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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빛으로서의 사명
조회수 | 1,347
작성일 | 10.01.07
오늘은 예수님께서 요르단 강에서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심을 기념하는 축일입니다. 이 사건 이후 예수님께서는 30년간의 나자렛 생활을 마감하시고, 아버지 하느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한 공생활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세례의 순간에 성령을 통하여 당신이 아버지께로부터 받은 사명이 무엇인지를 확신하셨고, 이제 그 출발을 이루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모든 신앙인들도 예수님처럼 세례의 순간에 다짐하였던 크고 작은 결심들을 이루어 내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며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한 반성과, 더불어 진정으로 주님 마음에 드는 일꾼으로써의 새 삶에 충실하였는지에 대한 물음을 되새겨 보아야 할 것입니다.

옛날 한 임금님이 “동전 한 닢으로 방 안을 가득 채우라.”는 난제를 내었답니다. 만조백관이 모두 쩔쩔매고 있는데, 어느 현명한 신하가 그 동전 한 닢으로 양초 하나를 사다 은은하게 불을 밝혔더니 그 빛이 방안을 가득 채웠다고 합니다. 물질로만 모든 것을 채우기 위해 조급해 하는 우리에게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랑과 정의와 평화의 빛이 온 세상에 가득 채워지도록 그렇게 애쓰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이사야 예언자의 말씀에 하느님께서는 ‘당신 종’을 선택하시어 함께하시겠다는 약속을 주십니다. 왜냐하면 그는 갇힌 사람을 풀어 주고, 어둠 속에 있는 이에게는 해방을 알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 마음에 쏙 드는 일을 하는 그에게 당신의 영을 보내시어 손을 꼭 붙잡아 주시며 도움을 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통하여 당신의 공적 활동을 시작하셨듯이, 우리에게 있어서도 세례는 새 생명의 시작이고, 또한 새로운 삶의 시작이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세례가 십자가 위에서 완성되었듯이, 우리의 세례도 일생을 통해 완성되어야 하는 과정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렇기에 성급한 결론도 포기도 있어선 안 됩니다. 예수님의 사명이 ‘빛’의 사명이었듯이, 우리 또한 세례를 통하여 부여받은 ‘빛’으로서의 사명을 충실히 살아낼 수 있도록 끊임없이 쇄신되어야 할 것입니다.

갈팡질팡 어지럽고 혼탁한 세상에서 신앙의 빛, 사랑의 빛을 낼 수 있는 작은 노력이 필요한 때입니다. 사람들은 올 한 해가 경제적으로 힘겨울 것이라고들 합니다. 물질로 채우기에는 좀 부족하고 모자랄 수 있겠지만, 영적으로는 더없이 충만한 한 해가 될 수 있도록 그렇게 힘쓰는, 나누고 격려하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주님을 닮고자 애쓰는 우리의 작은 노력을 보시고 진정으로 주님께서는 사랑하시는 아들, 그분의 마음에 인정받는 아들 딸이 될 수 있도록 당신의 영을 보내시어 우리를 이끌어 주실 것입니다.

▶ 서범석 도미니코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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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느님 나라 위한 겸손·정의 실천

사랑하는 아들

세례자 요한의 인품을 한마디로 말하라면 ‘겸손’입니다. 사실 세례자 요한은 자신의 세례 운동 당시 예수님보다 군중들의 인기가 높았습니다. 더구나 많은 제자들이 그를 예언자로 여기며 따랐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은 그리스도가 아니며 예언자도 아니라고 소개합니다. 그저 주님 오실 길을 닦는 광야의 소리에 불과하다고 이야기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 앞에서는 끊임없이 작은 자로서의 겸손을 보입니다.

“내 뒤에 오시는 분이신데,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요한 1, 27).

“제가 선생님께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선생님께서 저에게 오시다니요?”(마태 3, 14)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요한 3, 30).

인간이 태초에 지은 원죄는 교만이었습니다.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주, 조물주이신 하느님과 같아지려 하였던 교만이 원죄였던 것입니다. 교만으로 말미암아 닫혀진 하늘 문이 세례자 요한의 겸손과 구세주 예수님의 낮추임으로 오늘 요르단 강에서 열립니다. 하늘을 열리게 만든 사건은 진정 ‘겸손’이었습니다. 이 겸손이 폭력과 미움과 시기와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종식시킬 수 있고, 하늘과 땅의 막혔던 담을 헐어버리고 소통을 가능하게 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세례는 가장 작은 자로서의 낮추임이며 우리 또한 세례를 받음으로 그렇게 낮아짐의 삶을 살라는 초대입니다.

