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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 사람의 아들 앞에 설 수 있는 힘을 지니도록 늘 깨어 기도하여라.
조회수 | 2,471
작성일 | 06.11.30
대림 제 1주일, 새 해의 첫 날입니다. 예수님의 오심을 설렘과 감사로 기다리는 우리에게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사람의 아들 앞에 설 수 있는 힘을 지니도록 늘 깨어 기도하여라.”(루카 21,36)

하느님께서는 한처음에 어둠 속에서 하늘과 땅을 지어 내셨고 그 하늘과 땅에 온갖 생명이 깃들어 살게 하셨습니다. 농부이신 하느님(요한 15,1)은 여러 가지 풀과 씨 있는 과일나무를 돋아나게 하셨고 달과 별들과 날아다니는 온갖 새들, 다양한 집짐승과 들짐승을 부지런히 지어내셨습니다. 그리고 이들을 보시더니 “좋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창조의 엿샛날에 이르러서는 당신의 모습으로 사람을 지어내셨고 그들에게 축복하시며 당신이 지어내신 온갖 생물을 잘 다스리라고 당부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창조의 이렛날에 편히 쉬셨습니다. 이것은 당신이 창조하신 모든 조물들이 당신 마음에 드셨고 그 피조물들이 어울려 살아가는 모습이 당신 보시기에 흡족하셨음을 나타내 줍니다. 이렇게 하느님께서 만드신 창조계는 하느님 보시기에 좋은 것이었고 평화롭게 공존, 공생하는 관계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저는 ‘대광리’라는 곳에 살고 있는데, 이 곳은 의정부 교구의 최북단 지역으로 강원도 철원이 이웃하고 있고 많은 군부대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자연환경이 잘 보존되어 있어 그야말로 ‘청정지역’이라 불릴 만한 곳입니다. 하지만 이 곳의 현실은 그리 생태적이지 못합니다. 이 곳도 농약과 화학비료에 의존한 농사가 관행적으로 행해지고 있고 농부는 농약중독의 후유증을 겪고 있습니다. 땅도, 이 땅에 깃들어 살고 있는 많은 생명들도, 결국 사람마저도 병들어가고 죽어가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피조물인 사람과 자연 모두가 이 세상 안에서 조화롭게 어울려 살아가기를 바라십니다. 이 시대를 살면서 사람의 아들 앞에 설수 있는 힘을 기른다는 것은, 하느님이 주신 이 창조계를 잘 가꾸어나가는 것입니다. 때로 불편하고 힘들더라도 사람과 사람이, 사람과 자연이 평화롭게 공존할 수 없는 길을 지속적으로 행하는 것입니다. 먼저 양보하고  내 것 나누어주기, 가까운 거리 걸어다니기, 음식물 남기지 않기, 종이컵 대신 개인컵 가지고 다니기, 냉난방 적정 온도 지키기, 우리 유기 농산물 구입하기, 장바구니 들고 다니기와 같은 일들이 이를 위한 작지만 구체적인 실천사례일 것입니다.

창조계의 관리인으로서 우리는 늘 깨어 있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다만 불편한 그 일이 사람과 자연 모두를 살리고 창조계 전체를 공존할 수 있게 합니다. 새 해에는 편리함보다 불편함을 실천하면서 우리의 생각과 삶이 보다 하느님 보시기에 좋아지면 좋겠습니다.

▶ 김규봉 가브리엘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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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자신의 눈떠 스스로 살피자

주교좌성당에선 매일 새벽 교우들이 모여 성무일도를 바치며 하루를 엽니다. 전임신부 때부터 내려오던 관례로 그 전통이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주교좌성당에서부터 시작하여 우리 교구의 새벽을 흔들어 깨우는 형국으로 여겨집니다. (시편 108,3 참조)

대림시기, 교회 전례력으로 새해 첫 날입니다. 어떤 마음가짐이 필요할까요? 오늘 복음은 재림하시는 예수님을 기다리는 우리의 분명한 태도를 촉구하고 있습니다. 먼저 그 날은 사람들이 자지러지고 까무러칠 정도로 세상이 뒤흔들릴 것이라 합니다. 그런데 그 때에 사람의 아들이 권능과 영광을 떨치며 구름을 타고 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하거든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라 합니다. 우리의 평소의 삶이 어떠했느냐에 따라 그날은 구원과 징벌의 순간으로 갈릴 것입니다. 어떤 삶의 태도가 요구되는 것일까요?

