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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지성과 사랑이 함께하는 신앙인
조회수 | 1,710
작성일 | 07.04.04
오늘 복음이 우리에게 던져주고자 하는 가르침은 이것이다. 빠스카의 쇄신과 변모의 힘을 자신에게 철저히 동화시키기 위해서는 우리의 신앙의 길이 그렇게 쉽지 않으며 그 길을 달려가야 한다고 하는 것이다. 오늘 복음은 부활에 대한 두 가지 사화를 전해주고 있다. 첫 번째 장면은 막달라 여자 마리아가 이른 아침 무덤에 갔다가 목격한 사실을 시몬 베드로와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다른 제자에게 알리러 즉시 예루살렘으로 가는 장면이 묘사되고 있고, 두 번째는 두 사도가 일어난 일을 확인하러 무덤에 가고 무덤에서 확인하는 장면을 소개하고 있다.

이 두 사화를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모두가 다같이 주님의 부활을 믿기 어려워한다는 것이다. 막달라 마리아는 “무덤을 막았던 돌이 이미 치워진 것을”(1절) 보자마자 즉시 누군가가 주님의 시신을 훔쳐갔다고 생각했고, 그 소식을 들은 제자들도 같은 염려를 하고 있다. 그들 중 아무도 예수께서 말씀하신 대로 부활하셨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하고 있다. 또한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 밖에서 울고 있을 때 예수께서 나타나셨지만 그를 동산지기인 줄 알고는 “여보세요, 당신이 그분을 옮겨갔거든 어디에다 모셨는지 알려주셔요. 내가 모셔가겠습니다”(15절) 하고 말한다. 이 모든 것은 그들이 가지고 있던 예수께 대한 애착심이 어떠한지를 말해주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예수께서 죽으시어 무덤에 묻히심으로 모든 것이 끝났다고 확신한다. 그래서 그렇게 애타게 예수님을 무덤에서 찾는 것이다.

그리고 오늘 복음에는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제자’(2절)라고 완곡한 표현으로 나타나는 제자에 관한 것이다. 그 제자는 베드로보다 먼저 무덤에 다다랐으나 들어가지 않고 나중에야 들어가서 ‘보고 믿었다’(8절). 무덤에 들어가서 확인하는 일을 제외하고는 모든 일에 있어서 베드로를 앞서고 있다. 이것은 요한이 바로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바로 그 제자였기 때문에(요한 13,23 참조) ‘사랑의 투시력’(D. Mollat)을 통해 베드로보다 앞서고 있다는 사실을 비유적으로 묘사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여기서 베드로는 신앙의 조건들을 입증해주고 있다. 비록 무덤에 늦게 도착했지만 먼저 무덤에 들어가 수의와 함께 수건이 흩어져 있지 않은 것을 보고 예수의 시신이 도둑맞은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때에 다른 제자도 무덤에 ‘들어가서 보고 믿는다’(8절).

베드로와 요한은 이렇게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증인이 된다. 그들은 신앙의 길을 달려가는 데 있어서 서로 도와주고 있다. 즉 베드로는 보다 밝은 지력을 지니고 있었고, 요한은 보다 열렬한 사랑을 지니고 있었다. 바로 이 두 가지 요소, 즉 직관하는 능력과 사랑하는 능력의 종합을 통해 완전한 그리스도교 신자가 된다. 이 같이 지성과 사랑의 종합은 특히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신비를 받아들이는 데 필요하다. 이 세상이 진정한 구원에 이르기 위해서는 단조로운 신앙고백만이 아니라, 빠스카 사건의 ‘생명을 주는’(1고린 15,45) 힘에 의해 우리 자신을 변모케 함으로써 본질적으로 그 신비에 참여해야하기 때문이다.

