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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준비 됐나요♪♪
조회수 | 2,145
작성일 | 06.12.02
어린이 미사를 하면 꼭 한번씩 듣는 유치부 선생님의 노래, 바로 “준비 됐나요~” 입니다.
오늘은 교회 전례력으로 새해이며, 교회는 대림시기로 한 해를 시작합니다.
대림시기는 -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기다리고
- 마지막 날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때입니다.
그냥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준비(회개와 속죄)를 하고 기다려야 합니다.
준비 됐나요♪♪

가정방문이나 축복식 등으로 교우 가정을 방문 할 일이 많습니다. 이 때 제일 좋아하는 사람은 형제 님들입니다.
“신부님 우리 집에 자주 좀 와 주십시오”, “우리 집이 아닌 줄 알고 나갔다가 다시 들어 왔습니다” 라고 말합니다. 이유는 집이 몰라보게 깨끗해졌음을 좀 과장스럽게 이야기 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신부님! 진짜 깨끗한 집인지는 냉장고를 열어 보아야 합니다, 옷장과 이불장도요!!” 라고 친절하게(?) 가르쳐 주시는 형제분들도 있습니다. 겉만 준비한 모습을 꼬집어서 일러주는 말일 것입니다.

가정 방문을 해 보면 간혹 가족들이 밥을 먹다가 신부를 맞이하는 가정도 있고, 방문 일정을 잊어버리고서 집을 비우는 가정도 있습니다만, 대부분의 가정은 사제를 맞기 위해 많은 준비를 합니다. 집안 청소와 함께 차 한잔, 과일 한 조각도 신경 써서 준비합니다.
또 이런 가정도 있습니다. 도화지에 아이들이 신부님 모습을 그려 놓고 ‘우리 집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라는 포스터를 문 앞에 붙여 놓은 가정, 흰 천이 깔려 있는 십자 고상과 예쁜 초를 켜놓고 기다리기도 하며, 예쁜 막대 사탕을 꽃 대신 환영 선물로 주는 가정도 있습니다.
사제가 오는데도 이 정도 정성을 쏟는데 예수님이 오신다면....예수님이 오신다면...
얼마나 많은 정성을 쏟겠는가를 생각하게 합니다.

오늘 복음 말씀은 대림 시기를 맞아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를 가르쳐 줍니다.
‘방탕과 만취와 일상의 근심으로 마음 빼앗기지 말고, 주님의 날이 덫처럼 갑자기 덮칠지라도 늘 깨어 기도하라’ 는 가르침입니다.

아기 예수님이 오신대요!!
마지막 날 세상을 심판하러 주님이 오신대요!!
“준비 됐나요? ♪♪”

대구대교구 이종건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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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마른 기다림

오늘은 교회력으로 새로운 한 해의 시작이다. 그냥 기계적으로 돌고 도는 무의미한 반복이 아니라, 새롭게 시작하자는 초대이고, 그래서 다시금 시작할 수 있는 은총이다. 교회력은 그리스도의 구원 역사와 맥을 같이 한다. 그래서 교회력은 인간이 되어 오시는 주님오심을 기다리는 대림절로 시작한다. 대림절 동안 우리는 두 가지의 기다림을 묵상한다. 첫째는 주님께서 2천 년 전 인간이 되어 오심을 다시금 내 안에 오시도록 기다리고, 둘째는 세상 끝 날에 다시 오심을 기다린다. 약속된 주님 오심과 구원의 완성을 함께 기다리는 것이다. 이에 대해 성 베르나르도께서는 "첫 번째 오심은, 말구유 위에 나약한 육신으로 오심이고, 두 번째 오심은, 마지막 날 재림 시에 영광과 위엄으로 오심이며, 첫 번과 마지막 사이의 세 번째 오심은, 영(靈)과 권능으로 오심이다."고 하셨다.

사람은 누구나 기다리며 산다. 지금의 나의 모습보다 나은, 지금의 내 주변 모습보다 나은 내일을 계획하고,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희망한다. 미래에로 열려져 있기 때문에 희망할 수 있고,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다. 그러나 이 미래는 불확실하다. 미래에로 열려져 있기 때문에 인간이 인간다울 수 있었다면, 바로 그 미래가 우리를 힘들게 하기도 한다. 내가 아무리 온갖 계획으로 바라고 노력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내 뜻대로 채워지지 않는다. 인간은 스스로 미래의 주인공이 아닌 것이다. 문제는 무엇을 기다릴 것인가에 있다.

