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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회] 짠한 아이들
조회수 | 1,285
작성일 | 10.01.10
저희 살레시오회에서 운영하고 있는 교육시설들이 지니고 있는 특징 가운데 눈에 띄는 한 가지는 "교육자들이 먼저 아이들에게 다가서려는 노력"입니다.  

새벽미사가 끝나기 바쁘게 저희 신부님, 수사님들은 밥 한숟가락 뜨는둥 마는둥 하고 부리나케 정문쪽으로 달려갑니다. 아이들을 맞이하기 위해서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아이들 고생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이쪽 저쪽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만만치 않습니다. 한창 꽃피어나야 할 청춘인데, 채 피어나기도 전에 벌써 시드는 기색이 완연합니다.  

벌써 많이들 삭아버린 아이들의 얼굴을 바라보는 신부님, 수사님들 마음도 편치가 않습니다. 고달픈 아이들의 일상을 바라보는 신부님, 수사님들 마음은 "짠"하기만 합니다. 그래서 지나가는 말 한마디라도 따뜻하게 해주려고 마음을 쓰지요.  

"안녕? 00야, 오느라 고생 많았지?" "00야, 오늘 점심 때 농구장에서 보자!" 등등 신부님, 수사님들은 아이들이 다가오기 전에 먼저 아이들에게 다가섭니다. 아이들 한명 한명 이름을 부르며 먼저 인사합니다.  

교육자가 먼저 아이들에게 다가서서 인사하는 전통은 남들에게 보이기 위한 것도 아니고, 하루 이틀에 끝나는 것도 아닙니다. 일년 내내 계속됩니다. 살레시오회가 이 한국 땅에 진출한 이래 50년간 계속되어온 소중한 전통입니다.  

아이들이 인사하기에 앞서 교육자가 먼저 인사하는 모습, 교사가 아이들 한명 한명 이름을 다정하게 불러주는 모습, 어찌보면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겠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교육자들에게 요구되는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중요한 교육철학이자 노선인 "겸손의 미덕"이 녹아들어 있습니다.  

교육자가 자신을 낮춰 먼저 아이들에게 다가설 때 교육은 이미 절반은 성공한 것입니다. 본당 사제가 자신을 낮춰 신자들에게 먼저 인사하고 먼저 안부를 물어줄 때 본당사목은 이미 성공한 것입니다. 회사 사장이 자신을 낮춰 직원들 한 사람, 한 사람 가정사에 관심을 가져줄 때 그 회사의 미래는 밝기만 합니다.  

겸손의 덕이란 참으로 실천하기 힘든 덕이지만 한 사람이 용기를 내어 실천할 때 그 주변은 얼마나 풍요로워지고 밝아지는지 모릅니다.  

오늘 주님 세례 축일, 예수님께서 공적 사명을 시작하는 첫 순간, 주님께서는 다시 한번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십니다. 성탄 때 보여주셨던 그 지극한 자기 낮춤을 공생활을 시작하는 순간 다시 한번 우리에게 보여주십니다. 겸손하게 세례자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으심으로써 말입니다.  

원죄없으신 분, 티없이 깨끗하신 분이어서 세례가 전혀 필요없으신 예수님께서 세례자 요한을 찾아가 세례를 받으십니다. 우리가 지은 죄를 씻으시고자 예수님께서 먼저 요르단 강으로 들어가신 것입니다.  

세례를 받기 위해 자신을 찾아오신 예수님을 향해 세례자 요한은 너무도 황송해서 단호하게 거절합니다.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기에 예수님을 향해 이렇게 아룁니다.  

"제가 주님께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어떻게 주님께서 제게 오십니까?" 

이 말은 "어찌 피조물이 창조주께, 신하가 임금에게, 구원 대상자가 구원자에게, 종이 주인에게 세례를 베풀 수 있겠습니까?" 라는 말과 상통합니다.  

참으로 지당한 세례자 요한의 반응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세례는 세례자 요한이 송구스럽게 생각했던 것처럼 의외의 일이자 특별한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지극한 겸손, 너무나 충격적인 자기 낮춤에 세상이 놀라는 것은 당연합니다.  

이는 대통령이 장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해야 마땅한데 장관이 대통령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것과도 유사합니다. 교장 선생님이 학생에게 표창장을 주어야 마땅한데 학생이 교장 선생님께 표창장을 수여한 것과도 비슷합니다.  

