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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예수님을 따르려는 사람은
조회수 | 1,879
작성일 | 04.06.22
아프리카 어느 부족은 사람을 결코 숫자로 세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들은 인구 조사를 나온 사람들에게 가족이 모두 몇 명이라고 하지 않고 가족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준다는 것입니다.  우리 역시 사람에게는 숫자로 셀 수 없는 귀중한 것이 있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지만 생활 속에서는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다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해마다 교세통계표를 만들면서 신영세자가 몇 명이나 늘었는지, 레지오 단원이 줄지는 않았는지 지난해와 비교해 가면서 고민하던 일들이 문득 부끄럽게 느껴집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세상 사람들과는 다른 셈하는 방식을 가르쳐주셨습니다. 아흔 아홉 마리 양보다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에 더 큰 비중을 둔다든가, 하루 종일 일한 사람이나 한 시간 밖에 일하지 않은 사람이나 다같이 생활에 필요한 임금을 지불한다든가, 쓰고 남은 것 가운데 많은 것을 봉헌하는 것보다 단돈 두 닢이지만 자기에게 꼭 필요한 것을 바친 과부가 가장 많은 돈을 바쳤다는 등의 가르침은 하느님께서 사랑으로 셈하시는 방법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를 버리고 매일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고 말씀하시면서 우리에게 세상 사람들과는 다른 마음의 자세를 가질 것을 요구하십니다. 자기를 버리고 십자가를 져야 한다는 것은 자기중심적으로 안락하게 살기만을 바라는 세상 사람들의 기대에는 완전히 배치되지만, 이 세상에서 예수님이 사셨던 삶의 특징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따르려는 사람들에게 당신이 사셨던 삶의 자세를 그대로 받아들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베드로의 메시아 고백 후에 영광의 메시아에 대한 기대가 한껏 고조된 가운데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셨다는 구체적인 상황을 생각할 때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따르려는 사람들은 세상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마음 자세를 버려야 한다는 것을 강력히 요구하신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신앙인들이 자기를 버리지 않고 제 십자가를 지지도 않으면서 예수님을 따를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얼마 전 교회 신문에 보도된 기사에 의하면 교회 가르침의 중요한 내용의 하나인 생명문제에 대한 설문조사에서 천주교 신자와 비신자 사이에 의식의 차이가 별로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고 합니다. 이것은 이미 잘 알고 있듯이 신앙과 삶을 분리하여 살고 있는 우리 신앙인들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잡히시던 날 밤에 멀찍이 떨어져서 뒤따라갔던 베드로처럼 그런 삶의 자세는 언젠가는 예수님을 부정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따라나서기 전에 전쟁터에 나가거나 건물을 짓는 것처럼 먼저 신중이 따져보라고 권고하셨습니다. 자기를 버릴 것인지 십자가를 질 것인지 먼저 결정한 다음에 당신을 따라나서지 않으면 길을 떠난 다음에라도 언젠가는 중도에서 포기하고 말 것입니다. 그러니까 세상 사람들의 눈에 크나큰 모험과 자기희생으로 보이는 이 길은 신앙의 눈을 뜨지 않으면 끝까지 걸어갈 수 없으며, 예리고의 맹인처럼 먼저 신앙의 눈을 뜬 다음에야 비로소 우리도 주님의 참된 동행이 될 수 있습니다.

눈앞의 이익에 정신을 빼앗기거나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거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도록 우리는 매일 자기를 버리는 노력을 하고, 세상의 계산법을 버리고 하느님의 사랑으로 셈하는 법을 배움으로써 매일 우리에게 주어지는 십자가를 지는 신앙인이 됩시다. 그리하여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새겨주신 참된 우리의 모습을 드러내어, 별을 이름 지어 불러내시는 하느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붙여주신 이름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는 날 세상은 참으로 아름답게 빛날 것입니다.

안동교구 권용오 마티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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