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요안 신부의 가톨릭

 l Home l Bestsite l Search l Freeboard l E-mail l

 
 

주일강론

평일강론

축일강론

대축일/명절강론

혼인강론

장례강론

예 화

사설/칼럼

♣ 현재위치 : 홈 > 강론자료실 > 주일강론 (다해)

주일강론

가   해

나   해

다   해

 

 

 


( 쪽지보내기 스크랩하기 프린터하기 홈페이지 )
459 70%
[의정부]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조회수 | 1,475
작성일 | 07.02.09
사람은 본능적으로 편안한 것을 추구하기가 쉽습니다. 신앙의 성숙을 위해서는 무언가 더 해야 한다고 느끼면서도 막상 실천에 옮기기에는 의지가 부족한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기도, 하느님과 교회에 대한 공부, 나쁜 습관 고치기, 절제, 교회와 이웃에 대한 봉사를 생각하지만 실천하기에는 의지가 부족합니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습니다만, 많은 경우 그냥저냥 일상생활에 큰 변화 없이 자족하며 살기 때문인 경우가 많습니다. 잘 먹고, 잘 마시고, 재미있는 것, 흥미로운 것에 몰두하고 호기심 속에 이것저것 기웃거리고 별 영양가 없는 잡담이나 TV 시청을 하면서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는 등 신자이지만 세속의 사람들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이 그렇습니다.

이런 삶은 당연히 하느님과의 관계를 느슨하게 만듭니다. 무엇인가 간절히 청해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면서 일상적인 편안함에 대해 깊이 감사를 드리지도 못합니다. 이상하게도 우리는 삶이 편안하고 문제가 없으면 오히려 하느님을 찾지 않으려고 합니다. 시간과 여유가 있으면 신앙의 키우려는 노력 속에 영성적인 기쁨을 추구할 만도 하건만, 안이함 속에 지극히 게을러지고 세상 풍조에 휩쓸려 긴장감 없이 하루하루를 허비하기 쉬운 것이 바로 우리들입니다.

우리가 정신을 바짝 차리고 하느님께 매달릴 때는 거꾸로 삶에 아쉬움이 있을 때입니다. 질병으로 고통받을 때, 미래에 대한 불안에 휩싸일 때, 가정에 우환이 있을 때, 이웃에게 상처받고 실망할 때와 같이 고통과 번민이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문제 해결을 위해 하느님께 도움을 청하고 기도하게 됩니다. 당연히 이러한 과정은 하느님과 관계를 회복시킬뿐 아니라 더욱 가까워지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렇게 말 할 수 있습니다. 삶이 너무 편안하면 그 자체로는 좋은 것 같아보여도 게으름 때문에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질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삶 속에 아쉬움과 고민이 있으면 당장은 싫고 힘들어도 바로 그 때문에 하느님과 더 긴밀해질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의 차원에서 본다면 우리들의 영적 성숙을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긴장감을 낳을 수 있는 아쉬운 상황이 다소 있는 것이 훨씬 더 낫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영적인 상태가 완전하지 않은 다음에는 십자가가 계속해서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너무 편안하고 안이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하느님께서 예기치 않은 시련을 허락하시어 당신께 마음을 돌리고 기도하게 만드시는 것은 어찌 보면 불행이 아니라 축복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여전히 그 사람을 버리지 않고 사랑하고 계시다는 표지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는 하느님께서 자주 사용하시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만일 이러한 갑작스러운 시련을 원치 않는다면 편안하고 문제가 없을 때 오히려 적극적으로 십자가를 찾아 짊어지는 것이 현명한 길일 것입니다. 분명 하느님께서는 이런 사람을 사랑하고 아끼지 않을 수 없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오늘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습니다. 지금 아쉬움과 어려움이 있는 사람들, 다시 말해서 가난한 사람들, 굶주리는 사람들, 우는 사람들, 박해를 받는 사람들은 행복합니다. 그들은 주님을 간절히 찾고 만나는 가운데 틀림없이 행복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너무 편안하게 사는 사람들, 다시 말해서 부유하고 늘 배부르고 웃고 만족하는 사람들, 그들은 불행합니다. 그 편안함이 하느님을 멀리하게 만들고 따라서 모든 영적인 보화를 사장시켜버리기 때문입니다.

▶ 강동진 신부
459 70%
믿음

------------------------------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하느님의 나라가 너희 것이다. 행복하여라, 지금 굶주리는 사람들! 너희는 배부르게 될 것이다. 행복하여라, 지금 우는 사람들! 너희는웃게 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가난과 굶주림, 슬픔이라는 피할 수 없는 우리 인생의 난제 앞에서 행복을 선언하십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어떻게 해야 행복합니까. 지금 굶주리는데 어떻게 해야 행복합니까. 지금 울고 있는데 어떻게 해야 행복합니까.

이 복음을 마주하고 있으면 이런 질문이 떠오릅니다.

낙담을 하고 있을 때의 일입니다. 하루 하루 지내는 것이 막막해서 미소짓는 것도 잊어버린 채 살아가고 있을 때, 친구가 와서 이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용기를 내. 그리고 너 안에 하느님께서 계신 것을 믿고, 너 자신을 믿어.” 저는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나 자신을 믿다가 이기적인 사람이 될까 두렵다.” 그 친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러셨잖아. 두려워하지 말라고.” 저는 그 친구의 얼굴을 가만히 보고 있었습니다.

