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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 하느님께 인정받는 사람
조회수 | 1,565
작성일 | 10.01.07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유혹을 경험합니다. 그 중에서 큰 유혹이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고 칭찬 받고자 하는 유혹일 것입니다. 물론 다른 사람에게 손가락질 받는 것보다는 좋은 소리를 듣는 것이, 그리고 무시당하는 것보다는 인정받는 것이 좋습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고 칭찬받고 싶은 마음이 나쁜 것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되는 것은 사람의 인정과 평가에만 의지한 채 살아가려는 태도입니다. 사람이 다른 사람의 평가에만 관심을 두고 인기에 연연하게 되면 그 사람은 점점 진리에서 멀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예’ 해야 할 상황에서도 ‘예’라고 하지 못하고 ‘아니오’라고 해야 할 상황에서도 ‘아니오’라는 말을 하지 못하게 됩니다. 오히려 ‘예’라고 해야 할 때 ‘아니오’라고 말하고, ‘아니오’라고 해야 할 때 ‘예’라고 말합니다.

오늘 성경 말씀들은 우리에게 사람에게 환심을 사고, 사람의 마음에 드는 사람이 되기보다는 아버지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이 되라고 가르칩니다.

첫째 독서인 이사야서의 말씀에 따르면, 주님의 종은 사람들에게 인기 있는 사람이 아니라 주님께서 붙들어 주고 선택한 자로서 주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둘째 독서인 사도행전에서 베드로 사도도 하느님을 경외하며 의로운 일을 하는 사람을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나라에 받아주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복음에 나오는 세례자 요한 또한 사람의 인정에 얽매이거나 인기에 영합하지 않은 인물이었습니다. 요한은 하느님 두려운 줄을 알았기에 사람의 평가와 인정보다는 하느님의 소리에 더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리고 자기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알아듣고 분명하게 이야기합니다.

“나보다 더 큰 능력을 지니신 분이 내 뒤에 오신다. 나는 몸을 굽혀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릴 자격조차 없다.”

사람들의 찬사와 환호보다는 하느님의 말씀에 귀 기울인 결과로 내뱉은 이 한마디가 구원 역사 안에서 요한을 아주 위대한 인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요한은 하느님께 인정받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요르단 강에서의 예수님의 세례 장면은 우리가 누구로부터 인정받는 사람이 되어야하는 지를 더욱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요르단 강에서 세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올라오시자 성령이 그분 위에 내려오고 하늘에서는 아버지 하느님의 음성이 들립니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성자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 성령께서 내려오시고 성부께서 말씀하시는 이 모습에서 예수님의 삶이 어떠할 지가 그대로 드러납니다. 예수님은 자기 생각대로 살면서 사람들을 자기편으로 만들고, 사람들의 인정과 칭송을 듣는 삶을 사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성령에 힘입어 아버지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하심으로써 아버지께로부터 인정받는 분으로 사셨습니다. 그래서 세례를 통해 당신의 신원을 분명히 드러내시고 공생활을 시작하신 예수께서는 당신을 왕으로 받들어 모시려는 사람들의 간청을 물리치시고 오히려 죽음에 이르는 십자가의 길, 아버지께서 허락하신 고통의 길을 택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공생활 전체는 아버지의 뜻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일을 하심으로써 아버지께로부터 인정받는 삶이었습니다.

우리도 모두 세례를 받았습니다. 예수께서 세례를 통해 당신 자신이 아버지의 아들임을 세상에 드러내셨듯이, 우리도 세례를 통해 하느님의 자녀로 세상에 드러났습니다. 하느님의 자녀가 된 우리의 삶은 사람들의 인정과 칭찬이 아닌 아버지께로부터 인정받는 삶이어야 합니다. 아버지 하느님께서 아들 예수님께 하셨던 그 말씀,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하신 이 말씀이 바로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이 되도록 살아야합니다. 사람에게 의지하고 사람의 인정을 받으려할 때 우리가 얼마나 자주 유혹에 걸려 넘어지고 상처 입게 되는 지 우리는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습니다. 사람에게 절대적인 희망과 기대를 두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고 어리석은 것인지 또한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절대적인 희망을 두어야 할 곳은 변하지 않는 하느님 한 분이십니다. 그분만이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을 것입니다. 사람에게서가 아니라 주님께 인정받는 사람, 그분 마음에 드는 아들, 딸이 되도록 살아갑시다.

