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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십자가 사랑과 부활
조회수 | 1,995
작성일 | 10.05.02
세상에는 겉으로 보면 사랑만큼 쉬운 게 없습니다. 그러니까 누구나 다 사랑을 합니다. 하지만 깊이 들어가 보면 사랑만큼 어려운 게 없습니다. 쉬운 사랑은 자기중심의 사랑이고 어려운 사랑은 타자중심 더 나아가 사랑의 원주인이신 하느님이 알려주신 사랑입니다.

많은 이들은 Like와 Love를 혼돈하며 살고 있습니다. 자기중심의 사랑은 대개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 성격 장점은 물론 나에게 어떤 유익을 줄 수 있는가를 따져보고 선택 하는 사랑입니다. 유리하면 따라가고 불리하면 거부하는 상업적 사랑입니다. 그러나 참된 사랑은 상대의 좋은 점 뿐 아니라 상대의 부족함과 결점 허물은 물론 나에게 짐이 되고 실망과 고통을 안겨 준 것까지도 참아주고 이해하고 포용하는 사랑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보여 주신 사랑은 세상의 사랑과는 다릅니다. 주님의 사랑은 누구든 차별이 없습니다. 조건도 없습니다. 잘 난 사람 못난 사람 가진 자 못 가진 자 남녀노소는 물론이고 세리나 창녀 같은 죄인도 바리사이파나 유다인 같은 당신을 박해하고 고소하는 사람들도 배신자였던 베드로와 유다마저도 용서의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주님의 사랑은 초월의 사랑입니다. 감성과 이기심을 내세우며 세상풍유를 따라가는 사랑은 아래로 흘러가는 물결처럼 쉽고 타인을 위하고 하느님을 섬기는 사랑은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야 하기에 어려운 일입니다. 많은 신앙인들은 믿는 일은 쉽지만 믿음의 생활을 실천하는 것은 굉장히 어렵다는 것을 잘 압니다.

일곱 형제들이 있지만 홀로된 병든 어머니를 모시길 부담스러워 하는 가족이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이 주신 사랑의 명령을 알고 있는 막내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자기 집에 모셔다 정성껏 돌봅니다. 그 며느리는 주님 때문에 사랑의 짐을 졌습니다. 참된 신앙인은 사랑 때문에 힘든 짐을 져야하고 손해도 봅니다. 신앙인은 사랑의 삶을 살아야 하기에 나에게 잘못한 이를 용서해야 하는 괴로움도 겪고 때론 사랑 때문에 침묵하고 인내하고 박해를 겪어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부활의 영광은 우리로 하여금 사랑 때문에 져야할 고난의 십자가를 기꺼이 지게 만듭니다.

주님의 부활은 인간을 향한 주님의 처절한 사랑의 승리요 영광입니다. 내가 귀찮고 내키지 않고 어려운 일이라도 내가 하느님 때문에 사랑을 실천한다면 나로 인해 하느님이  높이 영광 받으십니다. 사랑의 삶은 부활의 중요한 통로입니다. 주님께서는 사랑의 십자가로 부활의 승리를 이루셨습니다.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우리도 주님 사랑을 잘 살 수 있는 은혜를 항상 청원하면서 살아가는 그런 신앙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대구대교구 최종현 베드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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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 교에는 신앙을 가진 아이들보다 신앙을 가지지 않은 아이들이 훨씬 많고, 심지어 태어나서 신부를 처음 본 아이들도 많다. 그래서 신입생들은 늘 나에 대해서 궁금해 하는 것이 많다.
“어떻게 신부님 되실 생각을 하셨어요?”
“왜 혼자 살아요?”
“혼자 살면 외롭지 않아요?”
“긴 옷(수단) 입으면 불편하지 않아요?”

이런 질문에 일일이 대답하는 게 귀찮을 때도 있지만, 그래도 아이들의 관심이라 생각하고 성실하게 답변하려고 노력한다. 처음엔 검은 수단을 입고 수업하는 나를 보고 경계하던 아이들이 조금씩 마음을 열고 편하게 다가오는 것을 보면서 사제로서, 또 교사로서 보람을 느낀다.

