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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귀 기울여 봅시다
조회수 | 2,068
작성일 | 07.04.27
예수님을 ‘착한 목자’라고 부른다. 항상 양의 안위를 걱정하며 좋은 먹이가 있는 곳으 로 이끄는 목자. 우리 삶 안에서, 예수님께서 내게 이야기하는 것 을 따르면 그게 뭔지는 몰라도 ‘목자의 손길을 따 르는 것과 같다’라는 이야기일 것이다. 세상이 가장 비천하게 여기는 사람일지라도 그 자체로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삶을 사셨고 당신의 생명 까지 내주신 예수님이기에. 그 분께서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안다” 하신다. 그만큼 둘 사이가 친밀하다는 뜻이다. 마음이 통한 다는 뜻일 것이다. 그렇게 친밀하기에 예수님의 목소리를 알아차리고, 그 말에 귀 기울인다. 그리고는 마치 시력이 약한 양들이 목자의 소리를 따라가는 것처럼 그 뜻을 따른다.

“성소주일”

착한 목자이시며 나를 그렇게 친밀히 여기시는 그 분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날이다. 내가 어떤 삶을 살아가야하고, 내게 주어진 생활 속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목자’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날이다.

세상 속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따라서 성소의 씨앗을 뿌리고 가꾸며 결혼성소를 살아갈지. 세상 속에서 하느님의 나라를 살아 보여주며 카리스마를 사는 수도성소를 살아갈지.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사람들의 마음을 돌보며 복음을 전하는 사제성소를 살아갈지.

그리고 그것이 무엇이던지 거룩한 부름(聖召)이라고 여기며 “예”라고 대답할 용기를 청하는 날이다. 또한 이미 부르심을 듣고 응답의 삶을 살아가는 많은 이들이 성실하게 삶을 살아갈 힘을 주시도록 청해야겠다. 특히 “사람들의 마음”을 돌보며 복음을 전할 사람이 더욱 필요한 이 시대에 사제성소를 위해 더 많은 기도를 해야 하겠다.

세상의 많은 소리들이 우리들을 끌어당기는 오늘날, 고요한 마음으로 ‘목자’의 음성에 귀 기울여 보는 한 주간이었으면 참 좋겠다.

이영재 바오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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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김의 길이 성소의 길

농사를 지으며 염소도 키우시던 어떤 분이 어느 날 흑염소의 우리를 청소하고 있는데, 흑염소 한 놈이 자기를 빤히 쳐다보더랍니다. 그 놈의 눈이 참 맑더랍니다. 그래서 이 분도 그놈의 눈을 한참 동안 마주보고 있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답니다. ‘내가 이놈의 염소들을 기르고 있는가, 아니면 이놈들이 나를 머슴으로 부리고 있는 것인가? 나는 내가 이 놈들을 기른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시시때때로 먹을 것을 갖다 바치고 염소 우리를 깨끗하게 청소해 주고 있으니 달리 생각하면 난 완전히 이놈들의 머슴인 거야, 머슴…’

오늘은 부활 제4주일이며, 성소 주일입니다. 교회는 특별히 이 날을 성소 주일로 제정하여 우리 각자가 받은 부르심의 의미를 더욱 깊이 생각해 보고 그 부르심에 더욱 잘 응답할 것을 결심하도록 촉구하고 있습니다. 성소를 사는 사람들은 특별히 성직자나 수도자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가정을 이루어사는 사람들, 그리고 하느님의 가르침 안에서 충실하게 그분을 따라 살고자 독신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모두 포함합니다.

성소, 즉 부르심을 사는 사람들의 기본 자세는 섬김입니다. 성소를 사는 사람들은‘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마태 20, 28)’는 예수님의 말씀을 깊이 새겨야 합니다. 세상의 구원자로 오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께서는 인류를 위한 전적인 내어줌을 통해 세상을 구원하고자 하셨고, 당신을 따르는 모든 사람들도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당신과 같이 봉사의 길을 살아가도록 가르치셨습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세상을 창조하신 그 말씀이 비천한 인간이 되어 오신 강생의 신비를 생각할 때 이보다 더한 낮추임과 겸손이 어디 있겠습니까! 또한 부수어지고 쪼개어져서 우리에게 먹히는 빵으로 온전히 내어주시는 예수님의 몸은 뭇 생명을 대하는 우리의 마음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철저한 낮추임과 겸손, 내가 죽어 너를 살리겠다는 사랑, 이 모두는 바로 섬김, 참다운 종의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하느님께서는 너무나 명백히 보여주신 것입니다.

