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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주님과 함께 사는 삶
조회수 | 2,404
작성일 | 04.06.18
'도대체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이신가?' 라는 물음, 이 질문을 자신에게 해 보지 않은 그리스도인은 없을 것입니다. 복음서에 따르면 사람들은 예수를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아주 특별하고도 유명한 인물들, 곧 세례자 요한이나 예언자 엘리야 사이에 끼워 넣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 베드로는 극히 짧은 한 마디로 응답합니다. 당신은 "하느님께서 보내신 그리스도이십니다"(루가 9,20).

사실 복음서는 베드로의 고백을 통해 예수님이 누구이신지 명확히 대답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과 부활 사건이 일어난 지 이천 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지금,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이신가?' 라는 물음이 무엇을 의미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 문제의 답을 찾기 위해 우리는 또 다른 각도에서 이 복음을 바라보아야 할 것입니다. 해답의 열쇠는 예수께서 던지신 질문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루가 9,20)

이 질문의 핵심은 다른 사람이 예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아니라 '나 자신'이 예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주님과 내 삶의 관계에 대한 질문입니다. 성서학, 고고학, 종교 철학, 교의 신학 등의 측면에서 예수에 대해 어떻게 진술하고 있느냐가 나의 대답이 될 수는 없다는 말입니다. 이 질문은 예수의 정체성에 대한 문제를 뛰어넘어, 예수님이 나의 삶과 어떤 관계가 있느냐 하는 데까지 파장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바로 이 점을 깨우쳐 주십니다. 예수께서 당신의 정체가 밝혀진 후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를 버리고 매일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 제 목숨을 살리려고 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살 것이다"(루가9,23-24).

이제 우리는 예수가 누구이신지에 대한 의혹이나 집착에서 벗어나, 주님과 내 삶의 관계가 무엇인지를 공동체 삶 안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드러내야 할 때입니다. 이 삶은 각자에 따라 길고도 험한 영적 여정이 될 수 있습니다. 이 영적 여정 속에서 나만을 우선시 하는, 사회적 체면 속에 숨겨진 자신을 벗어 던지고 '그리스도를 옷 입듯이 입어야' 합니다(갈라 3,27 참조). 그래야 주님과의 올바른 관계가 설정됩니다. 그러나 그것이 자신을 잃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그렇게 생각할 뿐입니다.

이것은 사도 바오로가 말씀하시는 주님과 함께 사는 삶입니다. "여러분은 모두 믿음으로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삶으로써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갈라 3,26). 주님과의 관계는 아버지와 자녀와의 관계이며 이를 통해 주님께서 약속하신 모든 것을 받는 상속자의 관계로 들어서게 되는 것입니다(갈라 3,29 참조).

서울대교구 홍승모 미카엘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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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을 따르는 길은 십자가의 길

세례를 받은 지 일 년 정도 지난 신자들의 피정모임이 있었습니다. 생활 나눔 중 어느 신자 분이 들려준 이야기입니다.

“저는 처음에 세례성사를 받고 신자가 되면 세상의 모든 고통과 어려움이 없어질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아니 없어지지 않더라도 적어도 가벼워질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오히려 그 반대였습니다. 하느님을 믿는 것이 때로는 그전보다 내 삶을 더 고통스럽고 힘들게 만들었습니다. 특히 과거에는 의식도 못하고 지나갔던 행동들이 심한 죄책감으로 느껴지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그 모든 것이 하느님의 은총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느끼는 만큼 죄를 조심하게 되었고, 신앙의 삶이 어려워도 마음의 기쁨과 평화를 느낄 수 있습니다. 왜 신앙의 길이 십자가의 길인지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루카 9,23) 예수님은 오늘 복음에서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자신을 버린다는 것은 자신을 비하하거나 혐오하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자신의 삶을 선택하는 자기 결단이며, 삶의 실현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데 마지막 걸림돌은 바로 ‘나 자신’입니다. 재물이나 명예를 버리기도 목숨처럼 아깝지만, 나 자신을 버린다는 것은 더욱 어렵습니다. 이웃 사랑을 실천하고 봉사활동에 열심히 한다 하더라도 나 자신을 버리지 못한다면 자기만족이나, 위선된 행동이 될 수도 있습니다. 나 자신의 욕심이나 집착 등은 어쩌면 가장 극복하기 힘든 삶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늘 선택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선택은 늘 하느님과 나 사이에서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자신을 버리라고 단호하게 말씀하신 것이 아닐까요.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자신을 포기해야 합니다. 결국 주님을 위해 자기를 버린다는 것은 자신의 삶에서 주님의 뜻을 우선시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자유의지로 하느님의 뜻을 따르고 실천하겠다는 다짐입니다. 따라서 주님을 따르는 것 자체가 이미 십자가를 각오한 셈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매일의 삶 속에서 구현해야하는 그리스도인들의 지침도 주십니다.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루카 9,24) 하느님의 뜻을 따르면 결국 나 자신에게 이익이 됩니다. 그러나 그전에 세상 속에서 고통과 수난의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인간의 눈에는 당장 어리석게 보일지라도 하느님의 뜻을 위해 자신을 버리는 행위가 결국 생명에 이르는 길이 됩니다.

누군가 나에게 “당신은 왜 어리석은 바보처럼 십자가를 지고 갑니까?”라고 물으면 대답합시다. “나를 너무 사랑하셔서 나를 위해 죽기까지 하신 예수님에 대한 나의 믿음 때문입니다.”이라고 말입니다.

서울대교구 허영엽 신부
  | 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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