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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아름다운 길
조회수 | 1,941
작성일 | 06.12.02
세계 각지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복음을 전하는 일에 젊음과 신앙의 일생을 헌신한 선교사들이 함께 모여 사는 공동체를 방문한 적이 있다. 편리한 시설의 시스템, 잘 정돈된 정원, 친절한 봉사자들, 작은 성당이 참 인상 깊게 기억된다.

선교지로 떠나는 선교사와 떠나보내는 가족과 사람들의 인사 장면 사진이 현관에 걸려 있었다. 파견 미사를 봉헌한 후, 서로에게 주님의 축복을 청원하는 자리인 듯 싶다. 감동적인 장면은 가족과 사람들이 떠나는 선교사의 발에 입맞춤을 하는 모습이다.

세상을 떠나신 선교사들이 잠들어 계시는 묘소를 걸으니, 로마서 10장 말씀이 따뜻하게 다가온다. “선포하는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들을 수 있겠습니까? 파견되지 않았으면 어떻게 선포할 수 있겠습니까? 기쁜소식을 전하는 이들의 발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나에게 더욱 큰 감동을 준 장면은 자신의 몸까지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시는 백발의 사제가 예수님의 십자가, 성경, 묵주를 침대 위에 올려놓고, 성무일도를 바치고 계시는 모습이다. 주님의 복음을 위하여 평생을 바친 선교사가 죽음을 평화롭게 준비하며 거룩한 기도를 바치는 모습에서 겟세마니에서 기도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보여진다. “아버지, 제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십시오.”

대림시기를 산다. 우리도 이분들처럼 살아야 한다. 나 자신이 선교사라는 사실을 기억하자.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과 사람들에게 전해주는 사람, 그분의 사랑을 살아야 할 선교사임을 명심하자.

“아름다운 길은 험하고 어려운 길에서도 쉬지 않고 중단하지 않으며, 꿋꿋하고 웃으면서 가는 길입니다.

사랑하고 용서하며 헌신하고 기도하며, 십자가와 함께 생애를 다하여, 끝까지 끝까지 가는 길이 아름답습니다.”

참 아름다운 길, 대림시기를 충실하게 살기로 약속 하며 다짐한다. “사람의 아들 앞에 설 수 있는 힘을 지니도록 늘 깨어 기도하여라.”

▶ 김봉술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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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하나

대림시기입니다. “오실 분”을 기다리는 이런 교회의 전통은 이미 유대인들의 그것에서 비롯되었지만, ‘이미 오신 그분’을 그리스도교에서는 다른 의미로 기다리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은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는 앞으로 일어날 이 모든 일에서 벗어나 사람의 아들 앞에 설 수 있는 힘을 지니도록 늘 깨어 기도하여라”(루가 25,36).

그분이 다시 오실 때에는 세상을 뒤집을 듯, 재난이 먼저 닥치고(루가 5,27) 그 다음 “사람의 아들”이 권능과 영광을 떨치며 ‘구름을 타고 오실’것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눈길을 끄는 대목은 그분께서 우리의 “속량을 위해서” 오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한참이나 모자란 우리들로서는 적이 안심이 되는 대목입니다.

그렇지만 주님은 바로 이 순간을 위해서 이렇게 당부하십니다. “사람의 아들 앞에 설 수 있는 힘을 지니도록 깨어 기도하여라.”

어떻게 살아야 그럴 수 있을까?

사도 바오로는 둘째 독서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이 서로 지니고 있는 사랑과 다른 모든 사람을 향한 사랑이 충만해져야”(1데살 3,13) 그 분 앞에 나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오실 그분 앞에 나설 수 있는 힘은 오로지 사랑이었습니다. 왜냐면 그분이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대림시기에 첫째로 회복해야 할 것은 “사랑”입니다. 이미 여러분은 그런 사랑의 삶이 충만하시겠죠?

▶ 김진룡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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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초의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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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게 1초는 그냥 지나가는 시간이지만, 마음으로 1초를 사용할 때 우리는 가슴 뛰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면 1초 동안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일어남입니다. 미사에 참여하기 위해, 기도하기위해 우리는 1초면 됩니다.

감사함입니다. 모든 일에 감사하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시간은 1초면 됩니다.

이렇게 1초가 누군가에게 기적이 됩니다.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하거든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라. 너희의 속량이 가까웠기 때문이다.”(루카 21,28)

사람들은 세상에 닥쳐오는 것들에 대한 두려운 예감으로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땅에서는 바다와 거센 파도 소리에 자지러지고 민족들이 공포에 휩싸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로 이미 우리의 구원은 시작되었습니다.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 구원받은 이들로 살아가라 하십니다. 우리의 구원이 이미 시작되었고, 곧 우리의 구원이 완성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늘 깨어 기도하여라.”(루카 21,36 참조)

보고 듣는다는 뜻으로 시청과 견문이 있습니다. 시청은 그저 보고 듣는 것입니다. 견문은 보고 들어서 깨닫는 것입니다. 깨어 기도함은 시청이 아니라 견문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일상을 시청(視聽)할 수도 견문(見聞)할 수도 있습니다.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 아침의 태양을 바라봅니다. 그저 바라보며 시청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침의 태양을 바라보고, 하루를 시작하며 그 시작에 감사할 수 있다면 그것은 그저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바로 기도입니다.

아침의 밥 한 끼를 그냥 먹고 일어납니다. 그것은 시청입니다. 하지만 밥 한 끼에 하느님께 감사드리고, 이웃에게 감사할 때, 그리고 함께 하는 식구에게 감사할 때 그것은 견문입니다. 그저 먹고사는 것이 아니라, 밥 한 끼도 깨어 기도함이 됩니다.

깨달음은 깨어 있음에서 옵니다. 우리가 하느님 앎을 넘어 깨닫기 위해서 우리는 늘 깨어 기도해야합니다.

“여러분이 서로 지니고 있는 사랑과 다른 모든 사람을 향한 사랑도, 여러분에 대한 우리의 사랑처럼 주님께서 더욱 자라게 하시고 충만하게 하시며, 여러분이 하느님 아버지 앞에서 흠 없이 거룩한 사람으로 나설 수 있게 되기를 빕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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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주교구 정광철 마르첼리노 신부 : 2018년 12월 2일
  |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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