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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조회수 | 1,698
작성일 | 10.01.07
오늘은 주님께서 세례 받으심을 기념하고 또한 우리들이 받은 세례의 의미가 무엇인지 되새겨 보는 날입니다. 세례 때 가졌던 그 마음, 그 믿음, 그 기쁨을 다시 돌아보는 날입니다. 주님의 세례 축일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원과 사명을 온 천하 만민에게 선언하고 증언한 날이었으므로 그 사실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향하여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라는 말씀을 들려주심으로 그리스도가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이 공적으로 입증된 것입니다.

세례자 요한도 이 사실을 증언합니다. “나는 성령께서 비둘기처럼 하늘에서 내려오시어 저분 위에 머무르시는 것을 보았다. 나도 저분을 알지 못하였다. 그러나 물로 세례를 주라고 나를 보내신 그분께서 나에게 일러주셨다. ‘성령이 내려와 어떤 분 위에 머무르는 것을 네가 볼 터인데, 바로 그분이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분이시다.’ 과연 나는 보았다. 그래서 저 분이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고 내가 증언하였다.”(요한 1, 32-34) 하느님께서 일찍이 세례자 요한에게 “요한아, 네가 세례를 주는 중에 성령이 내려와 그 위에 머무르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이 하느님의 아들 메시아이시니 그분을 소개하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주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루카 3,21) 하느님께서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하셨는데 마귀는 예수님을 향해 ‘하느님께서 하신 말씀이 맞는지 시험해 보아라. 돌이 떡이 되라고 명하여 떡이 되면 하느님의 아들이 맞고(마태 4,3) 돌이 떡이 되지 않으면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들려진 것이 잘못된 것이다’라는 식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의심하게 하여 예수님을 넘어뜨리려고 흔들어 봅니다. 우리들에게도 마귀는 이런 문제를 가지고 우리의 신앙을 흔들어 댑니다. ‘네가 정말 하느님의 아들이냐? 네가 정말 구원을 받았느냐?’하며 의심이 나도록 합니다. 이럴 때 예수님은 말씀으로 마귀를 물리치셨습니다. 우리들도 말씀으로 마귀의 유혹을 물리쳐야 합니다. “주 예수님을 믿으시오. 그러면 그대와 그대의 집안이 구원을 받을 것이오.”(사도 16,31)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구원에 대해서는 다른 것으로는 확인할 수 없고, 하느님의 약속의 말씀대로 믿었으면 확실히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마귀는 우리가 살아가는 중에도 무슨 문제만 생기면 이 문제를 가지고 또 흔들어 댑니다. 사업이 좀 안되면 ‘하느님의 자녀라면서 왜 사업이 안 되지?’라는 유혹으로 방황하게 합니다. 이럴 때 마다 하느님의 말씀으로 물리쳐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세례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 성령과 말씀이 임하시어 하느님의 일을 끝까지 영광스럽게 완수하셨습니다. 우리들도 기도할 때 하늘이 열리게 됩니다. 하느님께서 내 아버지이심과 성령의 동행하심을 일깨워주고 성령께서 내 죄를 깨닫게 해 주십니다. 하느님께서 함께 하시니 근심 걱정이 사라지고 마음을 부드럽게 해주시며 전능하신 하느님께서 나를 사랑하시고 기뻐하심을 깨닫게 됩니다. 필요하면 주실 것이고 어려움이 있으면 막아 주실 것도 믿게 됩니다.

우리가 세례 받기 전에 적어도 10개월 이상 교리를 배우며 기도했고 세례를 받은 후에도 열심히 기도하며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 내가 세례 받을 때 가졌던 그 믿음, 그 기쁨, 그 감격이 커져서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열매를 맺고 있는지 살펴봄이 좋을 듯합니다.

우리가 하느님께 믿음을 고백하며 세례를 받았지만 주님을 의지하고 도움을 청하지 않고, 기도하지 않고서는 그 믿음을 지키고 키우기가 어렵다는 것을 체험하셨을 것입니다. 이제 성탄 시기가 끝나고 연중 시기가 시작되는 이때 주님께 의지하고 열심히 살아 하느님께 영광을 드립시다.

▶ 박복남 요셉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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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령은 하느님 사랑의 선물"

오늘 전례는 주님이 요한 세례자에게 세례를 받으신 날을 기념합니다. 그런데 루카복음에 따르면 요한 세례자는 세례를 준 사실이 명확하지 않습니다. 루카 복음은 주님이 세례를 받으시기 전에 요한 세례자가 옥에 갇히는 상황을 전합니다. 그래서 옥에 갇힌 요한 세례자는 과연 어떻게 주님에게 세례를 줄 수 있었는지 의심하게 합니다. 그렇다고 요한 세례자가 주님에게 세례를 주지 않았다는 증거도 없습니다. 문제는 요한 세례자가 옥에 갇힌 이후에, 하필 주님의 세례를 언급한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다른 공관 복음서들과 달리, 루카 복음은 주님이 복음 선포를 시작한 시기가 요한 세례자가 옥에 갇힌 이후가 아니라, 세례 이후라는 사실을 말하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곧 루카 복음은 주님의 세례가 복음 선포를 시작하는 계기가 되고 있음을 전하려는 것입니다. 도대체 세례와 복음 선포가 어떤 관계가 있기에 이렇게 비중을 두고 언급하는 것일까요?
 