탄생 때부터 계속되어온 예수님의 겸손은 이처럼 세례를 거쳐 죽음의 순간까지 계속됩니다. 특별히 오늘 예수님께서는 또 다시 겸손하게 죄로 오염된 강물을 정화시키기 위한 "정화제"가 되십니다.  

다시 한번 겸손하게 자신을 낮춰 세례를 받으신 예수님께서 강에서 올라오실 때 하느님 아버지의 음성이 들려옵니다. 예수님의 지극한 자기낮춤, 당신의 뜻에 한치의 오차도 없이 완벽하게 응답한 아드님 예수 모습에 너무도 흡족해지신 하느님께서 이렇게 외치십니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나지안즈의 성 그레고리오 주교님 권고가 이번 한 주간 우리 영혼의 양식이 되길 바랍니다.  

"여러분, 씻고 또 씻으십시오. 인간의 회개보다 더 하느님 마음에 드는 일은 없습니다."

▶ 살레시오회 양승국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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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모두 주님께 세례를!

저는 이번 주님의 세례 축일 묵상을 하면서
오래 전에 들은 얘기가 생각이 났습니다.

태국의 축제 중에는 쏭크란 축제란 것이 있다지요?
새 해 초에 지나가는 사람 아무에게나 막 물을 퍼붓는다고 합니다.
그야말로 물세례를 주고받는 것인데
불교 달력으로 정초에
한 해 동안 더러워진 부처님 상을 씻어드리는 예식에서 비롯되어
부처님을 정성껏 닦아드리듯
사람들의 더러움을 씻어준다는 깊은 뜻이 있답니다.

제가 감동받은 또 다른 얘기도 생각이 납니다.
이것은 본인에게서 직접 들은 얘기입니다.
그분은 돌아다니다 성당에 들러 더러워진 성상이 있으면
바로 그 자리에서건 나중에 다시 방문해서건
그 성상을 깨끗하게 해드리는 일을 계속하고 있답니다.
성 프란치스코가 빗자루를 가지고 다니다 더러운 성당이 있으면
성전 청소를 한 것과 같은 것이지요.

그런데 이 분이 성상은 깨끗하게 해드리면서
주변의 사람들은 어떻게 되든 무관심하다면
제가 크게 감동받지 않았을 것이고 존경스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요한이 예수 그리스도께 세례를 베풂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봐야 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례를 받으실 필요가 있겠습니까?
세상의 죄를 씻으시는 분에게 죄를 씻는 세례가 필요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주님께서 요한의 세례를 받으심은
최후의 만찬 때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시며
내가 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주라 하신 것과 같이
나를 씻어주듯 나의 지체들을 씻어주라는 뜻입니다.

요즘은 그런 아이가 별로 없지만
옛날에는 잘 돌보아주지 못해 꾀죄죄한 아이들이 많았지요.
코가 나와 말라 비틀어져있고
먼지와 때에 절은 얼굴에 눈물 자국이 어지러운 아이들.
상상이 가시죠?
그런데 그런 아이를 데려다 깨끗이 세면이나 목욕을 시키면
참으로 기적 같은 변화가 일어나지요.
이 또한 상상이 되시죠?
그 꾀죄죄한 아이가 이렇게 하늘스럽다니!
그러므로 아이는 더렵혀진 것이지 본색이 더러운 것이 아닙니다.
세례는 그러므로 본색, 진면목을 드러나게 하는 것입니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하느님의 진면목을 드러나게 하는 것입니다.

폐허에 묻혀있던 다미아노의 십자가를
프란치스코가 찾아내어 제 색깔을 되찾게 하듯
우리의 무관심으로 버려지고 더러워진 아이를
우리가 챙기고 씻어주고,
더럽다고 쫒아내고 구박하던 우리 자매를
우리가 받아들이고 아껴주고,
우리의 무시와 억압으로 어그러진 우리 형제를
우리가 소중히 여기고 받드는 것이
바로 예수님께 우리가 세례를 드리는 것이고,
사람들에게 하늘스런 진면목을 되찾게 하는 것이 아닐까,
오늘 예수님의 세례 축일을 지내며 묵상합니다.

▶ 작은 형제회 김찬선 신부
  | 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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