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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 봉사하는 삶은 아름답고 행복하다.
조회수 | 2,007
작성일 | 07.04.27
우리 모두의 성소(聖召)를 생각해 보는 주일이다. 그러나 사제나 수도자 성소의 감소는 걱정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성소의 감소는 교회 생명력의 약화를 가져온다. 성가정(聖家庭)이 없이 성소증가는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다.

1. 참으로 행복한 삶

교회는 오늘 주일을 '성소주일' 또는 '착한 목자 주일'이라고 한다. 교회는 하느님과 교회공동체를 위해 몸바쳐 헌신할 수도자와 성직자가 배출되지 않으면 교회의 생명력도 함께 시들게 된다는 것을 역사적 경험을 통해 깊이 깨닫고 있다. 그러므로 성소개발을 위한 노력은 교회공동체의 사활(死活)이 걸린 중요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교회는 오늘 성소주일을 맞아 청소년들에게 사제생활과 수도생활의 가치를 일깨우고, 그 생활을 소개하기 위해 각 수도원과 신학교를 개방하고 있다.  

대구 대신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을 때의 일이다. 점심 식사 후에 의례 한 바퀴 하는 산행길이다. 신학교에 함께 있는 동창 신부와 함께 약수터에 이르러 물 한 잔 하고 맨손체조를 하고 있는데, 가끔 산에서 만나는 수도회 소속의 다른  신부님 한 분을 만났다. 산모퉁이를 돌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나이 50이 넘어서 우리 보다 더 자유로운 사람은 없는 것 같애!" 하며 사제 생활의 자유로움을 말한다. 그러니까 다른 신부님이 "얼마 전 초등학교 동창들을 만났더니 모두들 입시걱정에 딸 시집 보낼 걱정, 아들 취직 걱정, 불황에 사업 걱정, 노모(老母)걱정 등등 끝이 없는데 나는 아무 할 말이 없더라고! 신부는 세상에 살아도 세상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실감했어!"하며 한마디 보탠다. 동창 신부는 "우리 또래의 신자들이나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요즘은 또 무슨 요구를 할까 해서 마누라 보기가 겁이 난대."  "성당 지을 때면 신부들도  돈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지만, 그래도 처자식 먹여 살리겠다고 아옹다옹하는 것은 아니잖아!"  모두들 사제생활의 자유로움과 가정생활의 번거로움을 한마디씩 한다.

2. 결혼만 할 수 있다면 저도 신부 되고 싶은데....

미사 복사를 하는 초등학교 학생이 입만 열면 자기는 신부가 될 것이라고 입버릇처럼 이야기했다. 그리고 어릴 때부터 집에서 여동생을 복사로 세워놓고 찻잔을 들고 미사 드리는 흉내를 곧잘 내었다.  그런데 중학생이 되더니 신부 되겠다는 말 이 점점 줄었다. 하루는 엄마가 "너 아직도 장래 희망이 신부님 되는 것이지?"하고 물었더니, 머리를 긁으면서 "엄마 나 신부 되지 않으면 안 돼? 나 장가도 가고싶고 신부도 되고 싶은데 어쩌면 좋지?" 하는 것이었다. 사춘기에 접어들어 이성(異性)에 눈을 뜬 중학생에게 결혼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 큰 고민거리였던 것이다.
국민소득의 증가, 부부 중심의 핵가족화, 성(性)적인 가치를 중요시하는 사회적 흐름 등이 성소감소의 한 원인이 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3. 봉사하는 삶은 아름답고 행복하다.