오늘 루카 복음에 따르면 주님이 백성들 사이에 서서 세례를 받으셨고 기도를 했다고 전합니다. 그리고 하늘이 열리며 성령께서 비둘기 같은 형체로 그분 위에 내리시고, 하늘에서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라는 소리가 들려왔다고 전합니다(루카 3,21-22). 루카 복음은 주님 세례를 통해, 기도와 성령의 오심이 연결돼 있으며 이것이 모든 복음 선포의 근원적 뿌리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례는 창조적인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 세상에 대해 죽는 것을 상징합니다. 일찍이 예언자 예레미야는 고백록에서 자신이 짊어진 세상의 고통 때문에 어머니 모태에서 나오지 않았기를 절규했습니다(예레 20,17-18). 생명을 잉태한 어머니의 모태가 무덤이 되기를 희망했습니다. 그래서 세례를 위해 물에 잠긴다는 의미는 죽음을 나타냅니다. 그러나 동시에 세례는 생명의 여정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세례를 위해 잠기는 물의 의미는 어머니 모태에서 생명체를 감싸고 있던 그 생명의 물을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을 기다리는 죽음이라는 어두운 심연으로 되돌아가야 합니다. 물에 잠긴다는 의미는 그 죽음의 심연을 거쳐 이제 새로운 생명에로 건너가는 것을 상징합니다. 이 새로운 생명에 뿌리가 되는 것이 기도이며 성령의 움직임입니다.
 
세례의 놀라운 은총이 지속되려면 절대 필요한 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기도는 하느님과 함께 있고 하느님 아버지의 자녀가 됐다는 새로운 관계를 실현시켜 주는 도구입니다. 그래서 기도한다는 것은 무릎을 꿇고 아버지 하느님 앞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뜻합니다.
 
하느님 앞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자신의 뿌리를 찾는 것이며 자신의 얼굴에 스며있는 아버지 하느님의 모습을 들여다보는 것입니다. 거기에 자기 자신의 진정한 모습이 담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도는 영적으로 자신을 성장시켜 성령이 주시는 생명의 숨을 쉬게 합니다. 그 기도의 결과로 하늘이 열리는 것입니다. 닫혀졌던 영적이고 내면적인 마음이 열리는 것입니다. 아담의 불신과 저항 이후로 닫혔던 하늘이 주님을 통해 다시 열리는 것입니다.
 
세례에서 시작한 주님의 복음 선포의 장은 세상과 하늘을 연결시켜 주는 하느님의 문인 것입니다. 열려진 그 문으로 세상을 비추는 빛과 생명이 들어오는 것입니다.
 
이제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시는 주님에게 비둘기 형체의 성령이 옵니다. 비둘기는 인간을 향한 하느님의 일관되고 변치 않는 사랑을 나타냅니다. 성령은 하느님의 사랑의 선물이며 생명의 숨결입니다. 우리는 세례를 통해 주님이 하느님과 어떤 관계 속에 있는지 깨달아야 하고, 마찬가지로 세례 받은 우리가 어떤 관계 속에 있어야 하는지를 성찰해야 합니다.
 
아무 죄도 없으신 주님이 사람들과 함께 세례를 받으셨다는 것은 한계와 죄와 죽음으로 얽혀있는 인간의 삶 안으로 들어오셨다는 것을 표현합니다. 주님의 세례는 당신을 낮추어 비우시고 우리 중에 한 사람이 되셨다는 의미를 나타냅니다. 그렇기에 세례는 새롭게 태어나는 것이며 창조적인 생명으로 드높여지는 삼위일체 성사가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아들을 증언하는 하느님의 음성이 들려오면서 완전한 삼위일체 하느님이 계시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제 우리가 하느님의 사랑 받는 자녀라는 사실을 체험한다면, 나를 통해 그 기쁜 소식이 모든 이들에게 전달되기를 주님은 바라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 홍승모 신부
  | 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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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심, 그리스도를 바라봄, 구원의 문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내가 세상 끝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이는 갈릴래아에서 예수님께서 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 당부하신 말씀입니다. 갈릴래아는 예수님께서 구원소식을 처음으로 선포한 곳이기도 합니다. 시작한 곳으로 되돌아가는 ‘초심’을 생각해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당부하신 말씀을 곱씹어봐야 할 것입니다. 세례의 은총을 입은 신자라면 주님께서 명한 것을 지켜야합니다.

