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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참회
조회수 | 2,367
작성일 | 07.06.15
자식을 맹목적으로 사랑하는 과부가 외아들과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그 아들이 장성하여 돈벌이하러 떠났습니다. 그러다가 사업에 실패하고 나중에 유명한 도둑의 부하가 되려고 소굴에 찾아갔습니다. 도둑의 두목은 부하가 될 그 청년의 심정을 테스트하기 위하여 문제를 하나 던집니다. “너 정말 의리 있게 우리와 동업할 생각이 있거든 지금 가서 네 어머니의 심장을 도려와라. 그러면 입당시켜 주마”하였습니다.

도둑으로서의 출세에 눈이 어두운 청년은 즉시 어머니가 사는 집으로 달려갔습니다. 언덕 위에 날마다 올라가서 아들이 언제 돌아오나 기다리던 그 어머니는 멀리서 아들이 오는 모습을 보고 아주 반갑게 신발이 벗겨지고 치마가 끌리는 것도 모르도록 달려가서 안으려 하였습니다. 그러자 어머니와 마주선 아들은 다짜고짜 아무 말도 없이 어머니의 가슴에 칼을 꽂아 붉은 심장을 도려내고 말았습니다.

그러고선 피가 흐르는 심장을 주머니에 집어넣고는 두목에게로 갖다바칠 생각으로 냅다 달음질했습니다. 그러다가 너무나 서두르는 바람에, 그리고 어머니를 죽였다는 두려움 때문에 돌부리에 발이 걸려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주머니에 넣었던 어머니의 심장이 떨어져 굴러갔습니다. 그때 “얘야 어디 다친 데 없냐?” 하는 어머니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아들을 걱정하는 어머니의 마음이 죽어서까지 베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때 그 아들은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비로소 자기가 저지른 잘못과 어머니의 무한한 사랑을 느꼈던 것입니다.

어머니의 무한한 사랑을 깨달았을 때 자기의 행위가 얼마나 가증스러웠는가를 알게 됩니다.

아들이 어머니의 심장을 도려내는 이야기는 단순히 꾸며진 이야기만은 아닙니다.

오늘날 바로 우리네 현실에서 일어나는 이야기입니다. 부모가 용돈을 충분하게 주지 않는다고 때려 숨지게 하는 사건이나, 애인과의 결혼을 반대한다고 자기 집에 불을 질러 버리는 사건들이 신문에 자주 나타납니다. 비록 서정쇄신이라는 말로써 새로운 사회 분위기를 형성해보려는 노력이 있지만 만성화, 체질화되다시피 한 부정부패는 고사하고라도 우리네 주변에는 죄를 짓고도 버젓이 낯두껍게 고급 승용차를 모는 사람들을 볼 수가 있습니다.

자기의 안락한 생활을 위해선 억대나 되는 고급 응접 세트를 들여야 하고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는 폐유도 수입하는 따위는 그 모두가 죄짓고도 태연한 우리네 현실을 드러내는 표본들일 것입니다. 우리가 자기만을 위해선 어떤 일이라도 해치우겠다는 생각이 우리마음에 도사리게 될 때 죄는 탄생하게 됩니다. 그리고 나만을 위해서 하는 일이 모두 떳떳하고 당연하다고 생각할 때 그 죄는 부끄러운 줄 모르게 됩니다.

오늘 우리는 복음성서에서 아주 소박한 참회의 장면을 봅니다. 동네에서 행실이 나쁘다고 소문이 자자한 여인이 염치불구 남의 집 잔치에 불청객으로 찾아와 예수님의 발에 눈물을 떨구고 긴 머리털로 씻으며 입을 맞추고 옥합을 깨뜨립니다. 정말로 우리네 사회는 이처럼 가장 죄없는 분 앞에 엎으려 참회의 눈물을 흘리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자신의 죄를 깊이 뉘우칠 때, 그분은 무한한 자비로 용서하시며 당신의 사랑을 보여주십니다.

윤임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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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강론의 주제는 ‘회개하면 용서받아 인생이 역전된다.’입니다.

