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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새로운 계명
조회수 | 2,308
작성일 | 07.05.04
“보아라, 내가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든다”(묵시 21,5). 즉 그리스도께서 이끄시어 완성시키시는 그 ‘새로움’은 모든 경계를 초월하여, 궁극적인 ‘해방’을 기다리며 신음하는(로마 8,19 참조) 온 세상을 포용하고 있다.

제2독서: 묵시 21,1-5: “보아라. 내가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든다”

제2독서는 악의 완전한 패배를 묘사하고 있다. “나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보았습니다. 이전의 하늘과 이전의 땅은 사라지고 바다도 없어졌습니다”(1절). 즉 지금까지의 세계와는 다른 세계를 맞이하는 것이며, 사탄의 생활의 근거지이고 악의 상징인 바다(욥기 7,12; 26,12; 40,25)는 새로운 예루살렘의 승리 앞에 영원히 사라지게 될 것이다. 여기서의 새로움은 그러기에 사물의 ‘새로움’이 아니라 인간들의 ‘새로움’이다. 제1독서는 이 새로움을 천상 예루살렘을 통해 묘사하고 있다. “나는 또 거룩한 도성 새 예루살렘이 신랑을 맞을 신부가 단장한 것처럼 차리고 하느님께서 계시는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것을 보았습니다”(2절). 이 예루살렘은 하느님의 구원의 사랑을 영원히 거행하기 위해 세상 종말에 ‘어린양’의 주위에 모이게 될 구원받은 이들의 공동체를 암시한다.

이 천상 예루살렘의 시민이 되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의 온전한 사랑으로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어야 한다. 사랑을 통하지 않고서는 이 예루살렘의 시민이 될 수 없다. 이 때문에 천상 예루살렘은 ‘신랑을 맞기 위해 단장한 신부’(2절)라는 표상으로 제시되고 있다. 이 때문에 구약의 예언자들이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와 선택의 관계를 나타내는 것으로 간주했던 혼인의 비유의 주제가 나타나고 그 예언적 사상이 실현되고 있다. 이 혼인관계는 죽음 앞에서조차 변치 않는 사랑으로 자신을 내어주심을 통해 이루어졌다. 하느님께서는 인간들을 당신의 동반자로 포용하시는 ‘혼인애’를 들어 높여주신다. 그러기에 나머지 대목에 나타나는 기쁨의 의미도 알 수 있다. “그 때 나는 옥좌로부터 울려나오는 큰 음성을 들었습니다. ‘이제 하느님의 집은 사람들이 사는 곳에 있다. 하느님은 사람들과 함께 계시고 사람들은 하느님의 백성이 될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친히 그들과 함께 계시고 그들의 하느님이 되셔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주실 것이다. 이제는 죽음이 없고 슬픔도 울부짖음도 고통도 없을 것이다. 이전 것들이 다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3-4절).

복음: 요한 13,31-33a.34-35: 새 계명을 주겠다

이 혼인의 계약이 성립되기 위해서는 사랑은 양쪽에서 흘러나와 나누어져야 한다. “하느님께서 사람의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신다면 하느님께서도 몸소 사람의 아들에게 영광을 주실 것이다. 아니, 이제 곧 주실 것이다”(32절). 예수께서는 성부께서 당신을 기꺼이 받아주실 것을 의심치 않으신다. 그러기에 예수께서는 “아버지와 나는 하나이다”(요한 10,30)라고 하셨다. 이것은 아버지와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사이의 무한한 사랑의 관계를 드러낸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그러기 때문에 하느님의 현존의 징표를 일치를 통해서 반향시킬 수 있어야 한다.

이에 대해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새 계명’을 주시어 당신의 현존을 확장시키도록 하신다. 다른 사람들은 이제 제자들의 완전히 ‘새로워진’ 사랑을 통해 그분의 현존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나의 사랑하는 제자들아, 내가 너희와 같이 있는 것도 이제 잠시 뿐이다. 내가 가면 너희는 나를 찾아다닐 것이다....나는 너희에게 새 계명을 주겠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세상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33-35절). 예수께서는 이 ‘새 계명’을 ‘계약’으로서 제자들에게 남기시려 한다. 예수님의 이 ‘계약’도 무상의 ‘선물’이다. “새 계명을 주겠다”(34절)의 주다라는 동사는 보통 ‘선물’을 뜻한다.

