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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 연중 제6주일 독서와 복음 [행복하여라, 불행하여라]
조회수 | 1,435
작성일 | 10.02.09
사람에게 의지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지만, 주님께 신뢰를 두는 이는 복되다.
예레미야 17,5-8

5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사람에게 의지하는 자와 스러질 몸을 제 힘인 양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라. 그의 마음이 주님에게서 떠나 있다. 6 그는 사막의 덤불과 같아, 좋은 일이 찾아드는 것도 보지 못하리라. 그는 광야의 메마른 곳에서, 인적 없는 소금 땅에서 살리라.”
7 그러나 주님을 신뢰하고, 그의 신뢰를 주님께 두는 이는 복되다. 8 그는 물가에 심긴 나무와 같아 제 뿌리를 시냇가에 뻗어, 무더위가 닥쳐와도 두려움 없이 그 잎이 푸르고, 가문 해에도 걱정 없이 줄곧 열매를 맺는다.
  
그리스도께서 되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여러분의 믿음은 덧없을 것입니다.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1서 15,12.16-20

형제 여러분, 12 그리스도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셨다고 우리가 이렇게 선포하는데, 여러분 가운데 어떤 사람들은 어째서 죽은 이들의 부활이 없다고 말합니까?
16 죽은 이들이 되살아나지 않는다면 그리스도께서도 되살아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17 그리스도께서 되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여러분의 믿음은 덧없고, 여러분 자신은 아직도 여러분이 지은 죄 안에 있을 것입니다. 18 그리스도 안에서 잠든 이들도 멸망하였을 것입니다. 19 우리가 현세만을 위하여 그리스도께 희망을 걸고 있다면, 우리는 모든 인간 가운데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일 것입니다.
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셨습니다. 죽은 이들의 맏물이 되셨습니다.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불행하여라, 부유한 사람들!
루카 6,17.20-26

그때에 17 예수님께서 열두 사도들과 함께 산에서 내려가 평지에 서시니, 그분의 제자들이 많은 군중을 이루고, 온 유다와 예루살렘, 그리고 티로와 시돈의 해안 지방에서 온 백성이 큰 무리를 이루고 있었다.
20 예수님께서 눈을 들어 제자들을 보시며 말씀하셨다.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하느님의 나라가 너희 것이다.
21 행복하여라, 지금 굶주리는 사람들! 너희는 배부르게 될 것이다. 행복하여라, 지금 우는 사람들! 너희는 웃게 될 것이다.
22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면, 그리고 사람의 아들 때문에 너희를 쫓아내고 모욕하고 중상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23 그날에 기뻐하고 뛰놀아라. 보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사실 그들의 조상들도 예언자들을 그렇게 대하였다.
24 그러나 불행하여라, 너희 부유한 사람들! 너희는 이미 위로를 받았다.
25 불행하여라, 너희 지금 배부른 사람들! 너희는 굶주리게 될 것이다. 불행하여라, 지금 웃는 사람들! 너희는 슬퍼하며 울게 될 것이다.
26 모든 사람이 너희를 좋게 말하면, 너희는 불행하다! 사실 그들의 조상들도 거짓 예언자들을 그렇게 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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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라도 행복에 대해서 조금씩은 알고 있습니다. 표현은 하지 않아도 ‘이것이 행복이구나!’ 하고 느낍니다. 그렇지만 ‘확신’을 갖지는 못합니다. 오히려 ‘행복하다고 외치면’ 행복이 도망갈까 두려워합니다. ‘행복의 본질’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행복의 근본이 은총인 것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행복은 주님께서 주시는 선물입니다. 이것이 본질입니다.

복음에서는 가난한 사람들을 행복하다고 합니다. 주님께서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어떤 상황의 가난이라도 그분께서 함께하시면 행복해지지 않을 수 없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주님 ‘때문에’ 받아들이는 가난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분께서 함께하십니다. 이것이 복음의 가르침입니다.

가난의 대칭은 부자입니다. 재물이 많은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재물은 다른 재물을 ‘끌어당기게’ 되어 있습니다. 부자들이 소유에 집착하는 이유입니다. 심한 경우에는 사람이 재물을 소유한 것이 아니라, 재물이 사람을 소유해 버립니다. ‘주님 때문에’ 받아들이는 가난은 이 ‘끝없는 욕망’ 앞에서의 ‘절제’를 말합니다. 소유욕 앞에서 멈출 줄 아는 자세입니다.