복잡한 말도 아닌데, 지금 예수님께서 지금껏 나를 이끌어 오셨다는 것을 단순히 믿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습니다. 내 앞의 걸림돌 앞에서 마음이 묶여 지쳐버리느냐, 아니면 이 걸림돌을 넘어가고 심지어 뽑아버리느냐 하는 것은 하느님에 대한 믿음에 관한 문제였습니다.

우리는 살면서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을 찾기도 하고, 또 스스로 능력을 키우려고 합니다. 우리가 지금 상태의 혼자 힘으로는 살아가기가 힘들다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발버둥치고 살아가기도 합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깨닫게 되는 것은 사람에게 의지하는 것도, 내 능력을 키우는 것도, 내 삶의 근본적인 불완전함을 채워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그냥 덮고 살아가면 어느새 내 마음 속에서는 커다란 허무함이 커져갈 것입니다. 그 허무함 끝에 우리는 “우리를 위해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가치를 절절하게 느끼는 벽에 부딪히게 됩니다. 우리가 마음으로 그 벽을 느낀다면, 그 가난과 굶주림과 슬픔 안에서 예수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과의 만남을 향해 손을 뻗는 자는 어떨 때 사람들에게 이해받지 못하고, 버려질 수도 있고, 때로는 귀찮은 존재로 남아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난 사람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예수님을 껴안고 사랑하려고 안간힘을 씁니다.

가난하고 굶주리고 슬픈 사람은 예수님을 껴안고 자기의 의지처를 예수님 안에 둘 때, 세상 안에서 보잘것없는 사람으로 보여 질지라도, 이 믿음의 길을 걷는 이는 예수님의 힘으로 행복해질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이 믿음의 길로 이끌려질 수 있도록 마음모아 기도합시다.

-----------------------------------------

의정부교구 백병훈 요셉 신부 : 2019년 2월 17일
  | 02.15
파란색 글자 빨간색 글자 녹색 글자 밑줄 글자 진한 글자 빨간색 테이블 파란색 테이블 녹색 테이블
이름 :   
암호 :
· d41d8cd98f * 왼쪽의 글자중 빨간글자만 순서대로 입력하세요.
 목록보기 스크랩하기  프린터하기
  [의정부]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1] 1475
262   [전주]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불행하여라, 부유한 사람들!”  232
261   [수원] 가난한 마음으로 주님께  [3] 1661
260   [춘천] 참행복  [1] 2417
259   [마산] 행복선언  [3] 1529
258   (녹) 연중 제6주일 독서와 복음 [행복하여라, 불행하여라]  [3] 1436
257   [수도회] 참담한 심정  [1] 1474
256   [안동] 신앙인의 삶  569
255   [부산] 그리스도 신앙은 예수님의 말씀을 좇아 사는 길입니다.  [5] 2058
254   [의정부] 예수님을 향한 참사랑  [5] 1745
253   [대구] 그들의 선택  [2] 1400
252   [서울] 사람 낚는 그물과 황금돼지  [5] 2226
251   [수원] 부르심과 복음화 사명  [3] 2010
250   [마산] 인생의 그물질, 깊은 데는 어디인가?  [6] 2156
249   [군종] 예수님과 만나고 싶다면  [3] 2010
248   [인천] 돈을 낚기보다 사람을 낚아보자!  [5] 2021
247   [청주] 물이 깊어야 큰 배가 뜬다  [1] 251
246   [대전] 밑바닥 체험  [1] 1620
245   [춘천] ‘주님 일꾼’ 될 준비 됐나요?  [2] 224
244   [원주] 사람 낚는 어부  [3] 1988
243   [전주] 부르심과 수동(受動)의 영성  [2] 1795
242   [광주] 죄인과 소명  187
241   (녹) 연중 제5주일 독서와 복음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  [5] 2295
240   [수도회] 피조물 안에 숨어계신 하느님 찾기  [1] 1657
239   [부산] 예수님은 약자로, 또 실패자로 죽어 가셨습니다.  [4] 2290
238   [서울] 마땅히 지켜야할 변치않는 권위  [6] 2101
237   [안동] 용기를 내어라  [2] 1749
236   [마산] 태양은 어느 집 앞마당만 비추지 않는다.  [3] 2054
235   [청주] 하느님의 힘이 함께  165
234   [인천] 보는 방법  [5] 2176
233   [대구]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2] 1608
232   [군종] 오드리 헵번과 2000년의 사랑  [2] 11714
231   [수원] 예언자의 사명과 그 증거  [4] 2443
230   [대전] 하느님 자비의 증거자가 됩시다.  192
229   [광주] 도전받는 예언자  [1] 155
228   [전주] 예수님 고향 방문  [2] 2090
227   [춘천] 내가 원하는 대로 남에게 해주자  [4] 2196
226   [원주] 환영 받지 못한 예수님  [1] 226
225   (녹) 연중 제4주일 독서와 복음 [어떠한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3] 1620
224   [인천] 병원에서 생긴 일  [4] 1920
 이전 [1]..[11][12][13] 14 [15][16][17][18][19][20]
 

 

주일강론

가   해

나   해

다   해

 

 

 관리자 Profile  l  홈페이지이용안내  l  즐겨찾기추가  l  추천사이트  l  가톨릭검색사이트  l  관리자 E-mail

Copyright ⓒ 2003 - 2020 www.ocatholic.com All rights reserved.   Ver 4.01_050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