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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참 좋은 이웃이 되어
조회수 | 1,474
작성일 | 10.01.07
유유상종이라 하지요. 같은 수준, 비슷한 부류들과 끼리끼리 어울리기는 쉽습니다. 또 그런 어울림은 기분 상할 일도 별로 없고 마음도 편합니다. 못 오를 나무 쳐다보며 가슴앓이 하는 것보다 기쁘게 함께 살 수 있는 편한 사람 만나서 서로 의지하며 사는 것은 행복이라 생각됩니다. 내 주위에 그런 편한 사람들이 좀 많았으면 하면서, 또 내가 만날 더 많은 이들에게 편한 이웃이 되어 줄 수 있기를 희망해 봅니다. 오늘 세례를 받으신 예수님을 생각하면서.

교회는 성탄시기의 마지막에 주님의 세례축일을 보냅니다. 주님의 성탄이나 세례가 인간구원을 위한 대역사의 시작이라는 같은 의미가 있기에 같은 시기에 보내는 축일입니다. 그런데 또 하나 중요한 의미가 숨어있습니다. 두 사건이 똑 같이 인간을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자기낮춤이라는 사실입니다. 성탄이 인간과 함께하시기 위해 하느님께서 철저하게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신’ (필리2,7) 사건이라면 주님의 세례는 죄 없으신 그분이 죄인인 인간의 편에 서시기 위해 스스로 죄인의 모습을 취하신 사건입니다.

그러기에 고맙게도 또 감히 드릴 수 있는 말씀이지만 하느님께서 우리 인간과 같은 수준, 끼리끼리 어울릴 수 있는 비슷한 부류가 되신 것입니다. 그래서 편한 마음으로 부담 없이 만 날 수 있는 분이 되셨습니다. 구약시대처럼 온 백성을 대표해서 대사제가 한 번 지성소에서 겨우 예배드릴 수 있는 그런 분이 더 이상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우리 사는 세상은 어찌 보면 불평등과 모순투성이입니다. 누구는 돈 많고, 잘 살고,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권력이나 누리면서도 다른 사람 위로 오르려고 안달을 합니다. 스스로 큰 사람인양 남을 내리 누릅니다. 누구는 가난하고 지지리도 못나고 아무리 노력해도 되는 일도 없고 불평과 불만 속에 기죽어 삽니다. 이런 세상을 다스리러 오신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낮추시고 죄인이 받는 세례까지 받으십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런 분을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라 말씀해 주십니다. 이제 돈 좀 있고 어쩌고 하는 것은 하느님 나라에서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잘나거나 못나거나 주어지는 하느님의 사랑은 똑같습니다. 하느님 보시기에는 똑같은 자녀입니다. 좀 잘 산다고 우쭐거릴 것도 없고 어렵다고 기죽을 것도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직접 없는 이의 손을 잡아주시기 위해 오늘 세례를 받으시고 당신의 일을 시작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는 부러진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리라. 그는 성실하게 공정을 펴리라.’ 는 1독서 말씀대로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에게는 그분의 말씀과 삶의 모습을 품에 안고 살아가는 일만이 중요합니다.

요즘 경제 한파로 힘겹게 살아가는 모습들을 여기저기서 봅니다. 그래도 저는 요즘 우리 교회 안에서 희망을 봅니다. 정말 많은 신자들이 믿음의 이름으로 서로를 형제자매라 부르면서 어울리는 모습들 때문입니다. 어려워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밝은 모습 짓는 분들 때문입니다. 혹시 소외된 사람들이 있을까봐 걱정하며 스스로 낮추며 많은 이들의 편안한 이웃이 되기 위해 애쓰는 교회의 사람들을 보면서 신이 납니다. 주님의 세례를 받은 이들, 편안한 어울림으로 참 좋은 이웃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을 모시고 시작한 이 한해가 참으로 좋습니다. 축복받으세요.

