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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 두 부류의 삶
조회수 | 2,246
작성일 | 07.05.13
오늘은 부활 제6 주일입니다. 방금 우리가 복음을 통하여 들은 예수의 말씀은 참으로 많은 것을 묵상하게 합니다. 결론부터 말씀을 드리자면, 그리스도교인들의 신원(身元) 혹은 정체(正體), 영어로는 Identity가 무엇인가 하는 점입니다. 즉 그리스도교인들은 어떤 모습으로 살며, 어떤 능력으로 살며, 무엇을 누리면서 사는가 하는 점을 명쾌하게 밝히는 말씀입니다. 이 땅 위에 살지만 이 땅에 속한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께 속한 사람으로서의 그리스도교인들의 삶의 지표를 밝혀 주신 대목이라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이 땅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모습은 각양각색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두 부류의 사람으로 구별할 수 있습니다. 한 부류의 사람들은 예수를 믿고 그분의 가르침을 따라서 사는 사람들이고, 다른 한 부류의 사람들은 세속의 원리를 따라서 사는 사람들입니다. 두 부류가 겉모습으로는 서로 다를 바가 없는 것 같지만, 삶의 질이라는 점에 있어서는 판이하게 다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말을 잘 지킬 것이다. 그러나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내 말을 지키지 않는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근본적인 차이점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리스도교인들은 예수를 사랑하는 사람이고 예수를 사랑하기에 예수의 말씀을 따라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즉 예수의 말씀을 삶의 원칙으로 삼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그리스도교인들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예수의 말씀이란 무엇입니까? 이미 지난 주일에도 강조한 바가 있습니다만,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 예수의 가르침입니다. 스승이요 주님이신 예수께서 하신 것처럼, 이웃을 섬기는 것, 누구에게 자신이 바라고 싶은 것을 자기 자신이 먼저 해주는 것, 그리고 사심 없이 용서하는 것, 이런 것들이 바로 사랑하는 방법입니다. 이렇게 사랑하려면 독단과 독선을 버려야 하고 자기 중심적인 삶의 자세를 버려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랑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의 삶의 모습은, 언제나 바보 같고 어리석어 보이는 법입니다. 그렇지만 이런 모습이 그리스도교인들의 참모습입니다. 이런 모습이 스승이신 예수를 닳는 모습입니다.

예수께서는 오늘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말을 잘 지킬 것이다. 그러면 나의 아버지께서도 그를 사랑하시겠고, 아버지와 나는 그를 찾아가 그와 함께 살 것이다." 스승이신 예수의 말씀을 따르는 생활을 하기에 바보스럽고 어리석어 보이는 사람들이, 하느님으로부터 사랑받는 사람들이고, 하느님과 함께 하는 사람들입니다. 여러분이 자녀를 키우고 계시지만, 부모인 여러분의 말을 잘 듣는 자녀들을 사랑하는 것은 참으로 자연스러운 일이고, 당연한 일입니다. 예수의 말씀을 가슴에 간직하고 그 말씀을 따라서 사는 사람들이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들이라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

이제 이렇게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들에게 예수께서는 성령을 보내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 주실 성령 곧 협조자는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쳐 주실 뿐만 아니라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을 모두 되새기게 하여 주실 것이다."

성령 곧 하느님의 영은 하느님의 능력입니다. 하느님의 사랑받는 사람들은 하느님의 영을 받고, 그 가르침을 따라서 사는 사람들입니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 아닙니까? 하느님께 속한 사람들, 하느님의 사랑받고 주님의 말씀을 지키는 사람들은 하느님의 영으로 충만하여서, 하느님의 영의 인도로 사는 사람들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지키는 사람들이 세상 사람들의 눈에 어리석어 보이지만, 용기를 잃지 않고 그 어리석음 가운데서도 꿋꿋하게 살아가는 것은, 하느님의 영이 그들 가운데서 살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끊임없이 예수의 가르침을 되새겨 주시는 성령의 힘으로 늘 새롭게 태어나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보십시오. 그들의 삶의 원칙은 적자 생존의 원칙, 약육강식의 원칙입니다. 자신보다 강한 사람 앞에서는 머리 숙여 조아리고, 자신보다 약한 사람은 무자비하게 짓밟고, 언제나 자기 중심적이며, 항상 손해보다는 득을 보아야하며, 당한 일은 언제나 복수하여야 직성이 풀리는 것입니다. 얼마나 영악하고 꾀스럽고 약삭빠릅니까? 이러해야만 이 악한 세대에서 살아 남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천만의 말씀입니다. 사실은 이와 정반대입니다. 오히려 세상은 더욱 살벌해지고 다 함께 죽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짐승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짐승이기를 거부하면서 인간이 되기를 바라는 사람들, 스승이신 예수의 말씀을 지키면서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이 세상은 아름다운 세상, 살기 좋은 세상으로 변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의 원칙을 따르면서 약삭빠르게 사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이 세상은 참으로 살벌한 세상, 난장판 세상이 될 것입니다.