▶ 조욱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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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니 그분과 함께 살리라고 우리는 믿습니다.” (로마 6,8)

+ 희망의 땅, 복음으 로!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영적 쇄신을!
그리스도 안에 일치하는 수원교구 형제 자매 여러분,
죽음의 사슬을 끊고 무덤의 승리자로 우리에게 오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평화가 여러분 모두와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빈 무덤에서 발견한 새로운 희망

주간 첫날 이른 아침 주님의 무덤을 방문한 몇몇 여인은 몹시 당황하였습니다. 무덤의 돌이 이미 굴려져 있었고 주님의 시신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눈부시게 차려입은 남자들의 설명을 듣고서야 그들은 무슨 영문인지 알 수 있었습니다. “어찌하여 살아 계신 분을 죽은이들 가운데에서 찾고 있느냐? 그분께서는 여기에 계시지 않는다. 되살아나셨다”(루카24, 5-6). 그렇습니다. 예전에 예고하신 대로 주님께서는 “죄인들의 손에 넘겨져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셔야” 했던 것입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그들은 크게 기뻐하며 주님의 제자들에게 이 소식을 전했습니다. 스승의 죽음으로 좌절과 절망에 빠져 있던 이들에게 새로운 희망이 빈 무덤으로부터 전해진 것입니다.

주님의 사랑 위에 세워진 희망

“제가 주님을 뵈었습니다”(요한 20, 18). 마리아막달레나와 다른 여인들의 증언에도 불구하고 두려워 숨어있던 제자들에게 주님께서 “평화가 너희와 함께!”(요한 20, 19)하고 인사하며 나타나셨습니다. 또한, 당신의 부활을 의심하던 토마스와 다른일곱 제자에게도 나타나셨고(요한 20, 24-29; 21, 1-14),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에게는 더욱 극적으로 나타나셨습니다(루카24, 13-35). 이외에도 다양한 방법으로 나타나신 주님의 부활을 목격한 이들은 두려움과 절망을딛고 새로운 희망으로 변화할 수 있었습니다. 그 희망은 주님께서 당신의 사랑으로 죄와 죽음을 이기고 살아나셨으며 그들과 함께 계시다는 확신에서 비롯되었습니다.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인간이 되어 세상에 오시어 온갖 모욕과 수난을 당하고 끝내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셨다는 것은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극진한 사랑’의 표현입니다. 그분의 죽음은 패배가 아니라 죄악과 그로 말미암은 죽음, 그리고 세상의 사악한 세력에 대한 사랑의 최종적 승리였습니다. 제자들은 십자가와 부활 사건에서 주님 사랑의 엄청난 힘을 깨달았습니다. ‘다 이루어질 때’(참조 :요한 19, 30)까지, 그리고 ‘끝까지’(요한 13,1)하시는 주님의 사랑만이 구원의 길임을 확신하고 희망을 가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파스카 신비입니다.

파스카 신비를 거행하는 성체 성사

부활초를 밝혀놓고 온 교회가 노래하며 경축하는 주님의 부활은 우리가 그분의 사랑으로 구원받을 수 있다는 희망을 선사합니다. 2주님께서 보여주신 사랑은 자기 자신을 박해하고 죽음으로 몰아넣은 이들마저도 용서하는 사랑, 자기 자신의 목숨에 집착하기를 그치고 벗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는 고귀한 사랑이었습니다. 십자가에서 드러난 그분의 사랑 앞에서 죄와 악의 세력은 그 모습을 적나라 하게 드러냈으며 죄의 결과인 죽음은 아무런 힘이 없었습니다.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이루어진 파스카 신비는 교회가 거행하는 성체 성사를 통해 그리스도 신자 안에서 매 순간 새롭게 실현됩니다. 빵과 포도주의 형상으로 우리에게 오시는 예수님의 살과 피는 영원한 생명의 양식이 되어 우리의 몸과 영혼을 살찌우고 구원으로 인도 합니다. 성체 성사에 참여하는 우리는 주님의 거룩한 사랑과 희생에 참여하며 그분과 하나 되는 신비안으로 들어갑니다. 그 안에서 우리는 주님과 한몸이 되고 모든 이에게 당신을 내어주신 그분과 함께 우리 이웃과 화해하여 한 몸을 이룹니다. 파스카 신비를 거행하는 성체 성사 안에서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이처럼 하나가 됩니다.

