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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 연중 제12주일 독서와 복음 [당신은 그리스도이십니다]
조회수 | 1,514
작성일 | 10.06.19
그들은 자기들이 찌른 이를 바라볼 것이다(요한 19,37).
▶ 즈카르야 예언서 12,10-11; 13,1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10 “나는 다윗 집안과 예루살렘 주민들 위에 은총과 자비를 구하는 영을 부어 주겠다. 그리하여 그들은 나를, 곧 자기들이 찌른 이를 바라보며, 외아들을 잃고 곡하듯이 그를 위하여 곡하고, 맏아들을 잃고 슬피 울듯이 그를 위하여 슬피 울 것이다. 11 그날에 므기또 벌판에서 하닷 림몬을 위하여 곡하는 것처럼, 예루살렘에서도 곡소리가 크게 울릴 것이다. 13,1 그날에 다윗 집안과 예루살렘 주민들의 죄와 부정을 씻어 줄 샘이 터질 것이다.”

세례를 받은 여러분은 다 그리스도를 입었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갈라티아서 3,26-29

형제 여러분, 26 여러분은 모두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믿음으로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27 그리스도와 하나 되는 세례를 받은 여러분은 다 그리스도를 입었습니다. 28 그래서 유다인도 그리스인도 없고, 종도 자유인도 없으며, 남자도 여자도 없습니다. 여러분은 모두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나입니다. 29 여러분이 그리스도께 속한다면, 여러분이야말로 아브라함의 후손이며, 약속에 따른 상속자입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그리스도이십니다. 사람의 아들은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을 것이다.
▶ 루카 9,18-24

18 예수님께서 혼자 기도하실 때에 제자들도 함께 있었는데, 그분께서 “군중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19 제자들이 대답하였다. “세례자 요한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엘리야라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옛 예언자 한 분이 다시 살아나셨다고 합니다.” 20 예수님께서 다시,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시자, 베드로가 “하느님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21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그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엄중하게 분부하셨다.
22 예수님께서는 이어서, “사람의 아들은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고, 원로들과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였다가 사흘 만에 되살아나야 한다.” 하고 이르셨다.
23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24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 보편지향기도

+형제 여러분, 우리 모두 주님만을 믿으며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느님 아버지께 마음을 다하여 기도합시다.

1. 교회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주님, 교회가 인류 사회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널리 전파하여,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게 하소서.
◎ 주님, 저희의 기도를 들어주소서.

2. 세계 평화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평화의 주님, 자국의 이익을 위하여 힘없는 나라에게 불이익을 강요하며 그들의 평화를 깨고 있는 나라들이 지금까지의 잘못을 깨닫고, 고통을 낳는 모든 구조를 없애며, 모든 민족이 참된 이웃이 되어 평화와 사랑이 넘치는 세계를 만들어 가는 데 앞장서게 하소서. ◎

3. 장애인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사랑의 주님, 육체적 정신적 장애로 고통 받고 있는 이들을 몸소 돌보아 주시어, 주님의 사랑 안에서 힘을 얻게 하시고, 저희는 그들의 삶을 더욱 힘겹게 하는 사회적 제도적 장벽을 허무는 일에 힘쓰게 하소서. ◎

4. 가정 공동체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일치와 사랑의 주님, 모든 가정을 일치와 사랑의 끈으로 묶어 주시어, 그들이 서로 위하고 이해함으로써, 가정 공동체 안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체험하며 살아가게 하소서. ◎

+주님, 주님의 자비를 바라며 간절히 청하는 저희의 기도를 즐겨 들어주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 아멘.  

▶ 묵상

우리는 주님을 누구라고 생각합니까? 베드로처럼 “하느님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대답할 수 있겠습니까? 무식한 베드로의 이 대답은 상당한 신앙이 뒷받침되어야만 할 수 있는 고백입니다. 주님께서 지금 우리에게 질문해 오신다면, 우리는 쉽게 대답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베드로의 대답에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시며 함구령을 내리십니다. 당신의 사명을 완수하실 때가 아직 되지 않았고, 걸어가셔야 할 길이 많이 남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주님께 기도하면서 ‘저는 누구입니까?’라고 질문하곤 합니다. 인생을 살아오면서 수없이 스스로 질문해 보지만, 속 시원한 대답을 얻지 못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실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당신을 따르라고 하십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고 하십니다. 그분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십니다.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알려는 사람은 그분을 따라 걸어가면 자연히 모든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나를 부르시고 붙들어 주시는 이유이고 목적입니다.

▶ 매일미사 2010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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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예화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친구가 찾아와 물었습니다. “자네 그리스도인이 되었다지. 그럼 그리스도라는 분에 대해 꽤 알겠군. 그분은 어떤 분이신가? 그분은 어디서 태어나셨나?” “모르겠는걸.” “돌아가실 때 나이는?” “모르겠네.” “설교는 몇 차례나 하셨나?” “몰라.” “아니,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면서 그리스도에 대해 별로 아는 게 없군!”

친구의 연이은 질문에 ‘모르쇠’로 일관하던 그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자네 말이 맞네. 난 사실 아는 게 너무 적어 부끄럽네. 하지만 3년 전 나는 주정뱅이에다가 많은 빚을 지고 있었지. 내 가정은 산산조각이 났고 저녁마다 아내와 자식들은 내가 집에 들어오는 것을 무서워했네. 그러나 이제는 술도 끊고 빚도 다 갚았네. 그리고 무엇보다 아내와 아이들은 내가 귀가하기를 목이 빠져라 기다릴 정도라네. 우리 집은 이제 화목한 가정이 되었네. 이게 모두 그리스도이신 예수님께서 나에게 이루어 주신 것이라네. 이만큼은 나도 그리스도라는 분에 대해 알고 있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당신을 누구로 여기는지 물으십니다. 이에 베드로는 제자들을 대표하여 ‘하느님의 그리스도’라고 제대로 고백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예수님에 대하여 아무리 잘 알고, 또 아는 만큼 대답하였다고 해도 그것이 가장 중요하지는 않습니다. 사실 사탄도 예수님을 두고 하느님께서 보내신 그리스도로,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으로 고백하였습니다(마르 1,24; 루카 4,34 참조). 그렇다고 해서 사탄이 모범적인 신앙을 가졌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은, 당신에 대하여 머리로만 알고 입으로만 주님이시라고 고백하는 자세가 아닙니다. 실제 우리의 삶에서 메시아이신 그분의 모습처럼 십자가를 기꺼이 받아들이는 자세를 원하십니다.

매일미사 2013년 6월
  | 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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