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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예수 그리스도는 나에게 누구인가?
조회수 | 2,064
작성일 | 04.06.18
누구를 안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만은 아닌 것 같다. ‘나’를 다 안다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닌가 말이다. 예수에 대해서 당시 사람들의 생각이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더냐?”하는 물음 속에 잘 드러나있다. 이에 제자들은 “대개는 세례자 요한이라고 합니다만은 엘리야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고, 옛 예언자 중의 하나가 살아났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루가 9,19)하고 대답하였다. 그리스도께서는 그 당시의 사람들에게 그리고 모든 시대의 사람들에게 ‘의문의 인물’로 남아계신다. 대부분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이름난 성인이나 위대한 예언자 아니면 초인(超人)일 뿐이다. 많은 신자들에게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루가 9,20)라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으신다. 베드로는 “당신은 하느님께서 보내신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예수님께 대한 신앙을 고백한다. 예수님은 자기 정체를 알아본 베드로에게 “이 일은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루가 9,21)하고 함구령을 내리신다. 그의 대답은 그리스도 신비의 한 부분에 대한 것에 지나지 않은 것으로 나중에 다른 요소들과 체험으로 채워져야 한다. 그래서 그 일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제자들에게 단단히 당부하신다. 그와 동시에 예수님께서는 당신은 메시아이시지만 십자가의 죽음을 당할 ‘고통받는 야훼의 종’임을 상기시키신다.

예수님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당신을 누구라고 생각하느냐고 묻고 있다. 예수님의 이 질문이야말로 모든 그리스도 신자들에게 피할 수 없는 근원적인 질문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예수님을 누구라고 생각하는가? 여기에 대해서 우리는 세례성사를 받기 전에 다 같이 고백했다. “예수님, 당신은 하느님의 아들로서 세상에 강생하셔서 사람이 되어 오신 그리스도”라고 우리는 고백했다. 그런데, 여러분에게 지금 그 때의 고백이 그대로 남아 있는가? 정말로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들로서 육화(肉化)되어 내려오신 그리스도라는 것을 신앙을 통해서 굳게 믿고 받아들임으로써 구원을 받게 될 것을 알고 있느냐는 것이다. 그분의 정체와 신분을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따를만한 가치가 있는가? 십자가를 지면서까지 모든 것을 포기할만한 가치가 있는가 따져보아야 한다. 예수께서 진정 구원자이심을 믿는다면 전 존재를 걸고 그분을 따르는 삶이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예수를 따라야 하는가? 그 구체적인 모습까지 제시하신다. 그것은 “누구든지 자기를 버리고 매일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루가 9,23) 누구도 예외없이 그리고 하루쯤이 아니라 날마다 자신을 버리고 따라야 한다고 가르치신다. 여기서 자신을 버린다는 것은 거짓 ‘나’, 외면적으로 드러나 있는 모습, 어쩌면 진정 나 자신보다도 더욱 훌륭해보이는 어떤 존재나 사랑, 명예와 권세, 경험과 지식으로 포장된 ‘나’ 자신을 말한다. 가식된 자아가 진정한 ‘나’인줄로 착각하고 살아가고 있다. 이런 자신으로부터 자유로와야 한다는 것이다. 나아가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은 기쁨을 주기에 외면하지 않고 기꺼이 지고 따르라는 말씀을 하신 것이 아니겠는가? 자신을 버릴 수 있을 때 삶은 참 기쁨과 행복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는 현세의 영광과 안일한 삶에 유혹받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깊은 의미를 던져준 말씀이라 하겠다. 더욱 편리하고 쉽게 사는 길을 택하는 오늘날 현대인들에게 십자가란 말이 통하기나 하겠는가? 고통 중에 땀으로 이룬 삶의 결실을 맺는 삶이 값진 것을 우리 모두는 더욱 배우고 마음에 새겨두어야 할 것이다.

나에게 있어서 예수님은 누구인가? 참 삶의 길을 가르치시고 구원해주실 분임을 믿고 있는가?

대구대교구 이상락(바오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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