오늘 복음은 ‘스스로 조심하여 방탕과 만취와 일상의 근심으로 마음이 물러지는 일이 없게 하라.’(34절)고 말합니다. 그리고 아울러 말합니다. ‘이 모든 일에서 벗어나 사람의 아들 앞에 설 수 있는 힘을 지니도록 늘 깨어 기도하여라.’(36절)

먼저 한 해가 시작되는 첫날 우리는 결연한 자세로 자신을 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청정한 마음이 되어 자기 자신에 눈떠 스스로를 살피는 것입니다. 나를 유혹하는 욕망이 무엇이고 내안에 근심 걱정이 무엇인지를 살피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 신원을 분명히 하고 그 신원에 맞갖은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내일 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 즉시 그것을 행하라는 것입니다.

언젠가는 그 날이 옵니다. 그 날은 개인적으로 보면 생의 마지막 순간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그분 앞에 설 때 아무리 성실하게 살았다하여도 죄스런 맘이 앞서는 것은 어쩔 수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기도를 하게 되길 빕니다. “주님! 저 여기 있습니다. 당신의 은총에 맞갖은 삶을 살지 못한 죄가 큽니다. 하오나 당신 뜻을 염두에 두며 깨어 있고자 했습니다. 이제 당신의 처분만을 기다립니다.”

▶ 서춘배 신부
  |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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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왜 오셨어요?

성당 문이 열리고 미사를 마친 사람들이 썰물 빠지듯 한꺼번에 쏟아져 나옵니다. 말쑥한 차림의 이들 사이에 아주 허름한 차림의 볼 품 없는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느 누구하나 이 사나이에게 눈길을 주지 않습니다. 피곤에 지친 이 사나이 서 있을 기력조차 없어 보입니다. 미사를 마친 사제가 제의를 벗고 나서 성당 마당으로 나옵니다. 신자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던 사제의 시선의 어느덧 어느 누구 하나 눈길을 주지 않았던 허름한 차림의 그 사나이에게 머뭅니다. 사제는 이 사나이를 본 순간 얼굴빛이 하얗게 변합니다. 사제가 쏜살같이 사나이에게 달려가 소매를 잡아 끌다시피하여 사제관으로 데리고 갑니다. 사제관에 들어서자 마자 사제가 사나이 앞에 무릎을 꿇고 애절하다시피 말을 합니다.

"주님, 지금 여기에 나타나시면 어떻게 됩니까? 우리 식대로 잘 꾸려나가고 있지 않습니까? 무슨 평지풍파를 일으키시려고 이곳에 오셨습니까? 제발 하늘로 돌아가 주십시오. 우리가 지금처럼 잘 알아서 하겠습니다. 그러니까 제발 하느님 아버지께 돌아가 주십시오. 그리고 다시는 오시지 마십시오."

허름한 차림의 볼 품 없는 한 사나이, 세상을 돌아보시고 흩어진 이들을 모아 하느님 나라를 다시 세우시려고 오신 예수님께서 씁쓸한 표정으로 한마디 말을 남기시고 홀연히 사라지십니다.

"알았네."

