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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 “빈무덤 사화” | 신앙은 마음의 결단
조회수 | 2,177
작성일 | 07.04.07
「부활」. 이 사건은 인간의 근본 문제에 대한 가장 분명한 해답인 동시에 그리스도교 설립에 가장 근본적인 의미를 부여한 사건입니다.

그러나 이 부활 신앙에서 미묘한 사실은 이 사건은 객관화할 수 있는 어떤 이야기가 아니라 증언하는 사람들의 신앙 진술이라는 점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자면 부활이란 어떤 직접적인 증거에 의해 확인 될 수 있는 사건이 아니라 다만 간접적인 증거, 빈무덤이나 혹은 예수님의 죽음 전후로 우매하고 겁 많던 제자들이 완전히 변하여 목숨 바친 복음 선포자로 변한 점 등 다만 간접적인 증거로 밖에는 증언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러기에 부활에 대한 믿음은 누구에게나 명명백백한 객관적 사실로 다가오는 진리가 아니라 선택과 결단에 의해 다른 의미로도 다가올 수 있는 신앙적 진리 문제이기에 어떤 이들에게는 신앙의 이유가 되기도 하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불신의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이러한 면에서 생각해 본다면 신앙에서는 어떤 객관적 상황이나 사건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사건을 대하는 사람의 마음과 해석 그리고 선택이 더 우선적인 것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오늘 복음은 교회가 부활의 간접 근거로 자주 이야기하는 빈무덤 사화입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안식일 다음날, 즉 30년 4월 9일 일요일 새벽 막달라 여자 마리아가 무덤에 찾아갔다가 무덤이 열려 있는 사실을 발견하고 놀라 베드로 사도와 애제자에게 알립니다. 이에 두 제자는 경쟁하듯 달려와 빈 무덤과 무덤 안에 놓여 있는 수의와 수건을 확인하지만 예수님 사랑을 받던 제자만이 예수 부활을 알아차리고 부활을 믿었다는 내용입니다.

이 사화는 먼저 빈무덤을 통해 예수님의 부활을 간접적으로 증언함과 동시에 당시 빈무덤에 대해 유다인들이 가지고 있던 부정적인 견해에 대한 반박입니다.

예수님의 무덤이 비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당시 유다인들뿐만 아니라 역사가들도 분명한 역사적 사실이라고 인정합니다. 왜냐하면 당시 유다인들은 부활을 시신이 소생하는 것으로 간주했기 때문에 예수님의 무덤에 시신이 있었다면 예루살렘에서 예수 부활을 도저히 주장 할 수는 없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유다인들도 이 사실을 인정했습니다만 이들은 무덤이 비어있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이 예수 부활을 주장하려고 예수님의 시신을 이장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오늘 복음은 이것에 대한 반박입니다. 복음은 예수님의 무덤에 그 분의 수의가 흩어져 있고 예수님의 머리를 싸맸던 수건이 한 곳에 잘 개켜져 있었다라고 이야기합니다. 예수님의 시신이 도적을 만났다면 수의도 수건도 다 가져가야 마땅합니다. 남아 있는 수건과 수의가 유다인들의 주장이 터무니없음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요한 11장 14절에 소생한 라자로의 얼굴이 수건으로 감겨져 있었다는 묘사와 비교해볼 때 잘 개켜져 있는 수건은 예수님이 단순히 소생한 것이 아니라 질적으로 다른 생명으로의 부활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필자가 오늘 복음을 보면서 묵상해 보고 싶은 점은 빈무덤을 대하는 두 제자의 태도입니다. 여기서 요한복음에 자주 등장하는 애제자는 사도 요한을 뜻하거나 때로는 그리스도 교회를 상징하는 표현이라는 점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어떻든 베드로 사도는 부활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빈무덤과 수건 수의를 확인하지만 믿음으로 연결되지 않은 반면 애제자는 같은 사실을 보고 믿습니다.

바로 이 사실은 믿음이라는 것은 어떤 증거가 우리에게 주는 「결과나 선물」이 아니라 그것을 「받아들이는 자의 태도」에 따라 달라진다는 평범한 진리를 우리에게 주고 있습니다. 즉, 믿음에서는 주어지는 상황이 아니라 마음의 상태가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오늘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의 진리는 증거나 상황이 우리에게 주는 선물이 아니라 마음의 결단임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욕심은 마치 확실한 증거와 외적 상황이 우리의 믿음을 가져오는 양 생각하면서 외적인 증거에 눈을 돌리려 합니다. 바로 이러한 우리에게 두 제자의 태도는 똑같은 증거라도 같은 믿음을 가져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주면서 우리의 눈이 관심을 가져야 할 바는 외적 증거가 아니라 나의 내면이라는 사실을 애제자의 모습은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원주교구 홍금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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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을 찾아간 여인 | 예수님 향한 무조건적 사랑