동양화에서 물고기 세 마리가 그려져 있는 그림을 삼어도(三魚圖) 또는 삼여도(三餘圖)라고 합니다. 주로 공부하는 곳에 이 그림을 두었습니다. 선비에게 공부는 바쁜 일과였고, 정신적인 피로를 느끼는 일이었습니다. 아무리 바빠도 잠잘 때, 눈 올 때, 비 올 때 이렇게 세 번의 여유를 가지라는 뜻입니다. 우리들의 삶도 바쁘고 피곤할 때가 많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삼어도에 있는 그림에서가 아닌 예수님에게서 삶의 여유와 활력을 얻어야 합니다.

서양에서는 무지개가 활같이 휘었다고 해서 Rainbow라는 이름을 붙였고, 중국에서는 큰 동물(용)의 창자 같다고 해서 채홍(彩虹)이라고 불렀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무지개를 활도, 벌레도 아닌 “물의 문”이라는 뜻을 가진 무지개로 이름 지었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마치 다른 세계가 있을 것 같은 마음에서 붙인 듯합니다.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문, 오색영롱한 신비로운 문은 자연을 통해 하느님께서 말씀하시는 하느님 나라의 초대장 같은 느낌입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면서 “갈릴래아 사람들아, 왜 너희는 여기에 서서 하늘만 쳐다보고 있느냐?”(사도 1, 11)하신 말씀을 새기고, ‘물의 문’ 같은 구원의 문을 열고 하느님 나라의 신비에 함께 들어가야 할 것입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은 사람들 중에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르고자 노력하는 사람도 있고, 미사에만 가끔 오는 사람도 있고,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린 사람도 있고, 세례를 받았지만 예수님을 증오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세례를 받은 모든 사람들이 초심으로 돌아가서 그리스도를 제대로 보고 따른다면, 구원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 차있다면, 진지한 마음으로 노력한다면 그리스도인이 해야 할 사명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임마누엘!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 김선호 루카 신부
  | 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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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많이 부는 날이었습니다. 어떤 자매님께서 길을 건너려고 신호등을 기다리는 동안 핸드백을 열고 무엇인가를 확인하려고 했습니다. 바로 그 순간 발을 잘못 디뎌서 균형을 잃게 되었고, 핸드백 안에 있었던 지폐들이 하늘로 떠올랐습니다. 당황한 자매님께서는 지폐를 급히 잡으려고 했지만 이미 늦어서 사방으로 흩어졌습니다.

다행히 어떤 형제님께서 그 돈을 주웠습니다. 그리고 자매님께 “여기 제가 주운 3만 2천원입니다.”라고 말했지요. 그런데 그 자매님께서는 고맙다는 말은 단 한마디도 않고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이렇게 말하더랍니다.

“오만 원짜리 지폐는 어디 있죠?”

이 자매님은 오만 원짜리 지폐가 혹시 그의 주머니에 있지 않을까 하는 의혹의 눈길을 보냈던 것이지요. 이렇게 의심에 빠져 있는 사람이 감사와 사랑을 전할 수 있을까요? 의심하는 사람은 어떤 일에 대해서 감사할 수 없으며, 따라서 사랑의 마음을 간직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는 주님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주님께 감사와 사랑의 마음을 간직하는 사람은 아무런 의심을 갖지 않고 주님의 뜻에 맞게 살아가는 사람인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세례자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으십니다. 요한은 이미 예수님에 대해 사람들에게 말했지요. 즉, 요한 자신은 물로 세례를 주지만, 주님께서는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시는 분으로 자기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릴 자격조차 없다고 하십니다. 사실 당시에는 요한이 예수님보다도 더 유명하고 인기도 있었습니다. 따라서 자기를 이렇게 낮춘다는 것은 웬만한 겸손 없이는 불가능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겸손 역시 만만치가 않습니다. 세례자 요한도 인정하는 예수님인데, 예수님께서 요한에게 가서 물로써 세례를 받으십니다. 즉, 예수님 역시 자기 자신을 낮추는 커다란 겸손을 보여주십니다.

만약 세례자 요한이나 예수님께 어떠한 의심이 있었다면 가능할까요? 바로 하느님 아버지께 대한 굳은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감사와 사랑의 마음을 갖고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낮은 자의 모습을 실천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하느님께서 기쁘게 하는 행동을 한 뒤, 하늘에서 소리가 들립니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지금 나는 과연 주님의 사랑을 받는 아들, 마음에 드는 아들로 평가 받을 수 있을지를 반성해 보았으면 합니다. 만약 그러한 평가를 받을 수 없겠다면, 지금부터라도 마음에 드는 아들딸이 되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앞서도 말씀드렸듯이, 주님을 위해 자기 자신을 낮출 수 있는 겸손과 주님께 대한 굳은 믿음이 반드시 필요함을 잊지 마십시오. 이 세상 안에서는 어리석어 보이는 행동이 될 수 있지만, 이 길만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가장 빠는 길입니다.

아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적용해야 한다. 마음만으로는 부족하다. 행해야 한다(괴테).

▶ 조명연 신부
  | 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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