성소주일은 진로를 결정해야 할 젊은이들에게 "나는 앞으로 어떤 일을 하며 일생을 살 것인가?", "한번밖에 없는 삶을 어떻게 사는 것이 가장 멋지게 후회 없이 사는 것인가?"를 진지하게 생각해 보도록 권고하며 그 기회를 제공한다. 한 사람의 삶이 어떤 삶인가를 판단하는 기준은 그 사람이 "무엇을 위해 자신의 삶을 바쳤는가?" "어떤 뜻을 품고 살았는가?" 그리고 "얼마나 그 일을 통해 행복을 체험했는가?" 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일찍이 에릭.프롬은 인간을 두 유형으로 나누었는데, 어느 것이 이익이 되는가를 찾는 '이익 추구형(소유형)'과, 어느 것이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는가를 찾는 '의미 추구형'이 있다고 했다. 인간은 동물이면서 동시에 신(神)의 모습이다. 그러므로 단순히 자기 만족을 찾는 동물적인 삶으로는 참 행복을 체험할 수 없다. 사제로, 수도자로 봉사하는 삶은 참된 자기 실현과 행복을 찾는 길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성소주일의 의미를 되새겨보자.

하느님의 부르심을 깨닫고 응답하는 지원자가 없으면 신학교나 수도원을 아무리 많이 지어도 소용이 없을 것이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하느님과 이웃을 위해 자신을 내 던져 투신할 성직자나 수도자들은 항상 열심한 신자가정에서 나온다는 사실이다. 말하자면 거룩한 평신도 가정이 없이는 수도성소나 사제성소가 고갈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열심한 평신도 가정이 바로 최초의 수도원이요 신학교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우리는 성소주일을 지내면서 이 사실을 깊이 깨달아야 한다. 사제성소나 수도성소가 없는 본당은 토양이 척박한 자갈밭이라 할 수 있다. 자기 아들이나 딸을 신학교나 수도원에 보내기를 꺼리고, 사제양성에 무관심하다보면 언젠가는 고해성사나 병자성사를 청하지도 못하고 불안한 마음으로 임종을 맞을지도 모른다. 오늘 특별히 수도자 성직자 신학생들을 위해 기도하고 또 성소육성을 위해 함께 뜻을 모으도록 합시다.

유영봉 몬시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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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관계 맺음

저는 새로운 소임지로 발령을 받아 갔을 때 그곳에서 새롭게 만나는 사람들과 빨리 친숙해지기 위해서 되도록이면 자주 신자들의 얼굴을 보고 이름을 익히고 불러주려고 애를 씁니다. 그래서 본당에 있을 때는 미사가 끝나면 곧장 성당 마당으로 나가 신자들을 배웅하며 인사하고 이름도 부르곤 하였습니다. 성소국장으로 발령을 받아 와서 제일 먼저 한 일도 신학생들의 사진을 휴대폰에 저장해 놓고는 수시로 보면서 그들의 이름을 익히고, 만날 때마다 자주 이름을 불러 주는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만나고 이름을 불러준다는 것은 관계를 맺고 친밀해 지기 위한 첫걸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은 마흔 일곱 번째 맞는 '성소주일'입니다. '성소'는 거룩한 부르심, 곧 하느님의 부르심을 의미합니다. 하느님께서 무엇 때문에 우리를 부르시는 지를 생각해 보게 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부르시는 첫 번째 이유는 관계 맺기를 원하시기 때문일 것입니다. 막연하거나 형식적인 관계가 아니라 친밀하고 깊은 관계를 맺기를 원하시기에 주님께서는 여러 번, 여러 가지 방법으로 끊임없이 우리를 부르십니다. 이런 사실은 예수님께서 열두 사도들을 뽑으시는 대목에서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을 뽑으신 이유는 "그들을 당신과 함께 지내게 하시고, 그들을 파견하시어 복음을 선포하게 하시며, 마귀들을 쫓아내는 권한을 가지게 하시려는 것"(마르코 3,14-15)이었습니다. 주님께서 그들을 부르시고 뽑으신 첫 번째 목적이 함께 지내게 함, 곧 친밀한 관계를 맺기 위함 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목활동을 통해서 느끼는 것은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고 사는 이들이 하느님과의 관계도 잘 맺고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사람들과의 좋은 관계를 위해서 다른 사람들의 말을 잘 들어주고, 이해해 주고, 참아주고, 희생할 줄 아는 사람들이 주님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사는 것을 자주 목격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와 관계를 맺기를 원하셔서 끊임없이 우리를 부르시는 주님과 친밀해지기 위해서는 눈에 보이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잘 맺어나가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겠습니다.

