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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종] 항상 겸손한 마음으로 이끌어주시는 주님
조회수 | 1,885
작성일 | 07.04.27
오늘은 성소주일입니다. 아울러 오늘은 착한 목자 주일이기도 하답니다. 착한 목자이신 주님을 찬미하며 공경과 흠숭을 드리는 착한 목자 주일을 맞이하여 교회의 목자들을 위해서도 기도해 주어야 하는 날이다. 또한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공부하고 있는 우리 학사님들을 위해서도 기도해 주어야 하지요. 또한 매 순간 우리들을 당신의 품으로 이끌어 주시는 주님께 감사드리며 진정한 하느님의 자녀가 될 수 있도록 주님께 은총을 청하며 미사에 참례할 수 있도록 노력해 보았으면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착한 목자로 비유해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교우 여러분 비유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고 계시지요? 비유란 우리들이 표현하고픈 대상을 다른 대상에 빗대어 표현하는 방법을 이야기 한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목자라는 비유를 통해서 하느님께서 얼마나 우리들을 사랑해 주시고 있는지 말씀해 주고 계십니다.
  
시골 마을에 단란하고 화목한 가정이 살고 있었어요. 젊은 아버지는 가정을 화목하게 이끌기 위해서 하루하루 열심히 일을 하며 생활을 하였지요. 하루는 일을 마치고 돌아와 예쁜 아내가 식사를 준비하는 동안 어린 아들과 놀아주게 되었어요. 아들을 사랑하는 아버지는 아들을 목에 태우고 집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녔지요. 그러다가 방 한가운데서 어린 아들에게 어깨 위에 올라가 대들보를 잡아보라고 하였어요.
어린 아들은 신아 나서 소리쳤지요.
“엄마, 내가 아빠보다 더 커. 이것 봐! 난 대들보를 잡았는데   아빤 못 잡아!”
“정말이네, 우리 아들이 이렇게 엄청나게 크구나!”
그때 아버지가 아이에게 대들보를 꼭 잡으라고 하고는 천천히 몸을 빼냈어요. 그러자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이는 대들보에매달린 채 자신을 받쳐주던 지지대가 사라지자 겁에 질려 비명을 지르기 시작하였답니다.
  
그래요. 아들은 자신이 아버지보다 더 높은 곳에 있는 것을 잡을 수 있게 되자 그 밑에서 자신을 떠받쳐주신 아버지를 잊어버리게 된 것이에요. 그래서 자신의 힘으로 마치 그 자리에 오를 수 있다고 생각을 하게 된 것이지요.
  
오늘 주님께서는 말씀해 주셔요.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목소리가 누구의 것인지 알기 위해서는 우선 말을 하는 사람이 있어야 해요. 말을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면 우리는 듣지도 못할뿐더러 누구인지도 알 수가 없게 되는 것이지요. 이렇게 주님께서는 항상 우리들을 부르시고 계셔요. 그렇기에 우리들은 주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것이지요. 그렇게 할 때 우리는 주님을 따를 수 있고 또 영원한 생명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간혹 우리들은 어린 아들과 같이 자신의 힘으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자만심에 빠지게 되는 것 같아요. 내 스스로의 의지에 의해서 성당에 온 것처럼, 내 스스로의 의지로 교리에 참석하는 것처럼. 주님께서 먼저 불러주지 않으셨다면 우리들은 이 모든 것을 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항상 겸손한 마음으로 우리를 불러주시고 이끌어 주시는 주님께 감사드리며 항상 주님의 목소리를 들기 위해서 노력해 보았으면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주님께서는 우리를 그 누구의 손에서도 빼앗기지 않으실 거에요. 우리 모두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 보아요. 어떠한 계획을 내 안에 새워놓으셨는지.

이성호 요셉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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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들을 위해 어린양되신 목자

착한 목자이신 주님, 오늘 당신 말씀을 듣노라면 화가 납니다. 오늘 당신은 말씀하셨습니다.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나는 그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른다.”(요한 10,27)

정말 양들이 당신의 목소리를 알아들었습니까? 정말 양들이 당신의 마음을 알고, 당신을 따랐습니까? 그런데 왜 당신께서는 “여우들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들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다.”(마태오 8,20)고 하셨는지요? 왜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마태오 9,38)고 하셨는지요? 사람들에게 비유로 말하는 이유가 왜 “저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마태오 13,13)고 하셨는지요? 왜 “너희는 하늘의 징조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징은 분별하지 못한다.”(마태오 16,3)고 하셨는지요? 베드로에게 왜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마태오 16,23)고 하셨는지요? 예루살렘을 두고 왜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예언자를 죽이고 자기에게 파견된 이들에게 돌을 던져 죽이기까지 하는 너! 암탉이 제 병아리들을 날개 밑으로 모으듯, 내가 몇 번이나 너의 자녀들을 모으려 하였던가? 그러나 너희는 마다하였다.”(마태 23,37)고 하셨는지요? 최후의 만찬에서 제자들에게 왜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팔아넘길 것이다.”(마태오 26,21)고 하셨는지요? 당신께서 잡히실 때 왜 제자들은 모두 당신을 버리고 달아났는지요?(마태오 26,56) 사람들이 왜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마태오 27,22.23) 하고 외쳤는지요?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시는 당신께서 왜 “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마태오 27,46) 라고 부르짖으셨는지요? 정말 알 수가 없습니다.

