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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 세례를 통한 성삼위의 사랑과 위로
조회수 | 1,576
작성일 | 10.01.07
우리는 성탄을 통해 우리에게 오신 예수님께서 나를 사랑하고 우리 가정을 사랑하며 우리 공동체를 사랑하고 더 나아가 당신의 모든 창조물을 사랑하신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데 이 성탄은 이 천년 전에 한번 있었던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통해 현재 나타나고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체험을 통해 앞으로도 나타날 것이다.

영성적인 측면으로 보자면 육화의 신비는 우리에게 주님의 겸손한 모습을 깨닫도록 초대한다. 연약하고 나약하게 구유에 누운 어린 왕께 세상의 모든 이들이 겸손하게 무릎을 꿇고 경배하는 행위는 어쩌면 이 어린 왕이 부르시는 첫번째 "나를 따르라"는 부르심에 대한 대답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겸손의 태도는 자기 아버지의 배를 버리고 골고타에 이르기까지 주님의 모든 여정을 따랐던 사랑 받는 제자처럼 주님을 따르는 겸손한 태도이다. 즉 겸손은 연약한 것이 아니라, 예수를 닮는 것이요 예수를 따르는 것이다.

성탄을 마치고 주님 세례 축일을 맞아 우리는 교회력에 따라 연중 시기를 살아갈 것이다. 주님의 세례는 주님의 성탄에서와 같이 당신의 겸손의 모습을 본받으라고 우리를 초대한다.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성숙한 사람은 겸손한 사람일지 모르겠다. 오늘 복음에서 세례자 요한은 당신의 백성을 위해 죄 없는 분이 죄 있는 자의 모습으로 세례를 받기 위하여 오시는 예수님을 만난다. 이때 요한은 지극히 겸손된 자세로 주님을 맞이하고 겸손하신 주님께서는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다.

2000년전 예수님께서 받으신 세례가 당신 안에 살아계신 아버지와 성령, 그리고 당신께서 사랑 안에서 온전히 하나이심을 나타내며, 당신과 당신의 구원을 기다리는 인간과의 소통이듯이 주님의 뜻에 따른 우리가 받은 세례는 구원으로 가는 문이며 나를 깨닫고 주님을 구세주로 고백하는 사랑의 행위이다. 우리는 세례를 통해 겸손한 그리스도의 모습을 살고 그분께서 우리 안에 살아 숨쉬는 사랑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며 그 사랑의 모습을 살려고 다짐한다.

세례 받을 때 예수님께서는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하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걸으신 인간 구원을 위한 번뇌와 고통과 죽음의 여정에서 사랑과 위로가 되었을 것이다. 우리도 세례를 통해 물과 기름으로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다. 요즘 경제도 사회도 정치도 어렵고 힘들며 더더욱 여러가지 어려움이 우리를 아프게 한다. 그러나 세례를 통한 성삼위의 사랑과 위로는 우리에게 희망과 구원을 가져다 주었으며 사랑의 삶으로 초대하였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자녀이다"
  
주님 세례 축일을 맞아 우리도 진정 나를 발견하여 겸손히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고 그분의 사랑 안에 머무르는 신앙인이 되도록 노력하자.

▶ 신우식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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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희는 주님의 길을 마련하여라

그리스도의 세례

요아킴 파티니르(Joachim Patinir, 1485-1524)는 처음으로 풍경화를 전문으로 그린 플랑드르 화가입니다. 그는 루카복음 3장 1-18절과 21-22절을 배경으로 <그리스도의 세례>를 그렸습니다. 그는 굽은 강과 높은 산이 어우러진 풍경을 세례의 배경으로 그렸습니다.

그런데 굽은 강과 높은 산은 이사야 예언자가 선포한 말씀을 연상케 합니다. 주님의 길을 곧게 만드는 것이 세례자 요한의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너희는 주님의 길을 마련하여라. 그분의 길을 곧게 내어라. 골짜기는 모두 메워지고 산과 언덕은 모두 낮아져라. 굽은 데는 곧아지고 거친 길은 평탄하게 되어라. 그리하여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구원을 보리라.”(이사 40, 3-5)

세례란 그렇습니다. 주님의 길을 곧게 만드는 것입니다. 성령을 받은 사람은 모두 그리스도의 길이 됩니다. 세례자 요한은 요르단 강 부근에서 군중에게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의 세례를 선포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림의 왼쪽 후면에는 세례자 요한이 거친 울타리에 기댄 채 군중에게 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멀리서 다가오는 예수님을 가리키며 모든 사람에게 말하였습니다.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준다. 그러나 나보다 더 큰 능력을 지니신 분이 오신다.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드릴 자격조차 없다. 그분께서는 너희에게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것입니다.”(루카 3,16)

세례란 그렇습니다. 나를 예수님의 종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성령을 받은 사람은 모두 그리스도의 종이 됩니다. 그림 중앙 전면에는 예수님이 세례자 요한에게 물로 세례를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세례자 요한은 바위 위에서 무릎을 꿇고 세례를 줍니다. 예수님이 자기보다 더 큰 능력을 지니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요르단 강에 들어가시어 믿음의 색인 흰색 속옷만 걸치시고 세례를 받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모든 것을 두 손 모아 받아들이면서 우리를 응시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세례를 믿음으로 받아들이라고 말씀하시는 것 아닐까요?

그런데 예수님의 푸른색 겉옷은 물가 가장자리에 벗겨져 있습니다. 푸른색은 천상의 색입니다. 그리고 그 겉옷이 마른 나무뿌리에 닿아있습니다.

이것은 “도끼가 이미 나무뿌리에 닿아있다”(루카 3,9)는 세례자 요한의 경고의 말씀을 연상케 합니다.

예수님의 세례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천상잔치에 초대받지만, 예수님의 세례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모두 찍혀서 불 속에 던져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를 하시는데 하늘이 열리며, 성령께서 비둘기 같은 형체로 그분 위에 내리시고, 하늘에서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루카 3,22)

세례란 그렇습니다. 나를 하느님 마음에 들게 하는 것입니다. 성령을 받은 사람은 모두 그리스도의 말씀이 됩니다. 그래서일까요? 삼위일체이신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작품의 중앙을 가로질러 완전한 중심축을 이루고 있습니다.

세례란 그렇습니다. 내 삶의 중심에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놓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러니 세례를 받은 우리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모든 일을 시작하고, 모든 일을 마쳐야겠습니다. 그럴 때 우리도 주님의 길이 되고, 주님의 종이 되며, 주님의 말씀이 될 수 있습니다. 주님 마음에 드셨던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처럼

▶ 손용환 신부
  | 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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