그러나 어떻게 ‘계명’이 ‘선물’이 될 수 있는가? 그 ‘계명’이 어떤 의무를 부과하기보다 우리로 하여금 존재의 차원을 발견케 하고 또한 형제적 사랑을 나누게끔 되어있는 인간적이고 그리스도인적인 내적 신비를 깊이 알 수 있게 해준다면 그것은 ‘선물’이 될 수 있다. 실제로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강압적으로 무엇을 요구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실현시킬 수 있는 길을 밝혀주시는 분이시다. 우리는 이제 단지 하느님의 뜻만을 알아보는 일만이 남아있는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이 형제적 사랑을 ‘새 계명’이라 하는가? 율법에서도 이웃 사랑을 요구하고 있다. 예수께서는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레위 19,18; 마태 22,39)는 계명을 원수들까지 포함한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하시면서(마태 5,43-48) 당신의 계명으로 만드신다. 그러시면서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34절)고 이웃 사랑의 방법을 가르쳐 주셨다. 바로 당신이 지금 모든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수난의 길에 계심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사랑한다는 것은 우리의 옹졸한 마음이 아니라, 하느님의 무한히 넓은 마음을 그 사랑의 척도로 삼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형제들에게 발을 씻어달라고 하지 않고 우리 자신이 그들의 발을 씻어주는 것을 의미한다(요한 13,1-20 참조). 그러기에 우리는 ‘새 계명’이 법적인 계명의 의미가 아니라 ‘선물’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제2독서와 복음에서 내용이 ‘새로운’이라는 형용사에서 수렴되고 있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새 하늘과 새 땅’, ‘새 예루살렘’, ‘새 계명’ 등등. 그러나 이 ‘새로움’은 이 세상 마지막에 가서 그 빛을 발하게 되겠지만 이미 와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새 예루살렘’이 하늘에서 내려오기를 기다리면서 아직 시간이 있을 때에, 즉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 우리가 서로 나눌 수 있는 사랑으로, 그 사랑의 새로운 힘으로 교회와 사회를 활성화시켜 나아가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베푸셨던 사랑을 우리도 실천하려고 노력하면서 그분을 닮아 ‘새 하늘’과 ‘새 땅’을 이루어 그 안에 세상을 포용하는 우리의 삶이 되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수원교구 조욱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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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처럼 벌처럼 그리고 예수님처럼”

꽃들이 만발하는 5월입니다. 5월이 되면 우리는 꽃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우리 삶에서 찾고 기다리듯이 꽃들도 기다리는 존재가 있습니다. 바로 벌입니다. 벌은 꽃과 아름다운 관계를 맺고 있는 벗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다시피 꽃은 벌에게 꿀을 선물하고, 벌은 꽃이 수정하여 열매를 맺도록 꽃가루를 옮겨 줍니다. 만약 벌이 꽃가루를 운반하지 않는다면, 꽃이 벌에게 꿀을 선물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벌은 꿀을 얻지 못하고, 꽃도 수정을 하지 못해 열매를 맺지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들은 서로 따뜻한 마음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꽃은 벌을 숨 막히게 하지 않습니다. 벌도 꽃을 짓밟지 않습니다. 이들은 서로를 존중하여 꽃은 꿀을 나누어주고, 벌은 조심스레 꽃의 수정을 도와 열매를 맺도록 돕습니다. 이렇게 벌은 꽃의 수정을 돕는 봉사의 미덕을, 꽃은 자신의 것을 내어주는 나눔의 미덕을 지녔습니다. 이렇게 꽃과 벌은 그 모습만큼이나 아름다운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여기서 우리가 맺고 있는 관계들에 대해서 생각해봅시다. 우리들의 관계도 꽃과 벌같은 아름다운 관계인지 말입니다. 우리가 맺고 있는 모든 관계들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은 정말 행복하고 아름다울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나와 너가 다르기에 이해하기 힘들고, 어울리기 힘들고, 함께 하기 힘들다고 합니다. 그러나 꽃과 벌이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는 것처럼, 다르기에 서로에게 힘이 되어줄 수 있고, 다르기 때문에 아름다운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3,34)

오늘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을 주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우리 구원을 위해 기꺼이 봉사하셨던 당신처럼, 우리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나누어주셨던 것처럼, ‘서로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그것은 존중하고, 봉사하고, 나누는 사랑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도 아름다운 관계를 맺어갑시다. 교회 안에서 그리고 가정과 삶의 자리에서 하나하나 맺어갑시다. 어렵고 힘든 것이 사실이지만 그러기에 삶에서 우리는 더욱 값진 행복이라는 꿀을 얻고, 부활이라는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 꽃이 되고 벌이 되는 사랑의 5월이 되도록 합시다.

이규현(가롤로보로메오) 신부
  | 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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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하신 예수님의 사랑 넘치는 시선으로 교회는 오늘 우리 자신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어떤 모습의 신앙인공동체를 원하시는가? 오늘 말씀은 그 답을 우리에게 제시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오늘 제1독서는 바오로의 1차 선교 여행의 결론 부분입니다. 바오로는 각 공동체에게 그리스도 신자로 사는 삶이 부분적으로 또는 상당히 고통스러울지라도, 그것은 올바른 길로 가는 표지임을 전합니다. 그 길이야말로 바로 예수님 자신이 지상에 머무시는 동안 걸어간 길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처럼 사도 바오로도 그리스도 신자들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합니다”(사도 14,22).