주님, 당신은 양들을 위해 목숨까지 내놓으셨습니다. 그래서 남은 게 뭡니까? 달랑 십자가밖에 없지 않습니까? 저도 양들을 위해 애써 보았습니다. 그들을 위해 밤도 지새워 보았고, 그들을 찾아다니기도 했습니다. 그들이 원하는 양식을 주기 위해 제 주머니도 다 털어 놓았습니다.

그런데 남는 게 없더군요. 그들은 끊임없이 달라고만 하고, 목자의 희생만을 요구하며, 주지 않으면 이내 달아나 버립니다. 제가 삯꾼이어서 그럴까요?

착한 목자이신 주님, 그래도 당신은 행복한 목자이십니다. 당신은 길 잃은 양 한 마리만 찾으면 되었으니까요. 그런데 요즘은 잃은 양이 아흔 아홉 마리입니다. 당신의 양은 당신의 목소리를 알아듣고 당신을 따랐지만 저의 양은 아예 볼 수도 없으니 제 목소리를 알겠습니까?

그들은 자기 목장도 잊은 채 남의 목장에서 헤매고 있습니다. 그곳에서 풀을 뜯어 먹는 게 더 쉽다고 제 목장을 떠나가 버렸습니다. 그들의 수가 너무 많아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그러니 어찌할까요? 저도 제 목장을 버리고 다른 목장의 삯꾼이라도 될까요?

착한 목자이신 주님, 저도 양들을 위해 목숨을 내놓고 싶습니다. 저도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고 싶습니다. 제 소망도 당신의 소망처럼 제 양들을 영원토록 멸망하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저도 당신처럼 저에게 맡기신 그들을 아무도 제 손에서 빼앗아 가지 못하게 하고 싶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이 저를 떠나는 이유는 뭘까요?

착하신 목자이신 주님, 이제야 알았습니다. 당신과 저의 차이는 사랑의 깊이 때문이었습니다. 당신은 양들을 위해 어린양이 되셨고, 저는 목자로만 머물러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신께서는 아버지와 하나이듯 양들과 하나가 되셨기에 그들을 알 수 있었지만, 저는 아버지와도 하나가 되지 못하고 양들과도 하나가 되지 못했기에 그들을 알지 못했습니다.

하오니 주님, 저도 어린양이 되신 목자처럼 그들을 돌보고, 생명의 샘으로 이끌고,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줄 수 있도록 완전한 사랑으로 저를 채우게 하소서. 이게 양을 잃은 목자의 꿈입니다. 착하신 목자이신 주님, 그 꿈이 이루어질까요?

손용환 신부
  | 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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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종] 착한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

양은 온순하고 순종적이면서 어리석고 약한 동물이라고 합니다. 시력이 나빠 몇 미터 앞도 제대로 보지 못하기 때문에 혼자서는 아무 데도 갈 수 없습니다. 저 스스로는 어디에 물이 있고 어디에 풀밭이 있는지를 모르는 것입니다. 양은 자신을 방어할 능력이 없어서 다른 동물들의 공격을 받으면 그저 물어뜯기고 먹힙니다. 그래서 양의 목숨은 전적으로 목자에게 달려있습니다. 양은 목자에게 의존하고 목자는 양을 전적으로 책임집니다. 이런 목자와 양의 관계가 바로 주님과 우리의 관계입니다.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나는 그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른다.”(요한 10,27)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기르고 인도하는 착한 목자 되시고 우리는 예수님께서 기르는 양이 됩니다. 선한 목자와 함께 있는 양들은 먹을 것, 마실 물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며, 적들과 싸우지 않아도 됩니다. 그저 목자에게 의지하고 그 목자를 신뢰하면서 그 곁에 머물러 있으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무리 걱정하고 노력해도 내가 스스로 해낼 수 있는 일은 그다지 많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무언가를 먹고 마시는 일은 물론이고 죽고 사는 문제도 우리 의지대로 할 수 없습니다. 목자는 양의 체질이나 습관이 어떤지 알고 있고 계속해서 함께합니다. 우리의 인도자가 되셔서 그 어떠한 위협도 모자람도 없는 ‘평화’ 그리고 ‘안식’을 주시는 분, 삶의 모든 복을 우리에게 마련해 주시며 늘 우리 곁에서 우리를 돌보시는 목자가 바로 예수님입니다. 비록 부족한 것투성이지만 실망하지 않고, 내 약점으로 인해 종종 넘어지더라도 포기하지 않는 것, 그리고 예수님께 의지하는 것이 바로 우리의 할 일입니다.

주님께서 친히 우리의 목자가 되어주신다는 이 놀랍고 엄청난 사랑의 은혜를 바로 우리가 누리고 있음을 기억하며, 늘 우리를 위해 목숨까지 기꺼이 내놓는 목자 예수님을 보내주신 하느님께 감사하였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고 신뢰할 수 있도록 하느님께서 은총을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 군종교구 이재혁(안드레아 아벨리니) 신부 : 2016년 4월 17일
  | 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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