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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종] 예수님은 내게 행복을 주시는 분
조회수 | 2,151
작성일 | 07.05.04
요즘 제가 노래방에 가면 자주 부르는 애창곡이 하나 있습니다. 그 노래는 바로 버즈의 ‘가시’라는 노래입니다. 언젠가도 노래방에 가서 이 노래를 부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다시 이 노래를 흥얼거렸는데 예수님께 대한 사랑의 마음이 이 노래와 교차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실 저는 가요를 좋아해서 노랫말에 예수님의 사랑을 대입시킬 때가 많습니다. 이 노래 역시도 중간부분에 “아픈만큼 너를 잊게 된다면~~ 차라리 앓고 나면 그만인데, 가시처럼 깊게 박힌 기억은 아파도 아픈줄 모르고~~”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셨을 때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제 다시는 예수님을 볼 수가 없음을 알고 슬퍼하고 떠나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생각하면 할수록 함께 했던 시간이 더욱 가슴 속에 남아 잊지 못하고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까지 예수님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던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셔서 나타나십니다. 제자들이 사랑하고 따랐던 바로 그분, 다시는 못 볼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던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셔서 평화를 주시고 오늘은 새 계명까지 주십니다.

새 계명이라고 해서 특별히 다른 계명을 주신 것이 아닙니다. 그동안 제자들과 함께 하시면서 그들에게 몸소 보여주셨던 행동들과 말들의 연장입니다. 그것들을 종합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제일 많이 하는 말 중에 하나가 바로 ‘사랑한다’가 아닐까 합니다. 평생 지켜주고 싶은 사람에게, 부모가 자녀들에게, 소중한 친구들 사이에 우리는 사랑이라는 단어를 가지고 서로를 연결합니다. 그런데 자칫 잘못하면 사랑이 사랑이 아닌 것으로 돌변할 때가 생겨나게 됩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서로에게 올가미를 씌우고 사랑의 이름으로 명령하고 간섭하기도 합니다. 그 즉시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 짐이 되고 멍에가 됩니다. 사랑하면 마음이 더 아프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아픈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내 입장에서 상대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내 뜻에 맞추려고 하기 때문에 사랑하면서 아픈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사랑은 아픈 사랑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내 뜻에 맞추는 삶이 아니라 예수님 뜻을 내가 맞추어 나갈 때 그 사랑은 기쁘고 행복한 사랑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군종교구 손해락(멜키올)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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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동일한 안목을 나누는 것

“주여 당신 종이 여기 왔나이다. 오로지 주님만을 따르려 왔나이다. 십자가를 지고 여기 왔나이다. 오로지 주님만을 따르려 왔나이다. 파아란 풀밭에 이 몸 뉘어주소서. 고이 쉬라 물터로 나를 끌어주소서. 주여 당신 품안에 나를 받아주소서. 내 쉴 곳 주님의 품 영원히 잠드렵니다.”

이 곡은 가톨릭 성가 218장으로 사제수품식이나 종신서원식의 주제가로 주로 불렸습니다. 이 성가는 십자가를 지고 주님만을 따르겠다는 고백의 노래요, 주님의 품만이 영원한 안식을 준다는 희망의 노래입니다.

사도 바오로와 바르나바도 이런 마음으로 전교여행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제1차 전교여행을 마치고 자기들이 세운 안티오키아 교회로 돌아와 “하느님께서 자기들과 함께해 주신 모든 일과 또 다른 민족들에게 믿음의 문을 열어 주신 것을 보고하였습니다.”(사도행전 14,27)

사람들은 제자들을 격려하면서 말하였습니다. “우리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합니다.”(사도행전 14,22)

예수님께서도 유다가 방에서 나간 뒤에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사람의 아들이 영광스럽게 되었고, 또 사람의 아들을 통하여 하느님께서도 영광스럽게 되셨다. 하느님께서 사람의 아들을 통해서 영광스럽게 되셨으면, 하느님께서도 몸소 사람의 아들을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요한 13,31-32)

그런데 십자가의 죽음을 영광으로 표현한 게 놀랍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으로 하느님께서 영광스럽게 되셨다니요? 기가 막힙니다. 아들을 죽게 하여 아버지가 영광스럽게 되셨다니 말도 안 됩니다. 그토록 잔인한 사랑으로 아버지가 영광 받게 되었다니 억장이 무너집니다.