특별히 오늘은 사제성소와 수도 성소에로 불림 받은 젊은이들을 기억하며 기도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가정은 '성소의 못자리'라고 합니다. 우리 아이들이 하느님의 부르심을 알아듣고, 하느님과 관계 맺는 법을 배울 수 있도록 가정에서부터 관계 맺기가 잘 이루어져야 할 것 같습니다. 가족들이 함께 기도하고, 많이 대화하고, 많이 사랑함으로써 친밀한 가족 관계를 유지해 나가는 것이 보다 많은 성소자들이 배출될 수 있는 지름길일 것입니다.

주님께 불림 받은 제자들은 그분과 좋은 관계를 맺음으로써 세상에 나가서 기쁜 소식도 전하고, 병자도 고쳐주며, 악의 세력도 몰아낼 수 있었습니다. 관계가 좋으면 모든 일이 잘 될 것입니다.

강철현 미카엘 신부
  | 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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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 ♪헌신을 신고 뛰어보자 팔짝, 머리가 하늘까지 닿겠네♬

우리모습1. “기러기 아빠라는 명칭이 탄생한 지 20여 년, 아빠들은 이제 ‘헌신하다간 헌신짝처럼 버려진다.’는 위기의식을 강하게 느끼기 시작했다…”

우리모습2. “2일 오후 벚꽃을 보러온 많은 관광객들이 버린 쓰레기로 인해 부산 해운대구 달맞이길이 쓰레기로 몸살을 앓고 있다.”

“헌신”이라는 아름다운 가치가 바보스럽고 구시대적인 것으로 여겨지고, 대신 ‘나만’, ‘갑질’, ‘과시’, ‘분노’ 이러한 것들이 시대의 흐름을 왜곡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비뚤어진 생각들이 모여 이른바 ‘헬조선’을 만듭니다.

행여 내가 헌신함으로 기쁘지 못하고 손해 본다고 느낀다면, 그것은 헌신이라는 이름을 달았지만 헌신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오는 괴리감 때문입니다.

헌신은 나를 희생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사랑으로 가득한 사람으로 만들고 그 사랑이 흘러넘치게 하는 것이기에, 억지로 힘들게 하는 짐스러운 것이 아닌, 기꺼이 기쁘게 하는 십자가의 길입니다. 보상을 바라기보다 헌신 자체를 살다 보면, 자연스럽게 하늘나라의 보상도 따라옵니다. 그러한 헌신은 상대를 감화시키고 헌신에 동참하게 만듭니다. 그렇게 세상은 변화, 성장해 가는 것입니다.

성소의 삶을 산다는 성직자, 수도자도 자신을 봉헌하는 만큼 교구, 수도회로부터 자신의 삶에 대한 보장을 받습니다. 그러나 그런 보장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여느 평신도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삶을 책임지면서 하느님께 자신을 온전히 내맡기고 살아가는 이들이 있는데 바로 ‘사도직 협조자(아욱실리스타)’들입니다. 성직자, 수도자는 교회 안에서 나름 폼이라도 나지만 이들은 그러한 것을 바라지도 않습니다. 그렇기에 더 헌신이라는 말에 어울립니다. 이들뿐 아니라 헌신을 ‘신은’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이곳이 곧 하늘나라가 됩니다. 이들은 눈에 띄지 않으면서도 반짝반짝 빛나며 기쁘게 살아가고 있을 것입니다.

내가 사는 이 세상이 천국이었으면 좋겠습니다. “헌신을 신은 사람”이 곧 “성소자”입니다.

▦ 마산교구 김정훈 도미니코 신부 : 2016년 4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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