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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우리들의 신앙고백
조회수 | 1,899
작성일 | 04.06.22
루가 : 9,18-23

어린 아이가 겨우 한두 마디 할 때가 되면 부모들은 어린 꼬마에게 내가 누구냐고 묻습니다. 꼬마가 엄마, 아빠라고 올바르게 대답하면 부모네들은 더 할 나위 없이 기뻐하고 즐거워합니다.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꼬마가 생명과 사랑을 주고 있는 부모를 알아보고 혀도 잘 돌지 않는 말을 하며 생글거릴 때 부모들은 인생의 보람을 느끼는가 봅니다.

오늘 예수님도 사람들이 자기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알고 싶어하신 모양입니다. 그동안 가르치고 기적을 보여주며 그들에게 깊은 사랑을 보여주었는데 이제 그들이 자기를 어떠한 자로 생각하고 있는지 당연히 알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합니까?” 하고 제자들에게 물어보았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이 전해주는 대답은 모두가 시원치 않고 사람들이 자기를 알아보기에는 아직 까막득함을 보시고 “그러면 당신들은 나를 누구라 생각합니까?” 하고 제자들에게 물어보았습니다.

3년간 침식을 같이하시고 그들에게 특수한 교육을 시켜가며 가장 많은 사랑을 주셨던 제자들의 고백을 듣고 싶어했습니다. 다른 사람은 모른다 하더라도 자기와 같이 지낸 제자들한테서만은 올바른 답변을 듣고 싶어했습니다. 다행히 베드로는 예수님을 알아보고 당신은 하느님께로부터 오신 그리스도라고 정확하게 대답했습니다. 엄마, 아빠가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지만 옳게 대답하는 아이처럼 그 당시 베드로는 자지가 한 말의 참 뜻은 몰랐지만 어설프게나마 예수님을 알아보았습니다. 아마 예수님도 그 순간 큰 보람을 느꼈을 것이고 순진한 어부인 베드로를 더 한층 사랑했을 것이라고 미루어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복음서에서는 갑자기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많은 고난을 당하고 죽임을 당했다가 사흘만에 부활하리라는 수난 예고를 들여주고 있습니다. 그 뿐 아니라 당신을 믿는 사람들도 자기처럼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모순된 일입니다. 전능하신 하느님의 아드님이 수난과 죽임을 당해야 된다는 것은 참으로 우수운 이야기입니다. 더구나 사랑하는 외아들을 그렇게 내러벼 둔다는 하느님 아버지도 참으로 이상한 분입니다. 그래서 유다인들은 예수님께서 구세주라고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에게는 하느님의 아드님이 미천하게 십자가에 죄인으로 죽어야 한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지 못할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오로도 믿지 않는자에게 십자가는 어리석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지만 하느님은 오늘 성서 말씀대로 우리 구원을 위해 사람들이 생각지도 못한 구원의 길을 마련하셨습니다 우리들의 생각엔 하느님은 전능하시니까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 없이도 구원하실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하느님은 우리가 상상하는 방법으로 우리를 구원하시지 않았습니다. 하느님은 예수님이 죽고 부활하심으로 우리를 구원하도록 미리 마련하셨습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고백하고 우리가 지금 믿고 고백하는 예수 그리스도는 고통과 죽음을 거쳐 부활하신 그리스도입니다. 우리가 돌아가야 할 하느님 아버지도 바로 미천하게 살다 죽고 부활한 그리스도의 아버지이십니다.

형제 여러분, 우리는 환상에 사로잡혀서는 안됩니다. 하느님을 믿고 하느님의 양자라 해서 세속에서 흔히 말하는 행복된 인생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크나큰 착각이며 잘못 그리스도를 알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구세주 예수는 십자가 없는 구세주가 아니며 십자가 없는 하느님 아들은 있지도 않습니다. 하느님 아들은 고통을 없애주신 것이 아니라 고통을 받고 고통을 통해서 영광스럽게 부활하신 분입니다. 마찬가지로 자기의 십자가를 외면하는 신자는 참다운 신자라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 예수님도 자기를 따르려면 각자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서 구원되었고 우리 주님이 십자가를 통해서 부활하셨으니까 우리도 같은 길을 따라가야 합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길은 영원한 행복으로 나아가는 길이기 때문에 고통스럽지만 희망과 축복의 길이며 우리 주님이 가신 길이니까 가장 올바른 길입니다.

이제 몇 마디 우리 생활에 관해 덧붙이면서 끝을 맺을까 합니다. 우리들은 현 생활을 이끌어가기 위해 당하는 고통이 많이 있습니다. 더구나 신자이기 때문에 당하는 고통도 많습니다. 부정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생활에서 그래도 하느님 때문에 양심을 지켜나가기 위해 손에 들어오는 돈도 거절해야 하는 때도 있고 신자이기 때문에 교회에서 명하는 가족계획만을 따라야 하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보여 주기 위해 잘못한 자도 용서하고 미운 사람도 가까이 해야하는 고통이 있습니다. 또한 남을 위해 희생도 하고 바쁜 시간에도 신자로서의 의무를 채워야 하며 쾌락에도 빠지고 싶지만 참아야만 하는 많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의 이런 고통 속에는 그리스도의 모습이 들어있고 하느님 아버지의 크신 사랑이 작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고통스럽지만 고통 속에서 진정한 평화와 행복을 맛볼 수 있고 세상이 주지 못하는 기쁨이 들어있습니다. 더구나 우리가 고통의 길을 감수하고 나아간다는 것은 바로 우리가 구원의 길에 서 있다는 확실한 표시입니다.

우리는 각자 다시 한번 그리스도의 질문을 받아보아야 하겠습니다.

“당신들은 나를 누구라고 생각합니까?” 우리는 서슴없이 “당신은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시며 우리 구원을 위해 십자가에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우리의 주님이십니다. 우리도 당신이 보여주신 것처럼 우리의 십자가를 지고 당신의 길을 걸어가겠습니다.”하며 고백하야 하겠습니다.

전주교구 왕수해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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