그러나 죽음은 마지막 말이 아니었습니다. 고통은 잠깐이고 영광은 영원했습니다. 아들은 부활하여 영원한 생명을 얻었습니다. 아버지께서 아들을 영광스럽게 하신 결과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도 예수님의 안목과 이상을 가질 때 영광스럽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안목과 이상은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당신의 안목과 이상을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요한 13,34-35)

예수님은 제자들을 어떻게 사랑하셨을까요? 그분께서는 제자들을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그분은 대야에 물을 부어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고, 허리에 두르신 수건으로 닦으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스승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었으면,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요한 13,14)고 하셨습니다. 그분은 제자들에게 종처럼 섬기는 사람이 되라고 본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또한 그분은 제자들에게 당신의 몸과 피를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빵을 떼어 사도들에게 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 주는 내 몸이다.”(루카 22,19) 또 잔을 들어 말씀하셨습니다. “이 잔은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 내 피로 맺은 새 계약이다.”(루카 22,20) 그분은 제자들에게 당신의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

또한 그분은 제자들의 배신을 용서해주셨습니다. 당신을 팔아넘길 유다에게 빵을 적셔서 주셨고(요한 13,26), 당신을 세 번이나 부인했던 베드로에게 사랑을 세 번이나 고백 받으셨습니다(요한 21,15-17). 그리고 그에게 당신의 양들을 맡기십니다(요한 21,18).

우리도 예수님의 동일한 안목과 이상을 나눈다면 새 하늘과 새 땅을 볼 것입니다. 거룩한 도성 새 예루살렘을 차지할 것입니다. 그곳에서 하느님의 백성이 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계시고, 우리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입니다. 그러면 다시는 죽음이 없고, 다시는 슬픔도, 울부짖음도, 괴로움도 없을 것입니다(묵시록 21,1-4).

그러니 우리도 예수님의 안목과 이상을 실천합시다. 종처럼 섬기는 사람이 되고, 자기의 몸과 피를 나누고, 용서하는 사람이 되어 우리가 그분의 제자라는 것을 세상에 알립시다. 그러나 우리가 사람들을 섬기지도 않고, 희생하지도 않으며, 용서하지 않으니 예수님께서 세상에서 버림받으시는 것 아닐까요?

손용환 신부
  |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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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종]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오래된 이야기 중에 한 수도원에 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활기차던 수도원이 활력을 잃고 다섯 명의 늙은 수사들만이 남게 되었는데, 지나가던 나그네에게서 그들 중에 메시아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게 되어 다시금 활기찬 모습을 되찾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부활의 기쁨을 나누며 우리는 하느님께서 우리가 가운데 계시다는 요한묵시록의 말씀을 전해 듣게 됩니다.

“보라, 이제 하느님의 거처는 사람들 가운데에 있다.”(묵시 21,3)

이제 우리는 멀리서 하느님을 찾을 필요가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바로 우리 가운데 계시고 우리 안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제 다른 이들 안에 계신 하느님을 바라보며 살아갑니다. 그렇기에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할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서로에게 하느님이 되어 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서로의 눈에서 눈물을 닦아 줄 때, 우리의 손은 하느님의 따스한 손길이 됩니다.

“하느님 친히 그들의 하느님으로서 그들과 함께 계시고,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다.”(묵시 21,3-4)

오늘 우리는 서로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새 계명을 전해 듣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서로 사랑해야 하는지 예수님께서는 알려 주십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3,34)

제1독서는 사도 바오로와 바르나바의 선교활동을 우리에게 전해 줍니다. 사도들은 곳곳을 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교회 공동체를 세웠습니다. 그 험난한 여정에서 오히려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제자들의 마음에 힘을 북돋워 주고 계속 믿음에 충실하라고 격려해 줄 수 있었습니다. 서로를 위해 힘을 북돋아 주고 격려해 주는 바오로와 바르나바의 모습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이 이루어지는 것을 확인하게 됩니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요한 13,35)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할 때 우리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제자임을 드러내게 됩니다. 반대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제자라면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계신다면 서로의 눈물을 닦아 줄 것입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할 때, 서로 눈물을 닦아 줄 때, 우리를 통해 하느님께서 영광스럽게 되실 것이고, 하느님께서 우리를 당신의 영광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 군종교구 이재혁 안드레아 아벨리니 신부 : 2016년 4월 24일
  | 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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