예전 청년 활동을 하면서 누군가로부터 들었던 이야기입니다. 물론 사실이 아니라 꾸며낸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마음을 무겁게 하는 이야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주님, 어서 오십시오.' 라고 들떠서 외치고 있지만 정작 마음으로는 주님께서 오시는 것을, 주님께서 오셔서 우리가 쌓아 놓은 온갖 탐욕과 불신과 증오의 탑을 허물고 새 사람으로 변화시켜주시는 것을 원하지 않는 것이 안타까운 우리의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오시는 날, 해와 달과 별에 징조가 나타날 것입니다. 지상에서는 사납게 날뛰는 바다 물결에 놀라 모든 민족이 불안에 떨 것이며 사람들은 세상에 닥쳐올 무서운 일을 내다보며 공포에 떨다가 기절하고 말 것입니다. 지금까지 자신을 안전하게 받쳐 준 온갖 재물과 지위와 인간적인 힘은 그 위력을 잃고 마치 천길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것과 같은 처지에 놓일 것입니다. 솔직히 두렵습니다. 그래서 입으로는 주님이 오시기를 기도하면서도 내심 지금의 생활에 안주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할 수도 있습니다.

주님께서 오시면 분명 우리 전 존재를 뒤흔들어 놓으실 것입니다. 아니 주님께서는 이미 신앙인들 안에 들어오시어, 삶 전체를 뒤흔들어 놓고 계십니다. 현실과 복음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하도록 만드십니다. 이기심과 집착으로 물든 삶에 안주하려는 이들을 나눔과 섬김을 삶으로 이끄시고자 복음이라는 채찍으로 내리치십니다. 아픕니다. 이 아픔에서 벗어나는 길은 삶을 주님의 뜻에 따라 완전히 바꾸는 것이지만, 이 길이 아니라 오히려 복음과, 하느님 나라와, 주님과 적당히 거리를 두면서 현실에 타협하는 길을 걸어가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대림 시기를 시작하면서 '주님, 어서 오십시오. 이 몸이 주님을 간절히 기다립니다.'라는 익숙한 기도를 다시 생각해봅니다. 진정으로, 입으로만이 아니라 삶으로 이 기도를 드리고 있는지 돌아봅니다. '주님, 어서 오십시오. 이 몸이 당신을 간절히 기다립니다.'라는 기도가 입밖으로 흘러나오지만, '주님, 오지 마세요. 거기 그냥 계세요. 괜히 오셔서 나를 불편하게 만들지 마세요. 당신의 뜻을 따르지 않는다고 책망하시려거든 그냥 거기 계세요. 적당히 나름대로 살아가겠습니다.' 라는 마음을 먹고 있지는 않는지 냉정하게 물어봅니다.

그리고 현실과 적당히 타협하면서 살아가는 편안함보다는 오직 복음에 따라 복음을 선포하는 삶의 기쁨을 선택할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주시기를 주님께 청합니다. 저 혼자의 의지나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한 삶이기에 주님께서 제 안에 오셔서 함께 하셔야만 합니다. 이제 주님께서 오셔서 제 자신을 송두리째 변화시켜 주시기를 간절히 희망하면서 기도합니다.

"주님, 어서 오십시오."

▶ 상지종 신부
  |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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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 종말이 무섭지 않은 이유

꽤 오래전 일입니다. 휴일에 동창 신부와 찜질방엘 갔습니다. 찜질방에서 파는 생맥주가하도 맛있어 보여서 한 잔 마셨습니다. 한 잔 마시니 성에 안 차 한 잔 더 마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뜨거운 방에 들어가 땀도 많이 흘리고 잠도 좀 잤습니다. 시간도 제법 흘렀습니다. 그리고 차를 운전해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는데, 아뿔싸! 경찰이 음주단속을 하고 있더군요. 덜컥 겁이 났습니다. 머리가 아찔해지고, 심장이 급히 뛰기 시작하고, 손에 땀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괜찮으려니 생각해서 운전대를 잡았는데, 만에 하나 혈중 알코올이 측정되면 감당해야 할 일들에 대한 부담이 갑작스럽게 체감됐던 겁니다. 앞차들이 한 대씩 통과를 하면서 제 차례가 오기까지가 얼마나 길고 복잡하게 느껴지던지요. 이윽고 제 차례가 왔습니다. 경찰 손에 들린 음주 측정기에 ‘호~’하고 바람을 불었습니다. 어떻게 됐을까요?...다행스럽게도(?) 아무 일 없이 통과할 수 있었습니다. 그 이후로는 박카스만 먹어도 운전 안하는 모범 운전자로 거듭나서 살고 있습니다. 음주 단속 경찰을 볼 때마다 그 일이 생각납니다. 대림 제1주일을 지내는 오늘, 세상 마지막 날에 일어날 일들에 관한 예고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해와 달과 별들에는 표징들이 나타나고, 땅에서는 바다와 거센 파도 소리에 자지러진 민족들이 공포에 휩싸일 것이다. 사람들은 세상에 닥쳐오는 것들에 대한 두려운 예감으로 까무러칠 것이다.”(루카 21:25~26)