성체 성사의 열매인 이웃 사랑과 섬기는 삶

주님께서 부활로 우리에게 새 생명을 주셨습니다. 옛 인간은 소멸하였으며 새로운 삶이 우리에게 선물로 주어졌습니다(참조 : 로마 6, 1-14; 에페 4,22; 콜로 3,9). “과연 우리는 그분의 죽음과 하나 되는 세례를 통하여 그분과 함께 묻혔습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영광을 통하여 죽은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신 것처럼, 우리도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로마 6, 4). 이제 주님의 부활을 믿는 모든 이는 사도 바오로처럼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지금 육신 안에서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바치신 하느님의 아드님에 대한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갈라 2,20). 우리는 더 이상 우리 자신이 아니라 이웃을 위해 모든 것을 내어놓는 삶을 살 수 있어야 합니다. 교구 설정 50주년을 맞아 펼치는 영성운동 곧, “잘 섬기겠습니다!” 운동은 파스카의 삶을 통해 우리가구체적으로 이웃 사랑과 섬김의 삶을 실천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올바른 신앙생활을 영위하기에는 그 어느 때보다 힘든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물질만능주의와 경제제일주의, 그리고 소비지상주의가 우리를 감싸고 있습니다. 이같이 하느님 진리를 외면하는 풍토와 시대 조류는 우리의 복음선포 를 더욱 어렵게 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우리 사회를 어지럽히는 생명 경시 풍조, 폭력과 살인, 핵무기와 핵발전소, 핵 재앙의 위협, 가난과 부정 부패의 만연, 굴욕적인 노동조건 등은 인간의 존엄성과 생명을 위기로 몰아넣고 있습니다.4 이러한 비복음적 상황은 우리에게 주어진 예언자적 소명을 더욱 분명히 깨닫기를 촉구합니다. 참으로 사람답게 사는 길, 상처입은 인간성을 회복하고 세상에 희망을 전해주는 길이 무엇인지를 다시금 우리에게 질문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길은 이웃을 섬기고, 이웃을 위해 봉사하며, 이웃을 위해 나 자신의 삶을 내어주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가난하고 버림받으며 고통받는 나약한 사람들의 이웃이 되어 그들의 짐을 함께 지고 그들과 함께 길을 걷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사회가 그리스도인들에게 부여한 소명 또한 이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가난하고 소외되어 인간답게 살지 못하는 이들의 이웃이 되어줄 수 없다면 세상 사람들은 우리가 믿고 고백하는 사랑의 하느님을 믿지 않고 외면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체신심과 희년의 기쁨

친애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교구 설정 50주년이 여러분 모두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그분과 깊은 친교를 이루어 참된희년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분과의 인격적 만남과 깊은 친교는 우리의 작은 사랑을 더욱 성숙시켜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사귀며 그분께 대한 지식이 날로 자랄 수 있도록 노력해 주시기 바랍니다 (참조 : 필리1,9; 콜로 2,2). 또한, 그분 안에서 참 삶의 길, 참 인간이 되는 길, 참 신앙인이 되는 길을 배워야하겠습니다. 그분과 함께 걸으며 그분과 하나 되는 교구의 희년을 통해 참기쁨을 발견하고 이웃에게 널리 전해주는 일이 우리의 절박한 과제입니다. 특별히 성체신심을 모든 활동의 중심에 두어 성체 성사에 정성껏 참여하고, 성체조배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며, 성체 안에서 구원과 위로의 샘물을 맛보는 삶이 되시길 빕니다. 세상이 줄 수 없는 새로운 희망과 기쁨이 여러분 안에 흘러넘칠 것입니다.

제자들과 함께 기도에 전념하시며 늘 믿는 이들의 공동체 안에 머무신 성모님께서 영적 쇄신을 향해 나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위로와 도움을 주시기를 간청합시다.
평화의 모후이시며 하늘의 모후님, 기뻐하소서. 알렐루야!
주님께서 참으로 부활하셨나이다. 알렐루야!

2013년 3월 31일 예수 부활 대축일에
수원교구장 이용훈 마티아 주교
  | 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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