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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너는 누구냐?
조회수 | 755
작성일 | 13.06.21
오늘은 연중 제12주일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물으십니다. “군중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그러자 베드로는 대답을 합니다. “어떤 사람은 세례자 요한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 엘리야라고 이야기 하는 사람도 있고, 옛 예언자 가운데 한분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사람들은 나름대로 여러 가지 설명들을 늘어놓지만, 그 누구도 예수님이 누구이신지 정확히 알아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라는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번에는 당신의 제자들에게 물으십니다.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베드로가 대답합니다. “하느님의 그리스도이십니다.”베드로를 비롯한 예수님의 제자들은, 지금 자신들과 함께 머물러 계신 분이 어떤 분이신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 왜 이들은 군중들과는 달리 예수님을 올바로 알아볼 수가 있었을까요?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머물렀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예수님과 함께 머무르면서 그분의 말씀을 들었고, 그분의 가르침을 배웠으며, 그분의 삶 전체를 몸으로 느꼈던 것입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우리는 전례적인 삶을 살았다라고 이야기 합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느냐? 우리의 삶이 전례적으로 물들지 않으면, 다른 말로 우리의 삶이 전례를 중심으로 변화하지 않으면, 우리가 신앙적 선택, 신앙적 삶을 살아야하는 결정적 순간에, 올바른 선택을 하지 못하게 된다라는 것입니다. 내 생각과 삶이 하느님을 향한 마음, 하느님을 향한 기도의 삶으로 충만되어 있을 때, 우리는 평소의 삶에서 신앙을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이고, 그것이 바로 살아있는 신앙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어떻게 해야 보다 더 전례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는지를 말씀해 주십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유일한 생명의 길로 십자가의 길을 선택하신 것은, 십자가의 길은 나를 버리는 길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이기적인 삶에서, 세속을 향하는 나의 욕심에서, 게으른 삶에서, 탐욕스러운 삶에서, 나를 버리고 나를 비워서,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그 안에서 삶의 길을 찾으며, 실제의 삶에서 하느님과 일치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야 우리는 비로소 하느님을 향하는 구원의 삶을 살 수가 있게 되는 것이지요. 우리들의 마음이 채워져야 할 것은 욕심이 아닌 하느님의 말씀이어야 합니다. 나를 하느님의 말씀으로 채움으로 인해 우리는 하느님과 일치할 수 있고, 하느님과 일치된 우리는 평화와 생명의 길을 걸을 수가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비로소 나는 누구인가? 하느님 앞에서 선 우리 자신을 바라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대전교구 곽상호 요한 사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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