그러니 부와 가난의 구별을 물질의 많고 적음으로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진정한 부자는 소유 앞에서 ‘자유로운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언제든지 주님의 모습을 만날 수 있습니다. 복음에 등장하는 행복한 사람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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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2010년 2월호
  | 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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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행복 선언과 불행 선언을 전하고 있습니다. 마태오 복음에는 여덟 가지 행복 선언이 산 위에서 선포되는데, 오늘 우리가 들은 루카 복음에서는 네 가지 행복 선언과 네 가지 불행 선언이 예수님께서 산에서 내려오시어 평지에서 하신 말씀으로 나옵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사람들, 굶주리는 사람들, 지금 우는 사람들, 미움을 받고 누명을 쓴 사람들이 행복하다고 하시고, 반대로 부유한 사람들, 배부른 사람들, 지금 웃는 사람들, 칭찬받는 사람들은 불행하다고 선언하십니다.

모든 사람은 행복하기를 바라고 행복을 추구합니다. 스스로 행복하다고 느끼려면 가난보다는 재물이, 슬픔보다는 기쁨이, 굶주림보다는 풍요로움이 당연히 필요해 보이는데, 예수님께서는 이 모든 것을 뒤집어 놓으십니다.

그렇지만 예수님께서는 복음서 어디에서도 가난이나 슬픔, 굶주림 자체가 좋다고 말씀하지는 않으셨습니다. 가난이 행복의 조건이라는 말씀도, 가난을 행복으로 알고 참으라는 말씀도 하지 않으신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하느님께만 도움을 바랄 수 있으며, 그래서 더 쉽게 하느님 나라에 마음을 열 것입니다. 그러나 부유한 사람들은 재물을 믿고 재물에 의지하며, 부족한 것이 없기에 하느님께 쉽게 기대려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부자 청년에게,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라고 말씀하신 대로, 있는 사람들은 자기 재물을 가난한 사람들과 나눌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서로 나눔으로써 가난한 사람도 부유한 사람도 함께 행복해질 수 있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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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근 사바 신부 : 매일미사 2019년 2월 17일
  | 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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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복’(Original Bless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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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카 복음 저자의 신학들 중에, 하느님 나라가 ‘지금’ 시작되었지만 ‘미래’에 완성된다는 종말론적 시각이 있습니다. 이런 시각에서,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이 하신 ‘행복하여라.’는 ‘선언’ 혹은 ‘약속’은 종말론적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즉 당신을 따르는 제자들은 ‘지금’ 행복해야 하지만 ‘아직’ 행복이 완성되지 않은 ‘지금’의 상황에서 힘을 내라는 격려의 말씀이시며, 동시에 ‘완성된 미래’에 영원한 행복인 ‘하느님과 인간이 함께 하게 될 것’임을 약속하신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도달할 ‘행복’은 어떠한 상태일까요?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교황이 되시기 이전에, 오늘날 ‘몸의 신학’이라 불리는 원고를 작성하셨습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그리스도께서 바리사이들과의 대화에서 언급하신 ‘한 처음’(마태 19,3-8)을 창세기와 연계시켜 깊이 있게 묵상하시고 신학적으로 성찰하셨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원복’(Original Blessing) 상태를 다양하게 소개하십니다. 즉 인간은 ‘한 처음’에 하느님의 모상으로 태어났고, 원죄가 아닌 ‘원초적 무죄’의 상태, 외로운 인간이 아닌 남성과 여성이 한 몸이 되는 ‘원 일치’의 상태, 그리고 인간 남성과 여성이 서로 위격적으로 일치를 이루듯이 삼위일체 하느님과 위격적으로 상호친교 할 수 있는 존재로 실존했음을 언급하십니다. 더욱이 인간이 발가벗은 상태에 있으면서도 부끄러워하지 않았던 ‘원 나체’의 상태와 ‘원 무죄’의 상태를 언급하시면서, 원복의 상태에서 인간이 하느님의 사랑을 얼마나 깊이 있게 체험하였는지를 논의하십니다.

우리가 도달할 행복은 어쩌면 바로 위와 같은 상태가 아닐까 합니다. 한마디로 우리 인간이 그 어떤 수치심이나 두려움 없이 하느님의 깊은 사랑을 함께 누리는 ‘원복’의 상태 말입니다. 이 원복의 상태는 하느님이 우리에게 주신 선물이며, 우리가 하느님의 사랑으로 도달할 가장 행복한 상태입니다. 아! 얼마나 큰 희망인지 모르겠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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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완 로마노(하상신학원 외래교수, 영성신학)
수원교구 주보 2019년 2월 17일
  | 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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