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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전주] 사랑이라는 평화
조회수 | 2,207
작성일 | 07.05.13
초기 그리스도 교회가 하나의 종교로서 출발하는 데에는 몇 가지 큰 장애가 있었습니다. 첫째는 희랍의 발달된 거센 문화였으며, 둘째는 로마라는 강력한 이방인 세력이었고, 셋째는 율법을 고집하는 유다이즘이었습니다.

오늘 1독서에서는 율법을 고집하는 유다교 계통의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이방인들이 그리스도교로 개종하기 위해서는 할례를 받아야 한다는 것을 주장한 내용입니다. 이것은 아주 중대한 문제입니다. 다시 말해 "구원이 율법에서 오느냐? 아니면 믿음에서 오느냐?" 라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사도들은 예루살렘에 회의를 소집했고 거기서 결정한 사항은, 새롭게 그리스도교 신자가 되는 이들에겐 율법의 멍에를 더 이상 지우지 말자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여기에서 그리스도교의 한 매듭이 정립이 되며 말썽이 많던 요지를 해결해 버립니다. 구원이 율법에서 사랑으로 넘어가는 것입니다.

사도들은 이 결정을 하면서 '성령의 결정'이라고 선언합니다. 바로 이것이 오늘의 공의회며 사도들의 후계인 주교들의 결정은 '성령의 결정'으로서 오늘날까지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2독서에서는 새 예루살렘의 도성을 보여 줍니다. 그 도성에는 아름다운 치장이 있지만, 그러나 가장 중요한 성전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알고 보니 성전은 아버지 하느님과 어린 양이신 그리스도 자신이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궁극적으로 들어가고자 하는 천상의 성전은 아버지 하느님과 그의 아들 예수님이십니다. 이분을 영접하면 성전에 들어간 것이며 이분을 믿으면 성전을 이미 찾은 것입니다. 그러니 결론은 뻔합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예수님을 믿고 받아들이면 이미 성전은 우리 안에 건설되어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사람이 율법으로만 구원될 수 없듯이, 우리도 세례만 받았다 해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물론 세례에 의해서 하느님의 나라는 활짝 개방이 되었지만, 우리가 직접 올라가지 않으면 그분의 나라는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층계도 없고 사다리도 없는데 어떻게 올라가느냐?

그것은 '사랑'입니다. 우리가 하느님 나라에 가는 제일 확실하고 안전한 방법은 사랑입니다. 이 사랑 때문에 우리가 그리스도를 통해 천상의 영광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이 바로 그 말씀을 하십니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계명을 잘 지킬 것이며 아버지와 나는 그를 찾아가 그와 함께 살 것이다."

사랑하는 마음과, 사랑하는 인생과, 사랑하는 가정 안에는 아버지와 예수님이 찾아가시어 거기에 머무십니다. 아버지와 예수님이 거기 머무르시면 평화는 저절로 피어나게 됩니다. 아무리 가난하고 힘들어도 주님이 거기 계시면 천국의 평화가 그곳에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잘먹고 잘산다 해도 주님이 거기 계시지 않으면 평화는 없게 됩니다.

저도 성격적으로 화를 자주 냅니다. 급한 성질 때문에 제 자신을 절제하지 못합니다. 그럴 때마다 느끼는 것은, 제가 사랑을 거스르면 바로 그 순간부터 마음은 지옥이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저를 떠나시기 때문에 평화는 깨지고 썩은 오물만이 저를 괴롭힐 뿐입니다.

오늘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주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는 다르다. 걱정하거나 두려워하지 말라." 그렇습니다. 주님이 주시는 평화는 우리 고집에 있지 않습니다.

시어머니를 미워하는 어떤 며느리가 있었습니다. 물론 시어머니의 심성이 고약한 면도 있었지만 그러나 며느리의 근본적인 자세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러니 믿는 집에 평화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거기 계시지 않기 때문에 가정이 지옥이요 사는 게 원수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며느리가 시장에 다녀오다가 교통사고를 만나 중태에 빠집니다. 이때 시어머니가 빠른 수혈을 해 줘서 며느리의 목숨을 건질 수 있었습니다. 바로 이 사건 때문에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가 아주 좋아졌습니다. 며느리는 시어머니의 사랑에 큰 감명을 받았고 시어머니 또한 며느리의 아픔을 통해서 다시 태어났던 것입니다.

사랑하지 않고는 평화를 만날 수 없으며 사랑하지 않고는 성전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아버지를 만나는 최고의 길은 바로 사랑입니다. 그것은 멀리 있는 사랑이 아니라 바로 우리 안에 있고 우리 곁에 있는 가까운 사랑입니다. 따라서 사랑합시다. 이것이 주님의 가장 큰 계명입니다. 이것이 또 평화를 얻는 최고의 길입니다.

광주대교구 강길웅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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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

2002년 3월 25일 일요일 고(故) 정주영 회장의 영결식이 서울 중앙 병원에서 있었습니다. 영결식이 거행되던 중 생전에 그분이 남긴 말들을 영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그 장면들 중 인상 깊게 보았던 것은,

한 기자가 “몇 세까지 살고 싶으십니까?”라고 묻자, 고(故) 정주영 회장이 웃으면서 “백오십세까지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대답하는 장면이었습니다. 생(生)에 대한 강한 애착을 보여주는 모습이었습니다. 그 대답을 들으면서 저는 몇 년 전 소 떼를 이끌고 북한을 방문하던 고(故) 정주영 회장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그 때 저는 지팡이를 짚고 주변 사람의 부축을 받아가며 걸어가는 정주영 회장의 모습을 보며 ‘얼마나 하루하루 가는 것이 아까울까? 그 많은 재산과 권력을 뒤로한 채, 이 세상을 떠나야 한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하루하루 지나가는 것이 빠르고 아쉬울까’하는 생각을 한 기억이 납니다. 물론 당시나, 또 돌아가시기 전이나 고(故) 정주영 회장의 심경이 어떠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백오십세 까지만 살았으면…”이라고 대답하신 것으로 보아 모든 것이 아쉬웠을 것입니다.

자신의 재산으로 ‘시간’을 살 수만 있다면 자신의 전 재산을 주고라도 ‘시간’을 사고 싶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영원히 살고 싶어 하는 것은 인간이면 누구나 한 번 쯤 가져보는 소망일 것입니다.

주님 안에서 하나인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라고 말씀하십니다. 평화를 주기는 주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평화와는 다르다는 말씀입니다. 사실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소망들 중 하나는 평화일 것입니다. 평화를 바라지 않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한 평화를 늘 갈망하며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주님께서는 ‘평화를 주고 간다. 그런데 이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는 다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무엇을 향해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가르침을 주시는 것입니다. ‘백오십세’ 아니 불로장생을 위해 몸에 좋은 것이라면 장소 불문하고 찾아 나서고, 마치 영원히 살 것처럼 자녀들에게 몸에 좋은 보약, 좋은 학원, 고액의 과외는 시키지만, 학원 때문에 첫영성체를 초등학교 졸업할 때까지도 시키지 못하는 부모라고 한다면, 결국 우리는 자녀들에게 현세적인 작으마한 행복은 줄수 있을지 모르지만(그것도 장담할 수 없지만)영원한 생명은 결코 자녀들에게 물려 줄 수는 없을 것입니다.이제 우리는 주님께서만 주시는 평화를 얻어 누리기 위해 우리의 눈을 주님께로 향해야 할 것입니다. 주님께서 남겨주신 그 평화를 만나기 위해 노력하는 한 주간 되시길 빕니다.

전주교구 김정현 신부
  | 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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