참된 기다림은 참된 희망에 놓여 있다. 그래서 무엇이 참된 희망인지를 묵상하는 것이 이 대림절의 숙제이다. 내 삶의 목마름이 어디에 있는 지를 겸허히 돌아보아야 한다. 허둥대는 삶이 깨어 있는 삶은 아니다. 하느님 보시기에 나는 어떠한지, 나는 내가 있어야 할 자리에, 내 몫을 다하고 바로 서있는지 진지한 반성이 먼저 필요한 것이다.

하느님과 함께 하는 기도의 시간을 갖고 그분과 함께 계획하고 그분과 함께 매일을 가꾸어 가는 삶이 참으로 깨어 있는 삶이라 하겠다. 조용히 주님 안에 한해를 되돌아보고, 새로이 시작할 시간을 마련하자. 그리하여 언제나 '그분 앞에 설 수 있도록' 준비하자. “너희는…사람의 아들 앞에 설 수 있는 힘을 지니도록 늘 깨어 기도하여라.”(루카 21, 36)

▶ 이상락 바오로 신부
  |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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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소한도(待臨消寒圖)를 그립시다!

대림 제1주일입니다. 오늘부터 대림시기가 시작됩니다. 대림시기는 아기의 모습으로 오시는 주님과 마지막 날 왕으로 다시 오실 주님을 동시에 기다리며 준비하는 시기입니다. 오시는 주님을 잘 맞이하기 위해 어떻게 기다리며 준비하면 좋을까요?

혹 구구소한도(九九消寒圖)를 아십니까? 구구소한도는 옛 선비들이 긴 겨울 추위를 이겨내기 위해 동짓날 창호지에 흰 매화송이 여든 한 개(9×9)를 그려서 벽이나 창문에 붙여 두고, 매일 하나씩 흰 매화송이에 봄을 기다리는 마음을 담아 붉은 색칠을 했던 그림입니다. 그런데 동지로부터 81일째 되는 날, 드디어 흰 매화가 모두 붉게 물든 구구소한도가 완성되어 문을 열어 보면 봄을 알리는 진짜 매화가 피어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봄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겨울의 매서운 추위마저 아무렇지 않게 만드는 구구소한도! 옛 선비들의 아름다운 기다림의 몸짓이 담긴 진짜 멋진 그림 아닙니까?

옛 선비들이 구구소한도를 그리면서 봄 을 기다렸듯이, 우리도 대림시기동안 구구소한도 같은 대림소한도(待臨消寒圖)를 그리면서 주님을 기다리면 어떨까 생각해 봅니다. 81개의 매화송이 대신 감사와 봉헌과 우리의 간절한 소망을 담은 4주간의 기도 송이를 그려놓고 매일 하나씩 채워 나가며 성탄 준비를 하면 정말 멋지지 않을까요? 흰 꽃송이를 붉게 물들여 가다 보면 어느새 추위가 물러가고 따뜻한 봄이 찾아오듯이, 기도 송이를 채워 나가다 보면 분명 우리에게도 놀라운 구원의 은총이 주어질 것입니다. 물론 기도 송이 대신 회개 송이를 그려놓고 보속과 선행으로 채워 나가도 좋을 것입니다. 회개의 눈물을 흘리며 탐욕스럽고 방탕했던 생활을 나눔과 절제의 삶으로 색칠해 나가고, 이기적이고 미워하고 교만했던 마음을 사랑과 용서와 겸손의 덕으로 불 밝혀 나간다면 주님께서 오셨을 때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얼마나 대견해 하시며 칭찬하시겠습니까? 물론 우리 삶도 더욱 평화롭고 행복해질 것입니다. 대림시기동안 회개 송이를 채워 나가는 그만큼 우리가 누리게 될 성탄의 기쁨도 더 클 것입니다.

대림소한도! 기도 송이! 회개 송이! 참 멋지지 않습니까? 대림시기 동안 마음에 담아두고 꼭 실천해보시기 바랍니다. 분명 구원의 기쁨으로 충만한 성탄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아멘.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하거든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라. 너희의 속량이 가까웠기 때문이다.” (루카 21,28)

대구대교구 윤지종 신부
  |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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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2016년 교구장 사목교서

- 가정, 가장 가까운 교회 - 새로운 복음화를 위해 매진합시다.