▶ 강철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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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례의 풍요로운 은총으로 영원한 복된 삶을.

세례축일을 맞아 교형자매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주님 구원의 은총이 가득하시길 기원합니다. 주지하고 계시듯, 원죄범죄로 죄와 영원한 죽음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인류가, 죄를 용서받고 영원한 복된 생명을 살 수 있게 된 것은 주님께서 세워주신 세례성사의 은총 때문입니다. 원성사자체이신 주님께서는 원죄와 본죄를 깨끗이 씻어주시고 하느님의 자녀로 재생되도록 세례성사를 새워주셨습니다. 세례성사는 물과 성령으로 베풀어지는 성사입니다. 물은 생명을 파게시키기도 하고(노아시대 대홍수. 출애급등), 생명의 원천이 되기도 합니다. 세례의 물은 악마에게 얽매인, 죄와 죽음의 굴래에 얽매인 사슬을 끊고 파괴시킵니다. 동시에 성령의 하느님께서 임하시고 영원한 하느님의 자녀로 새롭게 태어납니다. 이 모든 은총은 유구한 세월동안 준비해 오신 주님께서, 몸소 요한의 세례를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피와 물을 모두 흘리시고 돌아가시고 부활하심으로 마련하신 주님 사랑의 결실입니다. 사랑의 주님께서는 이제와 영원히 감사와 찬미와 영광을 받으소서. 아멘.

우리의 동의 없이 우리 구원의 길을 마련하신 사랑의 주님께서는, 우리의 협조 없이는 우리를 구원하실 수 없으십니다. 우리각자에게 하느님의 모습을 닮은, 자유 의지가 행사되는 영혼을 주시어 육신과 결합되어 사람이 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세례받기 전에 마귀를 끊고 그 모든 행실을 끊으며 유혹을 끊어 버린다고 단호히 선언합니다. 그리고는 창조주이신 성부와 구원 주이신 성자와 거룩하게 하시는 성령만을 흠숭으로 섬기며, 구원의 교회와 모든 성인의 통공과 죄의 용서와 육신의 부활과 영원한 삶을 믿는 다는 신앙고백을 합니다.

이러한 우리의 협조와 동의로 주님 구원의 은총을 받아 죄를 용서받고 하느님의 자녀로 새롭게 태어납니다. 그리하여 하늘나라 영원한 잔치에 참여할 때 갖추어야 할 무죄함을 뜻하는 흰 옷을 받아 입게 되고 이 세상에서의 빛과 소금으로 신앙의 증거자 선교사로 거듭나게 됩니다. 이것이 세례의 풍요로운 은총으로 충만한 삶의 정체성이겠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세례의 풍요로운 은총을 잃고, 하느님이 아닌 만몬을 택하고 숭배하며 살아가고 있는 작금의 현실들입니다. 영혼의 삼구(三仇)인 마귀와 세속과 육신을 친구로 주인으로 받들며 살아가고 있지는 않는지요?! 경제적 삶을 가장 중요시 하며 살고 있지는 않는지요?! 유산을 하고 이기적이고 건강을 챙기려고 하지는 않는지요?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사람은 빵으로만 살지않고,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마테4.4)

영원하지도 않는 세상, 멀지않은 세상을 살면서 세례의 풍요로운 은총안에 살아가는, 진정 순교자적 삶을 살도록 기도하고 노력해 갑시다. 세례받을 때 다짐하고 믿고 살겠다는 약속을 성실히 지키며 살아가도록 기도하고 노력해 갑시다. 그래서 영원한 복된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 되길 기도하며 노력해 갑시다. 아멘

▶ 이 강해(스테파노)신부
  | 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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