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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멈추지 않는 사랑의 승리
조회수 | 1,654
작성일 | 07.04.06
▶ 사랑의 부활

프랑스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아베 피에르’ 신부님은 당신의 유언을 겸하여 이 같은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아, 부활절의 종들! 종소리가 울리는 어느 아침에 죽으리라. 하느님의 사랑이 담고 있는 그 모든 것을 땅 전체가 고백하는 그런 어느 아침에 죽으리라…”

알렐루야, 알렐루야, 알렐루야!

기쁜 부활입니다. 죽음의 어둠이 걷히고 생명의 부활이 시작되었습니다. 온 천지엔 생명의 부활이 약동하며, 온갖 생명이 부활을 노래합니다. 부활하신 우리 주님의 은총이 모든 이들에게 가득하시길 빌어 봅니다.

부활이 진정 생명인 까닭은, 하느님의 놀라운 사랑 때문입니다. 인간에게서 도무지 찾을 수 없는 공로, 천만 번도 더 하느님 사랑을 배척했음에도, 끊임없는 죄 속에 살아왔던 우리였음에도 당신의 사랑을 멈추지 않으신 그 가없는 사랑 때문입니다. 그 같은 하느님 사랑의 승리가 부활 사건입니다.

인간을 끊임없이 사랑하셨던, 그 사랑의 부활절 아침, 사랑으로 부활의 주님을 만난 여인이 마리아 막달레나였습니다. 안셀모 성인은 마리아 막달레나를 가리켜 ‘복된 하느님의 애인, 그대 선택된 애인이여, 사랑 가득한 선택자여!’ 라고 칭송하였습니다.

너무나 큰 죄를 용서받았기에 그만큼 예수님을 사랑했던 여인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남으로써 여인으로서의 품위를 되찾게 된 마리아 막달레나는 끝내 주님을 떠나지 않습니다.

그 사랑밖에 모르시는 주님을 죽음마저도 갈라놓을 수 없었습니다. 마리아 막달레나의 삶은 부활을 보내는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삶이어야 합니다.

“‘내가 사랑하는 이를 보셨나요?' 그들을 지나치자마자 나는 내가 사랑하는 이를 찾았네. 나 그이를 붙잡고 놓지 않았네”(아가 3, 3~4).

구약 아가서의 이 여인은 신약의 마리아 막달레나를 꼭 빼어 닮았습니다. 방황하던 삶 속에서 기적처럼 만난 예수님, 이제는 세상 그 어떤 것도 갈라놓을 수 없었습니다.

우리 역시 우리의 삶 속에 어떤 시련이 다가올지라도 우리가 은총 속에 만난 생명과 사랑이신 주님을 붙잡고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삶의 중심이신 부활의 주님과 인생 끝까지 함께 가야 합니다.

부활은 분명 죽음을 넘은 사랑의 승리이며, 인류 시작부터 모든 인간이 절규하며 물었던 모든 고통에 대한 의문의 하느님 대답입니다. 이제 인생의 해답을 저 장엄한 부활사건에서 되찾은 우리는 생명의 길을 향하여 더 높이 날아올라야 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났으니, 저 위에 있는 것을 추구하십시오”(콜로 3, 1).

▶ 지금 이곳에서의 부활

어둠이 걷히고 빛이 밝아오는 부활 성야의 장엄하고 기쁜 알렐루야 노래 후, 세상에서 흘린 눈물과 노력의 땀은 결코 헛된 일이 아니었음을 우리는 확신합니다.

더 이상 기대하거나 희망할 수 없었던 그 모든 일들이 이제는 부활로 말미암아 뒤바뀌게 되었고, 희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느님께서 독생 성자의 부활로 말미암아 우리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주실 것입니다.