여러분은 이 말씀을 듣고 어떤 느낌이 드시는지요? 혹시 무섭고 괴기스러운 말씀으로 느껴지시는 분 계신지요? 단언컨대, 전혀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세상 마지막 날에 관한 예수님의 말씀은 공포로 우리를 협박하시려는 말씀이 아니라, 우리에게 희망과 긍정을 주시는 메시지입니다. 적어도 우리가 주님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고 선한 의향을 가지고 살아가기만 한다면, 세상 종말은 우리에게 공포가 아닌 희망의 대상입니다. 음주 운전자에게 단속 경찰은 공포의 대상이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단속 경찰을 무서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사고를 막아주니 고마운 존재죠. 마찬가지로, 주님을 믿고 그분 뜻대로 살고자 애쓰는 우리들에게 ‘마지막 때’는 공포의 대상이 아니라 고마운 약속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하거든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라. 너희의 속량이 가까웠기 때문이다.” 대림시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아기 예수님의 성탄을 기다리는 대림시기는 모든 이의 마음을 설레게 합니다. 똑같이 설레는 기다림으로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마지막 때를 기다립니다. 고마운 약속을 가지고 우리에게 오시는 주님을 두려움 없이 기쁜 마음으로 기다려야겠습니다.

▥ 의정부교구 김종민 프란치스코하비에르 신부 - 2015년 11월 29일
  |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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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깨어 기도하여라.”(루카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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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미 예수님~ 안녕하세요.
오늘은 대림 제 1주일입니다. 대림 제 1주일을 맞아, 대림의 의미를 되새겨 봅니다. 대림이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나요? 대림이란, 오기를 기다린다(待臨)는 의미와 도착(Adventus)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대림시기란, 예수님이 우리에게 오시기를 기다리는 시기입니다.

처음 말씀드렸듯이 오늘 우리는 대림 제 1주일을 지내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오시기를 기다린다는 의미 안에서, 우리는 대림의 첫 걸음인 대림 제 1주일을 어떻게 보내야 할까요? 우리가 어떻게 시작해야 대림 제 1주일 뿐만 아니라, 남은 대림 시기를 잘 지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저는 그 답을 오늘 복음의 “늘 깨어 기도하여라.”(루카 21,36)라는 말씀에서 찾아봅니다.

“늘 깨어 기도하여라.” 우리는 늘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왜 깨어 있어야 하는가? 그 이유는 주인이 언제 돌아올지 모르기 때문이며,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주인을 잘 맞이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오실 예수님을 잘 맞이하기 위해 늘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하느님의 목소리에 이웃의 목소리에 깨어 있음으로 우리는 주님이 오시기를 깨어 기다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늘 깨어 있을 수 있도록, 우리가 하느님의 목소리와 이웃의 목소리에 깨어 있을 수 있는 힘을 얻기 위해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늘 깨어 기도 하여라” 대림 시기를 시작하는 오늘 이 말씀을 기억하고, 대림시기 동안, 이 말씀을 묵상하고 실천한다면, 우리는 우리에게 오실 예수님을 잘 맞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신자 가족 모두에게 하느님의 자비와 은총이 함께하는 대림 시기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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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정부교구 윤관영 시몬 신부 : 2018년 12월 2일
  |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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