무한경쟁으로 치닫으며 성공과 출세가 곧 행복이라는 도식으로 비춰진 이 시대에 뒤쳐져 숨죽여 고통 받는 이들이 너무 많습니다. 성소를 살아가는 우리 하느님의 백성들은 아파하는 많은 살아있는 생명들을 보듬는 마음을 일깨워 그들을 살려야 할 것입니다. 이념과 사상이 아니라 예수님의 마음으로 소외된 이들을 보듬고 온전한 마음으로 그들을 잘 보살필 때 섬김의 모범을 보여주신 예수님의 길을 잘 따라가는 이들이 될 것입니다. 성소는 하느님 사랑에 대한 응답에의 부르심이라는 것을 성소 주일에 새겨봅시다.

임종필 신부
  | 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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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최근까지 해마다 15명 내외를 유지하던 우리교구 신학교 입학생 수가 올해는 급감하여 지난 3월에 5명만 입학했습니다. 더 넓게 보면2000년도에 174명이던 교구 신학생 전체수가2016년도에 119명이 되었으니 32%가 감소한 것입니다. 지난 5년간 교구 성소육성과 계발을 담당하고 있는 사제로서 마음이 좋지 않았습니다. ‘성소담당을 맡아 일하면서 내가 무엇을 잘못 생각하고 운영하고 있었나?’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세월동안 ‘우리 교구만 줄었나?’라는 생각에 타교구 자료도 찾아 모아보았습니다. 그랬더니 타교구 신학생 수도 많이 감소했음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런 현상은교구민 수가 많은 큰 교구일수록 더욱 크게 드러났습니다.

혹자는 이런 성소자 감소의 원인으로 낮아져가는 출생률을 꼽았습니다. 1971년도 출생아 수가 1,020,000명이었는데(이 때가 우리나라 출생아 수의 정점이었습니다.) 2014년도에는 435,300명이 되어 출생아수가 58%나 감소했습니다. 그래서 해마다 인구가 줄었으니 신학교에 입학하는 학생 수도 당연히 감소할 것 아니냐?는 분석입니다. 우리교구 성소자 수가 감소하고 있는 원인에 대해 본인도 그렇게 알고 위안을 삼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하지만 성소자 수 증감의 원인을 통계치에만 맡겨두고, 출생아 수에 비례하여 성소자 수가 늘거나 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신앙적이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성소자를 결정하는 것은 하느님이십니다. 즉 수확할 밭에서 일할 일꾼들을 뽑아 보내는 이는 주인님, 곧 하느님이십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주인께서 출생아 수에 비례해 알아서 일꾼들을 뽑아 보내실 거라고 한 것이 아니라, 일꾼들의 선발과 파견에 대한 우리의 간절한 기도와 요청을 당부하셨습니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마태 9,37-38) 성소자감소라는 현실 앞에서, 예수님께서 당부하신이 기도를 지난 과거에 우리가 얼마나 간절하게 주인님께 바쳤던가를 돌아봐야 할 것입니다.

성소 주일을 맞아 성소자 증가를 위해 기도와 함께 해야 할 우리의 노력이 또 한 가지 있습니다. 어린 나이 때부터 사제성소, 수도성소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환경에 학생들이자주 접할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의정부교구에서 최근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예비 신학생들이 최초로 성소에 관심을 가졌던 시기로 응답자의 약 70%가 초등학교시기를 꼽았고, 사제성소에 처음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로 45%의 응답자가 본당 복사단 참여라고 답했습니다.

지난겨울 성소피정에는 그 전보다 30 여명이 더 많은 92명의 학생들이 참가했습니다. 성소피정에 30명이나 더 왔다는 것은 엄청난 수적증가입니다. 그리고 올해 등록된 예비신학생수도 예년에 비해 많이 늘어났습니다. 아마도 신학교 입학생 수가 올해 5명밖에 안 된다는 소식을 접한 본당 신부님, 수녀님들께서 많은 신경을 써주신 덕분이라 생각합니다. 이런 노력들을 사제나 수도자만이 아니라 우리나라 초대 교회 시절, 한 분의 사제라도 모시기 위해 간절히 기도하고 힘썼던 신자들의 마음으로 우리 모두가 함께 하기를 요청 드리고 싶습니다.

▦ 대구대교구 이성호 세레자 요한 신부 : 2016년 4월 17일
  | 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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