“보라, 이제 하느님의 거처는 사람들 가운데에 있다. 하느님께서 사람들과 함께 거처하시고 그들은 하느님의 백성이 될 것이다. 하느님 친히 그들의 하느님으로서 그들과 함께 계시고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다. 다시는 죽음이 없고 다시는 슬픔도 울부짖음도 괴로움도 없을 것이다. 이전 것들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묵시 21, 3~4).

부활, 그 영원한 희망은 결코 거저 주어지는 법이 없습니다. 참된 부활은 지금 내 자신이 발을 딛고 서있는 이 자리에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내 자신이 이기심의 껍질을 부수고 세상이 보다 살기 좋은 곳으로 바뀌길 희망하며 자신을 희생할 때, 참 평화를 위해 양보하고 손해와 몰이해 등을 감수할 때,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손을 뻗을 때, 내가 용서하여 용서받은 이가 다시 자유를 얻을 때, 그때마다 부활은 지금 여기에서 일어납니다.

부활은 과거의 사건이 아닌 현재에도 끊임없이 일어나는 사건이며, 죽음 뒤에 일어나는 사건만이 아닌 살아있는 순간순간 계속해서 일어나는 사건입니다.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한 아무런 노력도 기울이지 않은 이들은 부활의 축제에 참가할 자격이 없습니다.

그들이 부르는 부활 찬송은 그저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한 것입니다. 자신들의 온갖 탐욕과 이기주의의 껍질을 부술 의지 없이, 십자가의 고난을 이기신 그리스도의 부활에 동참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부활은 바로 오늘의 삶, 지금 여기에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 배광하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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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분께서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셨습니다. 마리아 막달레나는 예수님을 너무나도 사랑했기에, 어두운 새벽에 두려운 줄도 모르고 주님의 무덤에 갔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두려움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부활하신 주님을 가장 먼저 뵙게 되는 영광을 얻습니다. 처음에는 빈 무덤을 보고 주님의 시신을 누가 훔쳐 갔다고 여깁니다. 그리고 베드로와 주님께서 사랑하신 다른 제자 요한에게 이 사실을 알렸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무덤에 달려가서 무덤 안의 상황을 살펴보고, 누가 주님의 시신을 훔쳐간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말씀하신대로 다시 살아나셨음을 믿게 됩니다. 베드로와 요한도 예수님을 진실로 믿고 사랑하였습니다. 주님을 진실로 믿고, 바라고, 사랑하는 사람은 주님의 부활을 믿고 자신도 주님의 부활에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 제1독서 사도행전에서 베드로 사도는 참으로 힘차게 주님의 부활을 증언합니다. “우리는 그분께서 유다 지방과 예루살렘에서 하신모든 일의 증인입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나무에 매달아 죽였지만,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사흘 만에 일으키시어 사람들에게 나타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모든 백성에게 나타나신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미리 증인으로 선택하신 우리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분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신 뒤에 우리는 그분과 함께 먹기도 하고 마시기도 하였습니다” (사도 10,39-41).

어두운 세상에 예수님께서는 빛으로 오셨습니다. 하느님이신 그분께서 인간의 몸으로 오셨습니다. 당신의 모든 것을 바쳐서 세상을 사랑하셨습니다. 당신의 모든 것을 내어 놓으셨습니다. 당신을 박해하는 자들과 대적하지 않으시고 십자가에 매달려 죽으셨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습니다. 당신께서 세 번이나 말씀하신대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늘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죽음의 그늘진 골짜기를 거닐 때에 거기에 주님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우리가 어둡고 긴 터널을 지날 때에 거기에 주님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우리와 똑같은 인간의 몸으로 오시어 온갖 고통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우리 인간의 모든 것을 아시고 이해하십니다. 언제나 어디서나 그분께 우리의 모든 것을 맡기고 그분께 모든 희망을 걸고 그분을 사랑하고 서로 사랑하며 살아갑시다.

“두려워하지 마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래아로 가라고 전하여라. 그들은 거기에서 나를 보게 될 것이다” (마태 28,10).

춘천교구 강동성 신부
  | 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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