▶ 여창환 라우렌시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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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님의 세례, 그 위대한 겸손

지난 주일 우리는 나자렛 예수께서 모든 인간의 구원자, 즉 메시아이심을 공적으로 확인하고 드러내는 주님 공현 대축일을 지냈습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는 이 메시아 예수께서 당신 사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받으신 세례를 기념하는 주님 세례 축일을 거행합니다.

주님이 메시아로서 당신 사명의 수행을 세례 받으심으로써 시작하셨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합니다. 주님의 사명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온 인류를, 이스라엘 백성뿐 아니라 이방인까지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두 구원하는 위대한 사명입니다. 어디 인류뿐이겠습니까? 우주만물 삼라만상도 주님의 손길이 필요한 구원의 대상입니다. 이 위대한 사명을 주님은 당신의 세례 즉 물에 잠기심으로써 개시하시는 것입니다. 도대체 이 세례가 무엇을 의미하기에 주님은 이것으로 당신의 위대한 일을 시작하십니까?

무엇보다 중요한 세례의 의미는 바로 겸손입니다. 주님의 세례는 요르단강물에 잠기심이었습니다. 강은 땅보다 낮은 곳을 지나흐르고 강바닥은 땅바닥보다 훨씬 아래 놓여있습니다. 세례를 통해 주님은 강물에 잠기셨습니다. 강바닥까지 내려가셨습니다. 더 이상 내려갈 수 없는 곳까지 내려가셨습니다. 겸손의 끝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이 겸손을 또한 지극히 겸손하게 받아들이십니다. 일찍이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릴 자격도 없다.”라고 말했던 바로 그 요한에게 가서 세례를 받습니다. 그것도 죄인들의 무리에 끼여 그들과 꼭 같은 모습으로 말입니다. 가히 겸손의 철두철미함, 겸손의 극치라고 말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겸손에 가장 어울리는 주님의 외적인 모습이 바로 온유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오늘 제1독서 이사야 예언서의 말씀을 떠올립니다. 흔히 ‘야훼의 종의 노래’로 일컬어지는 이 예언의 말씀은 장차 오실 메시아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여기에 나의 종이 있다…그는 외치지도 않고 목소리를 높이지도 않으며, 그 소리가 거리에서 들리게 하지도 않으리라. 그는 부러진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리라. 그는 성실하게 공정을 펴리라. 그는 지치지 않고 기가 꺾이는 일 없이, 마침내 세상에 공정을 세우리니, 섬들도 그의 가르침을 고대하리라.”

주님이 세례를 받으심으로써 세상 구원의 위대한 사명을 시작하셨고 마침내 그 사명을 완수하셨다는 것은 주님이 바로 당신의 겸손과 온유로써 이 세상을 구원하셨음을, 그리고 우리 역시 주님의 겸손과 온유로 구원받았음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주님의 겸손과 온유로 구원받은 우리는 주님께 겸손과 온유의 빚을 졌다고 하겠습니다. 주님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하고 말입니다. 주님께서 당신께 배우라고 대놓고 말씀하신 것은 이 구절이 유일합니다. 겸손과 온유가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얼마나 중요하고 소중한 가치인가를 단적으로 보여주신 셈입니다.

우리는 지금 날이 갈수록 겸손과 온유가 실종되어 가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겸손은 흔히 굴종이나 무능으로, 온유는 쉽게 나약함이나 우유부단으로 치부되는 오만과 편견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거칠고 험악한 시대에 우리 세례 받은 모든 그리스도인은 무엇보다 주님이 보여주신 겸손의 그 위대함을, 온유의 그 위대함을 우리의 삶을 통해 증거해야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주님의 멍에를 더욱 기꺼이 메고 주님께 더욱 열심히 배워야겠습니다. 부러진 갈대를 확 꺾어버리기보다는 부드럽게 싸매어주고, 꺼져가는 심지를 훅 불어버리기보다는 정성껏 살려내는 주님의 그 마음을 우리의 마음으로 삼아야겠습니다. 그리하여 주님의 그 위대한 사명에 동참하는 참 그리스도인이 되어야겠습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마태 11,29)

▶ 이상택 리노 신부
  | 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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