교구의 모든 가정에 주님께서 강복하시고 늘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세례성사와 성체성사를 통하여 주님의 지체가 된 우리 모두는 주님을 가장으로 모신 큰 집안의 식구들입니다. 그리고 이 큰 집안인 교회를 구성하는 기초는 바로 교우 여러분의 가정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사명인 복음화는 바로 가정에서 출발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현대 사회의 병폐들 중 많은 부분이 가정의 문제에서기인하기 때문에 가정의 복음화를 위한 새로운 열의와 보다 치열한 노력이 시급합니다. 지난 10월 4일부터 25일까지 열렸던 세계 주교대의원회에서 가정의 소명과 사명을 의제로 삼았던 것도 이러한 시대적 요청을 반영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보편 교회의 관심과 우리 사회의 현실에 비추어볼 때, 올해에는 가정의 성화를 위해 교구의 힘을 모았으면 합니다.

오늘날 가정은 매우 복잡한 도전에 직면해있습니다. 과도한 경쟁과 고용시장의 불안으로 인해 젊은이들이 혼인을 주저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혼인 연령은 높아지고 출산율은감소하고 있습니다. 전통적인 가족 중심의 가치관이 붕괴하는 가운데 가족 간의 소통 장애가 심해지고, 일인가구, 조손가정, 이혼하는 가정 등의 깨어진 가정과, 도움이 필요한 다문화 가정도 계속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우리 사회에 팽배한 개인주의와 물질만능주의는 이와 같은 가정의 위기를 더욱 부추기고 있습니다. 지역사회와 국가가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보다 근본적으로 가정이 무엇이며 어떠한 가치와 사명을 지니는지 신앙 안에서 되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신앙은 인간의 도성(都城)에 빛을 비추는데 그 첫째 자리는 가정”(『신앙의 빛』,52항)이기 때문입니다.

삼위일체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모습을 따라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심으로써(창세 1,27 참조) 사람이 가정을 이루고 살도록 정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모습을 취하실 때에도 가정의 일원이 되시어 요셉과 마리아의 아들이라 불리기를 원하셨습니다. 부모에게 순종하며 자라심으로써 성가정의 모범을 남기셨고(루카 2,51 참조), 첫 기적을 카나의 혼인잔치에서 일으키셨으며(요한2,1~12 참조), 신자들 간의 혼인을 성사로제정하셨습니다(마르 10,1~12 참조). 바오로사도께서 가르치신 대로 하느님께서 복을 내리시어 거룩하게 하신 부부의 사랑은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드러내는 큰 신비(에페5,21~33 참조)이므로, 가정은 사람에게 지워진 굴레가 아니라 그를 고양하고 완성하는 은총의 보금자리인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믿음이며, 이 믿음의 보화는 등경 위에 놓인 등불처럼(마태 5,15 참조) 세상을 비춤으로써 기쁨과 희망의 원천이 됩니다.
주 예수님과 성모님, 요셉 성인께서 보여주신 이 기쁨과 희망이 지금 우리 가정들과 세상에 간절하게 필요합니다. 올 한 해 동안 교구의 여러 기관과 단체들은 서로 협력하여 성가정의 모범을 본받기 위해 노력하는 가정들을 격려하고, 젊은이들이 혼인의 신비로움과 아름다움을 깨달을 수 있도록 가르치며, 특별히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선포하신 ‘자비의 희년’을 맞아 상처받고 어려움을 겪는 가정들이 위로와 치유를 받을 수 있도록 애써야 하겠습니다. 가정 복음화를 위한 노력의 현장인 본당들은 교구와 대리구의 지원을 기꺼이 활용하여 소속된 가정들의 성화와 곤경에 처한 가정들의 치유를 위한 사목 계획을 수립하고 실천하기 바랍니다. 가족이 함께 할 수 있는 활동들을 마련하고, 가정들이서로를 위해 기도하고 협력하도록 이끌며, 지역의 특성을 고려하여 주민들과 함께 인근의 가정들을 위한 공동선을 추구할 방법을 찾으면 좋겠습니다. 사제들은 가정에 맡겨진 거룩한 사명에 대해 교우들을 가르치고 고해와 상담에 기꺼이 응하며, 거룩한 민감함과 자상함으로 상처 입은 가정들을 보살피고 교우들과 협력하여 치유의 방도를 성실하게 찾기 바랍니다.

