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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 부활은 희망
조회수 | 1,763
작성일 | 07.04.04
어느 주일학교에서 경험한 일화입니다. 유치부에서 말썽꾸러기로 이름난 아이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이 녀석이 말수도 적어지고 얼굴도 시무룩한 것이 도통 예전의 활기찬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담당교사에게 이유를 물었더니 한 동네에 사는 단짝친구를 그만 사고로 잃게 되었고 그 후론 줄곧 생기를 잃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때마침 부활시기가 되어서 어린이들에게 부활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는데 미사가 끝나자 그 아이가 다가와 대뜸 질문을 던졌습니다. “신부님, 부활하면 죽은 친구도 다시 살아날 수 있어요?” “물론이지. 하느님께서 다시 만나게 해주신단다.” 그날 이후로 그 아이의 얼굴에는 다시 생기가 감돌기 시작했습니다.

인간의 삶 속에서 고통은 떼어낼 수 없는 삶의 일부인지도 모릅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감당해야만 하는 고통의 모습들은 때로는 질병, 노화, 실직, 이별, 실망 등의 모습으로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체험하게 되는 다양한 죽음의 조각들이라고 하겠습니다. 몸은 살아 있으되 사는 동안 겪는 죽음의 모습들이지요. 인간이라면 그 누구도 예외가 될 수 없는 죽음과 크고 작은 시련들로 인해 ‘죽음의 골짜기’를 걸어가면서도 우리를 주저앉지 않도록 하는 것은 바로 죽음을 넘어서는 희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죽음을 맞이하게 될 줄을 알면서도 하루하루의 삶을 의미와 보람으로 채워가며 살아갈 수 있는 까닭은 우리가 죽음의 순간을 망각해서가 아니라 죽음을 넘어서는 영원한 생명에 대한 본질적인 희망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우리가 한 평생 일구어 놓은 업적이 죽음과 더불어 사라진다면, 우리가 일생동안 쌓아 놓은 헌신과 노력이 죽음 때문에 물거품이 되어버리면 어느 누가 피땀 흘려 노력하고 일생을 헌신하며 업적을 쌓겠습니까. 우리가 사랑하던 모든 이들이, 우리가 노력하던 모든 일들이, 우리가 행한 모든 선행들이 죽음에 이르러 한 줌의 재로 돌아간다면 그처럼 허망하고 억울한 일이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럴 수도 없으며 그래서도 안될 것입니다. 인생의 열정과 눈물, 희생과 보람이 녹아든 고귀한 삶의 결실들은 결코 죽음 때문에 잊혀져서도 안되고, 사라져서도 안되는 영원과 초월을 향한 고귀한 열매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활은 곧 희망입니다. 주님께서 수난하시고 죽으신 후 다시 부활하신 이 놀라운 사건을 통해 이제 부활의 믿음 안에서 모든 것이 죽음으로 끝나지 않고 영원한 생명으로 꽃을 피우게 되는 희망의 역사가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부활신앙을 믿고 고백하는 우리들은 삶이 죽음과 더불어 사라지지 않는다는, 죽음을 넘어서 하느님 안에 온전히 완성되리라는 희망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모든 죽어가는 것들에 생기를 주고, 무의미한 일상에 의미를 갖게 하는 것, 그러므로 부활은 우리 삶의 의미와 생기이며 우리를 다시 살게 하는 희망인 것입니다.

▶ 변준석 도미니코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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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의 희망이며 구원이신 주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축하드리며, 부활의 기쁨이 여러분 모두에게 가득하시길 기원합니다.