오늘 제1독서는 사무엘기 하권의 말씀입니다(12,7ㄱㄷ-10.13). 예언자 나탄이 다윗왕의 잘못을 지적하자 잘못했다고 고백합니다. 그 무렵 나탄이 다윗에게 말하였다.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임금으로 세우고, 너를 사울의 손에서 구해 주었다. 나는 너에게 네 주군의 집안을, 또 네 품에 주군의 아내들을 안겨 주고, 이스라엘과 유다의 집안을 주었다. 그래도 적다면 이것저것 너에게 더 보태 주었을 것이다. 그런데 어찌하여 너는 주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주님이 보기에 악한 짓을 저질렀느냐? 너는 히타이트 사람 우리야를 칼로 쳐 죽이고 그의 아내를 네 아내로 삼았다. 너는 그를 암몬 자손들의 칼로 죽였다. 그러므로 이제 네 집안에서는 칼부림이 영원히 ! 그치지 않을 것이다. 네가 나를 무시하고, 히타이트 사람 우리야의 아내를 데려다가 네 아내로 삼았기 때문이다.’” 그때 다윗이 나탄에게 “내가 주님께 죄를 지었소.” 하고 고백하였다. 그러자 나탄이 다윗에게 말하였다. “주님께서 임금님의 죄를 용서하셨으니 임금님께서 돌아가시지는 않을 것입니다.” 시편 51장에 다윗의 참회 기도가 있습니다. "하느님, 당신 자애에 따라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당신의 크신 자비에 따라 저의 죄악을 지워 주소서. 저의 죄에서 죄를 말끔히 씻으시고 저의 잘못에서 저를 깨끗이 하소서. 저의 죄악을 제가 알고 있으며 저의 잘못이 늘 제 앞에 있습니다."(시편 51,3-5) 다윗왕은 심복 우리야를 죽게 하고 그의 아내를 빼앗은 잘못을 뉘우친 것입니다. 끝까지 자신을 변명했다면 다윗은 더 이상 하느님의 사람으로 남지 못했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을 봅시다. 루카 복음 7,36-8,3절입니다. ...그 고을에 죄인인 여자가 하나 있었는데, 예수님께서 바리사이의 집에서 음식을 잡수시고 계시다는 것을 알고 왔다. 그 여자는 향유가 든 옥합을 들고서 예수님 뒤쪽 발치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분의 발을 적시기 시작하더니 자기의 머리카락으로 닦고 나서, 그 발에 입을 맞추고 향유를 부어 발랐다. 예수님을 초대한 바리사이가 그것을 보고, ‘저 사람이 예언자라면, 자기에게 손을 대는 여자가 누구이며 어떤 사람인지, 곧 죄인인 줄 알 터인데.’ 하고 속으로 말하였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시몬아, 너에게 할 말이 있다.” 시몬이 “스승님, 말씀하십시오.” 하였다. “어떤 채권자에게 채무자가 둘 있었다. 한 사람은 오백 데나리온을 빚지고 다른 사람은 오십 데나리온을 빚졌다. 둘 다 갚을 길이 없으므로 채권자는 그들! 에게 빚을 탕감해 주었다. 그러면 그들 가운데 누가 그 채권자를 더 사랑하겠느냐?”시몬이 “더 많이 탕감 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옳게 판단하였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그 여자를 돌아보시며 시몬에게 이르셨다. “이 여자를 보아라. 내가 네 집에 들어왔을 때 너는 나에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않았다. 그러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자기의 머리카락으로 닦아 주었다. 너는 나에게 입을 맞추지 않았지만, 이 여자는 내가 들어왔을 때부터 줄곧 내 발에 입을 맞추었다. 너는 내 머리에 기름을 부어 발라 주지 않았다. 그러나 이 여자는 내 발에 향유를 부어 발라 주었다. 그러므로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이 여자는 그 많은 죄를 용서받았다. 그래서 큰 사랑을 드러낸 것이다. 그러나 적게 용서받은 사람은 적게 사랑한다.” 그러고 나서 예수님께서는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그러자 식탁에 함께 앉아 있던 이들이 속으로, ‘저 사람이 누구이기에 죄까지 용서해 주는가?’ 하고 말하였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 여자에게 이르셨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 킷?.” 이상입니다. 율법주의자 시몬은 죄인을 가까이하시는 예수님을 못마 땅해 합니다. 그의 상식으로는 죄인일수록 멀리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많이 용서받은 사람이 많이 사랑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제 그 여인은 죄인으로서가 아니라 용서받은 이로, 즉 은총을 받은 이로 변화됩니다. 인생이 역전되었습니다.

많이 용서받은 사람이 많이 사랑합니다. 용서에 대한 보답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용서받았습니다. 다만 그 사실을 모르고 있을 뿐입니다. 회개할 것이 없다고 하는 사람들은 문제가 있습니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누가 더 큰 죄를 지었는지, 아니면 누가 나보다 더 악한 사람인지 판단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우리 모두 죄를 지으며 살아간다는 점입니다. 고로 우리도 회개해야 합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진정으로 청하는 회개의 눈물을 '큰 사랑'으로 받아주실 것입니다. 사도 바오로는 로마서에서 "나는 과연 비참한 인간입니다. 누가 이 죽음에 빠진 몸에서 나를 구해줄 수 있습니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를 구! 해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로마 7,24-25)라고 고백합니다. 우리도 회개로 인생 역전을 노립시다. 아멘. 감사합니다.