작 년엔 이런 일도 있었다. 개신교회에 열심히 다니는 학생이었고, 장래희망이 ‘목사’인 친구가 있었다. 우연한 기회로 메일을 주고받게 되었는데, 처음 우리학교 왔을 때는 종교가 달라서 많이 불편했고, 특히 신부인 내가 하는 철학 수업을 싫어했다고 한다. 하지만 매주 수업을 들으면서 나에 대한 경계심과 의심이 사라지고, 나중에는 내 수업을 너무 기다리게 되었다면서 “중요한 청소년 시기에 정신적인 멘토가 되어 주셔서 너무 감사하다.” 는 얘기를 들었다. 이렇게 일상적인 만남에서든, 교육 현장에서든 관계의 질을 높이려면 서로에 대한 신뢰가 가장 기본이 되어야 한다. 상대에 대한 신뢰가 없으면 어떤 변화도 어떠한 발전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참된 그리스도인은 어떤 사람이어야 할까? 바로 지금 내 앞에 있는 사람을 가장 좋은 사람, 더나가 가장 소중한 사람으로 믿고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사람일 것이다. 그리하여 서로에 대한 신뢰와 사랑의 연대를 이루고 그 안에서 더 큰 사랑의 결실을 만들어내는 사람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 불릴 자격이 있는 것이다. 사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명하신 것도 바로 이것이다.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은 다른 사람이 감히 하지 못하는 놀랍고 위대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나와 가장 가까이 있는 형제와 이웃을 사랑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하루,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 - 그 사람이 낯선 이방인이라면 더욱 더 - 에게 그리스도인으로써 가장 따뜻한 사랑의 미소를 한 번 건네주는 것은 어떨까?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대구대교구 강진기 신부
  | 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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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사랑하는 사람, 하느님의 얼굴

사방이 온통 푸른빛입니다. 봄을 맞이하는 자연은 출발 준비를 마치고 100m 달리기를 시작하는 어린 아이와 같습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다들 앞 다투어 잎을 내고 꽃을 피웁니다. 참 사랑스럽고 아름답습니다. 잎사귀 내지 말고 꽃 피우지 말라고 말려도 귀담아들을 생각이 없어 보입니다. 모든 생명에 사랑의 마음이 가득합니다.

사랑이 가득하면 할 수 있는 것이 참 많습니다. 맛있는 요리를 하고 예쁘게 꾸미고 뭔가를 만들어 냅니다. 창조의 힘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맞습니다. 하느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신 그 힘은 바로 사랑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의 모든 피조물을 위한 그 사랑으로 당신의 아드님을 파견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들 예수님은 제자들을 사랑하셨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 새로운 계명을 남기시지요. 그런데 이 새로운 계명이 빵조각을 받은 유다가 떠난 직후에 주어졌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서로 사랑해야 할 사람의 범주 속에 심지어 당신을 배반한 유다도 들어 있지 않을까요?

유다의 배반으로 인해 그리스도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은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십자가 시작의 순간에 사람의 아들이 영광스럽게 되었고 하느님께서도 영광스럽게 되셨다고 선언하십니다. 이게 과연 말이나 되는 이야기인가요? 십자가의 죽음이 영광이라니요? 목숨까지도 다 내어 줌이 영광이라니요?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죽기까지(필리 2,8 참조)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십자가를 통해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에 그 십자가는 영광입니다. 그래서 하느님과 사람의 아들의 영광은 우리가 생각하는 영광과는 분명히 달라 보입니다. 무언가를 잔뜩 지니고 있는 영광이 아니라 다 내어줄 때의 영광입니다.

유다의 배반이 시작되는 순간 주님께서 주시는 새로운 계명, ‘서로 사랑’함. 주님께서 제자들을 사랑한 것처럼 서로 사랑하는 것, 그 계명을 주십니다. 어떠한 조건도 붙이지 않고 사랑하고 자비를 베풀라는 초대입니다. 배반자조차도 사랑함, 그것은 하느님께 드리는 영광입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을 사랑하심으로써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셨듯이. 그래서 우리가 하느님께 드리는 영광은 사랑을 실천하는 일입니다. 하느님께서 사랑으로 창조하신 세상의 모든 피조물들을 귀하게 여기고 사랑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기도를 바친다면 그것은 동시에 지금 있는 모든 것을 사랑으로 대하겠다는 다짐이나 다름없습니다. 우리가 하느님께 드리는 영광은 이 지구를 귀하게 여기고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일입니다. “하느님의 거처”(묵시 21,3)는 바로 여기에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하느님을 보여주는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부활을 보여주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은 하느님의 얼굴입니다.

▦ 대구대교구 신종호 분도 신부 : 2016년 4월 24일
  | 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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