오늘은 참으로 거룩하고 기쁜 날입니다. 예수님의 부활로 현세 생활의 어두움과 한계 속에서 허무하게 끝나버릴 수 있는 우리 인생이 구원의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죄악과 부패로 얼룩지고, 삶의 시련과 죽음으로 불안한 가운데 살아가는 우리가 부활의 믿음과 희망을 갖게 된 날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이야말로 우리 인간의 품위를 드높이고 우리의 믿음을 완성시키는 사건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되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우리의 복음 선포도 헛되고 여러분의 믿음도 헛됩니다”(1코린 15,14). 우리가 믿는 복음의 핵심은 구원이고, 구원은 부활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어둠을 이기고 찾아온 부활
예수님의 부활은 수난을 이기고 어둠을 물리치신 승리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알리는 복음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주간 첫날 이른 아침, 아직도 어두울 때였다”(요한 20,1). 이처럼 우리 마음과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도 어둠이 가득 차 있습니다. 세상 많은 사람이 서로 미워하고 끊임없이 범죄를 저지르고 있습니다. 또 많은 사람이 희망을 발견하지 못하고 절망하고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언제 닥칠지 모르는 재앙과 죽음, 전쟁의 위협으로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우리에게 드리워져 있는 어둠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부활을 통해 어둠과 죽음으로 가득 찬이 세상에 빛과 생명을 주셨습니다. 이제 우리가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 예수님의 수난과 부활을 증거할 차례입니다. 부활을 믿고 희망하는 우리는 빛을 막고 있는 돌을 굴려내어(마르 16,3참조) 우리에게 드리워져 있는 어둠을 몰아내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뵙게 될 갈릴래아로”(마르 16,7참조)로 가도록 합시다.

정전 60주년과 부활
무엇보다 부활의 기쁨을 우리 민족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금년은 정전 6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같은 형제들이 원수가 되어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치러 수 없이 많은 사람을 죽이고, 집과 고향을 버리고 부모 형제와 생이별하는 비극을 낳았습니다. 그렇게 살아온 지 60년. 고향을 그리던 많은 실향민들이 이미 세상을 떠났습니다. 남과 북은 가까워지기는커녕 더욱더 멀어져 가고 있고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위협을 주고받고 있습니다.

이런 어두운 상황 속에 빛을 밝히고 희망을 일구어 낼 사람이 필요합니다. 우리 신자들이야말로 이 민족의 용서와 화해를 위해 기도하고 노력해야 할 사람들입니다. 정전 60주년이 되는 금년은 이다지도 멀리 와버린 남과 북의 관계를 기도와 사랑으로 좁히는 노력을 하는 해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사실 그동안 우리는 북한 형제들의 고통에 무관심하였습니다. 금년도 춘계주교회의에서는 냉랭하였던 우리 신자들과 교회의 모습을 반성하며, 무엇보다 기도하는 일부터 시작하자고 다짐하였습니다.

지난 해 우리 의정부교구 신자들은 남과 북을 합친7천만 형제자매를 기억하며 묵주기도 7천만 단 바치기운동을 하였습니다. 갈라진 남과 북을 생각하며 기도하는 것은 모든 것을 이루어 주실 수 있는 하느님께 올리는 가장 강한 호소입니다. 특별히 정전 60주년을 맞이하여 우리 교구에 민족의 화해와 일치, 그리고 통일을 위해 열심히 기도하고 일하는 교구가 되라고 선물로 주신 ‘참회와 속죄의 성당’에 감사드리며, 우리 스스로 용서와 화해를 생활 속에서 실천하고 기도하는 신앙인이 되도록 노력합시다.

교황님과 함께
부활을 즈음하여 우리는 전임 교황이신 베네딕토16세를 보내드렸고, 프란치스코 새 교황님을 맞이하였습니다. 전임 교황님께서는 교회를 위험하게 하고 어지럽히는 현대 세계의 많은 사조와 윤리, 문화로부터 교회를 지키려고 무던히 애쓰셨으며, 특히 신자들이 신앙으로 무장하고 그리스도를 되찾게 하기 위하여 ‘신앙의 해’를 선포하셨습니다. 복음화를 위해 새로운 열정으로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라는 말씀과 함께, 우리 교회사에서는 수백 년 만에 교황직 사임이라는 용기 있는 결단을 내리셨습니다.

프란치스코 새 교황님께서는 인자하신 모습과 함께 교회에 새바람을 일으키시리라는 기대를 갖게 해주셨습니다. 가난과 쇄신의 모습을 몸소 보여주시는 교황님 안에서 우리는 희망을 봅니다. “십자가 없이 걷고, 십자가 없이 예수님의 이름을 부른다면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가 아닌 세속적인 존재일 뿐”이라고 하신 말씀은 부활 대축일에 또다시 우리가 받는 과제이기도 합니다.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십자가의 수난을 통해 생명과 희망을 주신 예수님의 부활을 기뻐하며, 우리 모두 믿음 안에서 행복하고 어려운 이웃을 사랑함으로써 하느님 나라를 증거 하는 삶을 살도록 노력합시다.

2013년 부활절,
교구장 이 기 헌 베드로 주교
  | 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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