대전교구 방윤석 신부
  | 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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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여인은, 주님께 감동을 드릴 만큼 진심어린 회개와 사랑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그 여인이 과거에 어떻게 살았는지, 또 지금은 무엇을 하고 사는지, 아무것도 묻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여인의 회심의 눈물과 또 당신에게 보여드린 사랑과 정성을 보시고, 그녀가 지은 과거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축복하십니다.

이처럼 우리가 주님께 드릴 수 있는 것은, 진심어린 회개와 극진한 사랑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정성과 사랑과 믿음을 보시고 그에 맞갖은 은총을 주십니다. 과오 한 번 저지르지 않고 순백의 인생을 살아 낸 성인은 없습니다. 또 주님의 사랑 앞에서 희망이 없는 죄인도 없습니다. 주님께서 거듭거듭 말씀하시는 것은 회개하고 당신의 말씀을 믿고 실행하라는 것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사랑이신 주님은 사람의 겉모습이나 살아 온 지난날을 보시지 않습니다. 그런데 당시 예수님의 등장은, 당시 유다 사회 안에서 참으로 큰 혼란을 초래했습니다. 사랑이 부재하던 그 사회 안에서, 예수님의 가르침은 기존의 사회 질서와 가치관을 완전히 뒤엎는 전혀 새로운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자신의 집에 초대한 바리사이나 유대인들에게 있어 예수님은 너무도 파격적인 분, 또 충격적인 새로움이었기에 자신들의 고착된 사고방식으로는 도저히 수용할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유다인들이 벌레처럼 여기고 상종조차 하지 않았던 나병환자, 창녀, 세리, 이방인들과 서슴없이 만나시고 친구가 되셨습니다.

지금 우리들 역시, 죄 속에 살면서도 새로움이시고 사랑으로 오시는 주님을 선뜻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 현실의 생활입니다. 또 주님께 대한 신앙과 사랑을 입에 달고 살지만, 주님을 감동시켜드릴 만큼의 회개와 정성을 드리지 못합니다.

죄에 얼룩진 낡은 자신을 버리고 진심어린 회개와 사랑을 드리는 일만이 필요합니다. 자신을 벌레처럼 여기고 멸시하던 바리사이파 사람의 집으로 예수님을 찾아가는 그 여인의 용기와 결단이 우리에게도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각오와 실천이 바로 주님께 드릴 가장 큰 예물이고 선물입니다. 가장 귀한 것 또는 하기 힘들지만 주님을 만나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라도 할 수 있는 정성을 쏟을 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또는“네 믿음이 네 가정과 이웃을 구원하였다.”하고 주님께로부터 축복의 말씀을 들을 수 있습니다.

▶ 구자윤 비오 신부
  | 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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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한 열정

연중 시기 전체를 하나의 단어로 요약한다면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어쩌면 그 답은‘열정’이라는 단어일지도 모르겠다. 연중 시기는 예수님의 공생활, 즉 제자들을 불러 모으시고, 병자들을 치유하시며, 수많은 기적과 이적을 베푸시고, 적대자들과의 치열한 논쟁을 하시던 예수님의 모습을 바라보는 시기이다. 이 모든 예수님의 말씀과 활동의 뿌리엔 분명히 그분의‘열정’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아버지 하느님께 대한 사랑과 믿음, 정의에 대한 갈망으로 말미암아 당신 주위에 존재하는 약하고 불쌍한 이들을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 그 뜨거운 마음,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열정인 것이다.

중·고등학교 시절 무작정 영단어를 외우는 것이 영어 공부의 대부분을 차지하던 때, 영어 단어‘passion’이 우리말로 열정을 뜻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때는 영어 사전의 첫 번째 뜻만을 외우면 되던 시절이어서, ‘passion=열정’이라고만 외워두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우연히 다시 사전을 찾아보다가 그 단어의 마지막 뜻을 보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의 수난, 고통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영화, ‘The Passion of The Christ’에서 쓰인‘passion’이 바로 열정을 의미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수난을 의미하는 것처럼 말이다. 아무튼 나는 왜 이 열정이라고 알고 있는 단어가 예수님의 고통을 의미하게 되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되었다.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바로 예수님의 생애가 바로 그 답이라는 것이었다. 공생활을 통해 보여주신 예수님의 모든 삶은 하느님과 인간에 대한 열정에 바탕을 둔 것이었다. 하지만 그 열정으로 인한 예수님 삶의 결론은 처절한 고통, 곧 십자가였다. 정의와 사랑에 바탕을 둔 뜨거운 열정은 그 자체로는 매우 존경스럽고, 거룩한 것이지만, 그것은 언제나 주위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마치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과 죄 많은 한 여인이 회개와 용서를 체험하는 자리에서 주변인들이 불편을 느낀 것처럼 말이다. 결국 이 불편함은 예수님을 십자가로 내몰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진리와 사랑에 대한 열정으로 요약할 수 있는 예수님 공생활의 결론은 결국 십자가가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로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끔 한다. 과연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우리들은 끝이 뻔히 보이는 이 열정의 삶을 끝까지 살아낼 수 있는 것인가. 아니 어쩌면 그 열정이라는 것이 우리에게 존재하기는 하는가. 연중 시기, 매 주일 복음 말씀을 들으며 예수님의 열정이 불편해지고 있는 우리는 아닌지 되물어보게 된다.

