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요안 신부의 가톨릭

 l Home l Bestsite l Search l Freeboard l E-mail l

 
 

주일강론

평일강론

축일강론

대축일/명절강론

혼인강론

장례강론

예 화

사설/칼럼

♣ 현재위치 : 홈 > 강론자료실 > 주일강론 (다해)

주일강론

가   해

나   해

다   해

 

 

 


( 쪽지보내기 스크랩하기 프린터하기 홈페이지 )
459 28.8%
[원주] 나는 진찌로 아버지를 사랑하는가?
조회수 | 2,179
작성일 | 07.03.16
되찾은 아들의 비유는 하느님과 자녀들과의 관계를 웅변적으로 보여 주는 하나의 구속사적 기록입니다. 또한 긴 방황을 통해서야 비로소 자신의 참 위치를 깨닫게 되는 인간의 연약함과 어리석음을 보여 주는 하나의 노래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과 그들이 요구하는 것과 그들과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것 속에서 느끼는 그리스도인들의 고민들을 볼 수 있으며, 상대적으로 그러한 가운데에서 하느님과의 관계를 어떻게 새롭게 해야 하는가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되찾은 아들의 비유 말씀 속에서 큰 아들의 모습에 초점을 맞추어 봅니다.
  
"그가 아버지에게 대답하였다. '보십시오. 저는 여러 해 동안 종처럼 아버지를 섬기며 아버지의 명을 한 번도 어기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저에게 아버지는 친구들과 즐기라고 염소 한 마리 주신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창녀들과 어울려 아버지의 가산을 들어먹은 저 아들이 오니까, 살진 송아지를 잡아 주시는군요.'"(루카 15, 29-30)
  
큰 아들은 아버지 곁에서 종처럼 일을 했기에 보상을 바라고 있습니다. 자신에게 해주지 않았기에 되찾은 아들에게도 해주면 안 된다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작은 아들이 자신에게 돌아올 재산을 다 탕진 했기에 큰 아들은 자신에게 돌아올 몫의 재산을 빼앗기지는 않을까 두려워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형은 자신의 아우가 돌아왔지만 자신의 동생이라는 표현을 하지 않고 '창녀들과 어울려 아버지의 가산을 들어먹은 저 아들이 오니까'라고 말하면서 자신의 동생으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작은 아들이 돌아오기를 학수고대하던 아버지의 모습과는 참으로 반대됩니다. 과연 사랑이 있어서 아버지와 함께 살았던 것인지 아님 재산을 보고 살았던 것인지 궁금합니다.