중국 현대사의 가장 위대한 인물로 꼽히는 ‘루쉰’(1881~1936)은 1918년 그의 첫 작품인 ‘광인일기’에서 현대인들의 비극적인 삶에 대하여 이렇게 비판합니다.

“자신은 사람을 잡아먹으려 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잡아먹힐까 두려워 모두들 매우 의심쩍은 눈초리로 서로 얼굴을 훔쳐본다. 그런 생각을 버리고 마음 편히 일하고 길을 걷고 밥 먹고 잠을 잘 수 있다면 얼마나 편할까?
그건 단지 문지방 하나, 작은 고비 하나 넘는 일인데, 그런데도 그들은 부자, 형제, 부부, 친구, 스승과 제자, 원수들과 서로 모르는 사람들까지 모두 한패가 되어 서로 격려하고 견제하면서 죽어도 그 한 발자국을 넘어서지 않겠단다.”

한 발자국을 넘어서는 것은 자신의 낮추임입니다. 이 같은 낮춤이 없어 인간과 인간 사이, 하늘과 인간 사이의 문이 열리지 않는 것입니다. 인간이 도무지 실행하지 않기에 오늘 하느님께서 스스로 낮추시고 먼저 요르단 강에 들어가신 것입니다.

마음에 드는 아들

세례자 요한과 예수님께서 행하신 세례 운동은 당시로서는 가히 혁명과 같은 행동이었습니다. 그리고 성전과 사제들에 대한 도전이었습니다. 사제들은 백성이 죄를 짓고 그 죄를 속죄하는 뜻으로 바치는 제물을 먹고 살았습니다.

그것이 도를 넘어 속죄 제물을 탐욕하는 타락으로 변절되게 되었습니다. 때문에 구약의 예언자들은 이를 신랄하게 고발하였고 질책하였습니다.

“그들은 내 백성의 속죄 제물을 먹고 살며 내 백성이 죄짓기만 간절히 바란다”(호세 4, 8).

백성들이 자꾸 죄를 짓고 속죄 제물을 바쳐야 더 많은 부를 축적할 수 있었던 성전 사제들, 종교 지도자들을 향한 저항의 고발이 세례 운동이었던 것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죄를 용서 받기 위해서는 날마다 성전에 올라가 속죄 제물을 바칠 필요 없이 진심으로 뉘우치고 뉘우침을 행실로 보이며 강물에 몸을 담그면 된다고 가르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죄인이 받아야 할 세례를 받으신 것은 죄인인 우리에게 당신 스스로 모범을 보이신 것입니다. 그러나 또다른 한편 당신께서 세례자 요한을 찾아 가심으로써 이제부터 시작될 공생활 복음선포의 내용은 당시 기득권을 쥐고 있었던 타락한 성전과 종교 지도자들과의 단절을 선언하신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결국 예수님 세례와 세례자 요한의 행동은 ‘겸손’과 ‘정의’였습니다. 하느님 나라를 위한 겸손, 그리고 그 나라의 정의의 실현이 세례의 목적이었던 것입니다. 겸손과 참다운 정의의 실천이 있을 때, 하늘이 열리는 것입니다. 이미 5세기 초에는 1월 6일에 그리스도의 탄생과 함께 이 놀라운 세례를 기념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두 사건을 긴밀하게 잇는 찬가를 불렀습니다.

“우주만물 그분을 소리 높여 부르고 동방박사들 그분을 소리 높여 부르며 별이 그분을 소리 높여 부르노니, 보아라, 이분이 임금님의 아들, 하늘이 열리고 요르단 강에 거품 일고 비둘기 나타난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노라!”

세례는 분명 몸을 씻고 죄를 씻는 종교 예식으로만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세례 받은 그리스도인으로 살겠다는 다짐과 행실을 보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 주된 행실은 겸손과 하느님 나라의 정의입니다.

▶ 배광하 신부
  | 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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