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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대전] “큰 돌과 작은 돌”(톨스토이 ‘인생의 길’에서)
조회수 | 2,149
작성일 | 07.11.10
두 여인이 노인 앞에 가르침을 받으러 왔다. 한 여인은 자신이 젊었을 때 저지른 일로 괴로워하면서 스스로를 용서받을 수 없는 큰 죄인으로 여기고 있었다. 그러나 다른 여인은 인생을 살아오면서 도덕적으로 큰 죄를 짓지 않았기에 어느 정도 만족하고 있었다.

노인은 앞의 여인에게 큰 돌 몇 개를, 뒤의 여인에게는 작은 돌 여럿을 주워 오라고 하였다. 두 여인이 돌을 가져오자 노인은 들고 왔던 돌을 다시 제자리에 두고 오라고 하였다. 큰 돌을 들고 왔던 여인은 쉽게 제자리에 갖다 놓았지만 여러 개의 작은 돌을 주워온 여인은 원래 자리를 일일이 기억해 낼 수 없었다. 노인은 말하였다. “죄라는 것도 마찬가지니라! 크고 무거운 돌은 어디서 가져왔는지 기억할 수 있어 제 자리에 가져다 놓을 수 있지만 여러 개의 작은 돌들은 원래의 자리를 잊었으므로 다시 가져다 놓을 수 없는 것이다. 큰 돌을 가져온 너는 한 때 네가 지은 죄를 기억하고 양심의 가책을 겸허하게 견디어 왔다. 그러나 작은 돌을 가져온 너는 비록 하찮은 것 같아도 네가 지은 작은 죄들을 모두 잊고 살아온 것이다. 그리고는 뉘우침도 없이 죄의 나날을 보내는 일에 익숙해졌다. 너는 다른 사람의 죄는 이것저것 말하면서 자기가 죄에 깊이 빠져 있는 것은 모르고 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와 세리의 기도를 비유로 전하십니다. 바리사이는 이렇게 기도합니다. ‘오, 하느님! 제가 다른 사람들, 강도짓을 하는 자나 불의를 저지르는 자나 간음을 하는 자와 같지 않고 저 세리와도 같지 않으니,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일주일에 두 번 단식하고 모든 소득의 십일조를 바칩니다.’ 잘난 체 하며 스스로 의롭다고 자랑합니다.

세리는 이렇게 기도합니다. ‘오 하느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자신을 죄인으로 고백합니다.

나는 어떻게 고백합니까?

예수님께서는 비유의 끝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이제 어떻게 기도해야 합니까?
하느님 앞에서 누가 감히 의인 행세를 할 수 있습니까?
하느님 앞에서 세상의 그 누구도 죄인 아닌 사람은 없습니다.
하느님 앞에서 스스로 죄인임을 고백하는 사람이 하느님께 속한 사람입니다.

청주교구 김광현 이냐시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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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롭다’의 사전적 의미는 떳떳하고 옳다는 것입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어떤 사안(事案)에 대해, 신앙을 고백할 때 우리는 스스로 의롭다고 자신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느님 앞에 서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하느님 앞에서 우리 스스로 의롭다고 확신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오늘 예수님의 비유를 보면, 바리사이는 하느님 앞에서 자신을 의로운 사람처럼 고백합니다. 이렇게 스스로 확신하는 이유는 일주일 두 번 단식과 모든 소득의 십일조에 있습니다.그리고 이러한 근거로 자신을 다른 사람들과 구별하고, 그들을 낮추면서 자신을 높입니다. 단식과 십일조 자체는 자신에 대한 회개와 하느님께 대한 감사의 표현입니다. 그러나 단식과 십일조를 자신과 이웃을 판단하는 도구로 삼고 하느님 앞에서 의로운 사람으로 자처한다면, 그것은 교만입니다.

분명 단식과 십일조를 충실히 지키는 것은 하느님께 칭찬받을 일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신앙의 전부가 될 수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미사’는 신앙생활의 중심입니다. 그러나 미사참례로 우리의 신앙생활은 완결되지 않습니다. 참 그리스도인이라면 일상생활에서 하느님의 뜻을 헤아리고, 겸손한 종(루카 17,7-10)과 같이 하느님을 섬겨야 합니다.

한편 우리는 세리의 기도를 함께 들었습니다. 그는 하느님 앞에 서는 것조차 버겁게 가슴을 치며 기도합니다. 그는 하느님의 시각(視角)으로 자기 자신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그분의 빛은 그의 나약함과 한계, 교만과 죄를 환히 드러냅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을 죄인으로 고백하게 되고 자비를 청합니다. 하느님께서는 겸손한 이의 기도에 귀 기울여 주시고 그들을 위로해 주시는 분이시기에(집회 31,21 참조), 세리의 겸손을 높이 보시고 그를 의롭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위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누구든 죄로 멸망하여 죽기를 바라지 않으시고, 회개하여 영원한 생명을 누리길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바리사이처럼 하느님 앞에 의롭다고 자만하며 자신의 업적으로 구원을 이룰 수 있다고 믿지 않습니다. 또한 죄 때문에 하느님을 회피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세리와 같이 하느님께 죄인으로 고백하며 주님의 자비와 은총을 청하는 것입니다.

<대전교구 김두한 요셉 신부>
  |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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