원주 다녀오던 날이었습니다. 그날 미사와 예비자 교리가 있었습니다. 미사 봉헌하고 예비자 교리 한 후에 날도 춥고 몸도 피곤해서 기도하는 것이 귀찮아졌습니다. 그래서 십자가의 길도 빨리 하고, 묵주 기도도 빨리 했습니다. 그전에도 '날이 몹시 추우니까, 교리에 미사 또 사람들도 많이 만나서 피곤하니까. 오늘 하루는 주님 위해 많이 봉헌했는데' 이렇게 대충 이유를 붙여 육신의 편안함과 안락함과 쉼이라는 보상을 바랐습니다. 이런 제 모습이 보상을 바랐던 큰 아들과 뭐가 다를까 생각해봅니다. 육신의 편안함 때문에 주님과의 약속을 타협하는 모습이 큰아들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육신에 대한 사랑보다 아버지께 대한 사랑이 더 컸다면 그렇게는 하지 않았을 텐데요. 재산을 빼앗길까봐 걱정하는 아들처럼 지금 누리는 것을 잃을까봐 빼앗길까봐 겁내하며 살았던 삶이었습니다. 좀 더 깊은 사랑으로 좀 더 큰 사랑으로 기다리시는 아버지를 열심히 따르지 못했다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남습니다. 대데레사 성녀의 말씀을 기억합니다. "그 무엇에도 너 마음 설레지 말라. 그 무엇도 너 무서워하지 말라. 모든 것은 지나가고 님만이 가시지 않나니 인내함으로 모두를 얻느니라. 님을 모시는 이 아쉬울 것 없나니 님 하나시면 흐뭇할 따름이니라." 이것저것 계산하지 말고, 보상을 바라지도 말고 온전한 마음으로 목이 빠져라 기다리시는 아버지 품에 안길 그날까지 열심히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원주교구 배하정 신부
파란색 글자 빨간색 글자 녹색 글자 밑줄 글자 진한 글자 빨간색 테이블 파란색 테이블 녹색 테이블
이름 :   
암호 :
· d41d8cd98f * 왼쪽의 글자중 빨간글자만 순서대로 입력하세요.
 목록보기 스크랩하기  프린터하기
383   [춘천] 천상 예루살렘을 향해  [2] 152
382   [원주] 묵묵히 자신의 길 가신 예수님  [1] 2066
381   [대전] 우리가 걸어가야 하는 길  170
380   [전주] 제3의 시선  [3] 1944
379   [광주] 바라빠! 당신은, 이 모든 것을 봅니까?  215
378   (홍) 주님 수난 성지 주일 독서와 복음  [3] 1738
377   [수원] 이제 다시는 그러지 않도록…  [4] 2321
376   [수도회] “내가 정말 기뻐하는 것이 악인의 죽음이겠느냐?...... "(에제 18,23)  [8] 2199
375   [부산] 새로운 탈출  [6] 2130
374   [안동] 너를 단죄하지 않는다 다시는 죄짓지 마라  [3] 2445
373   [대전]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2] 2304
372   [인천] 마음속의 돌  [10] 2497
371   [서울] 사람을 살리는 법과 죽이는 법  [7] 2482
370   [마산] 죄를 묻지 않으시는 하느님  [3] 2516
369   [대구] 십자가는 하느님 정의와 자비의 만남  [4] 1981
368   [의정부] 마음껏 돌 던지십시오  [5] 2298
367   [춘천] 용서받은 자녀답게 살자  [5] 2536
366   [군종] 나도 그럴 수 있다는 겸손한 마음으로  [2] 2636
365   [원주] 용서  139
364   [광주/제주] 용서하시는 예수님  [1] 2228
363   [전주] “나도 너를 단죄하지 않는다. 가거라”  [2] 228
362   (자) 사순 제5주일 독서와 복음 [간음한 여인]  [2] 1905
361   [수도회] 회개한다는 것은 한마디로 'U턴'하는 것.  [2] 2207
360   [군종] 아버지의 마음으로  [2] 2345
359   [의정부] 중간만 하는 교회?  [2] 2200
358   [춘천] 아버지의 품으로  [3] 2288
357   [인천] 무르익는다는 것  [4] 2090
356   [서울] 잃었다가 도로 찾았다  [6] 2448
355   [마산] 죄인이 죽기를 바라시지 않고, 회개하여 살기를 원하시는 하느님  [4] 2546
354   [대구] 잃었던 아들을 되찾고 기뻐하는 아버지의 비유  [3] 2443
353   [대전] 부전자전(父傳子傳)???  [1] 937
352   [안동] 그들은 즐거운 잔치를 벌이기 시작하였다  [1] 860
351   [부산] 몸과 마음이 함께 아버지의 집에 머무는 기쁨의 자녀가 됩시다.  [5] 2420
350   [청주] “제가 하느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153
349   [수원] 자비로운 아버지  [2] 1014
348   [광주] 기다려주시는 주님  153
  [원주] 나는 진찌로 아버지를 사랑하는가?  2179
346   (자) 사순 제4주일 독서와 복음 [잃었던 작은 아들]  [3] 1691
345   [수도회] 한 해의 유예기간  [4] 2482
344   [군종] 회개는 올바른 결심과 관계의 회복  [3] 2176
 이전 [1].. 11 [12][13][14][15][16][17][18][19][20]
 

 

주일강론

가   해

나   해

다   해

 

 

 관리자 Profile  l  홈페이지이용안내  l  즐겨찾기추가  l  추천사이트  l  가톨릭검색사이트  l  관리자 E-mail

Copyright ⓒ 2003 - 2020 www.ocatholic.com All rights reserved.   Ver 4.01_050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