가정을 이루고 살아가는 평신도들은 자신이 바로 가정 복음화의 주역임을 깨닫고 성가정을 이루는 일에 끈기 있게 헌신하여야하겠습니다. 부모들은 자녀를 복음의 정신에 따라 기르는 데 힘쓰고 자녀들은 부모의 마음을 헤아리며 소통하는 가운데 서로가 서로에게 하느님의 선물임을 발견하기 바랍니다. 청소년들과 특히 혼인을 준비하는 젊은이들은 사랑을 위해 자신을 모두 바치는 것이 얼마나 위대하고 아름다운지를 생각하고 머지않아 하느님께서 맡기실 가족들을 위해 몸과 마음을 온전하고 깨끗하게 보존하여야 하겠습니다. 성가정은 주 예수님을 모시고 함께 살아가는 가정이므로, 어느 집안이든 다만한 사람이라도 교우가 있다면 주님께서 그 집에 들어오셔서 거룩하게 해 주시기를 바라야 합니다. 성가정을 이루는 이 사명은 사람의 능력이 아니라 주님의 은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가족들을 위해, 또 가족과 함께 꾸준히 기도하며, 도움이 필요한 다른 가정들을 위해서도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신뢰하며 가정생활 안에 그분을 모셔 들일 때 그 가정은 구원의 공동체가 되고,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가장 가까운 교회”(2015년 7월 6일 에콰도르 사목방문 중)가 됩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가정에 내려주신 큰 은총을 묵상하고 모든 가정 안에서 그 은총이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서로 돕고 격려하는 한 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부족하고 결점이 많은 우리를 택하시어 은총의 도구로 삼으신 주님께서 우리 안에 시작하신 큰일을 완성하시어, 교구의 모든 가정이 “하느님 마음에 드는 거룩한 산 제물”(로마 12,1)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루르드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와 성 요셉,
저희 가정과 저희 교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성 이윤일 요한과 한국의 모든 순교자들이여,
저희 가정과 저희 교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 2015년 11월 29일 대림 첫 주일에
▥ 천주교 대구대교구장 조 환 길(타대오) 대주교
  |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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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 내 삶은 괜찮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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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돌려 과거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언제로 돌아가고 싶으세요? 아마 돌아가고 싶은 순간이 다들 있을 것입니다. 실제로 시간을 돌려 그리운 시절로 돌아갈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뒤돌아봤을 때, 바로 지금 이 순간을 돌아가고 싶은 순간이 되도록 살아갈 수는 있습니다. 그러려면 내 마음을 바꾸고 삶의 방향을 바꿔야 합니다.

대림은 예수님을 기다리며 새로운 한 해를 준비하는 시기입니다. 그런데 매년 대림이 오고매년 새해가 오기 때문에 ‘그냥 뭐, 늘 오던 시간이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마음으로 바라봐야 이 시간을 더 귀하고 값지게 여길 수 있을까요? ‘지금 내가 죽는다면 나는 이대로 죽어도 괜찮은가?’라고 질문을 해보는 것입니다. 이대로 죽어도 괜찮다면 후회 없는 삶이겠지요. 그런데 ‘나는 이대로 죽는다면 후회할 거 같아.’ ‘나는 이대로 죽는 게억울 해.’라는 생각이 든다면 지금 당장 삶의 방향을 바꿔야 합니다. 내 삶의 태도를 살펴보고 내 삶에서 정말 가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점검해봐야 합니다.

생명이 끝나는 것은 모든 생명체에게 일어나는 일이지만 죽음을 이해하고 죽을 수 있는 것은 오직 인간뿐입니다. 철학자 하이데거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죽음 앞으로 달려가보라.”

죽음 앞에 서서 나를 바라보면 이대로 내 삶은 괜찮은 것인지, 지금 죽게 되면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지, 내 삶의 의미를 점검할 수 있고,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자아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죽음 앞에서 바라보면 삶은 소중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죽음은 실제로 우리와 함께하고 있는 그림자입니다. 죽음은 대리가불가능하며 언제나 ‘나’의 죽음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대림시기를 보내며 내 삶의 중요함이 어디에 있는지 다시 점검해보면 좋겠습니다.

철학자 세네카는 이야기합니다. “왜 살아있는 동안 사랑받는 존재, 떠날 때 그리운 존재가 되도록 자신을 만들지 않는가? 왜 즐거울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도 즐겁지 않은 삶을 사는가? 왜 그렇게 사는가?”

지금 내 삶은 어떤가요? 지금이 바로 내 인생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것을 발견하고 그것을 살아낼 때입니다. 새로운 삶을 준비하는 대림시기가 되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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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구대교구 주요한 사도 요한 신부 : 2018년 12월 2일
  |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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