한편, 이 세상의 원칙을 따라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하느님의 영이 아니라, 악령의 지배를 받는 사람들입니다. 악령의 지배를 받는 사람들은 어둠을 좋아하는 사람들입니다. 싸우고 다투기를 좋아하는 사람들, 원수 갚고자 하며, 이웃이 잘못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바로 그들입니다. 우선 보기에 그들이 힘있어 보이고, 득세하여 잘되는 것 같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혼란과 멸망이 그들의 운명입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세 번째로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주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주는 것이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는 다르다. 걱정하거나 두려워하지 말라." 이 말씀에서도 세상에 속한 사람들과 하느님께 속한 사람들의 근본적인 차이를 알게 됩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들, 하느님의 영의 인도를 받으면서 사는 사람들은 주님의 평화를 누리는 사람들입니다. 주님의 평화는 이 세상 사람들이 누리는 평화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평화입니다. 성령의 능력 안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받으면서 누리는 평화는 그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는 평화이며, 그 무엇으로도 깰 수 없는 확고한 평화입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을 바탕으로 한 평화이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에게 “걱정하거나 두려워하지 말라." 하셨습니다. 어머니를 믿고 신뢰하는 어린 아기는 어머니 품에서 아무런 두려움도 걱정도 없이 평화롭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하느님을 믿는 사람들은, 하느님 안에서 그 무엇도 걱정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세상에 속한 사람들과 하느님께 속한 사람들과의 근본적인 삶의 차이입니다.

하느님 안에 사는 사람들은 내일을 염려하거나 걱정하지 않습니다. 내일은 아직 오지 않았고, 내일은 우리의 시간이 아니라 하느님의 시간입니다. 더구나 내일 우리가 살아 있을지 죽어 있을지 알지도 못합니다. 그러므로 내일을 염려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지나간 과거를 염려하는가 하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어제는 이미 지나간 시간이며, 비록 어제의 시간이 죄로 얼룩진 시간이라 하더라도 이미 하느님으로부터 용서받은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앙인은 하느님의 사랑과 성령의 인도하심 가운데 평화를 누리며 오늘에 성실한 사람들, 지금에 충실한 사람들입니다.

신앙인은 죽음을 두려워하지도 않습니다. 죽음은 이미 주님이신 예수의 부활로 극복된 실재이기 때문입니다. 세례를 받음으로써 과거에 죽고, 주님 안에서 새 삶을 누리는 신앙인들은 그래서 언제나 평화롭습니다. 신앙인은 무엇을 먹으며 무엇을 입을까 하고 걱정하지도 않습니다. 하늘을 나는 새도 먹이시고 길가의 하찮은 꽃들도 화려하게 입히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믿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성실한 삶을 통하여 그 모든 것들이 해결되리라 믿는 사람들이 신앙인들입니다. 그래서 신앙인들이 누리는 평화는 이 세상이 주는 평화와는 근본적으로 다르고, 신앙인들은 언제나 흔들리지 않는 꿋꿋한 삶을 누리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그렇지 못합니다. 매사가 불안하고 두렵기만 합니다. 그들은 하느님 안에 서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사라지고야 말 돈과 재물과 권력과 명예와 향락 안에 안주하려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안전을 보장받기 위하여 모든 수단을 강구합니다. 돈과 재물을 쌓음으로써 안전을 보장받으려 하고, 권력과 명예를 얻음으로써 안전을 보장받으려고 합니다.

그리고 힘과 무력으로 자신의 안전을 보장받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애를 쓰면 쓸수록 더욱 불안해집니다. 그 모든 것이 사라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돈과 재물과 권력과 힘을 바탕으로 한 세상의 평화는 참된 평화가 아닙니다. 거짓 평화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 거짓 평화에 매달려서 그 평화를 잃게 될까 불안해합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 예수께서 들려주신 말씀을 잘 음미해 보면, 신앙인인 우리는 참으로 대단한 사람들입니다. 겉모습으로 보기에 세상 사람들과 구별되지는 않지만, 삶의 질은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하느님을 믿기에 공짜로 주어진 은총이지, 우리가 자격이 있어서 쟁취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주시고, 그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는 평화를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립시다. 그리고 늘 하느님의 자녀로서의 모습을 잃지 않고 은총 속에 머물도록 합시다.

주님의 말씀을 지키기에 하느님으로부터 사랑받고,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서 평화를 누리는 나날의 삶이 끝없이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주고 간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는 다르다. 걱정하거나 두려워하지 말라.

마산교구 강영구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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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는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킬 것이다.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내 말을 지키지 않는다.”라고 말씀하십니다. 한마디로 예수님을 사랑하느냐 사랑하지 않느냐는 그분의 말씀을 실천하는가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먼저 그분께서 우리에게 하신 말씀이 무엇인지 알아야 하겠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하신 말씀은 많은 것 같지만, 사실 그 모든 것을 종합해보면 사랑의 계명으로 요약됩니다. 주님께서는 율법의 근본정신이 사랑에 있다고 말씀하셨고, 하느님과 이웃 사랑이 첫째와 둘째가는 계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결국,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이웃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사람임을 깨닫게 됩니다. 사랑의 계명을 실천하는 사람 안에는 하느님께서 늘 함께 하십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내 말을 지키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그에게 가서 그와 함께 살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우리’라는 말은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가리키고 있는 것입니다. 곧 사랑의 계명을 실천 하며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서 함께하신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하느님의 본질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서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며 사는 사람은 성령께서 함께하시기 때문에 성령을 통하여 진리를 보고 하느님의 말씀을 깨닫게 됩니다. 평화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께서 함께하셔야 참다운 평화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의 계명을 살아가는 사람은 하느님께서 함께하시기 때문에 평화로울 수 있습니다. 그리고 평화로운 사람은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도, 겁을 내는 일도 없습니다. 결국, 사랑은 평화를 가져오며 두려움과 걱정에서 벗어날 수 있는 힘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랑의 계명을 실천하는 사람은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며, 주님이 주시는 진리와 평화 속에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마산교구 황인균 요셉 신부
  | 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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