 들어 가 묵는구나!”  [3] 2083
1 [2][3][4][5][6][7][8][9][10]..[20]  다음
 

 

주일강론

가   해

나   해

다   해

 

 

 관리자 Profile  l  홈페이지이용안내  l  즐겨찾기추가  l  추천사이트  l  가톨릭검색사이트  l  관리자 E-mail

Copyright ⓒ 2003 - 2019 www.ocatholic.com All rights reserved.   Ver 4.01_050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