오늘 제2 독서에서 사도 요한은 하늘나라에서 우리의 것이 될 상상할 수 없는 기쁨을 우리가 이해할 수 있게 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요한은 땅과 바다의 소멸을 알리면서 시작합니다(묵시21, 1 참조). 이는 죄나 사탄이 있을 여지가 없는 하늘나라를 알리는 것입니다. 요한은 이사야 예언자의 말을 인용하며 마치 울면서 집에 오는 아이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어머니처럼, 하느님께서 하늘나라에 당도한 이들의 눈물을 닦아 주시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요한에 의해 묘사된 이 빛나는 그리스도인 공동체 모습이 정말로 현실이 될 것인가? 그렇습니다. 그것은 우리에게도 하나의 현실이 될 것입니다. 그러기에 참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기 위한 힘든 노력은 계속할 가치가 있습니다. 그러나 매우 쉽게 유혹을 당하고 자주죄에 떨어지는 현재 우리의 모습을 바라보노라면, 우리는 어떻게 지금 하늘나라에 있는 우리 형제들처럼 훌륭한 사람으로 변화할 수 있을지 궁금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사도들을 막 떠나시려 할 때, 이러한 변화의 비밀을 알려 주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3,34). 서로의 사랑이기적을 일으킬 것입니다. 그것은 새로운 계명입니다. “하느님께서 사랑하신 것처럼 사랑하기를 배워라. 하느님께서는 조건없이 사랑하신다. 그분의 사랑은 모든 사람에게 미친다. 사랑하는 것이 그분의 유일한 일이다. 너희도 그처럼 사랑해야 한다.”

오늘 말씀의 메시지를 파악하고 나서야 우리는 처음 설명할 때 우리 자신에게 던졌던 질문에 대한 답을 얻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우리에게 베푸신 사랑에 응답하기 위해 우리가 어떤 그리스도 신자공동체가 되기를 원하시는가?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부르고 있습니다. 세례때 당신과 우리가 맺은 계약에 충실하라고,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어떤 노력도 아끼지 말라고, 어떤 희생이 있더라도 모든 이를 사랑하는 데 헌신하라고, 우리 신앙인형제들과 기쁨과 슬픔을 나누라고, 머지않아 영원히 천국에서 하느님과 함께 살게 된다는 것을 깨닫고 삶을 착실하고 기쁘게 살라고….

수원교구 서용석 신부
  | 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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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새 계명이 의무라고?

신학교에서 대학원 1학년생들은 ‘영성 심화의 해’라는 프로그램에 따라 다른 학년들과는 분리된 공간에서 기도와 미사를 봉헌하며 생활한다. 영성 생활의 진보를 위해 학생들은 매주 개별 면담을 하고, 매일 끝기도 후 긴 묵상기도 시간을 갖는다. 게다가동아리 활동은 물론 외출도 금지되며, 전체 학생들의 체육 행사에 참석하는 것도 신중히 고려될 만큼 기도생활에 전념하도록 요청받고 있다. 하지만 대학원 1학년생들에게는 그들만의 자체 휴식공간이 마련되어 있어, 이 공간에서 차도 마시고 담소도 나누며 영적 성장을 위한 노력에 힘쓰고 있다. 그런데 이 공간에는 커피나 차가 떨어지는 경우가 없다. 그 이유는 학생들이 ‘자기 소유’를 주장하지 않고, ‘공동 소유’(사도 2,44참조)라는 초대 교회의 정신을 모방한 듯, 형제적 사랑으로 물질과 마음을 모두 함께나누기 때문이다. ‘우리’보다는 ‘나’가 더 중시되는 현사회의 흐름 속에서 모든 것을 공유하는 신학생들의 모습은 나에게도 자극제가 되어, 내게 주어진 것들도 ‘나의 것’이 아닌 ‘우리의 것’임을 생각하며 살게 된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요한13,34) 하고 말씀하신다. 하지만 우리는 이 말씀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편하지 않다. 왜냐하면 ‘사랑하라.’는 계명을 실천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체험으로 너무도 잘알고 있고, 그것을 행하지 못하는 자신의 초라함(?)도 절감하기에 그러하다. 하지만 예수님은 ‘계명의 부과’라는 의미보다는 ‘새 계명을 준다.’라는 표현을 사용하셨다. 여기서 ‘주다’라는 동사의 의미는 ‘선물’을 뜻한다고 한다. 그러기에 이 계명은 짊어져야 하는 의무라기보다는 축복의 선물로써 작용하는 것이다. ‘새 계명’의 실천은 오히려 우리를 내적으로 더 자유롭고 풍요롭게 만든다. 특히 이 말씀 바로 전에 예수님은 이제“하느님께서 아들을 통하여 영광스럽게 되셨으며”(32절 참조)라고 말씀하신다. 즉, 예수님은 십자가를 짊어지게 되시지만 이는 고난만이 아닌 ‘새 계명’의 실천이며, 그것이야말로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사건이 되는 것이다.

하느님의 거룩함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 드러났듯이, 우리가 서로를 하느님이 주신 선물로 인식하고 받아들일 때, ‘새 계명’은 완성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서로 사랑하라.’라는 계명은 준수해야 할 명령으로 제시되기보다는,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그것을 통해 우리가 더욱더 주님과 가까워질 수 있는 선물로서 작용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진정한 하느님의 백성이 되어 지금 이곳에서 ‘새 하늘과 새 땅’(묵시21,1)을 실현하면서, 하느님 나라를 건설해 가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새 계명’을 통해 형제들을 새롭게 만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 수원교구 노희철 베드로 신부 : 2016년 4월 24일
  | 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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