인생에 있어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삶의 목적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조금 거창하게 들린다면 기대나 소망 정도로 생각해도 좋습니다. 어떻든 우리는 소망이나 목적을 가질 때 삶의 방향성과 함께, 현재의 삶에 대한 반성과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토대를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이러한 목적은 수정을 통한 계속적인 과정이 될 때 의미를 가진다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인생은 목적을 향해 순항할 수만은 없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비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인간은 목적을 향해 일직선으로 나아갈 수 있는 존재(성공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란 의미)가 아니라 지그재그로 갈 수 밖에 없는 존재(실패를 경험한다는 의미임)입니다. 즉, 목표를 달성하기보다는 성취하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은 것이 인간존재의 근본입니다. 그러기에 한번의 이상적인 목표 설정과 추구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우리가 추구하는 바가 좌절되었을 때의 자세입니다. 실패에 좌절하느냐 아니면 정신을 가다듬고 목적을 위해 단기 목표를 수정하여 지금 나의 일을 찾아 나서느냐 입니다. 아마 후자가 이상적입니다만 현실은 감정에 휩싸여 전자의 삶을 택하는 것이 더 많습니다. 그러기에 안식일 다음날 새벽 무덤을 찾아 달려가는 오늘 복음의 여인의 모습은 작은 실패에 연연해 실망하는 우리에게 무거운 교훈으로 다가 오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안식일 다음날 새벽 막달라 여자 마리아와 예수님의 두 제자가 빈 무덤을 확인하는 내용입니다. 이 빈 무덤 이야기는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 할 때 초대교회가 자주 인용하던 간접증거였습니다.

예수님의 무덤이 비어 있다. 이 사실은 두 가지 이유로 역사적 신빙성이 있습니다. 유다인들은 부활을 시신이 소생하는 것으로 간주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무덤에 그분의 시신이 있었다면 제자들은 예루살렘에서 예수님의 부활을 주장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사후 바로 제자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했다는 사실이 바로 예수님의 무덤이 비어있었다는 사실을 증명합니다. 그리고 무덤이 비어 있음이 사실일 수 있는 것은 당시 유다인들조차 빈무덤을 부정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다만 유다인들은 무덤이 비었다는 것은 인정했지만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의 시신을 몰래 이장했다고 주장했음이 차이입니다만 어떻든 무덤이 비어있었다는 사실 자체만은 인정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필자가 이야기하고 싶은 부분은 이러한 논쟁적인 부분보다는 예수님의 부활 발현을 최초로 확인하는 여인이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가는 부분입니다.
여인은 이른 새벽,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갑니다. 마르코 복음에 의하면 향유를 바르기 위해 즉, 장례의 미진한 부분을 채우려고 말입니다. 외적으로만 본다면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당시 예수님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저주 받은 상태로 돌아가신 분이었기에 이 사람을 찾아가는 것은 자칫 오해를 살수도 있는 일이요, 또 그 시간이 새벽이라는 사실도 가련한 여인의 몸으로 무덤을 찾아가는 것을 어렵게 만들기에 충분하였을 뿐 아니라 사체를 수습하기 위해 혼자 몸으로 무덤으로 간다는 사실도 당시 상황으로 보아 쉽지만은 않은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더욱 더 곤혹스러운 사실은 예수님과 그녀와 맺었던 관계입니다. 사실 예수님은 그녀에게는 단순한 한 인간적 사랑의 대상일 수만은 없었습니다. 신앙의 대상이요, 희망이며 존재 의미였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이 무참히 사람들에 의해 살해되었다면 모든 희망이 사라진 암흑, 삶의 의미마저 사라진 암담함이 그녀에게 있어 예수님의 죽음이 가지는 의미였습니다. 아마 필자라면 정신적 공허감 때문에 넋을 잃고 주저 않아 몇 날 몇 일을 보내야만 할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위대한 여인은 낙담하고만 있지는 않았습니다. 그녀의 꿈이 예수님의 죽음으로 산산조각 난 순간에도 그녀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찾아 나선 것입니다. 아마 「예수님을 향한 무조건적인 사랑」, 「감정을 이겨낼 수 있는 냉정한 의지」가 있었기에 이 같은 행동은 가능했던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모습이 영예롭게도 이 여인을 인간으로서 가장 먼저 빈 무덤과 부활한 예수님을 만날 수 있게 한 힘이 아닐까 생각해 보면서 부활 아침 우리 모든 신앙인들이 예수님을 향해 달려가는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에서 우리가 찾아야 할 교훈으로 생각해 봅니다.

다시 한번 부활의 기쁨이 독자 여러분에게 함께 하기를 기원하면서 봄날의 화사함과 부활의 기쁨이 만들어내는 멋진 아름다움이 여러분의 삶의 자리에 자리 잡기를 기원해 봅니다.

원주교구 홍금표 신부
  | 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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