대전교구 이재홍 프란치스코 신부
  | 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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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사랑에 무딘 마음아

5월 성모성월의 끝자락에 어머님이 선종하셨습니다. 기력이 쇠잔해져 혼미한 상태에서도 아들 신부를 기다리느라 눈을 감지 못하고 애타는 심정으로 저를 기다려 주셨던 어머니의 간절하고 절박했던 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들 신부의 기도와 성사를 받으시고 사죄의 말씀과 사랑 고백을 받으시고는 길고 고달팠던 인생여정을 마무리하시고 마지막 굵은 눈물 한 방울로 모든 말씀을 대신하시며 고요히 눈감으셨습니다.

저는 어머니의 선종과 일생을 돌이켜보면서, 인간이아니 제가 얼마나 이기적인 동물이었는지를, 얼마나 사랑에 더디고 둔한 자식이었는지를 새삼스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울러 부모님을 여읜 자식을 왜 죄인이라 하는지도 어렴풋이 알게 되었습니다. 그토록 극진하셨던 어머니의 사랑과 보살핌을 받으면서도 사목한다는 핑계로 저 좋을 대로만 살았던 이기적인 사랑과 효성이 그저 송구스러울 뿐입니다. 아들을 사제로 봉헌하고 지켜주기 위해 분골쇄신, 노심초사하셨던 고달픈 여인의 삶, 어머니로서의 인생역정을 오롯이 하느님께 믿음을 두고 버텨 오셨던 어머니께 그저 하느님의 자비를 간청할 뿐입니다.

오늘 복음서에서 ‘죄 많은 여자’라 일컬어지던 여인은 주님으로부터 용서를 받았습니다. 크나큰 은혜를 입은 그 여인은 그 후 누구보다 충직한 주님의 제자로서 그분의 뒤를 따랐고, 오늘날까지 회개(悔改)의 모범으로 회자되고 있습니다. ‘많이 용서(사랑)받은 만큼 많이 용서(사랑)하게 된다.’는 것은 복음의 진리입니다.

이 말씀에 비추어 제 경우를 되돌아보게 됩니다. 하느님의 사랑과 은총을, 수많은 사람들의 은혜와 도움을, 누구보다도 어머니의 사랑을 그렇게나 극진히 받고서도 어쩜 그리 무디고 더디고 배은했던지, 그러고 보면 자신이 빚진 존재임을 망각하고, 그저 철딱서니 없이 받으려고만 하며 보챘던 어리석음을 깨닫지 못했던 듯합니다. 바로 내 앞에서, 내 곁에서, 평생을 한 번도 떨어져 보지 않고 함께 살면서 가까이에서 그렇게도 지극한 사랑을 베풀어 주시는데도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고, 갚아드리지 못하면서 무슨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를... 나눔과 베풂과 희생과 섬김을 입만 열면 그렇게도 뻔뻔스럽게 떠들어 댔는지 그저 부끄러울 뿐입니다.

세상에 올 때부터 빚을 진 존재이건만 무에 그리 잘났다고 기고만장하고 온갖 갑질을 해댔었는지 민망할 뿐입니다. 그러니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사랑을, 들리지 않는 그분의 은총을 깨닫는다는 일이 이 아둔한 몸에게는 천만부당한 일일 수밖에요. 어머님은 고요히 눈감으시는 마지막 순간까지 아들 위해, 자식 위해 다 바치시고 하늘로 오르셨습니다. 더 이상 아들에게 짐이 되어서는 안되겠다 싶으셨던지 그렇듯 불현듯 조용히, 편안히 떠나셨습니다.

과연 언제쯤에나 자신을 알고, 주제를 파악하고 죄를 살피고 사랑과 용서를 깨달을런지... 어머니의 용서와 영원한 복락을 앙망하고, 더할 수 없이 많이 받은 사랑과 용서와 은혜를 제가 베풀 때인 듯합니다. 받을 것을 기대하지 않고, 댓가를 바라지 않으며, 그저 나눌 수 있음을, 베풀 수 있음을 기쁨과 은총으로 여기면서 말입니다. 새삼 모든 믿는 이의 통공과 은혜를 느끼며 주님의 삶을 본받으려 마음을 추슬러 봅니다. 감사합니다.

▦ 대전교구 정필국 베드로 신부
▦ 2016년 6월 12일
  | 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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