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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부활 제5주일 독서와 복음 [새 계명. 서로 사랑하여라]
조회수 | 1,839
작성일 | 10.05.01
▦ 제1독서 : 두 사도는 하느님께서 자기들과 함께 해 주신 모든 일을 교회에 보고하였다.
▦ 사도행전 14,21ㄴ-27

그 무렵 21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리스트라와 이코니온으로 갔다가, 이어서 안티오키아로 돌아갔다. 22 그들은 제자들의 마음에 힘을 북돋아 주고 계속 믿음에 충실하라고 격려하면서, “우리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합니다.” 하고 말하였다.
23 그리고 교회마다 제자들을 위하여 원로들을 임명하고, 단식하며 기도한 뒤에, 그들이 믿게 된 주님께 그들을 의탁하였다.
24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피시디아를 가로질러 팜필리아에 다다라, 25 페르게에서 말씀을 전하고서 아탈리아로 내려갔다. 26 거기에서 배를 타고 안티오키아로 갔다. 바로 그곳에서 그들은 선교 활동을 위하여 하느님의 은총에 맡겨졌었는데, 이제 그들이 그 일을 완수한 것이다.
27 그들은 도착하자마자 교회 신자들을 불러, 하느님께서 자기들과 함께 해 주신 모든 일과 또 다른 민족들에게 믿음의 문을 열어 주신 것을 보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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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독서 : 하느님께서는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다.
▦ 요한 묵시록 21,1-5

1 나 요한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았습니다. 첫 번째 하늘과 첫 번째 땅은 사라지고, 바다도 더 이상 없었습니다.
2 그리고 거룩한 도성 새 예루살렘이, 신랑을 위하여 단장한 신부처럼 차리고, 하늘로부터 하느님에게서 내려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3 그때에 나는 어좌에서 울려오는 큰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보라, 이제 하느님의 거처는 사람들 가운데에 있다. 하느님께서 사람들과 함께 거처하시고, 그들은 하느님의 백성이 될 것이다. 하느님 친히 그들의 하느님으로서 그들과 함께 계시고, 4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다. 다시는 죽음이 없고, 다시는 슬픔도, 울부짖음도, 괴로움도 없을 것이다. 이전 것들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5 그리고 어좌에 앉아 계신 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보라, 내가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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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음 : 나는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 요한 13,31-33ㄱ.34-35

31 유다가 방에서 나간 뒤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제 사람의 아들이 영광스럽게 되었고, 또 사람의 아들을 통하여 하느님께서도 영광스럽게 되셨다. 32 하느님께서 사람의 아들을 통하여 영광스럽게 되셨으면, 하느님께서도 몸소 사람의 아들을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 이제 곧 그를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 33 얘들아, 내가 너희와 함께 있는 것도 잠시뿐이다. 34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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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권을 약속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십자가를 주셨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스승님을 위하여 순교합니다. 그분의 사랑에 감격했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사랑은 감동입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감동시킨 것처럼’ 너희도 서로 감동을 주며 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너무 쉽게 사랑을 물질로 저울질합니다. 감격의 사랑이 아니라 돈이 되는 사랑을 생각합니다.

스승님께서는 이런 제자들을 잡아 주셨습니다. 부활하신 뒤에도 여러 번 발현하시어, 경직된 생각을 고쳐 주셨습니다. 의심 많은 토마스를 위해 한 번 더 나타나신 일, 밤새 고기를 잡았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한 그들에게 기적을 베푸신 일, 이 모두가 감동을 심어 주신 일이었습니다. 그 모습에 제자들은 마음이 움직였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감동을 주는 삶은 쉽지 않습니다. 사람은 자신만 생각하며 살도록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왜 내가 이 일을 해야 하는가? 어찌하여 나를 이렇게 대하는가? 이 생각을 극복하지 못하면 ‘감동을 주는 생활’은 불가능합니다. 감동을 주면 ‘감동’이 돌아옵니다. 때로는 전혀 상상도 하지 못한 모습으로 되돌아옵니다. 삭막한 현실에서 감동하며 살 수 있다는 것은 ‘그 자체’가 은총이며 축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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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2010년 5월호
  |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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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우리 서로가 더욱더 사랑하고자 다음의 우화를 생각해 봅시다.

소와 사자가 있었습니다. 둘은 서로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주위의 많은 반대를 물리치고 결혼해 살았습니다. 소는 자기가 좋아하는 맛있는 풀을 매일 사자에게 대접했습니다. 사자는 그것이 싫었지만 소를 사랑했기 때문에 참고 먹었습니다. 사자 역시 맛있는 살코기를 하루도 거르지 않고 소에게 대접했습니다. 소는 그것을 먹는 것이 크나큰 고역이었지만 사자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참았습니다. 그러나 참을성에 한계가 생겼고 결국 둘은 헤어지고 말았습니다. 소와 사자는 헤어질 때 서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난 최선을 다했어.”

소는 자신의 눈으로만 세상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방식으로 사자를 사랑하였습니다. 사자 역시 소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상대방을 헤아리지 않고 자기 위주로 생각하고 사랑하였기에, 최선을 다하기는 했지만 그 최선이 오히려 최악을 낳았던 것입니다.

‘사랑’이란 말의 어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이렇다고 합니다. ‘사’는 생각할 ‘사’(思)를, ‘랑’은 헤아릴 ‘량’(量)을 가리킵니다. 그러니 ‘사랑’이라는 것은 ‘상대방을 생각하고 그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입니다. 상대방의 처지를 충분히 이해하는 사랑이 소와 사자에게 있었다면, 둘은 끝까지 사랑하면서 행복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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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2013년 4월
  |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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